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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20 00:58:03
Name 이루이
Link #1 http://poisontongue.sisain.co.kr/2016
Subject [일반] 영화 변호인 실제 피해자가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일단 구치소로 피고인 접견을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초췌한 몰골을 한 청년들은, 변호사인 내가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되었고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되어 있으면서 몽둥이찜질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학대받는 동안 가족들은 딸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한 젊은이는 62일 동안 불법 구금되어 있었다.
그 어머니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김주열을 생각하면서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영도다리 아래부터 동래산성 풀까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아들이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뛰어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송병곤이었다.”

- 자서전 "운명이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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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당신을 처음 만난 날은 1981년 여름 어느 날, 저는 부림사건의 피고인이었고, 당신은 변호인이었습니다. 
제 나이 만 22세, 당신의 나이 35세. 이제 와서 나이를 헤아려보니 노 변호사님도 그때는 무척이나 젊었습니다.

처음 노 변호사님을 접견했을 때 저는 변론을 거부했습니다. 나중에 자서전을 보니 노 변호사님은 제가 변론을 거부한 이유가 노 변호사님을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더군요. 사실 그때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변호는 스스로 하겠다고, 필요없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노 변호사님은 성실한 변론으로 스스로를 증명하셨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하의 사법부는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징역 6년에서 1년6개월까지의 판결을 선고하였고, 
저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1983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기 시작하여 그해 연말까지 
특사로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석방된 후 당감성당에서 송년회 겸 석방환영회가 개최되던 날, 이호철·노재열과 함께 
노 변호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러 사무실로 찾아갔었지요.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주던 당신을 따라 처음 갔던 사우나의 어색함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함께 당감성당의 환영회에 참석하였지요. 술기운이 오르고 막판 춤사위가 어우러지며 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당신이 추던 곱사춤도 기억합니다.

저는 당신의 갑작스러운 제의에 1984년 4월부터 노무현 변호사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어머님의 부탁이 있었다 하더군요. 첫 출근 날 영문도 모른 채 최병두 사무장님을 따라 간 곳은 맞춤양복점이었습니다. 
치수를 재는 재단사에게 몸을 맡기고 있자니 사무장님이 “변호사님이 양복 한 벌 맞춰주라고 하더라” 하시더군요. 
그렇게 따뜻하고 산뜻한 양복 한 벌 얻어 입고 사무실 직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직원들의 교육과 소양을 위해 매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민법을 강의했고, 민사소송법까지 강의한 후에야 
아침 교육을 종료하였습니다. 적어도 1년 이상의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아침 8시에 출근을 하니까 강의시간에 
졸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강사인 노 변호사님의 노력과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노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1984년 말부터 1985년 초까지 준비해 노동법률상담소를 개소하였습니다. 이후 노동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후배들과 사무실에서 우연하게 전태일 열사의 제사를 모시기도 하였습니다. 전국 최초의 노동법률상담소였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당신과 함께 전 직원이 올랐다가 보았던 지리산 세석에 걸린 엷은 구름이 그립습니다. 
당시 따로 개업하고 계시던 문재인 변호사님의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지리산 등반에 올랐다가 하산 길에 길을 잃어 고생한 기억도 생생합니다.

민주화운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제가 사무실의 참한 여직원(지금은 저의 집사람이 되었네요)과 함께 중부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가
보수동 2파출소로 연행되었을 때, 여직원의 연락을 받고 즉시 달려와 주었던 당신의 모습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경찰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당신을 처음 보았습니다. 노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풀려나와 함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당신은 분을 참지 못하고 운전을 하던 
노주사님에게 불법 유턴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앞에 교통경찰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받게 되었고,
뒤늦게 법조인의 차량이란 걸 알게 된 교통경찰들이 끈질긴 추적(?) 끝에 사무실까지 찾아와 ‘변호사인 줄 모르고 딱지를 발부하였다’고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 했는데도 당신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추억이 쌓이고 노동법률상담소가 확고히 자리를 잡아갈 즈음인 1985년 말, 저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고자 하는
미련 때문에 노 변호사님의 사무실을 그만두었습니다. 당시 노 변호사님의 심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냥 노 변호사님은 자신이 좋아했던 
저의 친구 두 명(이호철과 이성조, 당시 부산민주화운동협의회에서 실무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과 함께 
근사한 회식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저는 이후 노 변호사님과 함께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노 변호사님이 선거에 출마하실 때마다 선거운동원으로 
부산 전역을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부산 강서구에 출마하실 때는 낙선이 너무 뻔하게 보이는 곳만 고집하는 
노 변호사님이 못마땅하여 성질이 나기도 하고, 집과의 거리도 너무 멀고 해서 자원봉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낙선한 당신은 외려 ‘농부가 을 탓할 수는 없다’는 가슴 아픈, 그러나 아름다운 구절을 남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정치인 최초의 후원회인 노사모도 결성이 되었으니 저의 좁은 소견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참, 노 변호사님이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1990년 4월14일에는 제 결혼식 주례를 서주셨습니다. 
노 변호사님은 차가 많이 밀린다며 결혼식에 늦으셨습니다. 비록 늦게 열린 결혼식이었지만 다들 짜증을 내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보다도 더 기뻐하고 축하해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2002년, 이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50년 남짓 산 인생에서 2002년은 가장 행복했던 해입니다. 
그해에 노무현의 대통령 경선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과정이 전부 드라마였지만, 
저에게는 경선 과정이 가장 큰 기적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당시 당신을 한번 만나기는 하였습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사무직원회에서 청와대를 방문하였을 때 ‘고향 까마귀들이 반갑다’면서
당신이 직접 참석하였을 때 그래도 가까운 거리에서 뵈었던 것이 전부입니다.

재임 기간이 끝나면 자주 찾아뵙고 버릇없이 굴면서 술 한잔 올리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집사람에게 봉하마을 한번 가자 말만 하고는 찾아뵙지도 못하고, 봉하마을에 전자편지라도 한통 보내자고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모의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와 당신이 겪었던 부림사건으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니 말을 바꾸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민주화 유공자로까지 인정받았던 우리를 용공주의자라고 매도하며 부림사건이 조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억울함이 다시 차오를 무렵 당신의 모습을 담은 영화가 개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우리의 억울함을 잘 대변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깁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변호인입니다.

- 송병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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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고 부림사건에 대해 검색하던 중

실제 피해자였던 송병곤씨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어 올려봅니다.

늦은 밤에 괜히 감상에 젖게 되네요.

정책적으로는 실패한 대통령이었을지언정 인간적으로는 참 괜찮은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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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돌이
13/12/20 01:05
수정 아이콘
노무현...
인간 노무현은 정말 가슴을 울리는 사람입니다.
어강됴리
13/12/20 01:06
수정 아이콘
그런데 운명이다가 자서전이었나요 분명히 유시민씨가 쓴걸로 알고있는데
개미먹이
13/12/20 01:08
수정 아이콘
노무현이 쓰다가 만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루이
13/12/20 01:09
수정 아이콘
서거 1주기를 맞이해서 고인이 남긴 저서나 미발표 원고등을 노무현 재단에서 엮고 유시민씨가 정리해서 내놓은 책입니다.

고인이 직접 낸 책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고인이 쓴 글이지요.
루크레티아
13/12/20 01:06
수정 아이콘
짠하네요...
부림이 조작이 아니라고 하는 미친놈들이 세상에 있다는 현실이...
HeroeS_No.52
13/12/20 01:07
수정 아이콘
노무현이란 사람은 정말 진국이였죠. 정치는 문제였지만...
13/12/20 01:09
수정 아이콘
참 한결같은 분이셨어요. 영화를 보고 와서 그런진 몰라도 요즘따라 참 그립습니다..
AraTa_Higgs
13/12/20 01:10
수정 아이콘
http://inizios.blog.me/10180800260

이 블로그를 보시면,
부림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당시 피해자였던 분들의 위 내용을 포함한 실제증언이 많이 있습니다.
(+ 부림사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도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이 사건에 대해 더욱 궁금하여 검색하던 중 발견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변호인 영화는 정말이지 사실에 근거하여 만든 영화더군요..
Dreamlike
13/12/20 01:24
수정 아이콘
소름돋아요.............
전 어찌되었거나 여기 나와계신 분들처럼 육체적 고문을 견딜 자신이 없네요. 글로만 봤을 뿐인데도...
민주화를 이뤄내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 비인간적인 고문을 행한 자들이 아직도 기득권 층에 머물고 있고
저런 모진 고통을 견뎌가면서 이뤄낸 민주화의 열매를 먹고 사는 주제에 그 은혜도 모르고 낄낄거리기나 하는 놈들보면
피가 꺼꾸로 솟습니다.
푸른봄
13/12/20 08:17
수정 아이콘
이 블로그 글 보니까 답답하네요.
당시는 상황이 그래서, 자기들도 밥줄 안 끊기려고 그랬으려니 하고 최소한 그 행동에 대해 이해라도 해 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부림사건이 빨갱이 사건이라고 하고 다니다니...
아르센벵거
13/12/20 01:12
수정 아이콘
오늘 영화보고왔는데 글을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치킨너겟
13/12/20 01:14
수정 아이콘
참 아쉽긴해요 살아계셨으면 좋았을텐데 아니다..검찰쪽에서 가만히 나두지 않았으려나;
13/12/20 01:15
수정 아이콘
과연 정책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일까요?
만약 정책적으로 실패한 게 있다면 그건 그 시대의 한계였겠죠.
흰코뿔소
13/12/20 01:16
수정 아이콘
22
치킨너겟
13/12/20 01:19
수정 아이콘
전 노무현 대통령이 좋았던게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들고 싶어요. 이명박정권때는 다시 과거로 돌아갔지만... 많은 대국민 담화와 국민과의 토론 이런걸 많이 즐겨했던점 참 높게 봅니다. 지금 정부의 불통을 생각하면 정말;
13/12/20 01:19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 생각합니다.
Rorschach
13/12/20 01:19
수정 아이콘
정책적 실패가 있다면 그건 그냥 실패죠. 실패를 시대의 한계로 돌린다면 이 또한 일종의 신격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잘 한 부분은 잘 한 부분이고, 실패는 실패입니다. (이공계 장학금 제도를 대체 시대의 어떤 한계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13/12/20 01:51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말을 꾸미느라 지나쳤네요.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정책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실패보다는 더 많은 유산을 남긴 대통령이죠.
우리 역사에서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이 없었다면? 김대중 뒤를 이어 이명박, 박근혜로 바로 이어졌다면?
저에겐 참 아찔한 상상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 헌정사에서 참 빛나는 지점입니다.
양념게장
13/12/20 02:08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장학금 받고 로스쿨 추가..
펠릭스
13/12/20 02:13
수정 아이콘
아뇨 솔직히 실패 아닙니다.

노무현 시절이 이명박 -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나은게 네가지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 외교, 그리고 법치.
긍정_감사_겸손
13/12/20 02:19
수정 아이콘
다른건 몰라도 수도권 이전 시도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땅값이 떨어지므로 당연히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죠.
White Knight
13/12/20 09:01
수정 아이콘
무조건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새누리당이나, 무조건 그 시대 탓 하는 이 댓글이나 동급으로 보이네요
13/12/20 13:56
수정 아이콘
네 알겠습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도라귀염
13/12/20 18:39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어떤 대통령과 비교하면 실패라고 단정지을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요즘은 정책적실패 멘트도 보면 알바가 아닌가 하는 극단적 이분법에 휩싸여 있네요
어강됴리
13/12/20 01:27
수정 아이콘
오늘 변호인 보고 왔는데 느낌이 좀 이상하더군요

제가사는곳은 선거구로 치면 북강서 을
정치인 노무현의 국회의원 마지막 출마 지역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비서실장 허태열의 지역구이기도 하고
대표적인 친노인사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며 출마했다 낙선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공세를 온갖 말도안되는 궤변으로 커버하고 이번에 장하나 의원 제명안을 대표발의한 김도읍 의원의 지역구 이기도 합니다.
오늘 관람한 영화관에서 두블럭 정도 가면 '봉하막걸리'를 파는 바보주막이 있습니다.
거기다 오늘 본 영화도 '변호인'

흐흐흐.. 다른분들은 이런감정 못느끼실겁니다.
와룡선생
13/12/20 11:25
수정 아이콘
같은 동네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군대있을때 부재중 투표할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호 2번이었던걸로 기억 나네요..
화명동 잔디구장에서 축구시합할때 국회의원들 한번씩 오는데
선거에 졌어도 작년에 문성근씨와서 막 사진도 찍고 했었는데..
13/12/20 01:42
수정 아이콘
영화 26년 평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막이 오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다 박수 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들어올린 손을 민망하게 만드는 영화`
화두에 짓눌린다면 결코 좋은 이야기, 좋은 영화가 될 수 없습니다. 내일 보러 가는데 평을 보면 다행히 그렇지 않은듯 싶어 다행스럽네요.
치탄다 에루
13/12/20 03:02
수정 아이콘
노무현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대통령이였죠.
김영삼-이회창-김대중-노무현이였으면, 우리 시대가 조금은 준비 되어 있었을까, 1초동안이라도 생각해봅니다.
srwmania
13/12/20 09:05
수정 아이콘
음. 제가 이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라 극히 공감되네요. 이회창씨가 김대중-노무현 라인과 격돌할 때 한번이라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라고요.
키스도사
13/12/20 03:26
수정 아이콘
대통령 노무현은 좋아하진 않지만 인간 노무현은 정말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3/12/20 03:41
수정 아이콘
노무현이란 사람 그 자체는 위대한 인생을 살았죠...
가난한 시골 촌부의 아들로 고졸로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인권변호사, 민주화 운동, 3당합당반대, 연이은 낙선, 극적인 대통령당선, 탄핵,
대한민국 개국이래 야권 인물중 처음으로 총선과 대선을 거머쥔 수권민주세력 탄생, 식물대통령, 이명박, 한사람의 시민으로 낙향...죽음...

한 100년쯤 후에 정치색이 옅어진다면...적어도 영화산업에서 인간 노무현의 인생은 최고의 소재가 될겁니다.
그의 인생 중 어느 부분을 뗴어서 영화를 만든다 해도 극적이고 정말 재미있는 대본이 나올정도로 드마라틱한 인생을 살았죠..

개인적으로 대통령 노무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평가합니다..
구체적으론는 진보적 정책을 좀 더 강하게 철면피같이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말 많은 비판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집권 초반에 한창 진보적인 정책을 밀어 붙일때 좀 더 강하게 지지를 해주지 못한거 같아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작년봄 부산 출장길에 봉하마을에 잠시 들렸었는데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꽤 많더군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이 할아버지 같이 살아라"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참 마음이 짠하더군요..
좋은 곳에서 편하게 푹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어강됴리
13/12/20 04:14
수정 아이콘
부림사건 못지 않게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도 재미있었습니다. 다들 이인제가 될꺼라던 예상을 뒤엎고 김근태 후보의 사퇴와 "그러면 제 아내를 버려야 되겠습니까" 발언, 이인제의 탈당. 그리고 끊임없는 후보 흔들기 2002년 월드컵과 정몽준의 부상, 후보 단일화 그리고 당선까지..
대선경선 자체가 드라마네요 2007년은 압도적이라 재미가.. 2012년도 재미있겠네요 흐흐흐

5공 청문회때 명패 집어던지는것도 보고싶고, 3당합당때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라며 울분에 못이겨 아랫입술을 깨물던 장면도 생각나고 막상 집권해서는 사상초유의 탄핵사태를 맞고, 김무성 의원이 노무현이 노무현이 거리며 대통령 취급이 뭡니까 사람취급도 않했는데 대통령 되는것도 대통령 되어서도 순탄치가 않았는데 퇴임이후에도 참....

사람에 대해 호불호를 논하는걸 떠나 이렇게 삶의 굴곡이 이뤄지고 희극적 서사가 쓰여질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농협입사 시험에 떨어져서 남포동을 헤메던 20대의 청춘이 30대의 변호사 40대의 국회의원 50대의 대통령..

어쨋거나 시간이 좀 지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써도 정치적으로 덜 민감해질 시기가 오면 일대기 자체를 극화해봐도 매력적인 캐릭터 입니다.
13/12/20 06:31
수정 아이콘
노무현이라는 짓밟히고 썩은 떡잎이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나무의 초석이 될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ㅠㅠ
당신처럼 살아야 하는데, 욕심많은 제 삶은 차마 그렇게살 용기가 안나네요.
마루가람
13/12/20 07:34
수정 아이콘
노무현이 정책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비록 당신 본인은 하고자 했던 정책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으니 실패라고 했지만 T.T)
첫째, 제대로된 평가는 세월이 조금더 흐른 후에야 가능할거 같습니다.
둘째, 노무현의 실패도, 노무현의 성공도 남겨진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3/12/20 07:47
수정 아이콘
흠.. 저쪽 동네 아이들(북한 아님)이 게거품물고 달려든다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변호인이 노전대통령 변호사 시절 이야기인가 보군요.
호빗도 봐야 하는데, 볼 영화가 한 편 늘었네..
13/12/20 08:30
수정 아이콘
변호인도 3부작영화의 1부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13/12/20 08:34
수정 아이콘
정말로 그의 그림자가 길긴 합니다..여러 의미로
니네가 종북이야
13/12/20 08:36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멍하고 울컥하네요
변호인을 보고싶지만 영화보다가 엉엉 울 것 같아 조금 있다가 나중에 볼려고요
보고싶어요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이자를 용서하지 않겠어요
더스토리2015
13/12/20 08:40
수정 아이콘
대통령께서 퇴임 무렵에 하셧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나는 새시대의 장자가.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된.것 같다"

그의 시대적 한계는 딱 저만큼 이었던것 같습니다. 그한계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셔다고 생각합니다.
목화씨내놔
13/12/20 08:47
수정 아이콘
아 영화 보고 싶네요. 노무현 정말 멋진 사람인데요.
White Knight
13/12/20 09:04
수정 아이콘
등급제 수능 쳤던 입장에서는 노무현의 대통령 전까지의 행보는 존경하지만 대통령 이후에 했던 일은 전혀 존경할 수가 없네요.
피지알에서 한나라당이 촛불들고 설칠때 사학법 개정이랑 로스쿨이랑 딜해서 로스쿨 통과시킨거라는 이야기를 몇 달 전 제목이 '이재오 맘에 드네요'였던가 하는 글 댓글에서 봤던 거 같은데 하나만 있어도 짜증날 판에 두 개의 똥을 안겼죠. 국공립대 등록금 자율화로 등록금 올려놓은건 덤인데 그렇다고 사학을 잡은 것도 아니고.
노무현 정부가 잘 한 것도 있지만 제가 느낀 노무현 정부 최대의 실책을 꼽자면 교육정책이고 정말 막장이었습니다.
어니닷
13/12/20 09:30
수정 아이콘
그런데 교육정책이 막장이 아니였던 시대가 있었나요?
저는 94학번에 수능 첫세대.. 수능 2번본 세대였는데.. 저도 정말 막장이였습니다.
White Knight
13/12/20 13:13
수정 아이콘
다른 대통령들보다 더 못 했다는 이야기죠. 이명박도 neat같은 걸로 트롤링하긴 했지만 이에 비할 바는 아니고 수능이 잘 굴러가는데 왜 등급제란 이상한 발상을 구체화시켰는지 납득이 안 가요. 로스쿨은 그래도 의도한 바는 지금과 달랐다고 감안을 조금이나마 해줄 수 있기라도 하지...
forangel
13/12/20 11:13
수정 아이콘
교육정책은 언제나 막장스러웠구요.
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기본심리도 있을거구요..
뭐 부모들의 내 자식은 착한데,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혹은 교육정책 때문에 더 좋은 대학 갈수있는 기회를 놓쳤다 같은.....
유독 그 시절이 막장스럽게 보였던건 그만큼 한나라당의 교육정책에 대한 공격이 심했던것도 원인이라 봅니다.
수능 이전의 학력고사나 초기 수능 제도도 지금보면 참 막장스럽죠.
높은 경쟁률,과도한 눈치경쟁,좁은 선택의 기회,암기식 문제출제 등등...
White Knight
13/12/2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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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막장스럽긴 했지만 처음 수능제도 시행하는 것도 아니고 표점제수능 잘 굴러가고 있던 시기에 단순히 60만을 9개의 등급으로 나누겠다는 조악한 발상이 당시 어떻게 나왔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 등급제 영향은 그 해만 끼친게 아니라 대학이 변별력을 찾기 위해 수시나 논술 등에 맛들리게 하면서 정시비중을 줄이기 시작한 시초가 되었고 요즘 대학 가기는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죠. 이명박이 했던 교육정책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게 집권하자마자 등급제 폐지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등급제는 제가 아는 바로는 한나라당과는 별 관계없었어요.
13/12/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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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89년생으로 등급제 수능을 쳤었는데, 당시에 우리반에서 공부 제일 잘하던 애가 white knight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죠.
혹시 동일인물은 아니겠죠? 흐흐
White Knight
13/12/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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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나 좋은 글이 파이어될까봐 첨언하자면 저는 미래에 노무현 대통령이 충분히 재평가받을 여지가 수구정권이 득세하는 현재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육정책 면에선 실드가 불가능한 역대급 실수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서 정책 관련 이야기가 나오기에 댓글을 달았어요.
콩먹는군락
13/12/20 09:13
수정 아이콘
괜히 퇴임후에 잘했다는 평이 65%에 육박하는게 아닙니다. 물론 설문조사(2012년)당시는 죽은 사람이였다는게 문제지만..
실제 역대 대통령 지지율 순위에서도 박정희 다음이 노무현이라는걸 보면. 죽은 뒤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는게 세간의 평인듯합니다.
순규하라민아쑥
13/12/20 09:40
수정 아이콘
'그들'이 노무현을 아직까지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입니다' 하면서 부관참시하지 못해서 안달인것만 봐도...
콩먹는군락
13/12/20 09:42
수정 아이콘
사실 지금 현재 박근혜 정권>야권인 이유도 박정희 후광이 크죠. 그래서 저는 차기에는 대통령이 무조건 야권으로 넘어갈거라 봅니다.
스타본지7년
13/12/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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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00점 만점에 60점 주는 대통령이었지만... 그만큼 실도 있었죠.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정말 위대하다고 말할 수밖에는..
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하루하루 최악입니다. 정신적인 것만 놓고 보면 남송의 양양성 공성전의 1/10은 된다고 비유를..
iamhelene
13/12/20 09:54
수정 아이콘
다른거 다 제쳐두고 어깨에 힘을빼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려고 부단히 애쓴것 만으로 저에게는 최고의 대통령이며, 최고의 위인입니다..
사악군
13/12/20 10:00
수정 아이콘
분을 참지 못하고 운전을 하던 노주사님에게 불법 유턴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앞에 교통경찰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받게 되었고, 뒤늦게 법조인의 차량이란 걸 알게 된 교통경찰들이 끈질긴 추적(?) 끝에 사무실까지 찾아와 ‘변호사인 줄 모르고 딱지를 발부하였다’고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 했는데도 당신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불의에 항거하려고 불법 유턴을 했다는 건가요?? 뭐가 어떻게 연관되는건지..
iamhelene
13/12/20 10:06
수정 아이콘
그 당시 변호사와 검사의 위치가 상당히 높았던것 같습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참고)

경찰입장에서는 법조인을 처벌하기가 영 껄끄러운 상황이었던 같구요. 그래서 괜히 불법을 자행 경찰을 곤란하게 한것 같습니다.

'뭐 힘없는 서민은 너네 마음대로 잡아가는데, 나에게는 어떻게 하나 보자' 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런지..
13/12/20 12:30
수정 아이콘
불법유턴을 했던 이유가 적시되어있지 않아서 그렇죠.
아마 [분을 참지못하고 (다시 따지러 가기위해) 운전을 하던....] 이런식으로 이어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믄별
13/12/20 13:11
수정 아이콘
저도 Toby 님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화를 낸 대상은 경찰이었고 그 화가 다 풀리지않아서 다시 따지러(?)가기 위해 불법유턴을 한 것이라고 말이죠.
왜사냐건웃지요
13/12/20 10:15
수정 아이콘
항상 존경하고 인생의 롤모델로 여깁니다.
정권을 잡은뒤.. 수구세력과 타협하지 않으면 일을 할수없다는 것을 알고 타협해서 양쪽으로 욕먹은게 아쉽기는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라면.. 당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우리가 모를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네요.
적어도 노무현이란 사람은 남 뒤통수치는 사람은 아니고,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살아가면서 항상 느낍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13/12/20 10:27
수정 아이콘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고향집이 김해로 이사를 간지 꽤 되었지만 생전에 가까이서 한번도 보지 못하고 뒤늦게야 찾아본게 너무 아쉽습니다.
민트홀릭
13/12/20 10:57
수정 아이콘
오늘 시험도 끝나는데 영화 보고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군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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