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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3 15:52:38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북진 - 4. 평양 탈환


북진 당시 북한군은 게릴라까지 포함해 9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병력은 갖춰져 있던 것이죠. 김일성은 주력을 평양 방어에 투입했고, 원산 방면에도 2만이 넘는 병력을 투입합니다. 곳곳에서 의외의 저항과 게릴라전이 벌어졌죠. 맥아더는 이런 점들을 감안해 적이 평양을 절대 사수할 거라 생각했고, 원산을 점령하면서 평양을 동서에서 협공하려 했습니다. 근데 왜 점령 방식이 상륙작전인지는 참 -_-;

하지만 아군은 이걸 쉽게 뚫어버립니다. 개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죠. 북한군은 공포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패잔병 아니면 경험도 장비도 없는 신병들이었지만, 아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수많은 피를 뒤집어쓰며 전쟁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평양을 사수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김일성은 강계로 가서 중공군을 기다립니다. 반면 맥아더를 비롯한 아군의 긴장은 완전히 풀어져 버렸죠. 마치 김일성이 낙동강까지 갔으니 이길 수 있다 생각했던 것처럼, 아군은 그냥 압록-두만강에 발만 딛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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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저주스러운 민족의 분단선은 영영 무너지고 꼭 통일이 되는 줄 알았어요. 모두 발걸음이 가벼워 뛰다시피 38도선을 넘었지요." - 23연대장 김종순 대령

3사단은 38선을 넘어 양양에 돌입합니다. 이어 수도사단 역시 양양에 돌입했고, 원산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10월 2일은 추석이었는데, 그냥 콩만 먹고 진격했다고 합니다. -_-; 하루 평균 24km나 되는 말도 안 되는 속도였죠. 북한군은 가볍게나마 저항했지만 그냥 쑥 밀렸고, 1차 방어선으로 선정했던 간성을 포기하고 고성으로 퇴각합니다.

문제는 두 개 사단이 동해안의 좁은 도로에 밀집해 있고 철원 쪽에 있던 북한군의 후퇴도 막아야 했다는 점입니다. 이 병력도 2만 정도 됐고 아군이 진격할 경우 언제 후방을 찌를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우선 수도사단이 간성에서 원통-인제-양구 (...)로 우회합니다. 여기에 1 기갑연대가 포함돼 화천에서 철령으로 진격했죠. 문제는 철령에 있던 적 방어선이었습니다.

18연대장 임충식의 명령을 받은 1대대는 묘안을 냅니다. 북한군이 미 전차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노획한 소련제 차량들을 한밤중에 진격시킨 것이었죠. 배기통을 떼니 전차가 내는 소음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게 정확히 들어맞았고 수도사단은 북한군 1개 사단분의 물자를 노획합니다. 그 동안 3사단의 진격도 계속됐고, 수도사단 역시 지지 않으려 진격을 계속합니다.

19월 9일까지, 3사단과 수도사단은 원산 코 앞 안변에 도달합니다. 적은 원산에 집결해 이를 막으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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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단은 10월 5일 38선을 돌파합니다. 선봉은 춘천을 탈환한 6사단, 이들의 목표 역시 원산이었습니다. 북한군은 이미 1군단의 진격에 얼이 빠져 있었고 6사단은 대대 수준의 적들(명칭은 연대였지만 (...))을 계속 격파해 가며 8일까지 화천을 점령합니다. 순조롭게 작전이 계속되자 육본에서는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2군단은 원산에서 1군단과 교대, 원산을 경비하라. 이후 흥남 축선으로 공격, 적을 격멸하고 함흥과 흥남을 확보하라."

즉 원산 점령이 완료된 후 2군단은 동북으로, 1군단은 평양으로 공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1시에 왔던 이 명령은 20시에 바뀝니다.

"2군단은 가능한 한 신속히 원산으로 진격하라. 육본의 명령이 오면 서쪽으로 공격하되 모든 적을 섬멸하고 미 1군단과 합류하라."

임무가 뒤바뀐 것이죠.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혼란이 옵니다. 이렇게 북진 사이에서 명령이나 인사에 잡음이 있었고 이게 중공군의 개입 때 제대로 대응 못 한 이유로 꼽히기도 합니다.

10일이 되면서 2군단에 확실한 지침이 내려옵니다. 1군단이 원산 점령에 성공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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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의 중요성은 컸습니다. 경원선, 평원선, 원라선(원산-라진) 등 교통의 중심지였고 특히 평원선은 산맥으로 동서로 갈라진 북한에 있어 정말 중요했습니다. 항구로 따져도 동쪽에서 최고로 중요했고 원산비행장은 평양까지 불과 20~30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소련군이 북한에 들어올 때부터 원산항은 소련의 물자가 들어오는 역할을 했죠.

당시 북한군은 패잔병까지 규합해 최소 2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요새화를 시도합니다.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였습니다만...

아군은 "전공이 저기 있다"고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 2만이나 되는 병력은 어디에, 3사단과 수도사단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하루만에 원산 시가지를 점령해 버립니다.

싸움이 벌어졌죠. -_-; 누가 먼저 원산을 점령했느냐로요. 이미 서로의 작전구역을 침범하기도 하면서 달리고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다행히 군단장 김백일이 이걸 한큐에 정리해 줍니다.

"양 사단 공히 10일 05:00에 공격을 개시, 10:00에 원산을 동시에 점령했다."

이후 밤까지 소탕전이 계속됐고, 북한군은 원산 외곽으로 후퇴, 시가지에 포탄을 무차별 사격하며 아군을 방해합니다. 방해라는 말에서 보듯 아군에게는 큰 타격이 아니었지만 민간인들에게는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22시에는 역습도 가해집니다. 아군이 여기에 잠시 밀린 틈을 타 원산비행장을 파괴하고 도주했죠. 다행히 비행장의 피해는 크지 않았고 11일부터 공군이 작전을 시작합니다. 이승만도 12일에 원산에 도착, 1군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을 해 줬죠.

그리고 그 동안...

맥아더가 야심차게 준비한 원산상륙부대는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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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상륙을 위해 준비된 미 10군단은 미 해병 1사단과 7사단, 상륙 예정일은 10월 15일이었습니다.

맥아더가 이를 주장한 이유가 없진 않았습니다. 부산, 인천항으로는 북진이 힘들었고 원산을 점령해 보급항으로 쓴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왜 이걸 바다로 가야 되느냐는 거구요 -_-; 워커는 당연히 이를 반대합니다. 육상으로도 충분히 원산을 점령할 수 있다고 했고, 맥아더 밑의 참모들도 여기에 동의해서 누군가 말을 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워커는 해병대가 포함된 10군단을 평양에 동원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맥아더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10군단은 워커 밑에서 빼서 맥아더 직속부대로 만들었죠. 맥아더는 도로 문제로 육상에서의 진격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국군은 이를 비웃듯 상륙개시일 5일 전에 원산을 점령해 버립니다. 분명 원산은 상륙하기에 적절하긴 했지만 이건 인천과 달리 김일성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3천 개의 기뢰를 부설합니다. 소해대가 동원됐지만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황이라 적지 않은 피해가 나왔죠. 전투로 원산을 점령하는 게 아닌, 그냥 바다에서 병력을 증원하는 행정 상륙이라도 제대로 됐으면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기뢰 때문에 10군단의 상륙은 26일에야 시작됩니다.

뭐 이 경험을 토대로 남포항 소해작전은 아무런 피해 없이 성공합니다. 유일한 의의......... 는 무슨 -_-;

원산이 점령된 후 2군단은 방향을 평양으로 돌립니다. 이미 원산 근처까지 간 6사단은 서쪽으로 진격, 양덕-성천-순천을 경유해 안주로 진격합니다. 8사단은 철원에서 이천, 신계 - 율리 - 강동 방면으로 가면서 북한군을 격파해 갔고, 동북쪽에서 미 1군단을 지원했구요. 이 때 국군 2군단이 평양 직접 점령에서 빠졌다는 말을 들은 지휘관들은 실망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죠. 이 때 또 나선 것이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평양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국군이 먼저 점령해야 된다고 강조하며 예비였던 7사단 8연대를 평양으로 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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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해 먹겠다 ㅡㅡ"

워커는 어찌됐든 자기 임무를 다합니다. 평양으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가 예정한 공격개시일은 10월 9일이었습니다. 당시 평양-개성간에는 북한군의 마지막 주력 4개 사단이 배치돼 있었고 특히 금천에는 3개 사단이 밀집해 3중의 방어선을 짜고 있었습니다.

주공은 미 1 기병사단, 이들은 영연방 27여단을 배속받아 개성-금천-사리원-황주-평양으로 진격을 명령받습니다. 미 24사단은 좌측을 엄호하며 평양 점령에는 일단 빠졌지만, 언제든지 기병사단을 초월할 준비를 하게 했죠. 국군 1사단은 기병사단의 우측을 엄호하며 신계-평양 축선으로의 진격을 명령받습니다.

문제는 기병사단에 도하장비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철교가 남아 있긴 했지만 북한군의 집중사격이 올 게 당연했죠. 사단장 게이는 망설였지만 선봉에 섰던 7기병연대장 해리스 대령이 끈질기게 설득해 적전도하를 시작하게 됩니다. 북한군은 당연히 집중사격을 했지만 다행히 피해가 크진 않았습니다.

공격이 쉽진 않았습니다. 북한군이 깔아놓은 수많은 지뢰 때문에 첫 날에 송악산까지 가는 정도였죠. 이런 가운데서도 깊숙히 뚫고 들어가다 아군의 오인 사격에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나름대로 정예긴 했지만 역시 잡다한 부대를 섞어놓았기에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곳에서는 정말 죽을 때까지 싸웠지만 어디에서는 쉽게 쉽게 항복했죠.

게이는 포위공격을 노립니다. 8 기병연대와 5 기병연대가 우회를 시작했고 영연방군 역시 우회했지만 이들은 길을 잘못 들었죠 (...); 아무튼 13일까지 포위망이 완성됐고 14일까지 금천을 완전히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앞으로는 일보도 후퇴해서는 안 된다. 더 물러설 땅이 없다!"

김일성은 금천 함락 소식에 대노했지만 이 때 그는 이미 평양에 없었습니다. 12일에 평양을 탈출해 강계에 임시수도를 마련하고 중공군을 기다리고 있었죠. 어차피 금천에서 막던 병력도, 이후 평양을 막던 부대도 결과적으로 지연전을 펼친 게 됐죠. 이들이 금천에서 버틴 5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국군 1사단은 미군이 싸우는동안 신나게 달렸을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우선순위가 밀려 11일에야 38선을 넘었고, 금천 전투에서 포위공격을 하기 위해 미군에게 다시 길을 빌려줘야 했습니다. 거기다 1사단 전방에도 적 지뢰지대와 방어선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적의 문서를 노획해 위치를 알게 됐지만, 마구 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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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라, 공격하라, 피로가 극심할 때까지 공격하라. 피로가 극에 도달해서 쓰러졌을 때 바로 그때 다시 공격하라."
-_-;

진격 속도가 너무 느린 것에 고심하던 백선엽에게 1사단에 배속된 미 고사포단장 헤닉이 패튼을 언급합니다. 낙동강에서부터 1사단에 배속됐던 미 고사포단은 1사단의 작전과 자신들을 잘 호위해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아예 1사단 편을 든 것이죠.
문제는 1사단에는 전차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헤닉은 군단장 밀번에게 건의해 보라고 했고, 백선엽은 못 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밀번에게 전화를 겁니다.

다음 날(12일), M-46 패튼 전차 1개 대대 21대가 도착합니다. 미군이 백선엽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천 전투 때 1개 소대 빌리려고 군단장이 직접 사정했던 걸 떠올려 봅시다. 백선엽은 반격 작전에서 공을 세운 김점곤에게 보-전-포 협동작전을 맡깁니다. 서로 소통이 잘 돼야 되는 협동작전이었지만 오후부터 무사히 잘 진행됩니다.

금천 전투의 포위를 위해 움직이던 5 기병연대를 만난 게 이때였습니다. 이들에게 길을 양보한 후 다시 기동을 계속했죠. 13일에는 금천 후방 시변리를 점령,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밀번은 전차 중대 하나를 더 보내줬죠.  

금천 전투가 완료된 후 밀번은 24사단을 해주로 진격 후 북진에 합류하게 합니다. 워커는 금천 전투에서 의외로 시간을 끈 것을 걱정하며 계속 진격을 명령한 상태였죠.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기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병사들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위에서 패튼이 한 말을 되새겨 봅시다. (...)

미군이 미친 듯이 달리는 동안 국군 1사단 역시 달리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에게는 고생의 연속이었죠. "빨리 빨리"가 구호처럼 돼 버렸다고 합니다. 다행인 점은 배속된 미 전차부대와 호흡이 잘 맞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군이 "전진하자!"고 하면 미군도 "We go!" 하면서 같이 놀았다고 합니다.

이 때 백선엽은 적 전차부대를 만난 미군이 바로 잘 대응하는 것을 보며 (이 때 선두 전차에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감탄했지만, 밤에는 놀려고 하고 물 보면 샤워하려고 하는 모습을 영 맘에 들어하지 않아 합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건데 말이죠. -_-; 아무튼 이 때문에 갈등이 벌어집니다. 밤에도 행군하려고 하는 국군과 야영하려고 하는 미군 사이에 말이죠.

"사단장, 지금 우리는 쉬어야 한다. 더운 음식도 먹어야 하고 씻기도 해야 한다."

백선엽이 물러나지 않자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우리 미군 전차부대는 낮에는 호랑이지만, 밤에는 고양이다."

사실 여기엔 밤에는 기습당하기도 쉽고 전차가 대응하기도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백선엽은 계속 놀기 좋아한다는 쪽으로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때 국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는 되지만 제발 이런 사고방식은 없어졌으면 해요 -.- 쉴 땐 쉬게 해 주고 먹는 것도 잘 먹게 해야죠.

뭐 그래도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립니다. 국군은 밤에도 걸을테니 미군은 밤에 자고 오라는 거였죠. 미군은 이를 고마워하며 밤에 푹 쉬고 낮에 열심히 달려 국군을 따라잡습니다. 작전 중에도 전차가 먼저냐 보병이 먼저냐로 싸우게 되는데 흥미로운 게 전에 배속됐던 고사포단장 헤닉은 계속 백선엽의 편을 들어줍니다. 마침 전차대대장 그로든이 헤닉의 사관학교 제자이기도 했다는군요.

국군 1사단은 이렇게 배속된 미군과 계속 갈등을 풀어가면서 전진합니다. 미 기병사단은 계속 달리고 있었고, 1사단은 물론 좌측의 미 24사단과도 경쟁 중이었습니다. 여기다 1사단 내의 각 연대도 누가 먼저 평양에 가느냐로 경쟁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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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국군 1사단은 평양 동쪽 60km인 수안을 점령합니다. 이 때 미 1 기병사단은 평양 남쪽 70km 서흥을 점령했죠.
다음 날에는 국군은 평양 동쪽 35km까지 진출했고, 미 기병사단은 사리원을 우회해 황주를 점령합니다. 평양 남쪽 40km였습니다.
18일에는 미 기병사단이 평양 남쪽 15km까지 왔고, 1사단은 동쪽 10km까지 갑니다. 그리고 이 날 7사단 8연대가 율리에서 평양으로 출발했죠.

19일, 양군은 대동강 앞에서 만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국군 1사단이 미 기병사단보다 "15분" 먼저 왔다고 합니다. 이 때 배속된 전차부대는 기병사단을 환영한다는 영어 피켓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이를 본 게이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군이 접근하는 걸 확인한 북한군은 곧바로 대동강의 다리를 모두 끊어버립니다. 감격의 재회는 끝났고, 이제 누가 먼저 강을 건너냐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백선엽은 자신했던대로 도섭지점을 찾아내 급속도하를 감행했죠. 기병사단은 다음 날에 부교를 가설해 도하했구요. 이 때 배속됐던 전차부대는 기병사단의 전차가 1사단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

당시 평양에 남아 있던 북한군은 잡다한 병력을 모아 8천 정도 되었고, 3개의 방어선을 짜고 있었습니다. 1사단은 모든 병력을 투입, 이를 뚫으려 했죠. 동평양의 적 방어선을 뚫는 것은 11, 12연대가 맡았고 본평양으로 향하는 우회는 15연대가 맡습니다. 이들은 이미 17일에 크게 우회해 대동강을 건넜죠.

10월 19일, 11, 12연대가 동평양을 점령하고 15연대가 본평양을 점령하면서 평양 "탈환" 작전은 막을 내립니다. 자존심 싸움은 아직까지도 계속됩니다. 1사단 각 연대부터 중대들 사이에서도 하는 모양이네요 (...) 사실 여기서 더 큰 건 7사단 8연대죠. 이들도 15연대와 비슷하게 본평양에 도착했거든요. 하지만 이들은 전투 없이 점령에만 집중했고 1사단은 작전을 짜서 점령했고 원래 평양을 점령하려 했던 부대이니 그 공은 1사단에 돌리는 게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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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면에서 평양은 최우선적인 목표였습니다. 군에게도 평양을 점령한 부대라는 의미는 크게 다가오겠죠. 장병들의 고생이야 심했겠지만 그걸로 평양 점령의 의의를 폄하할 순 없을 겁니다. 당장 지금 전쟁이 다시 벌어졌을 때 평양을 점령했다는 게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겠어요.

하지만 전략적으로 봤을 때 이는 북한의 중요 도시 하나를 점령했다는 것 이외의 의미가 없습니다. 김일성이 탈출했으니까요. 그는 최대한 남은 병력을 긁어모았고, 이들을 포위하는데도 실패합니다. 장비나 훈련도는 보잘것 없어도 병력은 4만 가까이 됐습니다. 개전 때 북한군이 그랬듯 아군은 이들을 밀어낸 것 뿐이었습니다.

사실 시간의 문제도 컸습니다. 북진을 준비하는 10일과 금천에서 보낸 5일이 꽤 컸죠.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국군 2군단이 그걸 시도했고 숙천, 순천에 187 공수연대를 투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북한군을 격멸했고 아군과 연결됐죠.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면이 크긴 합니다. 애초에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군이 끝없이 폭격을 가해서 도로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평양-원산까지 가는데도 보급이 힘들었고, 평양 이북으로 가면서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 점에서 조금이라도 준비를 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죠. 거기다 어차피 미친 듯이 가봐야 중공군이 맞아 줄 뿐이었어요. -_-;

원산 상륙 등 맥아더의 실책이나 평양 점령에 집중해 적 주력을 놓친 것은 북진통일이 성공했다면 큰 의미가 없긴 합니다. 북한군의 주력이 몇 만이든 북진 때 손을 못 썼고 이후에도 중공군의 보조 역할에만 머물렀던 것에서 보듯 그리 중요하진 않았구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평양 점령까지 성공하면서 다들 마음을 너무 놔 버렸다는 것이죠.

10월 8일, UN군이 북진을 개시하기 하루 전에 모택동은 한국전쟁 개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아군의 레이스가 계속되던 13일에 선발대가 압록강을 건넜죠.

그런 가운데서 15일 맥아더는 웨이크 섬으로 향합니다. 대통령을 부르는 참 초유의 사건이었죠 (...) 여기서 최종공세가 결정됩니다.

아군의 머리 속에는 단 한번만 밀면 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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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12/10/13 16:40
수정 아이콘
내용도 재미있지만, 저렇게 병사를 막굴리는 패튼도 뭔가 덕장처럼 보이게 만드는 라이프 표지의 마력이 정말 엄청나군요.
저 사진이 라이프 표지인것도 처음 알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12/10/13 16:45
수정 아이콘
한반도 통일시 당시 중국과 소련의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하고 북한의 후신이 그들이란 점이 확실했음에도 미국이 왜 이 점을 크게 고려 안했는지, 만약 미국이 중국 및 소련과 북진 전 협상을 하거나 미리 대비를 했다면 중국 개입을 막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대답해주세요, 눈시님 크크..
12/10/13 17:52
수정 아이콘
미국은 중공군의 개입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국군 역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 이전 중공군이 국경을 넘어왔음을 정찰을 통해서 눈치 채고 있었죠. 심지어 미군 역시 이 위험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장진호에서 미 해병대가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로 해병대 사단장 스미스 장군이 명령 불복종에 준하는 수준으로 진격을 늦춘 것을 꼽습니다.)

다만 맥아더와 그 측근들이 모르고 싶어했을 뿐이죠.
12/10/13 18:11
수정 아이콘
전쟁 전 영토 회복 수준을 넘어서 38선을 돌파하여 역통일에 나선 이후로 사실상 중미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깨진거나 마찬가지고.. 이후부턴 중공군의 개입이 기정사실화됐다고 봐야겠죠. 38선을 넘을 때 그 행위의 의미와 위험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나 대비를 했어야 할텐데 정보전에 능한 미국이 왜 이때는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무시했는지 모르겠네요.
DarkSide
12/10/13 17:39
수정 아이콘
이제 저글링 개떼 같은 초 슈퍼 머리수 최다 물량빨 의 중공군이 등장하겠군요 ;;

모택동 ( 마오 쩌둥 ) 의 6.25 한국 전쟁 개입 결정은 아마 한국군과 미군 유엔군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니었을지 ...
Surrender
12/10/13 18:05
수정 아이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Sonata Arctica!!
드라고나
12/10/13 20:13
수정 아이콘
북진작전에서의 보급 곤란을 곱하기 두 배로 만든 게 원상상륙작전이죠. 서울에 있던 10군단을 부산으로 돌리고 보급 갖추어 준다고 8군에 돌릴 보급자원을 싸그리 끌어 갔으니까요.

거기다 중앙의 산맥지대를 텅 비워 놓은 작전계획도 참.... 어릴 때는 교과서 같은 데 나오는 지도처럼 꼼꼼히 거의 다 점령한 줄만 알았는데, 나이 먹고 북진 당시 실제 진격로와 점령 상황 보니까 청천강에서 두들겨 맞는 것도 필연이고 그뒤 훅 밀려난 것도 밀릴 만 하다 싶더군요.
12/10/13 21:37
수정 아이콘
잘보고 있습니다
오늘 편은 정말 흥미진진 하네요

중공군 내려올 줄 알았으면 m2 중기관총을 많이 보급해서 좋은 위치에서 버텼어야 했는데
방심해서 계속 북진하다 쓸린 모양이군요..
Je ne sais quoi
12/10/14 00:1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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