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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29 22:20:08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갑자사화 - 절대권력으로


"이보다 앞서 임사홍과 박효원 등은 서로 결탁하여 간악한 짓을 하므로 성종은 그들이 정치를 어지럽게 할 사람인 줄 알고 쓰지 아니하였다. 임사홍의 아들 광재는 예종의 딸에게 장가를 들고 숭재는 성종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숭재는 성질이 음흉하고 간사하기가 그 아버지의 배나 더하였다.남의 첩을 빼앗아 임금에게 바치니 임금이 그를 매우 총애하여 그의 집에 자주 행차하였다. 이에 사홍은 임금을 뵈옵고 울면서, “폐비는 엄숙의ㆍ정숙의 두 사람의 참소로 사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니, 임금은 드디어 두 사람을 죽이고 무도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여 조정에 있는 신하 백여 명을 죽였으니,지위가 높고 행동이 점잖은 사람과 명분과 절의를 지키는 선비 중에 죽음을 면한 이가 드물었다. 이 일은 모두 임사홍이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임금을 유도한 것이다." - 국조기사

갑자사화에 대한 대표적인 인식입니다. 국가공인 소인인 임사홍의 아들 임숭재가 연산의 딸랑이로 출세했고 그렇게 연산과 임사홍이 만나게 됐으며, 연산은 어머니의 죽음이 억울했다는 걸 알게 돼 갑자사화를 일으켰다는 것이죠.

우선 찾아볼 건 임사홍입니다.

그는 아버지 임원준 덕에 풍족하게 살았고 종친 보성군의 사위가 됐으며 그 능력으로 30대 중반에 이미 실세가 됩니다. 여기에 첫째 임광재는 예종의 사위로, 셋째 임숭재는 성종의 사위가 됐죠.

그랬던 그가 대간들에게 찍히니, 그가 대간들의 주장을 반박했기 때문이었죠. 일단 황사로 대간들이 술도 먹지 말라고 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했고, 내친김에 왜 왕한테 사냥도 시 짓는 것도 못 하게 하냐고 맞섭니다. 그 이후 대간들은 임사홍 이름만 들어도 끝없이 반대했죠.

그게 성공한 건 성종 9년, 참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한 과부가 중매를 통해 김주와 재혼했는데 그녀의 오라비와 매부가 이를 강간이었다고 무고한 것이죠. 재산을 노린 거였습니다. 하지만 무고가 들통났고 이들은 승정원에 로비를 시도합니다. 그게 통한 상황에서 승지 현석규가 이를 반대하며 덤볐고, 대신이고 대간이고 모두 그를 탓했죠. 하지만 대간은 이 때 임사홍이 유자광과 결탁, 현석규를 탄핵했다는 것을 빌미로 삼습니다. 그들이 당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성종은 이걸 받아들이고 임사홍, 유자광 등을 유배보내며 다시는 등용하지 않을 거라 합니다. 뭐 그들의 권력을 자기도 경계한 걸 수도 있고, 임사홍 하나 물러나면 시끄러운 소리 안 들을테니 그런 걸 수도 있겠죠. 혹은 마지막까지 폐비를 반대한 것 때문일 수도 있구요. 결국 임사홍을 보낸 후 폐비에 성공합니다.

정작 이 임사홍은 왕의 딸랑이가 아니었으며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명회를 까기도 했고 폐비 논의에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반대한 이기도 했죠. 그가 실세가 되긴 했지만 다른 권신들에 비하면 대간들은 그 혼자만 집요히 노린 거였습니다. 뭐 한명회 같이 건드리면 후폭풍이 거센 인물도 아니었으니 만만하기도 했겠죠. 어찌됐든 대간들 자신을 비판했기에 그를 그렇게 싫어한 거겠죠. 유자광이 그 5년 후 복권된 데 비해 임사홍은 마지막까지 안 된 걸 보면 참...

연산군 때도 이건 계속됩니다. 연산 3년 임사홍을 가자하자 대간들은 무려 1년에 걸친 반대로 그걸 무효로 돌립니다. 임사홍에 대한 배척이 이 정도였던 거죠.

이쯤되면 임사홍의 대간들에 대해 분노도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가 연산에게 폐비의 진실을 알려서 그렇게 됐을까... 는 많은 의문이 들죠.

"왕이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 (연산 1년 3월 16일)

연산이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는 걸 실록에서는 이 때로 잡습니다. 성종의 행장을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이 사실을 모를 수 없다는 건 이전에 얘기한 바 있었죠.

+) 야사들을 봐도 어미의 정을 몰랐다는 식의 서술이 많습니다. 이는 위 사실에 위배되는 것들이죠. 이 때까지는 정현왕후 윤씨를 친엄마로 알고 있었다는 식이었으니까요.

"첩이 참소하는 것을 살피지 않고 왕후를 폐위시킬 적에 조정 신하들이 자기의 삶을 돌아보지 않고 기어코 간하는 것이 옳겠는가?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순종하는 것이 옳겠는가? 사람에 구애하지 말고 명확하게 의논하여 아뢰라." (연산 8년 2월 5일)

갑자사화 2년 전, 연산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며 승정원과 홍문관에 시를 지어 바치게 했죠. 하지만 2년간 이 사실을 문제삼지 않았죠.

임사홍의 아들 임숭재는 가무와 아첨에 능했던 이라 전해집니다. 연산의 충실한 딸랑이로 유언도 미녀를 더 바치지 못 해 한이라고 할 정도였죠 -_-; 그가 아비 임사홍이 억울하다고 상소를 올린 게 6년 8월, 임사홍이 다시 등용된 것은 9년 1월입니다. 이 사이에 그들간의 무언가가 있긴 했을 겁니다. 폐비 윤씨 얘기도 나왔겠죠.

하지만 대신과 대간들이 하나하나씩 숙청되는 가운데서도 그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외조카인 남곤이 쫓겨나는 가운데서도 아무런 힘을 못 썼고, 혐의에 걸린 이들을 국문하는 자리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죠. 무오사화 때는 김종직의 제자였던 아들 임희재가 죽기도 했습니다. 실록에서 그가 연산을 충동질했다고 나오는 건 중종반정 때 그를 죽이면서 한 평입니다. 그것도 연산이 미복 차림으로 밖에서 그를 만나서 들은 얘기라 하죠. 사관이 있을 리 없고, 연산은 그런 말을 꺼낸 적도 없습니다.

+) 이 때 연산이 그가 어떤지 보니까 잘 죽었다면서 여전히 잔치를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하지만 연산이 그를 신경쓸 시기가 아니었죠. 옆동네에도 히데요시에 대한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가 폐비 윤씨가 억울하다고 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전부로 볼 순 없죠. 연산은 그 사실을 알고도 2년을 참아 왔습니다. 그 얘기 듣고 갑자기 미친 게 아니라는 거죠.

이후 임사홍은 병조판서까지 오르지만 딱히 실권은 없었습니다. 연산은 그에게 묘자리를 알아보라거나 미인을 뽑는 등의 일만 맡겼죠. 그 자신도 이런 일이 싫었나 봅니다. 대충 하니 연산은 죽을 놈 살려줬다느니 하면서 분노했죠. 그 유자광도 힘을 잃을 때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갑자사화로 권신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갑자사화 때 먼저 타겟이 된 건 대간이 아닌 그나마 임사홍을 편 들어준 대신들이었죠. 만약 임사홍이 충동질한 게 맞다면, 그의 계획과는 너무도 어그러진 것일 겝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연산군 자신에게 찾아야 됩니다.

애초에 그가 어머니를 신원하고 묘를 복구하려고 할 때 어머니가 죄가 있지만... 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억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꺼낸 연산 8년부터 10년 사이의 간격 역시 그렇죠. 그가 단지 미쳐서 한순간에 일을 벌였다 하기엔 너무나도 긴 기간입니다.

오히려 즉위 초부터 두 사화를 거치며 내민 건 능상이었죠. 이 부분에서는 아낌없는 분노를 보여줬던 연산이 정작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주 천천히 기다려 온 겁니다.

갑자사화의 시점 역시 그렇습니다. 나라의 가장 높은 어른이자 소문난 여걸인 인수대비가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입니다. 죽은 이후보다야 덜하겠지만 자기가 활개치기 충분한 시점이었죠.

이 모든 걸 기다리며 준비했다고 봐야겠죠.

이성과 감정, 이 둘이 꼭 따로 노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차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이성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성적으로 연산이 본 아버지 성종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대간들에게 허구헌 날 "능상"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말도 못 하던 왕이었으니까요. 그가 바란 왕은 유교 논리로 아랫것들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왕이었고, 아랫것들은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는 왕이었죠. 그는 즉위 초부터 그걸 문제삼으며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천천히 준비해 왔습니다.

이건 감정적으로도 대간 세력에 대한 분노가 됐겠죠. 무엇보다 왕이 할 수 있는 게 제약돼 있다는 현실이요. 무오사화로는 약간 정리됐을 뿐, 능상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사치를 부리고 싶어도 대신들까지 능상을 한다는 현실이 왔으니까요. 애초에 대신이고 대간이고 다 신하들일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대간들은 딴지만 걸지만 대신들은 애초에 훈구파, 왕을 갈아치운 세력의 후예이며 왕권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이들이었죠.

폐비 윤씨 사건은 이들을 제어하기 충분한 무기였습니다. 어쨌든 조선은 왕이 지배하는 나라니까요. 유교에서 중시하는 효라는 무기가 있었구요. 감정적으로도 그가 최고로 분노할 일이었죠. 폐비 윤씨에 대한 애정 자체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어머니가 죽어도 자식이 왕이면서도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다는 거니까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특히 감성적인 인간일수록 그건 더 크게 다가왔겠죠. 애정의 정도보다 그런 현실 자체가 그에겐 지옥이었을 겁니다.

거기다 신하들은 다른 건 다 막아도 그것만은 막지 못했습니다. 성종이 그나마 왕권을 휘두른 사례겠습니다만, 그에게는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일이었죠.

+) 실제 연산이 유부녀 건드린 걸 보면 마더 컴플렉스는 꽤 컸던 모양입니다만 -_-a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 그에 대해서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아버지에 대한 분노, 대간들에 휘둘렸던 아버지의 모습... 그 모든 것이 연산을 휘감고 있었을 겁니다. 그걸 준비한 10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있는 그런 때를 말이죠.

인수대비가 죽기 전이니 좀 일찍 폭발한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딱 맞은 때인 것 같기도 하죠. 그녀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 할 때, 죽기 전에 그녀에게 자기의 원을 풀 수 있을 때니까요. 그렇게 그는 원한을 풀었구요. 풀어도 풀어도 만족할 순 없었겠지만요.

갑자사화 이후 연산의 절대권력이 시작됩니다. 대신이고 대간이고 그의 딸랑이가 아니면 살아날 수 없었죠. 임사홍 역시 이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피는 계속됐습니다. 누구에게든간에 능상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고, 어머니의 생각이 떠올랐겠죠. 그만큼 연산은 더 잔혹해졌구요.

그렇게 이룩된 절대권력, 이후의 연산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의 목표를 이뤘지만 그 이상의 목표는 없었습니다. 그저 그 현실을 즐길 뿐, 그리고 그럴수록 더 공허해질 뿐이었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줄지 않았고 더 목이 마를 뿐이었습니다.

그 끝은 파국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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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3/03/29 22:39
수정 아이콘
왜죠? 붕당의 역사 - 3 아니라 왜 갑자사화죠? 왜죠?
흐흐흐
눈시BBbr
13/03/29 22:42
수정 아이콘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를 차마 잊지 못 해서라고 답하겠습니다(?)
13/03/29 22:46
수정 아이콘
무오사화 전 대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참 한심하기도 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때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는데
무오사화로 인해 연산군이 주도권을 나름 잡고 좋은 쪽으로 힘을 썼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네요...
거기 까지만 하고 잘 됬으면 미친왕이 아니라 왕을 능멸하는 풍토를 바로잡은 강력했던 왕 이정도로 묘사가 되었을텐데요...
뭐 세종 세조 성종 이후에 워낙 나라가 태평했고 외교적으로도 따로 손쓸일이 없었던 건 맞지만
글쎄요...리더라면 말 안듣는 신하라도 잘 구슬러서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으면
밑도 끝도 없이 신하들이 탄핵하고 사표 던지고 하는 일로 허송세월 보내는 일도 없었고
연산군이 정치에 신멸을 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 같은데...물론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만....
제가 타임슬립한다면 딱 무오사화 다음날로 가겠습니다...;;;
대통령 문재인
13/03/29 23:03
수정 아이콘
무 갑 기 을 !
Darwin4078
13/03/30 07: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인데 하필 바로 윗글이 똥얘기라 묻힐거 같네요. ㅠㅠ
Je ne sais quoi
13/03/30 08:33
수정 아이콘
어디나 그들만의 리그가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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