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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28 11:36:23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전쟁 속의 한국 - 6. 신념의 조인


개전 당시 공군에는 단 한 기의 전투기도 폭격기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폭탄을 들고 타서 손으로 떨어뜨리거나 바주카포를 쏘거나 하는 수준이었죠.

미 극동공군 사령관 스트레이트메이어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한국에 와서 전투기 원조문제를 의논합니다. 그는 F-51을 훈련 없이 탈 수 있는 인원을 물었고, 겨우 10명이라는 답을 들었죠. 이들로 전세를 바꾸거나 할 순 없었지만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6일 급히 10명이 선정돼 일본으로 향합니다.


위 왼쪽부터 정영진 중위, 이상수 중위, 김신(김구의 아들) 중령, 장동출 중위, 이근석 대령, 김영환 중령, 김성룡 중위, 강호륜 대위, 박희동 대위, 장성환 중령

이들은 하필 5일 동안 비가 내리면서 제대로 훈련도 못 해보고 30분씩 비행을 해 본 다음 바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한편 딘 헤스 소령은 공군을 훈련시키는 부대를 맡게 됩니다. Bout-1, 대한민국 공군 재건을 위한 한판 승부라는 뜻이었습니다. 뭐 그래봐야 미군은 크게 신경써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럴 여유도 없긴 했죠. 한국 공군을 키워주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더 힘을 모아서 직접 북한 공군을 상대하는 게 나았으니까요.

그와는 별개로 미 공군은 개전 즉시 작전을 시작합니다. 당시 미 극동공군은 44개 편대 675기의 항공기와 3만 3천여명의 장병을 보유하고 있었죠.


대표적으로 F-51 머스탱 불꽃의 연금전폭기와


미 공군이 최초로 채택한 제트전투기 F-80 슈팅스타가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투입하려 했으나 그 전에 전투가 끝나버렸죠. 보시다시피 마지막 프로펠러기와 최초의 제트기가 공존하는, 세대가 바뀌는 때였습니다.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리고 명불허전 초공요새 B-29도 있었죠.

하지만 한국 지형에 숙달돼 있지도 않고 작전 협조도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았으며, 전선의 상황이 극히 유동적이었습니다. 거기다 역시 명중률이 좋을 때가 아니었죠. 한강의 다리를 파괴하는데만 엄청난 소티(출격 횟수)를 써야 했고, 인천상륙작전에서 46개의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 1주일간 3257개의 소티를 써야 될 정도였습니다. 아군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오폭도 너무 잦았죠.

이후 작전권을 합친 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고, 겨우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오폭은 잦았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북한 공군은 순식간에 전멸, 하늘은 UN군의 차지가 됩니다. 이들은 38선 이북까지 작전을 하며 북한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고, 북한 자체에도 큰 타격을 줬죠. 계속되는 작전으로 평양에는 건물이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압록강 이북으로는 가지 말라는 확실한 제한이 있었고, 북한을 상대하는데는 그나마 나았지만 중공군 개입 이후 이게 큰 문제가 됩니다.


그 동안 국군 공군은 7월 3일부터 작전을 개시합니다. 이 날이 조종사의 날로 지정됐죠. 첫 날 작전은 무리 없이 진행됐지만 다음 날에는 이근석 대령이 첫 전사자로 기록됩니다. 이후 전선이 밀림에 따라 대구에서 진해로 가게 됐고, 미군은 한국 공군을 따로둬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느껴 미 공군에 흡수하려 했습니다.


이를 막은 것이 헤스였습니다. 대신 그는 바우트원 대대원들과 함께 국군 공군과 함께 행동합니다.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었죠. 해체 소식을 들은 공군이 육군에 재입대해 싸우겠다고 맞섰고, 그에 감명받아서 한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그와 함께 유명한 것이 그의 애기인 신념의 조인기입니다.

이 때 그가 원한 건 라틴어 Per Fidem Volo였죠. 영어로는 I fly by faith였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이를 번역해서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나온 말이 바로 신념의 조인(鳥人)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 정도 번역이 한계였겠죠. 하긴 지금은 번역할 필요 없이 멋지다고 영어나 라틴어를 그대로 그릴 것 같습니다만.

이승만이 딘 헤스에게 감사하며 직접 지어줬다는 설도 있지만 헤스는 그의 회고에서 자기가 직접 부탁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흥미로운 얘기가 있는데, 서울 수복 후 영등포에 있을 때, 간판 그리는 집에 부탁해서 그린 거라고 합니다. 이후 평양 미림기지로 갔을 때 반대편에도 그려달라고 했는데, 거기에서는 똑같은 글자체로 할 수 없다고 해서 좌우에 다른 글자체를 가진 신념의 조인기가 탄생했죠. 이후 그을음 때문에 더러워지자 흰색으로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총 세가지 버전이 있는 셈이죠.

http://koreanwar60.tistory.com/428
자세한 건 여기서 ( '-')/

이렇게 공군의 산파 역할을 했던 헤스는 1년 후 돌아갑니다. 1.4 후퇴 때는 천여명의 전쟁 고아를 제주도로 피난시키기도 했죠. 이후 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영화가 나왔는데 Battle Hymn, 전송가입니다. 이 영화와 자서전의 수익금을 모두 한국의 전쟁 고아를 위해 썼다고 합니다.

이후 신념의 조인기는 최초로 100회 출격을 한 걸로 유명한 김두만 대위가 몰게 됩니다. 헌데 51년 8월 21일에 다른 비행기가 착륙 중 기체를 긁어버렸고, 살리려고 했지만 실패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고증이 맞지도 않는 -.-;) 복제품이죠. 어쨌든 여러모로 빨간 마후라와 함께 공군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그 동안 공군은 조금씩이나마 성장, 20기 정도의 머스탱을 몰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제대로 된 작전명령 없이 그냥 필요할 때 부르는 정도의 임무만 맡겨졌을 뿐이었죠. 공군이 계획하에 단독작전을 벌일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51년 9월 1일이 돼서야 공군의 작전운용능력이 인정받았고, 1개월 정도의 준비로 제 10전투비행전대가 창설됩니다. 최초의 독립 전투비행단이었죠.


이런 과정에서 유명한 건 역시 해인사를 지켜낸 김영환이겠죠.

하지만 한국 공군이 인정받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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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하늘에서도 거대한 적이 나타납니다.


미그 15였죠. 거의 쓰이지 않은 MIG-9에 이어 소련이 두번째로 채택한 제트 전투기였습니다. 10월 23~4일부터 만주에서 발진한 적과 공중전이 벌어집니다. 중공군이 소련에게서 받은 것도 많았지만, 실제 소련군이 중공군인 척 탄 것도 있었습니다. 소련에서는 이를 비밀로 했고, UN군 역시 알면서도 확전을 피하기 위해 무시합니다.

처음에는 프로펠러기인 머스탱도 이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조종사의 기량 역시 중요했고, 중공군의 경우 이게 약했으니까요. 하지만 곧 성능에서 머스탱은 물론 F-80 슈팅스타보다도 강하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를 상대하기 위해 약속된 승리의 전투기 (...) F-86 세이버가 본격적으로 투입됩니다. 하늘에서는 계속 공중전이 벌어졌고, 결과는 나름 놀라웠습니다. 거의 10:1 수준의 격추비를 올렸거든요.

세이버의 경우도 초기에는 성능면에서 달렸다고 합니다. 이를 넘은 건 역시 기량 차이였죠. 소련군이야 잘 싸웠지만 역시 다수는 중공군이었으니까요. 거기다 초기형도 조준기의 경우 성능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가면 성능 면에서도 압도할 수 있게 됐구요.

하지만 현재에는 격추 비율 역시 너무 과장됐다는 평을 받습니다. 만주까지 추적할 수 없었고, 격추했다고 기록된 적은 대부분 살아 돌아갔거든요. 적도 아군을 기만하기 위해 격추된 척 했구요. 애초에 제트기의 시대가 막 열렸고, 기관총 정도로는 완전히 격추하기 힘들 때였습니다. 실제론 2.3:1 정도로 보죠

어찌됐든 공중우세야 여전했지만, 마음놓고 하늘을 날기 힘들어져 갔습니다. 공중에서도 그렇고 지상에서도 강력한 대공포화가 강해져 갔거든요. 특히 적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다녀야 했죠.

거기다 중공군은 특이한 전술도 보여줍니다. 밤에 갑작스레 폭격을 가해오는 것이었죠. 헌데 적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레이더로도 부족했고, 소리도 작았으며,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었죠. 이것으로 꾸준히 피해가 누적됩니다.


그 주인공은 PO-2, 이들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폭격을 가해온 것이었습니다. 별명은 강냉이 (...) 별명답게 이 싸구려 폭격기가 세이버의 강냉이를 털어버립니다. ( - -); 한 방에 세이버 5기를 잃기도 했죠.

중공군은 아예 폭격 예고까지 하면서 폭격을 해 왔지만, 아군은 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천천히 왔고, 소리도 작아서 발견하기도 힘들었으며, 아군의 전투기는 너무 빨랐거든요. 제트기 대신 프로펠러기들을 동원했지만 이들도 너무 저공비행을 하다 사고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해병대가 쓰던 커세어를 다시 데리고 와서야 좀 나았죠. 하지만 다 막을 순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승만의 숙소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을 폭격하기도 했고, 인천항을 공격해 석유 20만리터를 한 큐에 날리기도 했습니다.

참 역발상이랄까요. -_-a 이걸 만든 소련도 독일군에게 이런 기습을 가해 '밤의 마녀'라 불렸고, 베트남전에서도 그 유명한 안둘이가 미군의 잠을 방해했죠.


괜히 군대에서 안둘안둘 하는 게 아닌 겁니다. '-')

미 극동공군은 전쟁 동안 무려 1466기나 되는 항공기를 잃습니다. 그 외의 UN군에게서도 152기를, 미 해병대에서는 368기를 잃어 총 피해는 1986대에 달하죠. 이 중 945기는 사고로, 1041기는 전투 중 격추됩니다. 공중전에서 잃은 수가 147기였고 대공포 등 지상화기에 잃은 수가 816기, 기타 78기 등이 있죠.

UN군의 화력을 책임져줬던 공군, 하지만 그 피해 역시 작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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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서 공군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전이 있습니다.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이죠.


승호리는 대동강에 위치한 곳으로 이 곳의 철교는 적의 주요 보급로 중 하나였습니다. UN 공군은 이미 한 번 이 곳을 파괴했지만 곧 근처에 새로운 철교를 세우고 강력한 대공방어망을 만들어 놓았죠.

미 공군과 해병대, 호주 공군까지 나서서 이 곳을 폭격했지만 실패합니다. 무려 500 소티가 쏟아졌다고 합니다만 이게 확실한지는 모른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작전은 돌고 돌아 국군 공군에게로 갑니다. 규모를 늘리며 자립해 가던 공군에게 시험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김신
"우리 공군도 명예가 있으니 미군도 못한 것을 우리가 해 낸다면 얼마나 자랑이냐, 우리 대한민국 공군의 명예를 걸고 최대한의 노력으로 한번 해 보자."

당시 10전투비행단장이었던 김신은 이렇게 조종사들의 사기를 올립니다. 미군은 과연 한국군이 성공할 수 있을지 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


시작은 1월 12일, 김두만 소령의 지휘 아래 5기로 이루어진 편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투하한 500파운드 폭탄 10발은 모두 빗나갑니다. 이어 윤응렬 대위가 지휘하는 편대 3기가 떴지만 역시 폭파에 실패했죠.

당시 미군은 8천피트 상공에서 강하, 3천피트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죠. 파격적인 작전을 써야 했습니다. 4천피트에서 강하, 천오백피트(약 450m)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었죠.

문제가 컸습니다. 적의 대공포는 물론 저공비행으로 땅에 처박힐 위험도 컸죠. 거기다 이 정도 거리면 보병의 소총에도 맞을 수 있었습니다.


"우린, 한국 최고다."
1월 15일, 공군은 이런 위험을 각오하고 다시 승호리로 향합니다.


이 전날에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김두만 소령이 최초로 100회 비행을 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는 이 작전에는 참가하지 않습니다.

  
1편대는 윤응렬 대위가 3기를 이끌었고, 2편대는 옥만호 대위가 역시 3기를 이끕니다. 더 위험해진 작전, 하지만 꼭 성공해야 했고, 꼭 돌아와야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2편대가 대공포화를 피해가며 길을 열었고, 윤응렬의 1편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철교를 정확히 맞춥니다. 사진까지 찍어 증거물도 남겼죠. 이후 만육천피트(5천m)까지 상승해 포화를 피합니다.

그렇게 단 한 기도 낙오되지 않고 돌아왔죠.

"한번은 미 6146고문단에서 한국 공군도 참석하라고 해서 가 보니 작전 브리핑을 끝낸 다음 미 5공군사령관이 승호리 철교를 폭파시킨 사진을 걸어놓고 한국 공군이 한 것이라며 내게 축하를 해줬다." - 김신

이 작전은 공군에게 쾌거로 남습니다. 공군 자립의 신호탄이었죠.


빨간마후라 역시 마무리는 이 작전이 맡았구요.

이후 공군은 계속 성장, 휴전 때는 118기의 F-51을 보유하게 됩니다. 115명의 F-51 조종사 중 39명이 100회 이상 출격한 조종사만 39명, 총 출격 소티는 8495회에 달합니다. 이 중 항공기 손실은 117기, 조종사의 손실도 39명이었죠.

그들의 피와 땀으로 국군 공군은 탄생했고, 자립했으며,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다음 편은... 뭐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다루면서 끝내겠습니다. 본편으로 돌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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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통
12/11/28 11:50
수정 아이콘
이때야 여건이 안좋으니 저런다 치더라도...지금까지도 장비확충대신에 정신력 무장을 운운한다는게.....참...
12/11/28 13:36
수정 아이콘
사기유닛이 하나 보이는군요
swordfish
12/11/28 14:23
수정 아이콘
사실 세이버 미그 격추 비율 10:1은 착오라고 하죠. 프롭기 제압 수준의 세이버 화력으로 훨씬 강한 맷집의 미그를 확실히 잡을 수 없었고 다수가 화염을 끌며 압록강 이북으로 사라져 귀환한 걸 격추 판정을 주었으니 말아죠.
자이체프
12/11/28 14:46
수정 아이콘
바우트 원이라는 만화를 아는 작가분께서 그리셔서 나름 잘 알고 있던 이야기군요. 중간에 나온 야간공습은 미군측은 불침번 찰리라고 불렀습니다. 미군이 커세어에 레이더를 장착해서 요격에 나선 이후에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설탕가루인형형
12/11/28 16:21
수정 아이콘
어디서였더라..
김신장군님을 봰적이 있었는데 김구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뭔가 역사책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blue wave
12/11/28 17:14
수정 아이콘
잼있군요. 다음엔 독일 공군의 에이스들도 좀 다뤄주시면 잼있을것 같습니다.
마지막 작전은 정말 대단한 작전이었네요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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