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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0/27 12:52:03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새로운 전쟁 - 2. 크리스마스 공세


"자기가 합리적으로 판단했다 하여 적도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할 수 없다. 윤리관이나 가치관이 다르면 합리성의 척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보판단이 맞지 않는 것은 자기의 척도로 적을 헤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 리델 하트

이 때 맥아더를 비롯한 미 8군 수뇌부의 판단은 '중소는 참전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압록-두만강을 향한 빠른 진격 역시 이를 위한 부분이 큽니다. 그들이 개입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죠.

만주에 중공군이 대규모로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맥아더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웨이크 섬 회담에서 맥아더는 중공군의 규모를 말합니다.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것은 결정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의 개입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중공은 만주에 30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10만 내지 12만 5천명이 압록강변에 연하여 배치하고 있으며 이중 5~6만 명이 압록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평양으로 진격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는 막강한 공군력으로 최대의 살육전을 펼칠 것이다."

위아래가 제대로 연결이 안 됩니다. 중공군의 수는 많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진 않을 것이다. 실제 그들이 강을 건너고 곳곳에 투입되는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과신이겠죠. 참전할 거면 진작에 강을 건넜을 것이다, 얼마가 있든간에 막강한 공군력으로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신이요. 그리고 승리에 대한 환상은 이걸 부채질했구요.

근거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중국 역시 장개석을 몰아내고 정식으로 건국한 지 1년밖에 안 됐고, 아직 많은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보잘 것 없었구요.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드는 전쟁을 할 것인가의 문제는 컸죠. 그리고 말로만 항의할 뿐 북진을 개시해도 참전하지 않았는데 다 끝나가는 타이밍에 하겠느냐 이 문제도 컸구요. 하지만... 그 모든 건 오판이었습니다.

개전 때 김일성의 판단과 같을 겁니다. 참전할 리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죠.

김일성이 오판했듯, 미국 역시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얼마나 가까운지, 중국이 적대국가와 국경을 맞대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말이죠. 애초에 중국은 발을 빼기에는 너무도 깊게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결관계 역시, 그 때 알지 못 했죠.

정일권은 회고를 통해 맥아더가 알고 있었고, 충분히 각오까지 한 상태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승만과의 비밀편지를 통해 그들은 올 것이고 막아낼 거라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걸 일부러 숨긴 건 그걸 알게 되면 전쟁을 멈추게 되는 것 때문, 다시 말해 통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이를 숨겼고, 그러니 한국을 위해 희생한 맥아더 오오 하는 겁니다만... 당연히 근거는 없습니다. 그 편지 자체도 없구요. 맥아더를 옹호해주기 위해 한 말로 봅니다. 애초에 그 정도 각오를 했다면 병력도 최대한 받아내고 지원되는 물자도 끊지 않았겠죠.

뭐 그렇다고 수십만명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데 올 리가 없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철저히 아군을 속였죠. 참전에 대해서도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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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군 내의 조선의용군을 북한에 주는 등 많은 투자를 했지만, 개전 때까지만 해도 직접적으로 개입할 의사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택동이 주시한 것은 대만이었죠. 4, 5월에 해남도와 단산열도를 점령했고 여름까지도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만주에 있었던 병력은 훈련보다는 농업부터 건설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생각했듯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최대한 한반도 내부의 일로 만들자, 이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미 함대가 대만에 투입됩니다. (전쟁이 바빠 여름에는 실제 투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김일성이 대만 살려준 격입니다. -_-; 여기에 모택동도 찬성했으니 김일성 탓할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을 탓했죠.

+) 아군 역시 대만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습니다. 장개석은 참전하고 싶어했지만 미국도, (홍콩을 둔 영국도 -.-) 한국도 거부했죠. 이승만 역시 대만이 참전하면 중국도 개입할 것이라 여겨 반대했습니다.

김일성은 전황을 낙관적으로 봤지만 모택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참전 및 낙동강 방어전이 벌어지면서 이미 망했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직접 참전을 결심하진 않았습니다. 대규모 병력이 만주에 파견됐지만 정확한 준비 명령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고, 그냥 보낸 수준이었죠. 대신 상륙작전을 경고하고 전선을 물려 아군을 각개격파하라고 김일성에게 조언했지만 듣지 않았고, 정말 망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부터 반격작전까지 중국은 최대한 외교 노선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외교로 될 거면 애초에 개전은 없었을 거고, 당한 쪽은 우리였죠. -_-; 실제 행동이 아닌 협박 수준의 말로는 UN에서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9월부터 10월초까지... 중국 내에서 격렬한 찬반 논의가 벌어집니다.

반대파의 주축은 고강(가오강)과 임표(린뱌오), 이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 우선순위는 경제복구와 토지개혁, 대만 해방, 반공게릴라 및 국민당 잔당 제거, 티벳 점령이다. 전쟁 개입은 통일 기회(대만)를 상실하는 것이다.
- 현실적으로 미국과의 격차로 대규모 전쟁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당시 미국의 철강생산력은 중국의 111배 (...)) 반면 아군은 일본군에게 노획한 수준밖에 없다. 거기다 우리는 게릴라전 정도밖에 모르고 실질적인 육해공군 협동작전을 해 본 적이 없다.

찬성파의 주축은 주은래(저우언라이)와 주덕(주더), 이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 외교적 노력은 무산됐다. 미국은 한국, 대만, 베트남의 세 방향에서 중국을 침략할 것이고 이건 첫 단계다.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 미국이 전쟁을 벌일 베트남, 대만, 한국 중 중국에게 제일 유리한 것은 한국이다. 한국의 지형은 게릴라전을 펴는데 유리한 반면 미군에겐 불리하다. 미국의 전력은 대부분 유럽에 집중돼 있고 한국을 위해 유럽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모택동은 이런 논의를 보며 3일 동안 잠도 못자며 고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발을 빼기엔 너무 늦었고 어차피 싸울 거면 남의 땅에서 싸워야 된다고 생각했죠.

10월 2일, 그는 스탈린에게 참전을 결정했다는 전보를 칩니다. 대신 소련의 공군력과 지상군 100개 사단을 무장 가능한 무기와 물자를 지원해 달라고 했죠.

스탈린은 이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이 개입했다는 걸 최대한 없애려고 했고, 중국 자체에 하는 지원 역시 소극적이었죠. 그 자신도 3차대전을 벌이는 건 싫었구요. 중국에서 계속 독촉을 해 왔지만 스탈린은 뜸을 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황은 급속도로 불리해져 갔지만, 11일에 이미 도하준비를 끝냈음에도 대기해야 했습니다. 10일에 주은래가 직접 소련으로 갔음에도 실패합니다.


15일, 결국 모택동은 소련의 지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19일에 선봉이 압록강을 건넜죠.

오히려 이 모습에 스탈린이 감동 먹었다고 합니다. (...) 그에 따라 공군 2개 사단(200여대)이 중공군인 척 하며 참전했고, 60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주었죠. 중공군이 쓴 탄약의 80%가 소련제였습니다.

보시면 알 수 있듯 참전 쪽의 주장은 꽤나 과장돼 있습니다. 미국은 전쟁이 번지기를 바라지 않았고 특히 중국과의 전면전은 절대 원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걸 강조하지 않으면 쉽게 참전할 순 없었을 겁니다. 어차피 이걸 자유 VS 공산의 전쟁으로 봤던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구요. 이 두 가지, 이제 막 성공한 공산 혁명을 계속해야 된다는 것과 중국 자신의 생존과도 직결된다는 것이 참전 이유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싸울 수밖에 없다면 남의 땅에서 싸워야 된다는 거였죠.

어쨌든 맥아더의 판단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 있어서도 이건 꽤나 무리수였거든요. 하지만 아군의 삽질은 이 무리수를 거의 성공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바꿔줍니다.

그 동안 만주에 파견된 중공군은 정신교육을 열심히 받습니다. 개불개타, 전쟁을 해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 원불원타, 싸움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능불능타, 싸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였죠. 답은 해야 되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임표는 마지막까지 참전을 반대했고, 모택동은 그를 대신해 팽덕회(펑더화이)를 전선지휘관으로 임명합니다.

명분은 중국의 정규군 "인민해방군"이 아닌 조선 해방을 위해 자원한 "중국인민지원군", 즉 의용군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중국이 직접 선전포고를 한 것은 아니라는 거였죠. 인민해방군이 중국군이라 불리는 지금, 중공군이라는 말은 이 의용군의 고유명사화 돼 가고 있습니다. 저도 이걸 따르려고 하구요. 아무튼 미국이 이걸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이름 덕분에 중공군의 규모가 적다고 판단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죠.

"우리는 한반도의 북쪽을 향하여 계획된 4개 군과 3개 포병 사단을 이동할 것과 그리고 군사행동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내일(19일) 저녁에 첫번째 부대는 안동(현재의 단동)과 지안 사이의 압록강을 건널 것이다. 절대적으로 비밀리에 움직여라. 모든 부대는 매일 저녁의 어두움을 이용하고 새벽 4시에는 그 자리에 멈추어라. 새벽 5시부터는 모든 부대는 은폐하고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라. 경험을 얻기 위하여 첫날(19일) 밤에는 2개 혹은 3개 사단 정도만 압록강을 넘고 그 다음날(20일) 밤에 다른 사단들을 건너게 하라. 이후로는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고 팽덕회와 고강이 직접 부딪쳐 가며 상세하게 전쟁을 지도하게 될 것이다."

준비하기엔 너무 짧았던 기간, 준비하기엔 병력만 많을 뿐 부족한 국력, 처음에 그들이 바란 것은 38선의 회복 정도였습니다. 참전 후의 계획 역시 평양-원산 북방에 2~3개의 방어선을 구축해 방어에 집중한다는 것이었죠. 공격은 소련제로 무장하고 훈련이 완료되는 6개월 후로 잡습니다.

하지만 아군의 진격이 너무 빨랐고, 뭘 하기도 전에 밀려날 상황에 처했죠. 그 때문에 우선 서쪽에서 올라오는 아군을 격파하기로 합니다. 그것이 중공군 1차 공세였고, 성공하기는 했지만 전과가 그리 좋지는 못 했죠.

방어선 짜고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은 없었습니다. 아군은 다시 밀고 올라올 것이었고, 그에 맞서 제대로 된 타격을 줘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멸망하고 자기들은 여기서 죽거나 다시 강을 건너가야 했습니다.

중공군은 아군의 추가 공세를 기다리며 포위 공격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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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만고풍상을 다 겪고 39년만에 처음으로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들어와서 사모하는 동포 여러분을 만날 적에 나의 마음속에 있는 감상을 목이 막혀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략) 이북동포 여러분! 나와 같이 결심합시다! 공산당이 어디서 들어오든지 그것이 소련이건 중공이건 들어오려면 들어오너라. 우리는 죽기로 싸워서 물리치며 이 땅에서는 발붙이고 살지 못할 것을 세계에 선언합니다!." - 이승만, 10월 30일

... 말은 잘 합니다만.

11월 6일, 중공군의 1차 공세가 끝납니다. 밀물처럼 밀려왔던 그들이 썰물처럼 빠진 것이죠. 아군은 당황했지만, 곧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너무 긍정적으로요. -_-;

일단 그들이 한 번 치고 빠진 것 자체가 전과확대를 할 정도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봤으며, 동쪽에서는 아군의 진격이 계속됐지만 저항이 없었습니다. 이 점으로 인해 중공군의 병력은 6만 정도에 수풍댐을 지키는 게 목적이고, 그나마도 훈련도 안 되고 강제로 끌려나온 것으로 봤죠. 국민당군 출신이 많아서 사기도 낮은 것으로 봤구요. 여기에 중공군과 북한군 사이가 좋지 않다고 봤으며, 보급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이건 맞았구요 -.-)

압록강 교량을 끊으면서 추가 증원을 막고 한 번만 더 밀면 이길 수 있다, 또 이렇게 가 버린 거죠.

중공군은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을 씁니다. 낮에는 최대한 몸을 숨겼고, 맥아더가 직접 비행기로 정찰했음에도 제대로 보지 못 합니다.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사단은 대대, 연대는 중대라 칭했고, 적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걸 발견하면서 규모를 더 적게 생각해 버렸죠. 거기다 아군의 포로도 풀어주며 후퇴하는 기만책도 썼구요. 이 상황에서 붙잡은 포로들이 대규모라는 걸 계속 증언했지만 이는 아군을 혼란시키는 거라 판단합니다.

일단 아군도 한 타임 쉬고 있었습니다. 다음 공세의 주공은 북진 중인 9군단이었고 이들에 대한 보급을 제대로 해야 되기 때문이었죠. 워커는 D-DAY를 15일로 봤지만 실제 공세는 24일에 가능했습니다. 이 정도로 보급 등의 문제가 쌓여있었다는 것이죠. 차라리 좀 더 쉬었어야 했는데요. 어쨌든 미군의 보급능력은 역시 대단했고, 괴멸된 줄 알았던 국군의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치명적인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공세일이 24일로 결정되자 동쪽의 10군단 역시 26일를 공세일로 정합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애들 집에 보내줘야지"

이 최종 공세는 크리스마스 공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식 명칭은 아니죠. 맥아더가 했던 말이 널리 퍼진 것이었습니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미군들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전쟁을 끝내고 미국이든 일본이든 가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결과는 지옥이었습니다.

24일, 아군의 공세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25일,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됩니다.

===============================

제목은 크리스마스 공세인데 중공군 얘기만 잔뜩;;;
다음편은 일단 동쪽으로 가 보죠. 장진호 전투와 함흥철수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아 그리고 북한에서 제작하는 6.25 영상물 같은데서는 중공군이 안 나온다고 합니다. 정말 아예 안 나온다네요. =_=;;; 거기서 나오는 반격의 힘은 중공군이 아닌 빨치산의 힘... 뭐 다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그렇네요. 그래도 자기들 도와주는 걸 넘어서 전쟁을 주도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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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10/27 12:56
수정 아이콘
몇십년전 먼 서쪽땅에서는 크리스마스에는 참호도 풀고 놀기도 했다는데
는 중국애들에게는 별상관없겠지 에잉
12/10/27 13:21
수정 아이콘
다음편은 처절하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군요 기대됩니다.
그 부분은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마 영화계 쪽 성향으로는 힘들듯...

북한이야 레닌주의니 마르크스주의니 다 갖다버리고 김일성이 킹왕짱이라는 주체사상을 거의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으니
그에따라 중국의 역할을 삭제했나 봅니다.
Je ne sais quoi
12/10/27 13:39
수정 아이콘
크리스마스 노리고 한 건가요 -_-;; 이긴 전쟁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타이밍도 참 좋아보이네요.
12/10/27 16:48
수정 아이콘
중일전쟁을 보면 중국군을 저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가 아니겠더군요.
중일전쟁은 사실 중국을 약해보이게 만들기 위한 13년간의 훼이크?
12/10/27 16:52
수정 아이콘
전쟁은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전쟁사에 흥미를 느끼는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벌써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흐흐.. 그런데 '아군'이라는 단어는 3인칭 단어에 비해 혼동되는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편을 뜻하는 1인칭으로 쓰였는데, 반대파의 주장에서 '아군'이 중공군을 의미하는 뜻으로도 쓰이니까요.
드라고나
12/10/27 17:00
수정 아이콘
스탑럴커와 버로우저글링 떼거리가 기다리는 곳에 유유히 들어간 테란의 말로가 나올 차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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