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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30 16:20:12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절대권력의 몰락 - 흥청망청

간신이 악의를 품고도 충성한 양하여 / 시왕(時王)을 경멸하여 손아귀에서 희롱하려 하도다
조정에서는 폐단을 한탄하나 배격될까 두려워 / 다투어 서로 구제하려 못된 버릇 일으키네
연산 10년 10월 15일

갑자사화 무렵 연산은 내시들에게 신언패를 달게 합니다. 입과 혀는 몸을 망치는 길이니 열지 말라는 내용이었죠. 처세의 달인으로 알려진 당나라 재상 풍도의 시라고 합니다.

자기 측근인 내관들부터 시작한 것이고, 이런 자세를 신하들에게 계속 요구한 것이죠. 특히 대간들을 확실히 잡습니다. 사간원과 홍문관은 폐지나 다름없이 했고 사헌부 역시 대신들에 대한 감찰로 최소화시켰죠.

+) 사간원은 임금에 대한 간언, 사헌부는 대신들에 대한 감찰, 홍문관은 정책 자문과 함께 앞의 대간들에 대한 견제... 뭐 이런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다 합쳐 삼사라 부르는데 분위기가 좀 달랐죠. 하지만 성종부터 연산군 초까지 임금 까는 건 한마음이었구요.

연산 말인 12년이 되면 대간들은 물론 하급 문관들에게도 가마를 끌게 합니다. 사모의 앞에 충(忠)자를, 뒤에 성(誠)자를 쓰게 한 것도 이때구요. 임금과 신하의 차이가 이 정도라는 걸 나타낸 것이죠.

이런 상황이니 대간이 어찌 힘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갑자사화에서 초토화된 대신들 역시 (애초에 현실주의가 강할 건데) 어찌 건들 수 있겠습니까. 연산의 절대권력은 옥사가 진행되고 숙청이 계속될수록 강력해졌습니다. 연산은 즉위한 이후의 일들을 정말 편집증 수준으로 꺼내가며 문제삼았고, 거기서 걸린 이들은 살아 있으면 죽었고 (무오사화 때 살아남은 이들도 다 죽습니다) 죽는다면 부관참시 그 이상을 당했죠.

이렇게 피로 이룩된 절대권력, 하지만 연산은 그 이상의 목표가 없었으니... 아니 목표는 있었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즐기자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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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고운 꽃을 사랑하여 호탕한 춤을 추는데 / 꾀꼬리는 녹음이 탐나 흡족히 노래를 부르네
승평한 세태가 바로 충성스런 경지로 옮아가니 / 자주 청춘을 구경하며 기운을 양성함이 어떠하리
연산 10년 11월 20일

연산이 신하들에게 내리는 시, 어제시는 갑자사화 이후로 미친듯이 증가합니다. 아니 이 때부터 물러날 때까지가 대다수라고 봐도 되겠죠. 그 내용은 맨 위처럼 신하들의 능상을 까거나 위처럼 감성적인 내용이었죠.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만 그건 다음 편에서 하도록 하죠.

연산은 이렇게 쟁취한 절대권력을 노는 데 집중합니다. 여기저기서 보물부터 진미들을 모으는 건 기본이었고,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가 있죠.

"처음에 국도(도읍)를 정하던 때에는 지리를 살펴서 금한을 정하였거늘, 뒤의 유사가 잘 금제[禁抑]하지 못하여, 산을 파고 집을 지은 자가 많았으며, 혹 성 밖에서 높은 데에 올라가 굽어보는 자도 있으니, 이제 서쪽으로 홍제원부터 동으로 다야원에 이르는 곳 등에 다 금한을 정하고 목책을 설치하여, 사람들이 올라가 바라보지 못하게 하라." (연산 10년 7월 15일)

첫째는 금표였습니다. 갑자사화 이전에도 궁부터 주요기관 근처의 민가를 철거하긴 했지만 이 때부터 철거 러시를 계속하죠. 대궐이 보이는 곳에는 목책을 세워 백성들이 보지 못 하게 했고 곧 높은 성벽으로 바뀝니다. 그 범위도 계속 넓혀갔고 평민이고 양반이고 예외는 없었죠. 금표 안에서는 통행이 금지됐으며 경작도 금지됩니다. 경작을 허용한 곳에서는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의 노비들이 경작하게 했죠.

주 목적은 사냥이었습니다. 자기가 사냥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초원으로 바꿔버렸죠. 이 안에 허락 없이 들어가는 자가 있으면 그 수령까지 벌했고, 노비가 들어가면 그 주인까지 벌합니다. 도둑들은 잡힐 것 같으면 금표 지역으로 도망가 버렸죠.

신하들은 금표의 범위를 백리(40km)로 제한해달라 했지만 연산은 그에 개의치 않습니다. 11년 중반쯤 가면 경기도의 절반 이상이 금표로 지정됐고 충청도의 고을을 떼 경기에 붙여달라는 요구가 나왔죠. 평택 등이 이 때 경기도에 편입됩니다.

연산은 궁 내에도 동물원을 만듭니다. 그 목적은 구경이 아니라 사냥이었죠. 밖에서 활로 쏴 죽이는 식이었습니다.

심원에 사람 없고 경치만 아름다워 / 이슬 맺힌 복사꽃 봄바람에 취하였네
듬뿍 맞은 비로 꽃술이 더 예뻐라 / 꽃다운 가지 꺾어 요염한 꽃 닦아주리
연산 11년 5월 29일

그 다음으로 볼 점은 여색이죠.

연산은 스케일을 한껏 키웁니다. 갑자사화 이전에도 왕에게 쓰는 종이부터 신경썼고 이 때 가면 양반부터 백성까지 럭셔리하게 꾸미게 하죠. 그 자신은 그 정점이었죠.

그가 이 때부터 대규모로 도원한 것이 흥청(興淸)이었습니다. 춤과 노래를 잘 하는 이들을 운평이라 했고 그 중 선택된 이들을 흥청이라 부르게 했으며 악기 다루는 이들은 광희(廣熙)라 불렀죠. 그 인원 역시 3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립니다. 흥청이 된 이들은 가족도 잘 살았구요. 흥청망청의 어원이죠. 그의 목표야 춤도 노래도 잘 하고 얼굴도 예쁜 이였겠지만 이게 어디 쉽겠습니까. 예쁜 첩이 흥청이 되는 걸 싫어하다가 죽은 이도 있습니다.

그 자신의 엽색 행각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심심하면 잔치를 연 후 재상의 처첩들을 건드렸죠. 유부녀들을 건드린 걸 보면 마더 컴플렉스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거기 한 몫한 게 바로 그 유명한 장녹수죠. 제안대군의 가노로 결혼도 몇 번 하고 애도 있었건만 연산군을 그야말로 녹여버립니다.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으로 봉했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항상 거만이었다. 부고의 재물을 기울여 모두 그 집으로 보내었고, 금은 주옥을 다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해서, 노비·전답·가옥도 또한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으니, 김효손은 그 형부이므로 현달한 관직에 이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이었죠. 그녀가 연산에게 한 걸 보면 연산의 마더콤을 좀 느낄 수 있습니다. 뭐 절대군주 중 여자에게 쩔쩔맨 사람이 어디 적겠습니까마는...

+) 그래도 김효손 외에 딱히 그녀의 인척이 권세를 부린 건 찾기 힘듭니다. -_-a 아무튼 왕비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 봅니다. 재상의 아내들과 연산을 엮어준 것도 그녀였구요.

말 위에서도 했다느니 폐비 윤씨의 기일에도 했다는 등... 연산의 엽색 행각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찾으면 참 많죠. 물론 중종반정의 정당성을 위해 꾸민 일이 없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갑자사화 전후에 끝없이 나오는 그의 모습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조선은 말라가기 시작합니다. 뭐 대신이든 대간이든 궁 내에서 벌어지는 건 백성들 민생이랑 큰 관련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금표를 통해 쫓아내고 이것저것을 바치라 하면서 수탈이 계속됐으며 그 재물은 왕과 흥청 등 측근들에게로 돌아갔구요. 위고 아래고 잘못걸리면 목숨을 장담 못 했죠. 민심이 떠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사대부부터 백성들의 민심... 연산이라고 이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두려움이 커졌겠죠. 찍어누르면서 절대권력을 얻었지만 그게 계속될수록 반발은 더 커질수밖에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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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30 16:27
수정 아이콘
노비에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었는데 왕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연산군이 쫓겨나지 않았다면 장녹수야말로 인생 역전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었겠군요.
눈시BBbr
13/03/30 22:43
수정 아이콘
OrBef님// 그렇죠. 대체 어떤 매력이었길래 그 폭군을 가지고 놀 수 있었을지... [서기]
엘롯기
13/03/30 16:59
수정 아이콘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7월 20일(정유) 1번째기사
월산 대군의 처 박씨의 졸기
"월산 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의 처 승평부 부인(昇平府夫人) 박씨가 죽었다. 사람들이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죽었다고 말했다."

연산군이 숙모를 간통했다는 건데요. 검색을 해보니까 이게 사실이다 아니다 말이 갈리더라구요.
월산대군의 처가 죽을 당시 나이가 50대였을거라는 예측과 저나이에 임신은 불가능하다.연산군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의도다 이렇게요.
실록에까지 나와 있는데...정말 간통한게 맞는건가요?
루크레티아
13/03/30 18:17
수정 아이콘
엄밀히 말하자면 간통이 아니고 겁탈입니다.
연산군이 하도 똘끼도 넘치고 인처모에력도 출중한 지라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눈시BBbr
13/03/30 22:45
수정 아이콘
엘롯기님// 야사에서도 언급되고 박원종이 중종반정을 일으카 주요 원인으로 꼽히죠
연산 성깔 생각하면 그럴만하긴 한데 전 카더라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니까요
중종반정 부분에서 얘기하죠 [서기]
사티레브
13/03/30 18:26
수정 아이콘
흥청망청의 유래도
저정도의 색골인지도
몰랐네요..

화끈하네요 기분나쁘게
눈시BBbr
13/03/30 22:45
수정 아이콘
사티레브님// 크크 화끈했죠 =_=;; [서기]
13/03/30 19:03
수정 아이콘
아... 완결 기다리다 결국 못참고 여기까지 몰아서 봤네요.

연산이 한 행각의 부정적인 측면은 사실 많이 축소됐다 생각합니다. 실제 연산 후 중종 명종대는 연산이 싼 똥에 허우적 댄 시기라 봐도 무방할듯. 왕의 권력이 강해지고 그 왕이 막나가면 나라가 어디까지 개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연산군이 아닐까 생각해요.

허지만 마치 왕권강화를 무슨 절대덕목쯤으로 생각하는 인식때문에 연산군이 나라를 얼마나 개판지었는지가 의외로 많이 가려지는 느낌입니다. 연산군은 권력강화를 꾀한 거고 그 행위도 궁궐안에 한정되어 백성들에게 실질적 피해는 크지 않았다...이렇게 여기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죠.
눈시BBbr
13/03/30 22:47
수정 아이콘
sungsik님// 한 두세편 남았는데 좀만 더 참으... 아니 천천히 봐주셔요 >_<;;
왕권과 신권 문제... 어렵죠. 그래도 연산은 그 범위에서 너무 벗어난 인물이라; [서기]
13/03/31 01:36
수정 아이콘
교육심리학이라고 해야하나요. 하여튼, 그쪽에서 다루는것중 하나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의해 아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인데..
특히나 아버지와 가까운 관계.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던 가깝다면 영향을 크게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소위말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오래살면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서 똑같이 하거나 / 완전히 폭력을 부정하는 인간이 되지요.

성종과 연산군은 "왕과 세자." 그리고 연산은 자기 하고 싶은것도 신하의 반대에 의해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왕으로 아버지를 봤을 가능성은
꽤나 높습니다. 연산말의 광증에 가까운 놀자판은 그 아버지에 대한 '반항'. 즉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고 봐야겠죠.
덤으로 아버지와 똑같이 여자밝힌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심할정도로 자제한것에 비해 아들은 자제를 뛰어넘어 폭주해버린게 다르지만요.
Je ne sais quoi
13/03/31 09:22
수정 아이콘
대부분 아는 이야기지만 금표가 경기도 절반까지 갔는줄은 몰랐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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