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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19 15:55:28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미지와의 조우 - 탈출까지


대항해시대가 한창이던 1653년, 한 배가 폭풍을 만나 표류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처해 있던 선원들은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게 되죠. 하지만 그 곳은 이제껏 보도 듣도 못한 곳이었습니다. 64명이었던 승무원은 불과 35명밖에 남지 않았고 그들 모두가 폭풍우에 시달리면서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 곳에도 사람은 살았습니다. 원주민들이 다가왔고, 그들은 부디 적대적이지 않기를, 그리고 자기들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꼭 가야 될 곳, "야판"으로 말이죠. 원주민들은 그 곳을 "예나레"라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그런 꿈을 철저히 깨뜨립니다.

"우리들은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음식으로 곧 다 같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총과 대포, 가지각색의 옷차림들은 무섭게만 보일 뿐이었다. 약 3천명의 무장군인이 있었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우리나라는 물론 어디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 뿐이었다."

원주민들의 대접은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입에 맞진 않아도 먹을 것을 챙겨줬고, 관청으로 가는 길에 말도 태워줬죠.



그 지방을 맡은 총독은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감시야 엄했지만 사람은 착해서 때때로 잔치를 열어주면서 매일마다 "국왕의 답이 오면 즉시 야판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죠. 이교도였지만 참 좋았다고 합니다. 다들 기뻐했을 겁니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하지만 그 조금은 두 달이었죠.

두 달 후, 한 빨간 수염의 남자가 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놀랍게도 그들의 모국어였죠. 기쁨도 잠시, 그는 이런 충격적인 말을 전해 줍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설상가상으로 자기들에게 잘 해 줬던 총독이 떠납니다. 신임 총독은 제대로 대우를 해 주지 않았죠. 집에 가고 싶다,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되겠다... 그들은 수용소를 벗어나 탈출하죠. 하지만... 그들이 구한 배는 구조와 장비가 너무 달랐고, 미처 해안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잡혀버립니다.

총독은 물었죠. 그런 작은 배로 마실 물도 없이 야판으로 가려고 했냐구요.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런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

그 날 그들은 볼기를 스물다섯대나 맞았고, 외출도 금지된 채 한달 넘게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1654년 5월, 마침내 국왕으로부터 통지가 옵니다. 하지만... 답은 똑같았죠. 야판으로는 못 보내주는 대신 본토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업도시와 어떤 작은 마을, 어떤 큰 도시를 지나고 지나 시오르라는 거대한 도시에 도착합니다. 국왕이 사는 곳이었죠.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는 게 관습에 없다는 이유였죠. 대신 나라에서 급료를 주며 고용하겠다고 합니다. 저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도 검술과 춤 추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그 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신기하게, 나쁘게 보면 괴물 취급했죠.

그 나라의 국왕은 그나마 신경써 주는가 했지만, 정작 집 주인은 그들을 괴롭힙니다.

"집 주인은 매일 우리들에게 땔나무를 해오라고 요구하며 괴롭혔다. 우리들은 구조될 가망성이 거의 없어진 마당에 더 이상 이교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단 좁더라도 자그마한 오두막이라도 사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사람당 은전을 조금씩 모아 8~9타일 정도의 값 나가는 오두막집을 장만했다."

2년 후, 탈출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건을 하나 일으킵니다. 그 나라에서는 이게 꽤나 크게 다가왔고, 그들 모두를 죽이자는 여론이 생겨났죠. 다행히 3일간의 회의 끝에 국왕과 그 동생 등의 반대로 목숨은 건졌습니다. 하지만 지방으로 쫓겨나는 건 피할 수 없었죠.

그 지역의 총독들은 그들에게 무관심했습니다. 입을 것과 생필품 등을 달라고 했지만 국왕에게서 쌀을 주라는 명령밖에 못 받았다며 거부했죠. 쌀 외에 다른 물품은 구걸해서 얻어야 했습니다. 소금 한 줌 얻기 위해 반 마일을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위로가 된 건 이교도들의 승려였습니다.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해 주니 밤새도록 듣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1659년에는 그 나라의 국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에 오릅니다. 이 때 그 나라에는 사상 유래없는 흉년이 들어 62년에만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굶어죽었다고 하죠.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대우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아예 식료품마저 끊길 때가 있었죠. 그나마 좋은 총독이 오면 나았지만, 나쁜 총독이 오면 고생했습니다.

"우리가 이교도의 나라에 잡혀온 불쌍한 포로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치단결하여 고난을 이겨나갈 것을 다짐하며 또 그들 이교도가 우리들을 살려주고 굶어죽지 않을만큼 먹여주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느새 이 나라에 온 지 10년이 다 됐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습니다. 거기다 이런 대접을 받으며 더 살 순 없었죠. 어떻게든 배를 사서 탈출해야 했습니다. 야판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은 오래 전에 알게 된 상태였으니까요.

자기들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 부탁했고, 큰 대가를 치르면서 작은 배를 구하는데 성공합니다. 배를 판 사람은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도로 가져가려 했지만 돈을 더 줘서 겨우 해결했죠.

1666년 9월 4일, 그들은 마침내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곳, 야판으로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겪었던 한 선원은 13년동안 받지 못 한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것이 바로...!


하멜 표류기죠 (...)

야판이 어디겠어요. 재팬이죠. ( - -)a 예나레는 뭐 왜나라 이런 거일 거구, 이르폰이라고도 했다는군요.


그리고... 그 하멜을 붙잡아놓고 힘들게 했던 나라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동상을 세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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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박연(벨테브레이)부터 하멜까지... 조선에도 은근히 서양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기회를 놓쳤느냐... 하는 말들도 많지만, 여기서 굳이 그런 얘기는 안 하려구요.

그들이 조선을 보고 어떤 걸 느꼈는지, 반대로 조선인들이 그들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보면 참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참 흥미로운 소재죠.

벨테브레이부터 하멜, 나중에 조선으로 들어온 (오페르트라든가 ㅡ.ㅡ) 여러 인물들, 선교사들... 이들이 조선을 어떻게 봤는지 천천히 다뤄보겠습니다. '-')/ 가끔이요 가아끔~ 오늘은 프롤로그라 생각해 주세요.

... 뭐 전에 말씀드렸듯 그깟 전쟁사 따위라고 하면서 마구 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하멜 일행이 탈출한 후 조일간의 머리싸움을 보시겠습니다.

"10여 년 전에 아란타 군민 36명이 30여 만 냥의 물건을 싣고 표류하여 탐라에 닿았는데, 탐라인이 그 물건을 전부 빼앗고 그 사람들을 전라도 내에 흩어 놓았다. 그 가운데 8명이 금년 여름에 배를 타고 몰래 도망와서 강호(江戶)에 정박했다. 그래서 강호에서 그 사건의 본말을 자세히 알고자 하여 서계를 예조에 보내려 한다."

아란타는 오란다, 그러니까 홀랜드, 그러니까 네덜란드겠죠? 하멜이 탈출한 후 그걸 미끼로 조선에 압박을 준 겁니다. 그 이유가...

"아란타는 바로 일본의 속군으로 공물을 가지고 오던 길이었다."

... 뭐라꼬예? -_-;
즉 자기네 백성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

"장계에 말한 아란타 사람은 몇 년 전에 표류해 온 만인(蠻人)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복색이 왜인과 같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무슨 근거로 일본으로 들여보내겠습니까. 당초에 파손된 배와 물건을 표류해 온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으므로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숨길 만한 일도 없습니다. 차왜가 오면 그대로 답하면 그만입니다."

... 뭐 적절한 대응이었습니다. 일본은 이후에도 남은 네덜란드인들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조선은 그저 묵묵부답이었죠. 이 과정에서 야소, 즉 예수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일본에서 탄압하고 있었죠) 그에 대한 말을 봅시다.

"야소는 즉 서양에 있는 별도의 종자인데 요술이 있어서 어리석은 사람을 미혹할 수 있었다."

(...);;;;;

요런조런 얘기들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_@)/ 기대해 주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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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리다♥뽀미♥은지
12/10/19 16:12
수정 아이콘
기대하겠습니다.
사티레브
12/10/19 17:31
수정 아이콘
오 뭔가 신기하네요 크크크
12/10/19 17:55
수정 아이콘
그 당시 서양인이 본 조선..
너무너무 완전 기대됩니다.
Absinthe
12/10/19 22:53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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