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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14 23:54:57
Name 눈시BBv3
Subject [일반] 기형도의 시


처음 접하게 된 건 중학교였습니다. 젊은 사회 선생님이 '입 속의 검은 잎'을 소개하시고 '대학 시절을' 암송하셨죠. 그 외에도 여러 시들을 (당연히 서정적인 것보단 사회에 관련된 거였죠) 수업시간에 열창하시기도 하셨구요. 저 포함 관심 보이는 애들이 몇 명 없긴 했습니다. 뭐 그래서 이쁨받았던 것 같네요. 네 당연히 남선생님이셨습니다 -.-


http://mirror.enha.kr/wiki/%EA%B8%B0%ED%98%95%EB%8F%84

PGR에도 아는 분이 많으실 것 같네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유명한 시 네 개만 소개하죠 '-')a

---------------------------------------------------------------------

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빈 집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상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가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입 속의 검은 잎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무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누구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홍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그럼 좋은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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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비아
13/10/15 00:03
수정 아이콘
제가 사는 동네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시인이네요. 때문에 버스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빈 집, 질투는 나의 힘은 많이 접했는데 다른 시들은 처음 봅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눈시BBv3
13/10/15 00:22
수정 아이콘
^^ 감사합니다.
저 시들은 그래도 담담한데 그렇지 않은 것들도 꽤 있죠 '-'
사티레브
13/10/15 00:07
수정 아이콘
대학교 2학년때 여친은 오빠 시는 기형도아류야 라고햇었는데
그말이 참좋았드랫죠 그 여친은 계속 마음에걸려했엇지만

사람의 감정을 어느정도까지 내려보낼수있는지
볼때마다 다른 우울한 시인이에요
눈시BBv3
13/10/15 00:23
수정 아이콘
일단 지은 시를 읽어주는 여친이 있었다 이거죠? -_-
정말 읽다 보면 우울해에 이리 풍덩 저리 풍덩 빠뜨리며 고문하는 시인이죠
jjohny=쿠마
13/10/15 00:21
수정 아이콘
저도 기형도에 대한 기억은 한 선생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녔던 언어학원 선생님이 원래 문학을 전공하셨고 시를 쓰시려 했던 분이라 글을 글답게, 문학을 문학답게 가르치셨던 분인데, 그 분 수업시간에 기형도를 처음 접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평생의 은사로 생각하고 있는 분입니다.) 많은 시를 배웠지만 그 중에서도 기형도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았던 건, 아마도 기형도를 읽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무언가'가 담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 한 번 뵙고 싶네요.
눈시BBv3
13/10/15 00:24
수정 아이콘
저두요. 성함도 기억 안 나는데 ㅠㅠ
학생들에게 좀 이런저런 의식을 심어주려 하셨는데 지금도 그러실지 모르겠네요
jjohny=쿠마
13/10/15 00:27
수정 아이콘
헤헤 저는 기억나지요. :P 임후성 선생님이라고... (시집도 내셨던 분입니다.)
언어 과목을 배운 건 부차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청소년기의 저에게 많은 것을 심어 주셨고 아직도 그 분의 말씀과 모습들이 참고가 됩니다.
(지역에서 나름 유명했던 분이라, PGR에도 선생님께 배웠던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뵌 지 4~5년만에 한 번 전화드렸는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OOO라고...' 하자마자
'사족이 길다 인석아. 당연히 기억하지.' 하셔서 겁나 뭉클했네요. 헿
jjohny=쿠마
13/10/15 00:32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선생님 소식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작년부터 드디어 예술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학원도 하시고)
http://www.playdb.co.kr/artistdb/detail.asp?ManNo=31150
눈시님 덕분에 가슴 벅찬 소식 접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대본 쓰고 연출하신 연극 보러 가야겠습니다.
눈시BBv3
13/10/15 00:40
수정 아이콘
오 제가 더 기쁘네요 ^^ 저희 동생 연극하는데 말해줘야겠어요
주홍불빛
13/10/15 00:27
수정 아이콘
기형도 좋아요! 버릴 시 하나 없는 시인이죠.

언급하신 시들도 다 좋아하고,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로 시작하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나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로 끝나는 '그집 앞' 같은 시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요!
13/10/15 00:36
수정 아이콘
입속의 검은 잎. 89년, 대학교 1학년 가을인가. 시를 쓰던 친구에게 선물 받았었지요.
우리 국문과생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는데, 이 시집은 저에게 뭉크의 그림 "불안"과
같은 이미지로 가장 충격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20대의 저에겐 "질투는 나의 힘"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저의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시기별로 가슴에 와 닿는 시가 달라지더라고요.

40대의 가장이 된 지금.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야근하다가 가끔 "기억할만한 지나침"을 떠올리곤 합니다.
습격왕라인갱킹
13/10/15 00:39
수정 아이콘
저도 나름 기형도 시인의 학교후배인데도...
대학에 들어와서야 기형도 시인을 알았습니다.
참 좋아라하는 교수님의 참 좋아라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대학시절"을 알려주시면서 뒷얘기? 를 해주시는 걸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중간고사 시험지 끝에도 특별히 저 시를 써 주셨던...
카페르나
13/10/15 01:07
수정 아이콘
뒷얘기가 궁금하네요! 저도 '대학시절'은 참 좋아하는 시라서...
습격왕라인갱킹
13/10/15 09:04
수정 아이콘
흠 뭐 별건 아니라서 물음표를 달긴 했지만..크 그저 시 해석에 가까울 수 있겠네요..
은백양의 숲은 백양목들이 잘려나가기 이전의 백양로,
존경하던 교수님이 누구인지와 침묵하셔야 했던 배경(강연에서 사소한 발언으로 박정희 정부때 남산에 끌려갔다 오셨다고 했던가...기억이 잘..)
수업이 정외과 수업이었는데, 기형도 시인이 국문과가 아닌 정외과였다는 것과 정외과를 선택하게 된 배경 같은것...

뭐 그런 잡담들이었습니다. 이제는 2년도 더 지나서 기억도 가물가물 해 졌다는게 좀 씁쓸하네요.
덕분에 당시 수업 게시판 뒤지며 추억팔이 하다가 한 학우가 쓴 재미있는 패러디 시를 찾았습니다 크크
---------------------------
< 대 학 생 활 >

....(생략)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대학내일을 읽었다, 그때마다 함성이 들렸다
아카라카가 다가오면 친구들은 동아리와 과로 흩어졌고
얌전하던 후배는 자신이 응원단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오늘 시험을 괴롭게 냈다
군대를 대~충 갔다오니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복학이었다, 점심시간이 두려웠다
13/10/15 00:57
수정 아이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기형도..

이렇게 접하니 고맙네요.. ^^

잘 보고 갑니다.
라라 안티포바
13/10/15 00:58
수정 아이콘
저는 겨울판화인가 좋아했었는데...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욱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라는 구절이 가장 기억나네요.
Darwin4078
13/10/15 01:16
수정 아이콘
대학교 입학해서 시는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소설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이렇게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신제품
13/10/15 01:17
수정 아이콘
천재는 왜 요절을 할까요...ㅠㅠ
王天君
13/10/15 01:23
수정 아이콘
입 속의 검은 잎. 처음 접했을 때 스산함에 온 몸이 잠식되어버린 것 같던 그 느낌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보통의 우울함이라 함은 사람을 가라앉게 하고 몸을 늘어지게 하는 이완감이 있다면, 이 시는 완전히 질이 다른 '음산함'이 깔려있어요.
다행히 시대가 좋아 불안함보다 분노를 먼저 느끼는 저에게 그 당시의 수상함이란, 기저에 깔려있는 불안함이란 어떤 것인지를 가장 생생하고 무겁게 전달하는 시입니다.
히히멘붕이삼
13/10/15 01:28
수정 아이콘
어느 푸른 저녁, 장밋빛 인생, 진눈깨비,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억할 만한 지나침, 홀린 사람,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빈 집, 위험한 가계, 쥐불놀이,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하지만 읽고 나서 가장 전율했던 건 '밤눈'의 시작메모입니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학창 시절 새 공책을 사면 무슨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기형도의 시를 공책 맨 첫 페이지에 정성들여 옮겨 적곤 했었죠.

이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던 '포도밭 묘지1'을 어느 날 자기 전에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마치 접신한 것처럼 화자의 심정과 완벽하게 동화되면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단숨에 읽어버린 소름끼쳤던 경험도 잊을 수 없네요..
王天君
13/10/15 01:28
수정 아이콘
그리고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의 저 테마는 너무 이쁘고 서정적인 느낌이라서 기형도 시인의 음울함에는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슬픔'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느낌이거든요.
눈시BBv3
13/10/15 01:31
수정 아이콘
적절한 걸 찾지 못 했죠
일단 달아놓긴 했습니다만 역시 겉도는 것 같네요
진실은밝혀진다
13/10/15 01:40
수정 아이콘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언제 읽어도 와닿네요.
헥스밤
13/10/15 01:44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 때 기형도 시집을 끼고 다녔는데 그걸 본 친구 한놈이
'야 수능에도 안 나오는 걸 왜 그래 보냐 그렇게 여유있냐 내가 수능에 저거 나오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런데 함께 본 수능에 나왔습니다.

라는 추억이 있네요. 좋아합니다. 기형도. 예전엔 서너 개 암송도 하고 그랬는데.
아케미
13/10/15 01:57
수정 아이콘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 <10월> 중
huckleberryfinn
13/10/15 07:06
수정 아이콘
제가 알고 좋아하는 정말 몇 안되는 시인이네요.
시는 응당 고등학교때나 배우는 재미없고 지루한 장르라는 고정관념을 깨주신 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목은 생각은 안 나는데 어머니에 대한 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오랜만에 집에 있는 시집을 한번 뒤져봐야겠습니다.
Jealousy
13/10/15 08:37
수정 아이콘
가장좋아하는 시인이네요

고1때 국어 수행평가가 유인물 나눠주고 거기써있는시중에 하나외워서 감상문쓰는건데 홀린사람을 처음봤었는데 정말 와닿더군요
13/10/15 09:36
수정 아이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대학 시절 둘다 너무나도 좋아했던 구절이고 지금도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올드보이 보면서 느꼈던 지금 이 계절의 스산함과 잘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조제물고기
13/10/15 09:59
수정 아이콘
저도 좋아해요. 엄마걱정을 제일 좋아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랍상소우총
13/10/15 11:42
수정 아이콘
저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처음 관심을 갖게 한 시는 빈 집이었는데, 그 뒤로 시집을 사고 전집을 사고 하면서 더더욱 좋아졌던 기억이 있네요. 괜히 성석제 작가의 소설들도 다 읽어버렸던 생각이 나네요.
Abrasax_ :D
13/10/15 14:30
수정 아이콘
저도 정말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문제집에서 시를 봤던 것 같은데, 시집까지 찾아보게 되었지요.
'조치원'이라는 시인데 아직도 처음 기형도의 시를 봤을 때 받았던 충격이 남아있습니다.
13/10/15 15:53
수정 아이콘
전 오래된 서적을 제일 좋아합니다.
...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한동안 중얼거리며 다니던 게 기억나네요.
13/10/15 15:55
수정 아이콘
참고로 지금 떠오르기로는 기형도는 뭔가 짙은의 노래와도 어울리는 듯 해요. 기형도가 좀 더 어둡지만요. 아니면 미선이를 좀 더 음울하게 끌어내리거나요.
뿌요뿌요
13/10/15 21:58
수정 아이콘
제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여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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