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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5 03:29:27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새로운 전쟁 - 1. 지옥의 시작


시작하기 전에 일단 얘기해두는 게 나을 건데요.

제가 모택동 모택동 거리는 건... 딱히 이유가 없습니다. (...) 태평양 전쟁 때 두 개 섞어쓰다가 단지 글자가 작다는 이유로 마오쩌둥 대신 모택동이라 했는데... 그 이후로 그냥 쭉 한국식으로 읽고 있네요.

음... 그냥 이대로 밀겠습니다. -_-; 중국식 발음으로 더 유명한 사람은 괄호로 붙일게요. 이걸 생각했어야 됐는데 말이죠.;

그리고 중공군의 경우 이제 6.25때 참전한 중국군의 고유명사화 돼 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명목상 의용군으로 들어오기도 했구요. 중공이라고 하는 책도 있지만 중국이라고 하면서도 중공군은 그대로 쓰는 책도 있네요. 그냥 이걸로 밀겠습니다.

이 때 아군과 중공군의 입장을 비교해보면 참... 허탈하게 웃깁니다. -_-; 아예 나~중으로 미뤄서 반전을 줄까 했지만 그냥 그 때 그 때 병기하겠습니다. 중공군 쪽을 좀 늦게 다룰 수도 있겠습니다만... 같이 허탈하게 웃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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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조용했다. 1950년 10월, 대한민국 국군 1사단이 진출한 평안북도 운산에는 이상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길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길에서 늘 보아 오던 피란민 행렬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월 25일, 영변에서 운산으로 가던 백선엽은 적병도 피난민도 없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촌로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 했다고 하죠.

"되놈들이 많이 들어왔시오."

그 날 전차부대와 함께 선두에 섰던 15연대는 갑작스런 공격을 받습니다. 40여분간의 전투가 끝난 후 포로 하나를 생포합니다. 그 포로는 한국어를 못 했죠. 25일 11:45였습니다. 백선엽의 회고에는 이건 물론 이 날 전체의 일이 24일에 벌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_-a 그가 헷갈렸다고 보고 전사 쪽을 따르겠습니다

백선엽은 그를 직접 심문했고, 포로는 의외로 선선히 사실을 말해줍니다.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대부대가 압록강을 건넜다는 사실을요. 1사단이 앞으로 넘어야 할 적유령 건너에는 수많은 중공군이 숨어 있었습니다. 적유령의 별명부터가 되너미 고개였습니다. 되놈들이 한반도를 치기 위해 넘어오는 곳이었죠.

그는 미군들과 의논하며 일단 급히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뭐 돌아오는 대답이야 다들 아시잖아요 -_-;

15연대는 계속 전투를 치러가며 포로 세 명을 추가로 생포합니다. 그들의 심문에 대한 자료는 없네요. 한편 12연대에서 전차 다섯대로 위력수색을 실시했는데, 여기서 꽤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연대장 김점곤은 이렇게 증언했죠.

"다섯 대의 전차 가운데 두 대의 색깔이 완전히 변해 있었던 것이다. 석 대는 원래의 색깔대로 돌아왔지만 두 대는 완전히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선두에 선 전차 두 대가 갑자기 중공군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전차에 우르르 올라탔고, 놀라긴 했지만 미군은 곧바로 대응했죠. 서로가 번갈아가며 상대편에 올라탄 적을 쏘았고, 뒤의 전차들도 그걸 도왔구요. 이렇게 끝없이 올라타는 적들을 상대하면서 전차는 피로 물듭니다.

그리고 본대로 돌아온 순간, 한 미군 전차병이 미친듯한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소대장이 급히 가서 붙잡았는데 완전히 실성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중공군과의 첫 교전, 운산 전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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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백선엽은 불안에 쌓인 가운데 2군단장으로 승진합니다. 유재흥은 육본 참모장이 됐죠. 헌데 4일 후에 뜬금없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 뭐 하는 건지.

그 동안 1사단은 계속되는 명령으로 공격을 계속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죠. 오히려 중공군은 넓게 벌려진 아군의 측면으로 침투해 퇴로를 끊으려 했습니다.

워커는 이런 상황을 무시하며 공격을 명령했고, 게이는 평양 점령후 예비로 남겨뒀던 미 1 기병사단을 투입합니다. 1사단의 후방을 끊으려던 중공군은 여기에 밀려 일단 물러났죠. 이 때 우측 8사단과의 거리도 멀어진 상태여서 11연대를 투입해 연결하려 했지만 실패, 기병사단에서 1개 대대를 지원받아 겨우 성공합니다.

30일, 백선엽은 1사단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때 불과 300m 거리에서 중공군과 조우했다고 하죠. 지프 뒤에 딸린 짐들까지 버리고 겨우 도망쳤는데, 다행히 중공군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1일, 미 1 기병사단의 선봉인 8 기병사단이 정식으로 1사단과 교대하고 북진을 계속합니다. 헌데 이 때 1사단에 제대로 연락도 안 했다고 하네요. -_-; 국군을 무시한 거였죠. 워커와 게이는 이들의 승전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1월 1일이 되면서 미 24사단이 신의주 남쪽 30km까지 진출에 성공하기도 한 상황이었죠. 이들에게 국군의 보고는 제대로 진격을 못 해서 핑계대는 것 정도로 치부될 뿐이었습니다.

이 때 1사단은 이미 많은 피해를 입어 철수준비까지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습니다. 서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돌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 사이에 중공군은 이미 후방을 끊은 상태였습니다. 거기다 이들이 안주로 향한다는 정보가 입수됩니다. 신의주로 가고 있던 미 24사단은 물론 미 1군단 전체의 퇴로가 끊길 상황이었습니다.

밀번은 급히 군단 회의를 소집합니다. 이 때가 11월 1일 20시, 여기서 즉시 철수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1사단에게 최대한 지원을 해 줬던 고사포단이 먼저 철수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전방에 있던 15연대는 포병의 지원 없이 싸워야 했고, 자정이 되기 전에 적의 포위로 무너집니다. 그나마 병력의 70%가 탈출에 성공했죠.

문제는 그보다 더 나갔던 미 8 기병연대였습니다.

23시에 철수명령을 받은 연대는 3, 1, 2의 순서로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내려간 3대대는 1, 2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로 했었죠. 1, 2대대는 중공군과 계속 싸우면서 내려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헌데 이들 앞에 동양인으로 구성된 병력이 나타납니다. 병사들은 한국군이라 생각하고 대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극의 시작이었죠.

그들은 중공군이었고, 마음 놓고 있던 3대대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연대 전체가 완전히 포위된 것이었습니다. 1사단에서는 뒤늦게 수색대를 보내 이들과 연결하려 했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미군 몇명만 구출한 뒤 탈출했다고 합니다.


"군인의 생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슬픈 추억들을 간직하게 마련이지만 그때처럼 괴롭고 고달프고 슬펐던 결심은 없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한 5 기병연대의 공격도 실패합니다. 다음 날, 미 8군은 미군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을 합니다. 3대대를 포기한다는 것이었죠.

1, 2대대는 장비를 버리고 몸이라도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3대대는 800여명 중 60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됩니다. 미 공식 전사에서는 이 때의 피해가 어떤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고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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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나마 1사단은 중공군과 정면으로 교전했습니다. 그 북쪽까지 진출했던 기병사단은 저렇게 큰 피해를 입었죠.

그렇다면 가장 깊숙히 진격했던 6사단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선봉으로 압록강에 도착한 7연대는 더 이상의 전투가 없을 거라 판단, 휘하 병력을 국경 경비에 돌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이들 뒤를 따라 진격하던 2연대를 공격합니다. 26일 03시였습니다.

전투는 단 세 시간만에 끝납니다. 2연대는 세 방향에서 닥쳐오는 공격에 연대 자체가 궤멸됩니다. 전방의 7연대가 고립된 것이었습니다.


"산쪽에서는 압록강이 보인다는 밝은 전황보고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중공군에게 포위되었으니 증원군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인 희비가 엇갈린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사단장 김종오는 사고로 인해 턱을 움직이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지휘를 했지만, 이 상황은 그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이 장악한 온정리 탈환 및 7연대를 구하기 위해 10, 19연대가 급히 출동합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공포에 빠집니다. 온정리 코 앞까지 갔지만 도무지 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죠.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뿐이었죠. 결국 그들은 7연대가 남하하면 같이 싸우기로 하고 대기합니다.

다음 날 새벽(29일) 이들은 포위공격을 받았고, 역시 궤멸됩니다.

그 동안 7연대는 공중 보급을 받으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구출하던 병력까지 격파되면서 이들 역시 포기하게 됩니다. 자력으로 탈출하라는 것이었죠.

미 기병연대가 그랬듯, 이들도 큰 피해를 입습니다. 3천 5백여의 병력 중 돌아온 것은 불과 875명이었습니다.

2연대에 이어 7연대가 전멸하고 19연대 역시 구출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서 6사단은 전멸합니다.

미 공식 전사에서는 이 때 6사단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국군 제2연대는 중공군과 최초의 조우전에서 적을 격파시키려는 의지도 결의도 없었던 것 같았다. 장비를 버리고 분산한 장병이 90%에 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군은 중국인에 대하여 잠재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지들은 뭘 잘했다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정도로 이 때 6사단의 붕괴는 뼈 아팠습니다. 다른 사단도 아니고 6사단이었습니다. 압록강을 향한 레이스에 너무 열을 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정말 중공군이 두려웠던 걸까요.

이후 파로호 전투까지, 6사단은 이런 굴욕을 계속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역전의 국군 6사단이었다. 그들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힘차게 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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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공세 때의 지도지만 -_-a 그냥 군우리만 확인합시다.

1사단의 운산과 6사단의 온정리 사이에는 계속 중공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국군을 포위섬멸한 후 미 8군 전체의 후방을 포위하는 것이었죠.

8사단은 6사단의 뒤를 후속하며 이 지역을 점령하려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중공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6사단 쪽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8사단이 온정리로 가야 했고, 이들은 6사단과 같이 중공군에게 당합니다 -_-;

아군의 후방이었던 군우리, 중공군에 맞서기 위해 이 지역에 도착한 건 7사단이었습니다. 11월 2일, 이 곳이 뚫린다면 미 1군단과 국군 2군단 전체가 위험한 상황이었죠. 7사단은 요충지였던 비호산을 점령했고, 결사항전을 다짐합니다.

11월 3일 03시,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됩니다. 이 날 하루동안 비호산을 점령한 3연대와 5연대는 무려 세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안개 때문에 시계는 50m도 되지 않았고, 끝없이 백병전을 벌여야 했죠.

다음 날에는 8연대도 투입됩니다. 이들 역시 끝없이 백병전을 벌여서 겨우 막아냈지만, 5일 새벽에 다시 적의 포위공격이 가해지면서 비호산에서 후퇴해야 했죠.

사단장 신상철은 다시 결전을 다짐합니다. 6일 08시였습니다. 이 날 아군의 포가 끝없이 불을 뿜었고, 7사단은 중공군이 했듯 좌우로 능선을 올라가면서 백병전을 벌입니다. 세 시간 동안의 혈전 끝에 비호산을 밟은 것은 7사단이었습니다.

이 비호산 전투는 아군에 있어 예상 못 한 수훈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중공군은 전과확대에 실패했고, 아군은 무사히 청천강 방어선으로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만 있었던 건 아니죠. 7사단을 지원한 5연대 역시 혈전 끝에 군우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고, 급히 돌아온 미 24사단도 곳곳에서 증원돼 중공군을 막아냅니다.

7일이 되면서 전선에는 다시 침묵이 감돕니다. 갑작스레 나타났던 중공군은 밀물처럼 공격을 퍼부은 후 썰물처럼 빠져버렸죠. 대체 그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간 것인가 하는 혼란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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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중공군은 미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13병단이 선봉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6개 군 중 2개 군은 제대로 전개하지도 못 한 상황이었고, 4개 군만 작전에 동원됐죠. 애초에 이들의 목표도 청천강에 방어선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이 평양-원산 선에서 멈출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아군이 레이스를 시작하자 이들도 급해집니다. 아직 병력은 물론 제대로 된 전투준비도 없이 뛰어든 것이죠. 이 때까지 도착한 병력은 "겨우" 25만 정도였습니다. -_-; 크게 6개 군 18개 사단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중 4개 군이 투입됩니다. 투입된 병력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아군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서부전선에 집중됐죠. 동부에 투입된 건 장진호의 해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인 42군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 건 다 했죠. 밤에만 기동해서 아군의 눈을 속였고, 공격할 때는 거세게 포위공격해 왔지만 숨을 때는 아군을 공포에 빠뜨릴 정도로 철저히 숨었습니다. 그나마 정면으로 맞은 1사단은 나았습니다. 중공군은 6사단의 선두를 일부러 보낸 후 후방을 차단했죠.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으로 단련될대로 단련됐던 그들이었습니다. 수는 물론 전투력도 북한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더 무서운 점은 11월 7일이 되자 전과확대를 포기하고 그냥 숨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아군도 어떻게든 맞서고 있었으니 이들이 끝까지 싸웠다면 (나중에 말씀드릴) 중공군의 약점을 제대로 보여줬을 것이고, 의외의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격이 둔화된다 싶자 바로 후퇴해 버립니다. 아군이 제대로 찾지도 못할 정도로 숨어버렸죠.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상태이긴 했고 그들 자신도 훈련이 부족해 미군 포로를 겨우 200명밖에 못 잡았다며 큰 성공으로 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승리에 취하지 않고 이렇게 이성적인 치고 빠지기를 하는 게 쉬운 건 아니죠.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 손도 못 쓸 정도의 패배와 후퇴,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고 사라진 적... 이 모든 것이 아군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아니, 이 때문에 아군은 중공군이 좀 맵긴 했지만 대단치 않을 거라 여기게 됐죠.

이렇게 아군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합니다. 특히 북한군과 이제 좀 해볼만해졌던 국군에게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졌죠. 각 부대마다 최소 세 배에서 최대 다섯 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북한군은 그나마 수라도 비슷했죠. -_-;

이 때 1사단은 후퇴하긴 했지만 제 몫을 해 줍니다. 중공군이 나타나자 곧바로 진격을 멈추고 침착하게 대응했고, 너무 앞서가지도 공포에 빠져 물러나지도 않았죠. 무너진 15연대 역시 다수의 병력이 재집결했구요. 미 기병여단의 병력이 그나마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1사단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6사단은 최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정예 6사단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것이죠. 파로포 전투 때까지 이들은 굴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만 중공군이 일부러 이들을 속인 것을 보면 다른 부대라고 상황이 더 나았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8사단도 이런 6사단의 붕괴에 휩쓸렸죠. -_-;

이런 상황에서 있었던 7사단의 비호산 전투는 정말 의외의 성과였습니다. 개전 초기에 의정부에서 전멸했다가 다시 부활했던 7사단은 이렇게 자신의 재기를 알렸죠. 만약 7사단이 뚫려서 중공군의 전과확대가 계속됐다면 어디까지 갔을지 모릅니다. 뭐 어차피 한 달 후에 그렇게 하지만요 -_-;

미 1 기병사단은 여기에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연대 하나의 전멸로 끝난 게 다행일 정도였죠. -_-; 24사단은 그나마 자기 몫을 다 해 줬고, 이들에 배속됐던 다른 UN군 역시 격전을 치르며 자기 역할을 해 냅니다. 하지만 주력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워커는 후방에서 패잔병 처리 및 철수 준비-_-를 하고 있던 미 2사단과 25사단을 급히 불러야 했습니다.

1차 공세를 통해 시간을 번 중공군은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합니다. 앞으로 한 달, 그들은 최대한 숨죽이고 있었죠.

그 동안 그들은 운산 전투를 최대한 분석해 전훈자료를 배포합니다. 거기서 미군과 국군을 이렇게 평가했죠.

"미군은 전차와 포병의 협동전투에 의한 충격력에 주력하고 있다. 공군의 대지 공격력도 강대하다. 그러나 보병은 약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과감한 공격이나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또 주간에만 행동하는 버릇이 있다. 야간전투나 근접전에는 아주 미숙하다. 보급이 두절되면 곧 전의를 상실할 것이고, 후방을 차단하면 스스로 물러날 것이다."

"한국군은 모든 면에서 미숙하다. 훈련이 절대 부족하다. 화력과 전투력을 비교할 때 한국사단은 미국사단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의는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상당히 예리한 분석이었죠. 참고로... 이 때 중공군이 상대했던 국군이 최정예로 꼽히던 1사단과 6사단이라는 걸 되새깁시다 -_-;

나중의 상황을 보면 중공군이 아무리 강해도 그냥 밀릴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맨 위에서 적었듯 중공군 쪽의 상황 판단을 보면 허탈하기까지 하죠. 당장 1차 공세만 해도 기습인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잘 막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 때 아군은 중공군의 개입은 인정했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왔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맥아더를 비롯한 UN군 사령부의 눈에 보인 건 중공군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였죠. 중공군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번만 더 밀면 이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공세는 파멸로 끝납니다. 전쟁의 끝을 위해 달렸지만, 그건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죠.

지옥은 이미 와 있었습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았을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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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10/15 08:56
수정 아이콘
마지막 캬 크크
아 웃을게 아닌데... ㅠ
그리메
12/10/15 08:58
수정 아이콘
총알한개보다 사람한명이 더 많다고 하던 꽹과리 부대들이군요. 이제 1.4와 고지전만 남았네요 벌써...
Je ne sais quoi
12/10/15 09:2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_ㅜ
12/10/15 10:14
수정 아이콘
중국 살 때 배운 '항미방조전쟁'의 시작이군요. 애들이랑 대판 싸웠었는데...교실에서도 1:61로 싸우다가 장렬히 산화했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는군요 흑흑
blue wave
12/10/15 15:2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아쉬움만 가득하네요... 맥아더가 도교가 아니라 평양이나 서울에서라도 지휘를 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판단을 내릴 최고 지휘관이 너무 먼곳에 있으면 부대가 제대로 안되죠... 한니발이나 카이사르를 보면 알 수가 있지요..
12/10/15 21:13
수정 아이콘
한국전쟁 보면 중공군이 다시 밀려나기 전까지는 참 전선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더군요.
특히나 연합군이 중공군에 밀려나가던 50년 겨울-51년 봄의 상황은 극적이기까지 하죠. 아니 대체 왜 여기까지 밀리는거야 싶을 정도로.
그런데도 결국은 무승부(군사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정치상황에서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참 여러모로 아쉬운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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