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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30 17:01:15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미지와의 조우 - 황당선

한일 양국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던 바로 그 영상!

1604년 6월, 당포 앞바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흑선(黑色大船)이 나타납니다. 통제영의 바로 근처라서 대응은 빨랐죠. 조선 수군은 배를 멈추라 했는데 거기서 중국의 배라는 대답이 나왔고, 정말이라면 돛을 내리라고 명령했지만 돌아온 것은 총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이상 남은 건 하나였죠. 격침.

25척의 배가 적선을 포위했고, 그 중 5척이 직접 교전합니다. 조선 수군의 방식이었죠. 하지만 만만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 한 척이었지만 전투는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쫓아내는 게 아니라 불태우거나 나포하는 것이었으니 시간이 더 걸렸고, 그 배가 너무 컸거든요. 지금까지 본 중국이나 일본의 배와는 달랐습니다.


당포전양(앞바다)승첩지도

가운데 다섯 척의 배가 에워싸고 있는 배를 보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요걸 닮았죠.

황당선, 황당하다 할 때 그 황당입니다. 조선은 근해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UFO 같은 느낌일까요. 그 전에야 어떤 배든 정체를 모르면 그렇게 불렀지만, 서서히 확실히 뭔가 다른 황당한 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서양의 범선들이었죠.

이 배는 중국 복건성에서 베트남,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다시 일본까지 가는 배였습니다. 원래는 중국인들이 탄 배였지만 베트남에서 왜구에게 습격당한 것이었죠. 캄보디아에서는 다른 일본인에게 팔렸고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캄보디아와의 교역을 체결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이었죠.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코뿔소 뿔 같은 것들을 사서 나가사키로 향했습니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조선까지 가 버린 것이었죠.

때문에 조선 수군을 만났을 때도 행동이 달랐습니다. 중국인 선원 둘은 급히 돛을 내리려다가 살해, 두 명은 급히 배에서 내려 접근한 수군의 배에 탑니다. 반면 일본인들은 걸리면 절대 살지 못 할 거라 여겨 싸웠죠. 24시간이나 걸리긴 했지만 결국 수군은 이들을 나포하는데 성공합니다. 살아남은 일본인은 30여명, 28명 있던 중국인은 16명이 남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일단 선주가 중국인이니 국적 따지지 않고 모두 중국으로 송환했고, 중국에서는 통제사에게 은 20냥을 상금으로 줍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양인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 주앙 멘데스, 포르투칼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15년이나 살면서 마카오부터 일본까지 곳곳을 왕래하며 무역하던 이었죠. 노예도 하나 데리고 있었고 흑인이었습니다. 조선은 이를 해귀(海鬼)라 불렀습니다. 뭐 어떻게 생겼든간에 중국으로 보냈죠.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황당선과 남만인의 등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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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가 진행되면서 세계는 좁아지기 시작합니다. 서쪽의 신대륙은 그렇다 치고 포르투칼은 동쪽으로는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에 이어 1513년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1557년에는 해적을 토벌하고 뇌물공세를 하면서 마카오를 조차하는데 성공했죠. 뭐 좋으면 선량한 상선이고 나쁘면 해적선인 건 어디든 공통이었구요 -_-a 이렇게 중국-동남아시아-일본을 오가던 이들은 서서히 조선에도 오기 시작합니다.

포르투칼 배가 처음 조선 해안에 온 것은 1577년이었습니다. 도밍고스 몬떼이루(Domingos Montero)라는 상인이었죠. 다음 해에는 포르투갈 선박이 조선에 왔다가 약탈이라도 한 건지 다수가 죽고 겨우 탈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에 온 선교사 프로이스의 기록이었죠. 실록에서는 이를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한 건지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이건 위의 해전도 마찬가지구요.

첫 기록이 나오는 건 1582년에입니다.

"요동 금주위 사람 조원록 등과 복건 사람 진원경, 동양 사람 막생가, 서양 사람 마리이 등이 바다에서 배로 우리 나라에 표류하여 왔는데 진하사 정탁 편에 순부하고 중국 조정에 주문하였다."

정탁은 이를 기록했고, 선조수정실록에 포함됩니다. 기록상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서양인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명군은 흑인 용병을 (해귀의 시초 -.-a), 일본은 선교사들을 데리고 왔죠. 뭐 그냥 그랬구나 수준이겠습니다만.

이후에도 이 배들은 표류하거나 해적질을 위해 조선에 많이 옵니다. 조선은 이들을 그냥 중국이나 일본의 해적과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사실 뭐 크게 다를까 싶긴 해요. 선원들을 중국이나 일본에서 구하고, 약탈하는 것도 딱히 다르진 않았으니까요. 가령 1622년에는 이런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호남에 온 적의 배가 어떤 배인지는 모르지만 1척도 잡지 못하였으니 나랏일을 알 만하다. (중략) 내가 아무리 날마다 하교하여 천만 번 말해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않고 매번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는 말로 책임을 때우려고만 하니 경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어찌 이런 것이겠는가."

광해군이 화가 좀 많이 난 모양입니다. -_-; 이런 얘기는 전에도 있습니다. 해적들은 특히 서해에서 허구헌날 나타나는데 (중국 해적 때문에 백령도에 진을 설치합니다) 내쫓는 수준일 뿐 잡지 못 한다는 것이었죠. 흥미로운 것은 이 때 사도진 앞바다에 온 배를 서양배라 추측한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크기가 산과 같고 배 위에 30여 개의 돛대를 세운 배 1척이 사도진 앞바다에 들어온 것을 첨사 민정학이 편전으로 쏘았다. 적이 우리 나라 사람 8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일본에 당도하여 편전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조선의 작은 화살이 배를 거의 절반이나 뚫고 들어갔으니 활을 잘 쏜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아마 서양 배였을 것이다."

이번에도 약탈을 당해 8명이 끌려간 모양인데 -_-a 저 편전 얘기는 일본에서 전해준 모양이네요.

이외에 지봉유설에도 흥양에서 영국 배와 싸운 기록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대항해시대가 동아시아까지 오면서 서양 배는 은근히 조선과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죠. 오면 싸우든가 보내고, 중국으로 보내거나 했으니까요. 그들도 약탈이 아닌 무역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고, 일본에서도 이를 신경 써서 (자기들이랑 교역해야 되니까) 표류한 배가 있으면 자기들에게 알려달라고 한 모양입니다. 정작 하멜이 왔을 때 조선은 이를 신경쓰지 않았지만요.


그리고 1628년, 첫 귀화인이 나오게 되죠.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 박연이었습니다.

이런 황당선은 좀 더 근대적인 배로 바뀌면서 이런 황당함은 사라지고 익숙해진 건지 이양선으로 호칭을 바꾸게 됩니다. 딱 정조 때를 기점으로 바뀌네요.

뭐 이 때쯤이면 조선 수군 vs 유럽 해군, 다시 말 해 판옥선 거북선과 갤리온 등의 드림 매치를 꿈 꿀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환경이라면 어렵겠죠. 해봐야 해적선 한두척에 급히 출동한 이들이 소규모로 싸우게 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한 판 제대로 붙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건 망상이겠죠? @_@

이상입니다.

별로 안 긴 글인데 왜케 잘 안 써지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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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12/30 19:07
수정 아이콘
이양선이 원래 황당선이었군요 하하 잘 읽었습니다 13년에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루 남긴 했지만 ^^
12/12/30 19:13
수정 아이콘
19세기의 쿠로부네를 말하는줄 알았더니
17세기초의 서양식 범선이었군요..
대양항해를 할 수 있는 배이니 크기도 크고 복잡해서 황당하게 보였을 것 같네요
아케르나르
12/12/30 20:36
수정 아이콘
조선에도 간간히 오긴 왔었군요.
12/12/30 23:36
수정 아이콘
자료가 없다고 하시더니 내용적으로 어떻게든 끌어내시려 노력한 느낌이 드네요. 흐흐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있는 주제인지라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12/12/31 01:29
수정 아이콘
글 잘쓰시네요 ^^
12/12/31 01:52
수정 아이콘
황당선이 뭔가 했더니 정말 그 황당이군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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