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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26 22:51:11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무오사화 - 임금이 사초를 보다
"김일손은 일찍이 김종직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극돈이 일찍이 전라 감사로 있을 때 성종의 초상을 당하였는데, 서울에 향을 바치지도 않고 기생을 싣고 다닌 일이 있었다. 김일손이 그 사실과 또 뇌물 먹은 일을 사초에 썼더니 이극돈이 고쳐 주기를 청했으나 그 청을 거절하자 김일손에게 감정을 품고 있었다." (국조기사)

"후에 사국(史局)(성종실록을 편수하기 위한 것이다)이 열리자 이극돈이 당상이 되어 김일손이 쓴 사초에 자기의 나쁜 일을 상세히 쓴 것과 또 세조 때의 일을 쓴 것을 보고 이것으로 자기의 원한을 보복하고자 하였다." (유자광전)

무오사화의 시작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훈구파 이극돈과 사림파 김일손의 사적인 감정으로 시작됐다는 것이죠.

그런 이극돈에게 토스를 받아 사화를 주도한 유자광, 그에 대한 건 너무 기니 직접 얘기하도록 하죠.

그는 부윤 유규의 서자로 힘 세고 건강했다 (...) 합니다. 어릴 때는 바둑, 장기나 활쏘기 등 놀기만 하고 밤에 여자를 잡아 성폭행하기도 했다고 하고 있죠. 아버지 유규는 그런 그를 자식 취급하지 않았다 하구요. 이후 갑사가 돼 궁을 호위하는 병사로 있다가 이시애의 난 때 세조에게 아주 강경한 상소를 올렸고, 세조는 그를 아껴 폭풍 진급을 하게 됩니다. 서자임에도 말이죠.

그가 벌인 대표적인 일이 바로 남이의 옥사입니다. 이 때부터 그는 모함의 아이콘으로 한명회를 모함하기도 했고 이 때에 이르러 이극돈과 붙어 일을 벌였다는 겁니다.

... 이런 유자광전을 지은 게 남곤이라는 게 살짝 유머죠.

+) 남곤은 중종 때의 권신입니다. 그 유명한 조광조를 모함해 죽였다고 평가받는 이죠. 훈구파로 평가되지만 정작 그는 사림파의 시작이라 할 김종직의 제자였습니다. -_-a 뭐 조광조가 죽은 것도 내막을 보면 좀 다릅니다만 (...)

서자 출신이지만 능력은 참 있었던 거 같습니다. 무오사화에서 그 어려운 조의제문을 해석한 것도 그였으니까요. 그가 무오사화에 참여한 이유 역시 김종직에 대한 원한이었습니다. 그는 함양에서 놀다가 시를 지어 벽에 달아뒀는데 김종직이 군수로 왔다가 '유자광이 뭐하는 놈이길래 이라노? ㅡㅡ' 하면서 그걸 불태워 버립니다. 서자 출신이라 무시했다는 거죠. 그럼에도 유자광은 그를 (나이도 어린데) 잘 대우하면서 복수의 때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사화를 시작한 이극돈은 사화의 빌미를 준 김일손에게, 사화를 주도한 유자광은 사화의 배경이 된 김종직에게 원한이 있었다... 이것이 최초의 사화, 무오사화에 대한 설명이죠.

그럼 실록에선 어떻게 나오는지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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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의 시작이 갑작스럽긴 했습니다. 연산 4년(1498) 7월 11일 이극돈에게 명령한 것이 시작이죠.

"김일손의 사초를 모두 대내로 들여오라."

사초는 사관들이 남긴 기록들로 이를 토대로 실록이 만들어집니다. 이 내용이 연산군의 귀에 들어간 것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왕이 보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왕 앞에서 보고 들은 걸 기록하는 사관들이 왕이 이걸 볼 거라 생각하면 그대로 적을 수 없을테니까요. 물론 완성된 실록을 왕이 아예 못 보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필요한 일이 있을 경우 상고를 목적으로 그 부분만 신하들이 찾아서 보고하는 식이었죠. 어쨌든 이 때는 달라도 참 달랐습니다.

이극돈은 사초는 임금이 보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연산은 모두 들고오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이극돈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일손의 사초가 과연 조종조의 일에 범하여 그른 점이 있다는 것은 신들도 들어 아는 바이므로, 신들이 망령되게 여겨 감히 실록에 싣지 않았는데, 지금 들이라고 명령하시니 신 등은 무슨 일을 상고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옛부터 임금은 스스로 사초를 보지 못하지만, 일이 만일 종묘 사직에 관계가 있으면 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 등이 그 상고할 만한 곳을 절취하여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일을 고열할 수 있고 또한 임금은 사초를 보지 않는다는 의에도 합당합니다."

이것이 무오사화의 시작이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좀 다르죠. 무오사화의 시작이라는 이극돈이 '우리끼리 알아서 처리했다'면서 한 발 물러났으니까요. 그럼에도 연산의 귀에 들어갑니다. 이 달 1일에 그걸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파평 부원군 윤필상, 선성 부원군 노사신, 우의정 한치형, 무령군 유자광이 차비문에 나아가서 비사(秘事)를 아뢰기를 청하고, 도승지 신수근으로 출납을 관장하게 하니 사관도 참예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검열 이사공이 참예하기를 청하니, 수근은 말하기를 ‘참예하여 들을 필요가 없다.’ 하였다."

사관도 참석시키지 않은 나름 초유의 사태를 벌인 거죠. 여기서 비밀 얘기를 나눈 후 금부도사가 경상도에 파견됩니다. 누굴 잡으러 갔을지는 뻔하죠. 김일손은 그 때 모친상 + 병에 걸려서 청도에 있었습니다. 11일에 말이 나와서 12일에 김일손이 바로 잡혀오는데 지금이야 무궁화호 타도 가능했겠지만 그 때는 아니었죠. 미리 계획 후 잡아오면서 이 사실을 공표했을 겁니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이루어졌는가는 후에 이극돈이 올린 상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실록의 사관이 낸 결론과 야사에서의 모습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림 측은 이극돈이 역시 실록 편찬을 맡은 어세겸에게 갔다가 별다른 결론을 얻지 못 했고 이어 유자광에게 갔고 연산군에게 보고된 걸로 돼 있습니다.

반면 이극돈의 상소에서는 한치형, 신종호, 노사신 등 대신들과 여러 차례 의논했고 대신들 역시 이극돈의 말을 듣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연산군에게 알리긴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이후 대신들이 이에 대해 자기의 입장을 표명했는데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 그 내용을 디벼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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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귀인은 바로 덕종의 후궁이온데, 세조께서 일찍이 부르셨는데도 권씨가 분부를 받들지 아니했다."

덕종은 성종의 아버지로 성종 때 왕으로 추숭됐습니다. 그의 후궁을 세조가 탐냈다는 것이죠.

"노산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단종의 시체를 버려놨다는 부분입니다.

그 외에 볼 수 있는 부분은 황보숭과 김종서, 사육신 등이 절개를 지키며 죽었다고 한 부분, 문종의 왕비인 현덕왕후의 관을 바다에 버렸다고 한 부분입니다.

하나같이 세조의 집권의 부당함을 적어놓은 것이죠.

연산군은 그들을 국문하며 들은 바를 묻습니다. 계속되는 고문과 사관은 직필을 해야 하지 헛소문을 쓰면 안 된다는 어찌보면 맞는 요구에 김일손의 입에서 다른 이들이 나왔고, 줄줄이 끌려옵니다. 어디의 누구에게 들었다, 내 생각이다는 식으로 진술이 나왔죠.

이런 가운데서 폭탄이 터집니다.

http://mirror.enha.kr/wiki/%EC%A1%B0%EC%9D%98%EC%A0%9C%EB%AC%B8

이게 조의제문입니다.

"(단종의 시체가 버려졌다고)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을 지어 충분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내용, 하지만 김일손은 그게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를 말합니다. 유자광은 그 내용 하나하나를 풀이하며 연산군에게 해설해 줬죠. 그 다음이 어찌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사관 한 명이 단종과 사육신 등을 그리며 세조를 비판하기 위해 올린 기록들, 연산군에게 이것은 그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승 김종직의 글까지 덧붙여버립니다. 실록에 올라갈 글이 아니었음에도 말이죠.

이렇게 사건은 김일손 자신을 넘어 김종직과 그의 주변인들에게로 번져버립니다.

조정은 얼어붙습니다. 임금이 사초를 본다는, 어긋나는 행동을 비판하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한 명분, 세조를 부정했다는 명분이 연산의 손에 들어가 버렸으니까요. 대신들은 물론이고 기세등등하던 대간들도 여기에 아무런 말을 못 합니다. 그저 김종직과 관련인들을 처벌해야 된다는 목소리만 높아졌죠.

이렇게 최초의 사화 무오사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림들이 화를 입었다는 뜻의 사화 외에도 사초를 가지고 일어난 일이기에 史禍라고도 불리죠.

그 과정은 참 흥미로운 부분도 많고, 의외라 할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이후 연산의 폭주와 연관지어보면 그렇죠.

다음편에서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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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얘기도 할까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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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통
13/02/26 23:33
수정 아이콘
으으...백련교때문에 제가 폭주할 마당입니다 하하하...
Je ne sais quoi
13/02/27 07:5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 뒤이어 조광조 얘기도 해주실꺼죠? :)
그리메
13/02/27 08:39
수정 아이콘
역시 눈시 비비님은 글에 집중하게 하는 힙이...!!
13/02/27 15:08
수정 아이콘
친구들에게 역사이야기 해줄 때 연산군이 사초를 본 게 참 다행이다. 이 사이코 왕이 사초를 봐버리는 바람에 후대 왕들이 자기가 사초를 보면 연산군과 동급의 왕 취급을 받을까봐 감히 그러지 못하게 됐을 거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한 기억이 있네요. 재미있게 말한다고 이렇게 얘기하긴 했는데 개인적으론 진짜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 거 같다는 망상을 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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