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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25 22:30:00
Name 지금뭐하고있니
Subject [일반] 출발하는 당신에게 바라는 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시장과 닮아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각인이 가진 돈이 말을 하지만, 민주주의 광장에서는 각인이 가진 표가 말을 한다. 단 중요한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는 각인마다 가진 양이 차이나는 데 반해, 후자는 각인이 가진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경제가 아닌 정치에 기대는 가장 크고, 어쩔 수 없는 스토리이다.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힘이 그나마 효과를 발하는 구역이 이 곳 밖에 없다는 것은 슬프고 눈물 나는 일이다. 그들에게 한 표는 자신의 현재이고, 자신의 일상이며, 자신의 인생이요, 무엇보다 자신을 쳐다보는 저 감한 눈동자를 지닌 자식들의 미래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힘을 미치도록, 제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물론 정보의 부족, 편견 등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그런 이들 역시 사고 구조는 유사하다. 'XX가 더 잘 하리라는 믿음‘이 출발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 힘을 쏟아낸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가진 비통한 사자후이며,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유일한 주먹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은 최대한 그들의 의사에 합치하도록 해야 한다. 최대한의 많은 정보가 주어져야 하고, 최대한 그들의 의사에 부합하는 이가 누군지 알게 해줘야 하며, 나아가 그렇게 뽑힌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표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게 해야만 한다. 결코 그 표의 무게를 심호흡 한 번에 토해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치인의 책무이고, 도덕적 사명이며,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마지막 힘을 토해낸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그렇기에 정치인은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혹자들은 모호한 표현으로 인기를 끌고, 교묘한 포지셔닝으로 위기를 모면하며, 자신이 유리할 때는 말하고, 불리할 때는 입을 다물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현실 정치에서 '정치력이 있는' 행위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 실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옳은가? 그것이 바람직한가?

한쪽에서는 그들을 향해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것들을 거는 이가 있는데, 그들을 향해 그렇게 치졸하게, 얍삽하게 행동해서 그들의 마지막 행위마저 무위로 돌려야 하는 것인가.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기본적인 문제가 선명성 부족과 무책임에서 근간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혜안 따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이상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교묘히 감싸고 자신의 선명성을 흐리고선, 자신의 이익과 근시안적 시각으로 지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약속을 하는 그 무책임이야말로, 이 땅의 정치인이 가진 가장 큰 폐해라고 믿는다. 이것은 무엇보다 신뢰의 문제이며, 민주정치의 소비자들을(유권자) 우롱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정치인은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선명하게 보여야만 한다. 이것은 신중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독단과 영웅인 양 결단을 하라는 의미도 결코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을 명확하게 표현해야 하며,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야 한다.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신뢰의 문제이며, 이것은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에 대한 문제이고, 자신에게 표를 던질 사람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이다.


새정치를 표방했던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그가 달라질 것은 별달리 없을 것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교섭력을 보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무소속 1인 의원의 한계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 그가 주장했던 '새정치'가 어떻게 구체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울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에 꽤나 관심을 두었던 이들조차 안철수라는, 어떤 정치인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외쳐온, '새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지 못 했다.

그는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 믿는다. 그의 어깨에 짊어진 표의 무게와 그가 뱉어온 말들의 무게가 엄청나다는 것을. 그가 말했던 '새정치'라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정치'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 하지만, 그것에 열광하는 지금의 이 포지션이 그에게 현실 정치에서 큰 힘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치 지형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지지를 얻어온 그에게 분명한 악재가 될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의 출발이 저 마지막 한 번의 주먹을 가진 이들에게서 시작되었음을,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보다 강렬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함을, 그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가 항상 이야기했던 '신뢰와 원칙'이 그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말이다.


당신의 진심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증오와 실망과 눈물을 안기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새정치를 기대하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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