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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27 20:05:30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주성치의 서유기 - 부나비들의 이야기


+) 월광보합, 선리기연은 물론 올해 나온 항마편의 스포일러도 포함돼 있으니 싫으시면 뒤로 돌아가 주세요.


원효는 해골물 마시고 떠났지만 의상은 그대로 당나라로 갑니다. 거기서 10년간 화엄종을 공부하고 돌아오죠. 그 과정에서 선묘라는 아가씨와 만나게 되고 선묘는 의상을 사랑하게 되지만, 의상이 받아줄 리가 없었죠.

그가 신라로 돌아가는 길, 선묘는 직접 만든 법복을 주러갔지만 의상은 이미 배 타고 떠난 뒤였습니다. 선묘는 바다로 뛰어들었고,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호위했죠. 그리고 의상이 절을 지을 때도 도와주니 이게 바로 부석사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죽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죽는다, 오래된 클리셰죠. 요새 쓰면 좀 짜증나기도 합니다만 창작물은 물론 현실에서도 보기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 선리기연, 항마편의 여주인공 역시 이런 클리셰를 따르고 있습니다. 뭐 월광보합의 경우 조금 다르니 제외하겠습니다. (...) 근데 정작 이 두 배우가 주성치를 두고 삼각관계를 펼쳤고 승리한 건 영화와는 달리 백정정을 맡은 막문위였죠. 덕분에 자하를 맡은 주인은 주성치까가 되고...

뭐 주성치의 여성편력이야 그렇다 치고...


선리기연에서 자하는 지존보를 사랑하게 됩니다. 뭐 자기 검을 뽑았다느니 하는 이유가 크게 문제겠습니까. 어차피 영화에서 길게 길게 연애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건 그녀가 일편단심으로 지존보-손오공을 사랑했다는 것이죠. 자신의 인생을 걸구요.


항마편에서는 서기 누님이 이걸 이어받습니다. 그 대상은 손오공보다 더 합니다. 불도를 따라야 되는 삼장법사를 사랑해 버린 것이죠. 역시 그 이유가 뭔 상관이겠습니까.

+) 항마편, 정말 재밌더군요. 일단 사오정과 저팔계가 손오공을 돕는 쩌리 수준에서 무시무시한 적으로 나오는 것부터요. 아 물론 손오공에 비해 쩌리인 건 다를 바 없습니다만. 물론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이죠. 우리나라에도 개봉 좀 하지

지존보는 백정정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하를 거부하지만, 그건 뭐 자하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거였습니다. 과거에 나타난 백정정은 자하의 진심에 밀려 지존보를 포기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손오공은 모든 걸 알아버렸으니...


자하가 바라는 모습으로 돌아왔던 지존보, 하지만 둘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벽이 있었습니다. 누굴 더 좋아하고 문제가 아니었죠. 손오공은 속세의 감정을 버려야 했습니다. 삼장을 보호해 서역의 불경을 찾고, 그걸로 세상을 구해야 했죠. 자하와의 인연은 너무나도 큰 후회로 남았지만, 버려야 하는 거였습니다.


항마편에서 백골정이 사랑한 건 다름아닌 현장, 삼장법사였습니다. 아직은 더벅머리 청년이라 하나 이미 불가에 귀의한 몸이었죠. 속세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하룻밤의 꿈이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거였습니다. 뭐 그런 작은 사랑은 더 큰 사랑에 포함된 거라고 합니다만... 여자 입장에서는 "나 너 사랑해. 우리 전세계 사람들이랑 같이 사랑하자" (...) 이런 식의 말일 뿐.

동양 세계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금기일 겁니다. 신분차 같은 거야 좋게 보일 리 없고 죽음이 갈라놓으면 내세에서 다시 만나면 되지만 이건 그게 안 되니까요.

사실 쿨하게 다른 남자 찾으면 될 일입니다. (...) 그런데 어쩝니까... 여주들은 그걸 거부하니...

손오공을 사랑한 자하도, 삼장을 사랑한 백골정도 상대가 싫다는데 계속 달려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죠. 이렇게 그 남자의 기억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속세의 감정을 완전히 버려야 될 남자들이 그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었을까요? 결말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최대한 구석으로 밀어둘 순 있어도 말이죠.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아요. 남자는 더 큰 것을, 영원을 추구하고 여자는 지금 당장이라는 불교로보나 현실로 보나 찰나에 불과한 걸 원하니까요. 남자는 더 큰 걸 원하고 여자는 작은 거에 목 메는 갈등구조 자체가 옛 것이죠.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이 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일단 주성치가 개그와 감동을 적절히 섞은 게 있겠지만... 주인이나 서기 누님 같은 아름다우신 분들이 막 다가와준다는 그런 거라든지 결국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솔로로서의 즐거움, 이 아니라 비극적인 결말이 재밌어서 그런 걸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건, 남자고 여자고 저런 부나비 같은 심정을 공감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면 죽는데도 불로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딱 한 번만이라도 날 위해 웃어준다면 거짓말이었대도 저 별을 따다줄텐데" -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말린다고 어디 듣습니까. 자기라고 아닌 걸 모르면서 달려들겠습니까. 그래놓고 남이 그러면 좋다 좋다 하겠습니까. 이런 마음의 공명이 있기에 오래되고 따지고보면 좋지도 않은 클리셰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아니겠어요.

선리기연에서의 손오공은 자하를 냉대했던 걸 평생 후회하고 살 겁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천 년이라도 상관 없다고 했죠. 뭐 여기서 모티프를 딴 게임 환상서유기에서의 손오공은 불교 그딴 건 상관없어서 천 년 만 년이고 사랑하겠다고 했지만요 (...) 항마편에서의 삼장은 백골정이 남긴 반지를 영원히 보고 살게 됩니다. 뭐 그의 경우야 백골정과의 사랑도 큰 사랑의 일부니 상관없을지도요.

안 돼도 좋다, 그저 나를 잊지 말라... 최소한 기억으로라도 남고 싶다. 뭐 그런 거겠죠. 가장 슬픈 건 상대의 마음에 최소한의 스크래치조차 남기지 못 하고 잊혀지는 걸 테니까요.


"나를 잊어주세요"

뭐 이런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


- 난 당신을 속였소
"상관없어. 부나비는 죽을 걸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들지. 부나비는 그렇게 바보야."
"난 이제 신선이 아니야. 난 이제 사랑이 고통스럽다는 것밖엔 몰라."


"만년은 너무 길어. 이 순간만이라도 사랑해줘..."

뭐... 그렇다고 현실에서 권하고 싶진 않네요. 원래 창작물이라는 게 감정이입을 위한 것일 뿐, 거기서 만족해야죠.

뭐... 그래도 부나비처럼 살고 싶다면... 그저 행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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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돌이
13/05/27 20:16
수정 아이콘
요즘 제작만 하더니 처음으로 주성치 본인이 출연 안하면서 연출한 거의 첫작품인데요
주성치가 안나오는게 이렇게 크게 느껴질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로 보면 주성치 영화라는게 여기저기서 느껴지긴 합니다만...
정말 아쉽더군요 재미는 보장되지만 뭔가 끓어오르는게 없더군요
눈시BBbr
13/05/27 20:17
수정 아이콘
그건 정말 크게 다가오더군요.
자전거세계일주
13/05/27 20:17
수정 아이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 주성치가 나오지 않는 영화."

서유기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시리즈는 주성치를 그저 B급 코믹배우로만 평가절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서유기 시리즈는 음미하면 할수록 유쾌하면서도 쓸쓸하면서도 해학적인 애잔함을 가진 영화죠. 주인 미모에 홀딱 반한 기억과 '뽀로뽀로미', '온 리 유', '거시기에 붙은 불을 끄는 장면' 등의 임팩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본문 글 잘 봤네요. 첫 댓글처럼 더 이상 주성치 횽님의 등장을 볼 수 없음이 심히 슬픕니다. 성치 횽님의 천재성 돋는 액션과 표정을 봐야 하는데..ㅠㅠ
알킬칼켈콜
13/05/27 20:18
수정 아이콘
금성무의 만 년보다 주성치의 만 년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얼굴...

그러나 현실은 둘다 위너 흑흑
아우디 사라비아
13/05/27 20:20
수정 아이콘
결국 이렇게 주성치는 한시대의 전설이 되어가는 군요

저역시 선리기연은 애절했습니다
Captain J.
13/05/27 20:25
수정 아이콘
주성치를 참 좋아합니다만,,,
항마편은 만족 반 실망 반 이었습니다.

주성치라는 사람은 지금 행복할까요? 얼마 전에는 정치에도 발을 넓히시던데,,,
예전 느낌 물씬 나는 영화 하나 찍어주시면 좋으련만...

글 잘 읽었습니다.
13/05/27 20:29
수정 아이콘
주성치의 서유기도 참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추억이 돋네요
항마편은 아직 못봤는데
선리기연에서는 마지막장면 잠에서 깬 손오공은 삼장을 따라 길을 떠나면서
싸우며 떨어져있던 커플사이에서 잠시 남자몸에 들어가 서로 포옹하게 만들고 지나가지요

손오공 자신은 인연을 끊고 서역으로 향하지만 결국 보통 다른사람들에게는
'까불지말고 있을때 잘해~~ 나중에 후회한다~~'란 커플긍정 솔로부정의 메시지를 남기고 가는 것이지 싶더군요
데스벨리
13/05/27 20:31
수정 아이콘
선리기연은 제 USB에 항상 담겨져 있습니다.....아주 아주 슬픈날이면 꼭 꺼내서 보곤 하지요....
레지엔
13/05/27 21:37
수정 아이콘
항마편을 아직 못봤는데, 보면 씁쓸해질까요 서유기의 추억을 되살려줘서 고마울까요. 겁이 나서 아직 볼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13/05/27 22:00
수정 아이콘
모 어느정도 느낌이 비슷하고 재미 있긴 한데 그정도 까지 애절함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주성치의 출연 여부가 정말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오직니콜
13/05/27 22:06
수정 아이콘
서유쌍기를 봤을때는 이게최고야! 했지만 희극지왕보고나니 또 맘이달라지더군요.
사과씨
13/05/27 22:08
수정 아이콘
월광보합 - 선리기연 연작은 제 인생 영화 중에 하나죠. 그런데 주성치가 주인을 차고 막문위를 택했다는 얘기는 오늘 첨 들었네요 흐.. 막문위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사조영웅문 94에서부터 제 첫사랑이었던 주인을 거부하는게 가능하다니 참 허헐러하허허허(멘붕)
뭐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망작에 가까웠던 장강7호 이후 더 늙기전에 주성치 출연영화를 한편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이젠 이룰 수없는 바램이 되 버린 듯하군요 쩝.
에버쉬러브
13/05/28 01:43
수정 아이콘
저도 고딩때 영웅문의 주인을 보고 반해서 중국대사관가서 -_- 주인 1-2집 노래 씨디까지 샀다는..
티티타...
노래 목소리도 귀여웠는데;
이번에 결혼하신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하하..
사과씨
13/05/28 16:06
수정 아이콘
머 저도 이젠 유부인지라 쿨하게 보내드리렵니다 (음?)
암튼 잘 사시오 꾸냥 엉엉~
자이언츠불펜
13/05/27 22:19
수정 아이콘
학창시절 주성치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그 때 항상 듣던소리가 '넌 이상한거 좋아한다'.... . 당시 인기있던 주윤발, 성룡, 유덕화 등에 비해 주성치는 유독 국내에서 인기가 없었죠. 소림축구 이후로 빵터지긴 했지만
4월이야기
13/05/27 23:55
수정 아이콘
최고의 영화~! 뽀로뽀로미~!
무슨말이 必要韓紙?

96년도쯤에 월광보합을 비디오로 첨 보고...
어머 이건 혼자보면 안돼~~! 하면서 친구들 불러모아 오골오골 모여서 키득키득 하면서 봤었었죠...
하지만, 당시 여친과 함께 보자고 차마 말하지 못 했던 그런 영화였죠..
(왜, 이런 명작을 여자와 함께 할 수 없었는지...ㅡㅡ)
롱리다♥뽀미♥은지
13/05/28 11:13
수정 아이콘
아아아~~ 주성치님. 정말 존경합니다. 거짓이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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