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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14 14:36:55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불굴 - 7. 3군단 붕괴
"실제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전쟁의 승패는 얼마나 많은 살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느쪽이 먼저 자신감을 잃고 와해되어 도망을 하기 시작했느냐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육체적 희생이 초래되는 것은 결국 전투 부대가 와해된 뒤의 일이다. 미 남북전쟁 기간 중, 발포의 주 목적은 신체적 피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붕괴를 위한 것이었다." - 고통스런 전장

+) 뭐 사실 이 책은 이런 현상을 강약의 문제가 아닌 당연한 문제이고 전투피로증 등 병사들이 겪는 심리적인 병을 분석하는 거라 좀 다르긴 합니다.

2개 사단이 한 곳에 집결했습니다. 좁은 곳에 있는만큼 서로 뒤섞였고, 자기 부대가 어딨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죠. 거기다 한 곳에 집중되면서 전파간섭이 일어났고, 전령이든 무전이든 서로 연락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 외 7사단 패잔병들은 중공군의 무서움을 퍼뜨렸고, 후방이 차단됐다는 소식은 이 공포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했죠.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고, 중공군은 언제나 이를 노렸습니다.

여기서 최대한 병사들을 진정시킨 후 재편을 해야 할 부사관과 하급 장교지들은 오히려 여기에 휘말렸고, 이는 이들을 책임져야 할 상급 지휘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를 하든 진지 사수를 하든 건재를 유지할 수 있느냐로 군대의 질을 점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군은 여기에 한참 미달됐죠.

거기다 국군은 합동 작전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따로 움직인 적이야 많지만 서로 다른 사단이 같은 지역에서 서로 협조한 경우가 없었죠. 빨치산 토벌 같은 경우는 그랬을지 몰라도 격이 달랐구요.

공산군은 이 약점을 철저히 두들깁니다. 중공군은 그 어마어마한 수로 밀어붙였고, 그 특유의 기동력으로 후방을 포위했죠. 직접 밀고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대신 그 특유의 소리로 국군을 위협했죠. 언제 어디서나 들리는 꽹가리 소리, 이는 직접 적이 눈 앞에 오는 것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많든 적든 적의 규모를 알 수 있다면 그 공포는 그나마 덜해집니다. (넘사벽일 경우 포기도 빠르겠지만 (...)) 하지만 적이 대체 얼마나 있을지 모를 때, 그 공포는 극대화되죠. 한편 북한군은 곳곳에서 침투해서 거짓정보를 퍼뜨립니다. 내용이야 뻔했죠. 군단장이 도망갔다는 것부터 대통령까지 도망갔다, 미군도 도망갔다, 니들은 버려졌다는 것들이요.

하필 유재흥이 연락기를 타고 하진부리로 돌아가면서 이 소문은 더 퍼져 버립니다. 그리고 병력이 몰리면 몰릴수록, 특히 조직적으로 모이지 않고 마구 엉겨붙을수록 이 공포는 전염되기 쉽죠.

이런 혼란 속에서 나오는 증언일수록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혼란으로, 그 후에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 말하기 마련이니까요. 때문에 이 안에서 진실을 찾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2개 사단이 도주하는 계기는 있었을 것이고, 이를 파악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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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단은 서로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협조도 하지 않고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이없는 결과를 낳게 한 양쪽의 변명은 여러 전사에 밝혀졌다고 하나, 나는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분노가 보이긴 하네요) (중략) 최석 사단장의 행동에 대하여 이제 와서 평가하고 싶지않으나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는 결코 전투의지의 결여에서가 아니라 실전 경험의 부족에서였다고 보았다. 통상 상급 지휘관이란 중·대·연대장 등을 단계별로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거친 지휘관도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면 당황하게 마련인데, 단계를 무시하고 보직했다든가 특히 행정병과 등에서 하루아침에 실전 지휘관이 되면 사태 처리에 한계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여기서 문제된 것은 9사단장 최석이었습니다. 유재흥의 평가는 비교적 좋은 편이죠. 자, 하나하나 디벼봅시다 -_-;

유재흥의 명령으로 3사단과 9사단은 각기 한 대 연대를 차출,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려고 합니다. 3사단은 진백골부대인 18연대를, 9사단은 30연대를 동원했죠. 30연대가 먼저 오마치를 향하는 주요고지를 확보하기로 했고, 18연대는 그걸 초월해 본격적인 돌파작전을 개시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 30연대장은 각 대대에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3대대 - 736고지 확보, 군단주력의 철수 엄호
1대대 - 3대대 후속 785 고지 확보
2대대 - 예비대

보시다시피 3, 1대대가 맡은 736, 785 고지는 오마치(오미재)로 가기 위해 점령해야 되는 곳이었습니다. 3대대는 22시까지 736고지의 점령을 완료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죠.

30연대장 손희선 대령은 "1대대가 3대대를 후속해 785 고지를 향해 진출했으나 통신두절로 상황파악이 안 됐다."고 증언합니다. 이후 피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초조하던 가운데 9사단 지휘소가 철수한 것을 확인하고 독단으로 철수를 결심했다고 하죠. 1대대는 명령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고,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르며 그게 천추의 한이라고 했습니다.

1대대장 김상의 중령은 군단주력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방대산에 병력을 배치했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그건 배치가 아니었죠. 후퇴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9사단장 최석의 증언입니다.

"17일 오후에 군단장이 현리에 와서 작전을 검토하고 지시하였는데 9사단에 돌파임무를 준 것에 대하여는 잘 기억이 안난다. (72. 7. 30) 그러나 돌파하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군단장 유재흥은 직접 가서 30연대가 오마치고개를 돌파하라 명령했지만, 9사단장은 그런 돌파 임무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고, 30연대장은 그런 돌파임무에 따라 작전을 실행했지만 두 번째 임무를 맡은 2대대장은 전혀 다른 임무를 맡았다고 증언한 것이죠.

여기서 너무나도 유명한 한 인물의 증언이 포함됩니다. 당시 9사단장 참모장으로 있던 이의 증언이죠.

"제9사단장 최석 장군의 작전 지휘는 기백은 있어 보였으나 실전 경험이 없어서인지 허점이 드러나 보였고, 제7사단장 김형일 장군은 적의 공세 때마다 뚫려 인접부대를 곤란하게 만들기 일쑤였지요. 그때도 그런 경우로 적이 공격하자마자 돌파되어 우리 사단의 통신을 거쳐야 지휘할 수 있었으니 전투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바로 박정희였죠. -_-a

3사단 참모장 정래혁은 이 최석에 대해 꽤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것보단 당시 18연대장 유양수 대령의 증언이 더 낫겠죠.

그가 각 대대에 내린 명령은 이랬습니다.

- 연대는 21시에 9사단 30연대가 공격을 개시하면 오미재 부근에서 초월, 오미재를 점령한다.
- 2대대 - 도로를 기준해 오미재 우반부를 점령하라
- 3대대 - 도로를 기준해 오미재 좌반부를 점령하라
- 1대대 - 예비대

즉 이들은 오마치 돌파의 주력이었습니다. 30연대가 준비되면 바로 돌파하는 것이었죠. 헌데 어둠이 깔릴 때 최석은 연대 지휘소를 방문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돌파작전에 자신이 있느냐?"

이 때 유양수는 최석이 돌파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9사단 군수참모 김재춘의 증언입니다.

"주변에서 소총 소리가 들리니까 사단장이 부대지휘를 포기한 채 방대산으로 올라갔다. 그 때 최석 준장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기서 다시 30연대장의 증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연대의 후퇴 이유를 9사단 사령부의 철수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3사단 18연대와의 연합작전은 없었던 것으로 증언하죠.

이건 뭐... 참 개판이죠?

여기서 종합해볼 수 있는 건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붕괴의 시작은 30연대 1대대였다는 것, 3대대는 계속 736고지를 지키다 뒤늦게야 후퇴합니다. 그리고 최석이 작전 중 갑자기 철수했고 그 방면이 방대산이었으며, 30연대 1대대가 받은 명령이 이 방대산 쪽을 지키는 것이었으며, 딱히 지키지 않고 철수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말이 너무 안 맞다는 것, 유재흥은 제대로 회의를 했다고 했지만 30연대장은 여기에 참가하지 못 했다고 했고, 30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오마치 돌파 명령을 받았다고 했지만 휘하 대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장 736고지를 점령한 3대대 역시 오마치 돌파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아닌 그저 아군의 철수 엄호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죠.

윗선의 명령은 구체적이지 못 했고, 전파간섭으로 무전이 안 돼 서로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건 장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죠.

3군단 전면 붕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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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고지를 점령한 30연대 3대대는 연대 본부의 철수 소식을 듣지 못 합니다. 뒤늦게야 연대 지휘소로 갔지만 아무도 없었죠. 이들은 02시에 단독으로 철수합니다. 방향은 역시 방대산이었습니다.

18연대장은 9사단의 철수 소식을 바로 보고합니다. 이에 3사단장 김종오는 3사단의 철수를 결심하죠. 위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시각이 너무 늦었습니다. 18일 03:30이었죠. 18연대는 그 동안 아무것도 못 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종오가 후퇴 명령을 내렸을 때 역시 너무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이건 3군단을 지원하던 30포병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딱히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 했고, 아군의 철수움직임에 따라 화기를 파기한 후 맨몸으로 후퇴에 나섭니다.

그나마 이 정도로 철수 시각이 나타나는 부대들은 다행이었습니다. 아니 이 부대들의 상황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겠죠. 조직적인 철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도주일 뿐이었죠.

방대산은 1436m나 되는 높은 산, 철수 병력들은 한데 뒤엉켜 이 산을 오릅니다. 병사고 장교고 없었습니다. 뒤에서 밀리는대로 갈 뿐이었고, 장교들은 포로가 될 때를 대비해 계급장을 뜯고 움직입니다. 소대장은 주변 병사 10명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죠. 산을 오르면서 무거운 화기와 무전기가 버려집니다. 서로 연락하긴 더 힘들어졌고, 계급장을 떼 낸 장교들의 명령을 듣는 사병들은 없었죠. 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은 계속 낙오해 갔고, 길을 잘못 잡아 산을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이 안에는 3사단장 김종오, 9사단장 최석, 3군단 참모장 심언봉 등 세 명의 장군이 있었지만 이 때는 그저 도주하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었죠.

그나마 편제를 갖춘 것은 역시 백골부대, 18연대였습니다. 이들은 군단의 철수를 엄호하며 추격하는 적에 맞섭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저기서 기습을 당하며 찢깁니다. 부연대장 김봉상은 행정요원 200명을 이끌고 가다가 기습당해 흩어졌고, 2대대장 정승화는 3대대장과 합세해 병력을 보존하며 내려오다 기습을 당해 분산됩니다. 그나마 1대대장 손영진 소령이 끝까지 편제를 갖추며 소규모로 기습해오는 적들을 쫓아내고 국군 포로까지 구출해냈죠. 그 외에 사단장 김종오의 명령으로 처음부터 방대산을 방어했던 23연대 역시 편제를 유지하며 후퇴합니다.

여기다 군단의 철수를 보호하려는 공군이 오폭을 내면서 아군의 혼란은 가중됐고, 이 와중에 29연대장 차갑준 대령이 화상을 입기도 했죠. 중공군은 직접 공격보다 꽹가리와 피리를 사방에서 불면서 압박해왔고, 이는 아군의 의지를 더 떨어뜨렸죠. 거기다 북한군 간첩이 곳곳에 침투, 거짓정보를 퍼뜨렸습니다.

철수병력들이 방대산을 힘겹게 넘어 도달한 곳은 광원리였습니다. 그나마 도로가 있는 곳으로 남쪽에는 창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병력을 추스리려 했지만, 이미 창촌에 중공군이 도달해 있었죠. 두 개 대대 2천명 정도를 수습하고 있던 정승화의 백골부대는 여기서 공격을 받아 분산됩니다. 이들은 다시 오대산과 계방산 사이의 을수재를 따라 하진부리로 철수하게 됩니다.

을수재는 1150m나 되는 높은 고지, 병사들은 지칠대로 지쳐 탄띠, 배낭, 철모까지 내던지고 시계까지 버린 병사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들에게 이미 와 있던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됐죠. 지친 병사들은 드러누워 죽어가거나 포로가 됐습니다. 더 아쉬운 것은 이들이 소규모였다는 것입니다. 뒤이어 온 18연대 1대대는 이들을 과감히 공격했는데, 알고보니 1개 분대 정도의 병력밖에 없었죠. 공산군의 포위는 완벽하지 않았고, 이게 3군단을 살렸습니다.

18일 새벽부터 시작된 철수행렬은 20일에 마침내 하진부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김종오는 23연대에 을수재 동쪽을 방어해 철수를 엄호하게 했고 중공군은 이들을 건드리지 못 했죠. 3군단 사령부에서는 급히 연락기를 통해 하진부리로의 집결을 알렸고, 마을 곳곳에 주먹밥을 만들어 철수하는 병력들에게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7사단 5연대(+ 9사단 공병대)를 통솔해 운두령에 배치, 중공군의 마지막 포위를 막았죠.

5월 20일 16시까지 하진부리에서 파악된 병력은 3사단은 3621명, 9사단은 4582명이었습니다. 기존의 40% 수준이었죠. 그나마 중화기는 물론 소총, 철모,탄띠도 버리고 온 이들이 많았고, 다들 같이 도망간지라 이를 탓하지 못 하고 몸만이라도 살아온 걸 기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즈음 도착한 밴플리트는 (연락기 타고 오다가 중공군 대공포에 맞았다고 합니다) 하진부리에서 방어선을 다시 짤 것을 명령합니다. 이것이 3군단 해체의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이었죠.


3군단은 하루만에 다시 무너져 버립니다.

이번에는 정말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패주길이었습니다. 대대 단위나마 버티다가 후퇴하거나 적의 포로가 된 부대도 있었고, 그냥 도망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죠. 군단사령부는 영월로 퇴각했고, 후퇴하는 병사들을 다시 수습하려 했습니다. 아예 부산까지 도망간 병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 그리고 더 이상의 시간은 3군단에 없었습니다.


"못 한다 못 한다 말만 들었지 이 정도로 못 할 줄은 몰랐다."

유재흥을 찾아간 밴플리트, 여기서 전설로 남게 되는 대화가 나옵니다.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그런 것 같습니다."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보직이나 알아보시오!"

이렇게 3군단은 해체되고 전쟁은 그의 손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유재흥은 국군 2군단에 이어 국군 3군단 해체의 장본인이 되었죠.

하지만 밴플리트에게 그걸 신경써 줄 시간은 없었습니다. 20일에 이 곳으로 날아왔던 그는 미 3사단 라이딩스와 국군 1군단장 백선엽을 모읍니다.


"알긋나. 느그는 무조건 이기야 된다."

안 될 경우, 손으로 목을 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반격 제대로 못하면 니들도 잘린다는 거였죠 (...)

3군단의 붕괴로 뚫릴대로 뚫려버린 동부전선, 이걸 막고 다시 반격에 나서야 했습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다음 편은 이 현리 '전투'에 대해 더 분석해보고 용문산 전투부터 다루겠습니다. 대패를 다뤘으니 대승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어야죠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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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fish
12/11/14 15:03
수정 아이콘
밴장군 위의 사성 계급을 보면 참 아무리 미국에서 아웃오브안중 전쟁이라도 여기 적어도 8군 사령관 하면 4성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밴플리트 장군이 그렇게 다른 8군 장군에 비해 2대전 경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워커 장군 부터(비록 추서지만), 리지웨이 밴플리트, 맥스웰 테일러 네사람 모두 육군 대장에 올랐으니 말이죠. 심지어 리지웨이와 테일러는 참모총장까지 올라가서 군인의 정점을 찍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한편 유재흥 장군은 약간 능력 이상의 위기에는 전혀 대응이 안되는게 단점이라고 말하기 뭐하는 점 때문에 원균과 동급 취급이니 좀 안습입니다. 솔직히 깔려고 마음 먹으면 다른 걸 더 깔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죠.
Moderato'
12/11/14 15:08
수정 아이콘
그럼 9사단 30연대 1대대의 후퇴이유가 통신두절 하나인건가요? 이건 너무 말이 안되잖아요;; [m]
사악군
12/11/14 15:28
수정 아이콘
..이쯤되면 30연대장이던 9사단장+1대대장이던 둘중에 하나가 간첩이라는 음모론이 나올만도 하겠네요..-_-....
설탕가루인형형
12/11/14 15:43
수정 아이콘
낯 익은 이름이 나와서 여쭤보는데요, 3사단 2대대장 정승화는 12.12사태의 그 정승화 총장인가요?
나이대가 얼추 맞을것 같기도 하고...
12/11/14 15:58
수정 아이콘
9사단의 흑역사가 펼쳐지는 군요. 군대 있을때도 백마고지 전투만 회자될뿐 현리 전투는 제대 후에 알게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익숙한 부대 이름이 나오니까 순간 기쁘기도 하군요. 그런데 김종오 장군이 나중에 백마고지에서 9사단을 이끌고 대승을 거둔 것을 보면 역시 군대는 지휘관이 중요한 것 같네요.
12/11/14 16:10
수정 아이콘
한동안 못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현리지구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군요 +_+;;
제가 9사단 출신이라 한때 전사책 뒤져가며 후벼팠던 기억이 나네요.
현리지구전은 아마 한국전 통틀어서 국군이 이 전투만큼 철저히 발렸던적이 있을까 싶었던 사건이었죠
당시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료에 나타난 지휘능력과 판단력은 정말 원츄라는....
중공군 군단 하나가 통째로 잠도 안자고 3일 동안 우회기동해서 아군 퇴로 막고 쌈싸먹기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한창 잘나가는 스타2의 이승현 선수와 비슷한 전투방식일겁니다.
이건 국군이 못하기도 했지만 중공군이 너무나도 잘한 전투였죠. 이 정도 기동력은 소위 약을 빨았다고 밖에는....
Je ne sais quoi
12/11/14 17:41
수정 아이콘
와 이거 진짜 어이없기도 하고 -_-;;
Tristana
12/11/14 21:29
수정 아이콘
용문산 전투! 6사단가에 나오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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