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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05 22:59:28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불굴 - 1. 울프하운드, 썬더볼트 작전
1월 15일, 아군은 평택-제천, 영월-삼척 선에서 방어선을 짜고 있었습니다. 원주 공방전이 끝나면서 전선에는 고요가 감돌았죠.

중부전선에서는 여전히 적 빨치산들이 활동하고 있긴 했습니다. 안동까지 진출할 정도였죠. 하지만 미 2사단이 앞을 지키고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이 토벌에 나서면서 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리찌웨이 장군의 작전지도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돌파당하는 것은 힘의 관계로 부득이한 경우가 있지만 적의 돌파구 양측의 중요지점은 어떠한 일도 있어도 고수하여야 한다. 이 거점만 확보하고 있으면 틀림없이 반격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 백선엽

공산군의 방식이었던 한 지점에 병력을 쏟아부어 돌파구를 뚫는 것, 리지웨이는 이에 맞서 돌파구는 뚫리더라도 좌우는 지키고 병력을 모아 역습하는 것으로 맞섭니다. 2차대전 당시 벌지 전투의 경험에 의한 것이었고, 이후 전투들도 아예 안 뚫리거나 뚫려도 역습으로 큰 타격을 주는 방식이 됐죠. 이렇게 공산군 상대용 메뉴얼이 만들어집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건 적의 제 2전선부대, 빨치산이었습니다. 강원도부터 경상북도의 경우 전투 중에 세력이 약화됐고, 국군 2사단이 여기에 투입됩니다. 사단장은 함병선이었죠. 한편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와 경상남도에도 토벌 부대가 필요했죠.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11사단이었습니다. 사단장은 최덕신이었죠. 개전 후 처음으로 시도된 본격적인 빨치산 토벌, 그건 또 다른 참사를 낳게 됩니다.

+)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을 다룰 때 이 최덕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딴 건 다 욕하면서 최덕신만은 감싸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유는? 그가 월북했으니까요.

후방으로 밀리면서 아군 역시 적의 후방을 교란할 유격대가 필요했습니다. 국군은 국군대로, 미군은 미군대로 이북 출신부터 화교들까지 동원했죠.


여기서 유명한 것은 역시 백골병단을 이끈 채명신입니다. 사실 그를 잘 믿지 못 해서 버림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만 -_-a

그리고...


이 무렵 드디어 한국에 도착한 김영옥 역시 베니대(편의대를 그냥 미국식으로 부른 거) 특공대를 이끌고 유격전에 나서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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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서부전선에는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서울은 물론 수원도 미군이 첫 교전을 했던 오산도 포기하고 내려왔건만 중공군의 추격은 없었죠. UN군은 장병들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중공군의 공세는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었고, 중부전선에서는 계속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눈 앞에 있는 적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적이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만큼 두려운 게 또 없었죠. UN군이 모르게 접근하고 있을 수도 있었고, 중부전선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이 때 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승리 뿐이었죠. 더 이상 후퇴한다는 계획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가 장담한 37도선까지 내려온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는 우선 영연방 27여단을 오산 쪽으로 보내봅니다. 하지만 적을 발견할 수 없었죠. 아무리 UN군이 미친듯이 후퇴했다 하더라도 적이 아예 따라오지 않는다는 건 이상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를 중공군이 "다른 뭔가를 준비하거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죠.

"중공군은 뭐든 할 수 없는 상태다"라구요. 이 생각은 적의 4차 공세가 끝나면서 구체화됩니다.

이미 반격 지침은 마련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상태를 확인해야 되니까요. 중부전선의 상황이 완전히 끝난 15일, 리지웨이는 위력수색작전을 시도합니다.


여기에 투입된 것이 미 25사단 27연대였습니다. 이른바 울프하운드 연대였죠. 연대장은 마이켈리스 대령, 미 8군 중 가장 젊은(39세) 연대장이었으며, 미남이었다고 대놓고 적고 있네요 (...);;; 다부동 전투에서 1사단에 증원된 바로 그 연대였습니다. 백선엽에게 평양 진격의 선봉을 맡아 부럽다고 했던 그, 이번에 그가 맡은 작전은 전쟁의 분기가 될 것이었습니다.

단 한개 연대만을 보내지만 미군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호위할 공군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측면을 호위하기 위해 대대급의 병력이 출동해 서울로 가는 도로들을 점령해 줍니다.

15일에 시작된 작전은 단 이틀만에 끝납니다. 수원까지 올라가는 동안 적을 보지 못 했고, 수원에서 본격적인 저항을 받게 되었죠.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잠깐 병력이 동원됐지만 적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미련 없이 물러납니다. 그들의 목표는 적 격퇴가 아니라 적의 상황 파악이었으니까요. 공군이 이들을 지원했고, 아군을 추격하려던 적들은 천여명에 이르는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납니다.

돌아온 마이켈리스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중공군의 방어선은 수원-이천을 연하는 선이며, 중공군의 화력지원과 보급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중공군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규모의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바로 그 때, 미 육군 참모총장 콜린스가 한국에 옵니다. 15일에 온 그는 (앙앙거리는 맥아더는 놔두고 ㅡㅡ) 리지웨이를 만나 철군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에게 전혀 다른 말을 듣게 되죠.

"중공군의 주력은 아직까지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중공군의 보급과 사기에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동부지역에서 북한군의 침투공격이 차단되었다"

17일에 콜린스는 한국을 떠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 뒤에도 상황이 절망적이었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리지웨이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했죠. 이후 콜린스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철군문제의 변화를 가져다준 장본인은 바로 리지웨이 장군 혼자였다."

작전에 투입된 건 단 한 개 연대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고, UN군은 철군에서 반격에 나서게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쟁의 분수령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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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만회할 때다."

울프하운드 작전의 가장 큰 효과는 위로는 UN에, 아래로는 말단 장병들에게까지 중공군이 약화됐다는 것을 알린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중공군은 신비한 군대가 아니라는 거였죠.

이 이전에 리지웨이는 UN군 장병들에게 설문조사를 합니다. "왜 우리가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하는 거였죠. 결과를 보고받은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전 장병들에게 인쇄물을 배포합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조국과 정부의 명령에 따라 여기에 와 있다. 우리가 싸우는 목적은 단지 한국의 도시나 마을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싸우는 진정한 의의는 서방세계의 단결력이 과연 공산주의를 격퇴시킬 수 있는가? 에 있다."

이렇게 그는 UN군에 목표의식을 심어줍니다. 중공군이 참전할 때 병사들에게 교육한 것과 같았습니다. 단지 한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제 1진영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한국을 지키는 것이 곧 (유럽이든 어디든) 자기 나라를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반격할 때였습니다.

+) 이 때가 한국전쟁에서는 참 안 다뤄집니다. 중공군이 밀고 왔고, 대충 반격했고 하다가 고지전에 가면 뭔가 더 자세해지죠.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때가 국군에겐 최악의 시기였거든요. 뭐 하나 잘 되는 게 없었습니다. -_-; 개전 때부터 축적된 피해와 갑자기 늘어난 스케일을 감당 못 한 것이죠. 정부도 이걸 감당 못 했습니다. 그나마 잘 된 건 용문산 전투 정도죠.

나중에 고지전이 벌어지면서 국군이 잘 싸운 건 단지 의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의지로 이길 거면 이렇게 밀리지도 않았겠죠. 이런 암흑기를 거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전쟁의 향방을 결정한 건 이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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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중공군의 상황을 봅시다.

"두 달 남짓 전투에서 서부전선의 6개 군은 세 차례의 공세에서 약 3만 명의 사상자와 더불어 약 2만에서 2만 5천명의 동상, 질병, 도망병이 발생했다. 동부전선 제 9병단의 사상, 동상, 질병, 도망병은 약 4만 명이다. 현재 상황은 전투부대의 병력이 부족하고, 보급이 매우 좋지 않으며, 체력이 쇠약해 있다. 휴식과 정비 보충, 수송 보급을 개선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작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1월 8일, 팽덕회는 위와 같은 보고를 하면서 진격을 중지합니다. 여기에 UN군이 새로운 상륙작전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모택동 역시 상황을 보고 이를 납득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준비"

그는 다음 공세를 위한 준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이 공세는 봄에 시작될 것이고, 그 때까지 중공군은 물론 북한군도 10만명 이상 보충해 함께 싸우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 해 UN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수준까지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준비에는 2~3개월이 필요할 것이고 공세는 3~4월, 춘계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UN군의 피해가 크다고 생각했고, 빨라도 2월은 돼야 반격해 올 거라 여겼죠.

하지만 UN군의 반격은 곧바로 시작됩니다. 당황한 팽덕회는 1월 27일부로 휴식 중지 명령을 내리고 방어로 전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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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동산에는 관심 없다."

뭔가 한국에서 부자는 못 될 것 같은 말입니다만... 그의 반격 지침은 이랬습니다.

-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제압하기 위해 화력화 기동력의 우세를 최대한 활용한다. 보병, 포병, 기갑 등 제병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고 해공군은 화력지원을 한다.
- 목표는 지역 확보가 아닌 적 살상이다. 아군 손실은 최소화하고 적의 인원, 물자에 대한 최대의 출혈을 강요한다.
- 모험적인 작전을 피한다. 소단위부대의 위력수색으로 적정을 확인하고 전면공격으로 확대한다.
- 공격은 속도보다 인접부대와의 횡적인 협조와 연결이 중요하다. 아군 전선이 돌출되면 적의 우회진출을 당하게 된다. 모든 공격부대는 군단장급 지휘관의 사전승인을 얻은 후 통제선을 통과한다.
- 적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면 인접부대와의 연락과 협조를 유지하며 축차 방어선으로 질서있게 후퇴한다. 어느 한 부대가 급히 철수해서 돌파구나 후방 침투를 허용하면 안 된다.
- 후퇴하더라도 반드시 적과의 접촉을 유지하며 지연전을 하고, 적을 아군의 화망으로 유도해 최대의 출혈을 강요한다.
- 적의 공세가 한계점에 도달하면 지체없이 공세로 전환한다.

이런 지침으로 1월 23일 대규모 반격작전이 시작됩니다. 작전명 썬더볼트(Thunderbolt), 크리스마스 공세 이후 2개월만의 공세였습니다.

미 1군단에서는 25사단이, 9군단에서는 미 1 기병사단이 선택됩니다. 오산-여주부터 서울까지 다섯개의 통제선이 설정됐고, 각 부대는 손에 손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진했습니다. 번개랑은 작전명과는 좀 다른 방식이긴 했죠.

하루 평균 2.2km의 느린 진격, 이런 특이한 방식을 북한군은 직선전법이라고 불렀고, 중공군은 자성(磁性)전술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적을 추격할 수 없는 이런 방식으로는 목표였던 적 부대 격멸을 이룰 순 없었습니다. 요충지를 지키거나 아군에게 죽으라고 달려드는 적 정도를 상대할 수 있었죠. 그 점에서 전과가 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적이 제대로 대응을 못 했기 때문이었죠. 팽덕회는 1~2개 군을 투입해 최대한 시간을 벌고 중부전선에 병력을 집중해 아군을 유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중부전선의 작전은 아직 개시도 되지 않았고, 서부전선에서는 결국 아군을 막지 못 했죠. 중공군이 병력의 이점도 살리지 못 했던 그 때, 아군의 화력은 월등했습니다. 인해전술에 맞서는 화해(火海)전술이었습니다. 아군이 틈을 주지 않으니 공산군이 자랑하는 우회전술 역시 전혀 시도할 수 없었죠.

물론 이 가운데서도 중요한 전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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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단은 미 1군단 25사단에 배속돼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용인 김량장과 신갈이었죠. 첫날에 무난하게 김량장리(현재 동) 남쪽까지 진출했지만, 곧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게 됩니다. 중공군은 목표인 151고지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있었죠. 아군의 근접지원이 있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애초에 터키군은 군우리 전투 때 많은 병력과 장비를 잃었고 그 피해를 복구하지 못 하던 때였죠.

이 때 터키군은 적은 물론 아군도 경악하게 하는 전술을 씁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그 주인공은 151고지를 공격하던 3대대, 이들은 "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치며 착검 돌격을 펼칩니다. 무슨 일본군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성공합니다.

전투가 절정에 달했던 26일, 터키군은 고지를 점령했고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립니다. 이후 151 고지에서 확인된 적의 시체는 397구, 남쪽 김량장리에서 77명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개머리판이나 총검에 당한 흔적이 나왔죠. 현대전에서 정말 백병전으로 적을 이긴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외의 공격을 당한 중공군은 급히 물러났고, 다음 날까지 터키군은 아무런 적을 발견하지 못 합니다. 터키군의 피해는 전사 12명과 부상 70명이었죠.


김량장리 전투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터키군은 "백병전의 터키"라는 별명을 들었고, 7월 6일 트루먼에게 부대표창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으로 군우리에서 받은 치욕을 만회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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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까지 진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터키군의 승전으로 중공군은 계속 후퇴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들에게도 최후의 보루가 있었습니다. 수리산과 관악산이었죠. 팽덕회는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하더라도 서울은 어떻게든 지켜내려 했습니다. 거기다 이 곳은 한강 남쪽의 교두보로 춘계공세를 위해 꼭 확보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모택동 역시 이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수비를 독려했죠.

이 고지에 대규모의 적이 있다는 게 밝혀졌고, 주력이 여기에 투입됩니다. 적이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니었으니 준비를 서두르지는 않았습니다.

미 1군단의 목표는 안산의 수리산, 영등포로 가는 도로와 인천으로 가는 도로를 감제할 수 있었고 이 지역을 차지하면 인천의 적을 고립시킬 수 있었습니다. 미 25사단과 터키여단, 국군 15연대, 미 3사단이 배치됐고 나머지 국군 1사단도 예비로 준비됐죠. 중공군은 50군과 38군을 동원해 계속 진지를 쌓고 있었습니다.


주공은 미 35연대, 이들이 수리산을 점령하는 동안 좌측에서는 터키여단이 엄호했고, 우측에서는 국군 15연대가 모락산을 목표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31일 아침에 시작된 공격, 적의 1선 진지는 무난히 아군의 손에 들어옵니다. 13시까지 모든 게 성공했으니 밥시간은 맞춘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음 2선 진지였죠. 적은 급히 진지구축 중이었고 일선 중대에서는 공격을 요청했지만, 대대장은 화력지원을 기다리라며 말립니다. 문제는 공군이 오지 않았다는 것, 첫 날 공격은 이렇게 끝납니다. 작전 자체가 천천히 하는 것이었으니 그것 떄문이었는지, 그냥 서로 싸인이 안 맞았는지는 모르겠네요.

다음 날, 터키여단과 협동공격을 해 서로 연결하고 우측의 국군 15연대와도 연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막힙니다. 터키군과 말이 안 맞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구름이 끼면서 포병과 공군의 지원이 힘들어져 포기해야 했죠.

2월 2일에는 전차가 지원하면서 공격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보병은 연막탄을 뿌리며 전진했고 16시까지 수리산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죠. 문제는... 중공군이 후퇴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위장진지로 숨어있다가 야습을 감행했고, 터키군은 철수, 미군은 백병전을 벌여 겨우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남은 건 서쪽의 440고지였지만 이 곳을 공격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미 25사단은 예비인 27연대 3대대까지 투입했고, 터키여단과 함께 4차례나 공격, 6일에야 겨우 점령할 수 있었죠. 중공군은 안양으로 후퇴합니다.

갑자기 강화된 중공군의 방어, 이것은 서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이기도 했고, 차후공세가 다가왔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승리하면서 인천은 고립됐고, 그 사이 동쪽에서는 계속 북진해 과천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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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군 1사단 15연대는 모락산을 공격합니다. 연대장 김안일 대령은 화교들을 모아 수색대를 조직했고, 덕분에 적정을 파악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죠. 첫 날은 무난히 진격에 성공했고, 미군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대기합니다. 진격이 재개된 것은 2월 3일이었죠.

+) ... 많이 갔나 보네요; 아니면 수리산 공격이 그만큼 힘들었던 건가;;;

정면을 맡은 2대대는 07시부터 16시까지 계속 전투를 벌이며 모락산 정산을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좌측의 1대대, 이들은 야간까지 계속 공격을 벌였지만 실패, 4일 7시까지 모든 병력을 투입해서 겨우 고지를 점령했죠. 이 때 큰 피해를 입어 3대대와 교대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작전이 성공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6일 수리산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이 뚫리면서 밀번 미 1군단장은 알렌 특수임무부대를 투입, 한강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팽덕회는 한강 인마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관악산은 남겨놓아 적을 마지막까지 저지하게 했고, 인천에 대기중인 북한군을 서울로 부릅니다.

서울로 가는 길, 이제 남은 것은 관악산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 모락산을 점령한 국군 15연대에 관악산 점령 임무를 맡겼죠. 그리고 15연대는 9일에 투입돼 10일에 관악산을 점령해 버립니다. (...) 안개가 끼어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성공한 것이었죠.

이렇게 썬더볼트 작전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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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하운드 작전과 썬더볼트 작전의 가장 큰 효과는 아군의 사기가 크게 오른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 했고, 저항한 곳에서도 승리했죠. 특히 영등포와 김포까지 진출하면서 서울 재탈환이 가능해진 것이 컸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더 이상의 진격을 막습니다. 이미 할만큼 했기 때문이었죠. 거기다 우측의 미 9군단의 진격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도로가 별로 없어서 전차의 기동이 어려웠고, 산악지대가 많아서 중공군이 더 잘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중공군은 중부전선에 병력을 집중했고 차기 공세 직전이라 공격력이 강화돼 있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죠.

서울에 대해서도 리지웨이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도시 중 하나일 뿐, 한강을 넘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대신에 김포부터 인천의 잔적을 토벌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썬더볼트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리지웨이는 중부전선의 반격 역시 시작합니다. 한편, 팽덕회는 한강 이남을 포기했지만 중부전선에서의 반격도 그냥 두고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중공군의 차기 공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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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라운드업 작전과 중공군 4차 공세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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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12/11/05 23:16
수정 아이콘
아아~ 형제의 나라는 역시 터프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Je ne sais quoi
12/11/05 23:16
수정 아이콘
터키 이야기 나오니 괜히 반갑네요. 여행해본 사람들 많이 겪었겠지만, 저도 터키 갔을 때 태극기 뱃지 단 터키 할아버지를 만났었죠 ^^;
12/11/05 23:45
수정 아이콘
차...착검돌격....덜덜덜
먼지가 되어
12/11/06 00:02
수정 아이콘
저 김량장리 전투가 1명당 40킬했던 곳이죠.
백병전으로 저정도면 그냥 학살이라 불러도 될정도
사티레브
12/11/06 00:12
수정 아이콘
어느새 여기까지 내려왔었네요
정독정독...
스타본지7년
12/11/06 00:17
수정 아이콘
요새 존 톨랜드의 6.25 전쟁 읽고 있는데... 장진호부터 미군 개박살나는걸 보고 있자니 아휴..-0- 아몬드와 워커, 맥아더와 리지웨이, 마오쩌둥과 펑더화이 등을 보고 있자니.. 참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저는 부대에서 읽고 있긴 하지만(상근인데... 역사 좋아한다니까 정훈과 내려가라네요? 땡큐!!). 최덕신만 생각하면 거창이 생각나서 이가 갈리는군요.
절대빈곤
12/11/07 11:38
수정 아이콘
얼마전 터키 출장을 다녀 오는데 마침 귀국하는 시기가 6.25 바로 전이었습니다.
타고오는 여객기에 터키 참전 용사분들이 많이 타셨더군요.
그 분들께서 계속 말을 걸어 오셨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했다는 건 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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