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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0 00:36:40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북진 - 3. 북진 개시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한국땅을 그리라고 하면 한반도 전체를 그립니다. 하지만 외국은 다르죠. 외국에게 있어 북한은 불법무장집단이 아닌 동등한 하나의 나라고, 한국의 영토는 38선 이남일 뿐입니다. 그 때도 그랬죠. 대한민국이 UN의 승인을 받긴 했지만 그건 38선 이남일 뿐이었습니다. 때문에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데는 이 "한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는 UN의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뭐 우리끼리야 괴뢰니 뭐니 하지만 그 때 UN은 남북을 따로 보고 있었죠. 이를 무시하기엔 UN군은 한국을 구했고 우리와 같이,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죠.


"북한이 먼저 침공한 이상 38선은 없어졌다."  - 7월 13일
"6월 25일 새벽에 북한은 38선의 유지를 요구할 권리를 잃었으며,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지금이 통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 7월 19일
"만일 UN군이 38선에서 정지하더라도 국군은 북진한다." - 9월 20일


"38선은 무의미하며 전 한국의 해방과 통일은 가장 본질적인 것"

우리의 주장은 늘 같았습니다. 애초에 북진통일을 꿈 꿨던 이승만에게는 남침이라는 정말 좋은 명분이 주어진 것이죠. 단지 명분이라고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탄압 속에서도 계속 남아 있었던 한국 내의 평화통일 움직임과 UN에서도 전쟁은 없을 거라 했던 예측을 깨뜨린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원초적으로는 피의 복수, 이게 아니더라도 침략자를 타도하는 것, 2차 대전 때와 다를 것이 없었죠.

반면 미국부터 UN은 이를 망설였습니다. 역시 문제는 소련과 중국이었죠. 미 국무부는 중소의 개입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자고 주장했고 국방부는 북진을 주장하는 맥아더의 편을 들어줍니다. 요약하면 이랬죠.

"아군이 38선에서 중지하면 북한군은 와해된 군사력을 정비하여 재침할 수 있다. 한국은 전쟁상태가 계속될 뿐 아니라 UN군은 무제한으로 주둔해야 될 것이다. 이미 해공군은 38선 이북에서 작전하고 있는데 지상군만 제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이를 위해 9월 1일부터 7일까지 갑론을박이 계속됐고,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북한군 격퇴 후 중-소의 개입이 없을 때에만 북진하고 군사적 승리 후 UN 주도 하에 한국문제를 해결하되, 중-소의 개입 여부에 대한 정보가 확인될 때까지 유보한다."

여기에 우방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역시 설득해야 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홍콩 문제도 있고 해서 이를 망설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의 힘이 아시아보다는 유럽에 집중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이를 위해 인천상륙작전 직전까지 두 차례의 회담이 있었습니다.

한편 소련은 뒤늦게나마 유엔 안보리에 참가,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전황이 확실히 뒤바뀐 21일에 되자 소련은 '평화선언'을 제안하며 38선 돌파를 막으려고 했구요. 또한 중국은 UN에 당시 자유중국이었던 대만을 대신해 "중국"으로서의 참가를 요구했고, 9월 25일에는 인도대사를 통해 이렇게 말 합니다.

"중국은 미국이 38도선을 돌파하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은 확실히 태도를 정하고 북진을 주장하게 됩니다.

"UN군의 군사행동은 38선 이북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UN결의안의 정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UN 내에서 미국의 입장이 정해졌고, 맥아더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훈령이 전달됩니다. "9.27 훈령"이었습니다.

  - 귀관의 군사적 목표는 북한군의 격멸에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38선 북쪽에서 상륙 및 공중작전을 포함한 군사작전을 실시하도록 인가되었다.
- 그러나 어떠한 환경에서도 귀관은 만주나 소련의 국경을 넘어서는 안 되며, 한국군이 아닌 어떠한 지상군도 소련에 접한 북동지역이나 만주 경계선에 연한 지역에서 운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북진은 하되 국경지역으로의 진격은 국군에 맡기라는 것이었죠.

10월 7일, UN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을 결의합니다. "10.7 통한(統韓) 결의안"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맥아더는 북진 계획을 계속 짜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 삽질 하나가 끼어 있었지만요. -_-;

헌데 이들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일어났죠.

-------------------------------------------------------------------------

이승만에게 9월 29일에 있었던 38선에서 진격 중지 명령은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니 공포 수준이었을 겁니다. 환도식 때 맥아더에게 계속 진격할 것을 요구했지만 맥아더는 딱히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죠. 김일성도 반대의 감정으로 이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여기에 매달렸겠죠. 국군은 북진할 지 몰라도 UN군은 38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요.

아무튼 그는 곧 행동에 나섭니다. 곧바로 정일권을 불렀죠.

"국군의 통수권자가 맥아더 원수인가 아니면 이 나라의 대통령인가? UN은 우리가 38도선을 넘어 국토를 통일시킬 우리의 권리를 막을 권한이 없다. 따라서 나는 우리 국군에게 북진을 시킬 생각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정일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미 대통령께서 서명하신 문서에 의해 UN군 총사령관에게 이양되어 있으므로 지금 또다시 이중으로 명령을 하시게 되면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북진에 관해서는 UN에서도 조만간 결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좀 더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이렇게 했죠.

"하지만 이는 군사상의 견해이며, 대통령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저희들은 오직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이에 이승만은 품안에서 직접 쓴 문서를 줍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내가 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이니 나의 명령에 따라 북진하라"

이 명령을 받은 정일권은 1군단에 연락해 점령하지 않으면 아군의 진격에 방해가 될 고지가 있는지를 물었고, 김백일은 하조대라는 곳을 답합니다. 정일권은 그 말을 듣고 미 8군 사령부를 방문, 이런 요구를 했죠.

"국군 3사단이 38도선 바로 북방에서 적의 치열한 사격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고 있다. 이 고지를 점령한다고 해서 38도선에 기하학적으로 뚜렷한 선이나 어떤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를 공격하게 해 달라"

워커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정일권은 해당 지역으로 갔고, 구두로 명령합니다.

"북진하라"

10월 1일, 이렇게 국군은 38선을 넘었죠.

보시다시피 참 꼼수로 시작됐습니다. -_-;

이 부분에서 많이 퍼져 있는 오해 하나에 대한 답을 볼 수 있습니다. 작전권이 미국에 넘어 가서 국군은 미군의 명령만 들어야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때 국군은 북진했고, UN군은 이를 막지 못 합니다.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거든요. UN군이 작전권을 가졌을 당시부터 한미연합사가 작전권을 가지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 되는 거죠. 다만 대통령이 통수권을 막 휘두를 때의 문제점을 이승만 자신이 보여줬죠. 시작이야 꼼수였지만 그 이후에도 미 1군단에 배속된 국군 1사단을 제외한 국군은 북진을 계속합니다. UN군이 북진하기 전에 말이죠.

이 때 UN군은 이 북진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이승만이 이미 단독 북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고 아마 크게 문제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승리가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거기다 UN군에게는 북한군 격멸만이 허가됐고 영토 점령 문제는 국군에게 맡기는, 국군과 UN군을 슬슬 분리하려는 상황이기도 했구요. 문제는 오히려 뒤에 나오죠. 양 쪽의 의견이 일치해야 됐을 때요.

국군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당연했을 겁니다. 38선은 이미 무너졌고 왜 통일을 막느냐는 쪽으로 흘러갔죠. UN은 이런 국민 감정도 배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게 봐 줄 순 없어요. UN군이 진격을 멈춘 것은 단지 정치적 목적만이 아니었거든요. 이승만은 군사에는 문외한이면서 정치적으로 이를 강요한 것이거든요. 국군이 이를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 했지만, 만약 북한군이 충분한 전투력을 확보해서 별 준비도 못 하고 단독 북진한 국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승만은 제 1 진영의 아시아 교두보로서 한국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의 상황을 잘 이용합니다. 참 신나게 뜯어먹었죠. 그래도 국익에 도움되는 면은 많았지만, 거의 자존심 싸움이나 다름 없었던 이 북진을 좋게 볼 순 없습니다.

그와는 별개의 이유로 이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 것도 저로서는 맘에 안 들어요. -_-a 반공이니 그런 걸 떠나서 이 날은 국군이 "공격한" 날이거든요. 이에 대한 의의는 있겠지만 국군 전체를 상징하는 날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존재니까요.

뭐 그렇다 해도 이를 대체할 만한 날이 떠오르진 않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서울수복일로 바꿨으면 하구요.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긴 합니다. 근데 솔직히 광복군을 정식으로 이었다고 하기에는 쪽팔리는 면이 있죠 (...) 그 외에 남북 모두에 통용될 만한 날로 바꾸자면, 그런 날은 정말 없습니다. 북한은 광복군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


맥아더는 국군이 따로 놀거나 말거나 차후작전을 준비합니다. 어차피 간 거 목표만 던져주면 된다고 본 거 같아요 - -;

10월 2일, 그는 작전명령 2호를 하달합니다.

- 미 8군은 주공으로 38선을 돌파, 개성-사리원평양으로 공격한다.
- 미 10군단은 주공 공격 후 1주일 이내에 원산에 상륙, 원산-평양을 따라 서북으로 진출해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한다.
- UN군은 정주-군우리-영원-함흥-흥남을 연결하는 선까지만 진격하고, 그 이북지역에 대한 작전은 한국군에 맡긴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10군단을 8군에서 분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워커가 또 얼마나 열받았을지는 짐작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 때 맥아더가 댄 이유는 이것이었죠.

-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으로 전선의 횡적연결이 곤란하고 작전 협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서 양쪽으로 독립 작전을 해야 한다.
- 군수지원면에서 부산항의 보급기능은 감소되고 인천항은 기능이 제한된다. 따라서 원산항 사용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원산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지만 -_-a 그게 왜 시간 많이 드는 상륙작전이었냐는 것이죠. 거기다 김일성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악이 받쳐서 원산에 3천개나 되는 기뢰를 심어놓습니다. 원산이 그 정도로 중요했다면, 적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미 10군단에 소속된 건 3개나 되는 사단과 국군 1군단, 군단장은 여전히 알몬드였습니다. 맥아더는 자기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장기말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 결과야 뭐 -_-a 그 때 얘기하죠 뭐. 인천상륙작전으로 신화 수준으로 올라간 맥아더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습니다. 워커는 이렇게 휘하 병력을 잃었고, 이 대군은 중공군이 올 때까지도 바다에서 놀고 있었죠.

아무튼...

10월 3일, 워커는 구체적인 작전명령을 내립니다.

- 미 1군단(1 기병사단, 24사단, 국군 1사단, 영연방 27여단)은 우선 1개 이상의 사단으로 임진강 서쪽의 방어진지를 탈취, 군단의 공격을 엄호한다.
- 최대한 빨리 후방지역 경계를 미 9군단에 이양하고 주력을 서울 북방에 집중해 평양공격을 준비한다.
- A일에 공격을 개시, 미 1 기병사단을 주공으로 평양을 향해 진격한다. 24사단과 국군 1사단은 측면을 엄호한다. 이 A일은 후달한다.
- 미 9군단(2, 25사단)은 경계임무를 수행해 한국 경찰과 협동해 적 패잔병과 게릴라를 소탕한다. 여기에 국군 11사단(10월 5일 창설)을 배속한다.
- 국군은 1군단을 주문진-여운포로, 2군단을 춘천-의정부로 집결해 북진을 준비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평양이었습니다. 북한의 수도는 아닌 중심지, 동부에 비해 평양으로 가는 서부에는 북한의 남은 모든 역량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야 두말할 필요 없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죠.

당연히 평양 점령에 대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진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죠.

당시 미 1군단에서 국군 1사단은 가장 후방이었습니다. 군단이 북진을 위해 이동했을 때도 도로우선권이 가장 뒤였고, 이후 결정된 작전에서도 1사단은 평양에 빠져 있었습니다. 목표는 해주였죠.

백선엽은 직접 프랭크 밀번 군단장에게 가서 평양을 맡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내민 건 세 가지였죠. 첫째는 전쟁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만큼 평양 점령은 한국군이 해야 된다는 것, 두번째는 자기가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청군이 있던 평양성을 공격, 점령한 것을 연구했다는 것, 세번째는 자기가 평양에서 자라 대동강의 깊고 얕은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지루할 정도라 할만큼 기나긴 말이 끝난 후 두 사람 간에는 역시 기나긴 침묵이 왔다고 합니다. 밀번은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 했다고 하죠.

"백 사단장, 평양에 정말 잘 갈 수 있느냐. 기동력이 미군에 비해 한참 떨어질 텐데 해 낼 수 있겠느냐? (1사단에 차량이 겨우 100여대 있다는 것을 듣고) 미 1기병사단에는 차량이 1000대나 있는데, 어떻게 미군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

이에 대해 백선엽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차량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장병들이 주야로 걷고 또 걸으면 반드시 먼저 평양에 갈 수 있다."

이렇게 평양 점령의 영광은 둘째치고 1사단 장병들에게 죽음의 행군이 떨어지게 되었죠 (...)

밀번은 설득돼 미 24사단과 국군 1사단의 임무를 바꿨고, 국군 1사단은 미 1 기병사단의 조공으로 평양으로 진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불탔겠죠. 여기에 하나 더 끼어든 것이 있었으니 2군단의 예비로 있던 7사단 8연대였습니다. 이승만의 직접 명령에서였죠.

뭐 그 때 가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만, 당시 평양을 점령하려던 이들의 마음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너무 매달리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평양 점령의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요 -_-; 적당히 좀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10월 7일, UN군은 총진격을 개시합니다. 1차 목표는 평양과 원산, 최종목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습니다. 레이스는 시작됐습니다. 적이 경악할 속도의 북진이었습니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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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10 05:37
수정 아이콘
미래를 알고 있는 저희야 그렇지만, 당시 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분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기대? 두려움? 잘 모르겠네요.

아 참!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눈시님 최고~!
DarkSide
12/10/10 07:58
수정 아이콘
너무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집착한 것도 나중에 남한군과 미군 UN군에게 업보로 되돌아온 것이었군요 ...

고등학교 1학년 국사 시간에
6.25 남북 한국전쟁은 초기만 배우고 중후기는 간단히 배우고 넘어가서 ( 그냥 1953년 7월 27일에 종료되었다. 하고 휙 ~ )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더군다나 2학년 때부터는 제가 이과 계열로 진로를 결정하고 이과로 가서

문과처럼 근현대사나 세계사 같은 역사 관련 과목은 거의 배우지 못해서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했는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
방구차야
12/10/10 08:03
수정 아이콘
"북진하라" 소름돋네요.. 당시 한국군의 북진속도는 마치 레이싱경기를 하듯 유엔군도 놀랄정도였다고 하죠. 하지만 무리한 진군속도로 인해 보급선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해 나중에 중공군에게 한방에 밀려난건 또 가슴아픈 진실입니다.
그리메
12/10/10 08:55
수정 아이콘
와 나치 독일의 전격전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한국전은 정말 드라마틱하기도 하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그 모든게 담긴 듯 하기도 합니다.
백선엽 장군은 근데 청일전쟁이야기를 왜 꺼낸걸까요.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을텐데요.
blue wave
12/10/11 17:59
수정 아이콘
총공격하라!!! 북진의 드라마틱만큼이나 퇴각의 쓰라임도 생각이 나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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