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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22 10:32:20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똥 밭에서 구를 각오가 되어 있는가?

마키아벨리...


오랫동안 로마 교황청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이 항상 곁에 두고 틈 날 때 마다 애독했다는 책…출판 후 한 동안 “나쁜”책의 대명사였던 책…바로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입니다.

늘 책은 많이 읽는다고 하면서 유명한 고전 작품들이나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저작들은 결코 읽지 않아서 “습자지보다도 더 얇은 지식 수준”을 자랑(?)하는 제가 드디어 큰맘 먹고 이 책을 골라서 완독했습니다 (이거 다음에 대기하고 있는 책이 [삼국유사], 플라톤의 [국가], 사마천의 [사기]인걸로 봐서 제가 헛바람이 들어도 너무 단단히 든 것 같습니다…--;;;). 사실 제목이 주는 무게 감에 비해서 책의 분량은 많지 않아서 번역서 기준으로 순수 [군주론]의 내용은 174페이지 정도입니다. 맘 잡고 읽으면 하루면 끝낼 수 있는 양이지요.

그런데 짧은 분량에 비해서 [군주론]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일견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몇 부분만 옮겨보자면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군주론 3장)]

[…그러나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울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군주론 15장)]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됩니다. 이 조언은 모든 인간이 선하다면 온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사악하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군주론 18장)]

뭐 이런 내용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요즘 우리가 정치인들을 보면서 비난하는 내용의 핵심들을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당연히 해야만 하고 꼭 해야만 하는 절대명제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거야 말로 진정 악행을 권장하는 “악마의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 내면을 좀더 들여다 보니 다른 관점들도 보이더군요. 우선 마키아벨리는 형이상학적인 정치 담론이나 종교적인 관점에 얽매인 정치철학을 현실의 문제로 끌어내려서 정치영역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주장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멋지고 우아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른 말로 선을 설파하는 일이야 어찌 보면 더 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현실 정치로 내려오면 군주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행한 일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다수에게 피해로 다가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오히려 악행이라고 생각되던 일들이 나중에 보면 다수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히 뜬구름 잡는 소리로 애먼 여러 사람들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냉혹하더라도 현실을 관통하는 조언을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취하자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어찌되었던 악을 행하더라도 “외양”만큼은 최대한 그럴싸하게 “선”으로 포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측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도 결국 본질적으로 “선”과 “악”중에서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선”이 우위에 있기는 하다고 인정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일견 불편해 보이거나 오늘날 우리가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덕목과는 정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발을 땅에 붙이고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장 실용적인 답을 내놓은 근대 현실주의 정치 사상을 최초로 구현한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다음 번에는 정권을 되찾아 오고 싶은 야권에서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의 여권은 마키아벨리가 대견해 할 정도로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너무 이상적인 목표에 함몰되고 (여권에 비해)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먹고사니즘에 시달리고 있는 일반 대중들과의 교감에 실패한 것 같은 현 야권에서 정말 “똥 에서 굴러 볼 각오”를 다지는 데 있어서 좋은 참고서가 되지 않을 까 싶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법에 의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첫째 방법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둘째 방법은 짐승에게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로는 많은 경우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후자에 의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군주는 모름지기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모두 이용할 줄을 잘 알아야 합니다…(군주론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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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칼괴기
13/12/22 10:36
수정 아이콘
사실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하려면 정도로 하고 그정도 아니면 일반 인민들에게 잘하라는 거라고 하더군요.
여기에 언급된 사람이 당시 이탈리아 정치에서 짧은 시간 성공한 사람들이지 길게 뭘 한 사람들이 아니죠.
그걸 가감없이 묘사하면서 군주에 대해 재대로 비꼰 거구요.

애초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공화정 사람이지 메디치 가문과 친한 사람이 아닌지라...
Neandertal
13/12/22 10:47
수정 아이콘
뭐 혹자는 마키아벨리가 메디치 가문 사람들한데 "니네 내가 하라고 한 대로 했다가 한 번 엿먹어 봐라"하고 일부러 본인의 뜻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군주론]을 쓴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하더군요...이게 사실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정말 무서운 넘...--;;;
13/12/22 10:43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Neandertal님이 똥 밭에서 구르셨던 경험담을 쓰신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Teophilos
13/12/22 18:48
수정 아이콘
사스가 pgr....
13/12/22 11:06
수정 아이콘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 이게 김성근의 야구론인데요. 이걸 누가 몰라서 안하나요 못해서 안하는거지.
Neandertal
13/12/22 11:09
수정 아이콘
야구에서는 실현이 어렵겠지만 16세기 초의 이탈리아의 군주는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냥 군대로 쓸어버리면 되니까요...--;;;
그래도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고 합니다...그의 또 다른 저서 [로마사 논고]에는 공화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고 하네요...그럼 역시 [군주론]은 페이크???...
13/12/22 11:26
수정 아이콘
추진력을 얻기 위함...?
13/12/22 12:04
수정 아이콘
군주론의 핵심은 정교분리라고 배웠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Neandertal
13/12/22 12:08
수정 아이콘
맞다고 합니다...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이상론적인 정치체제나 종교적 필터로 본 정치체제가 아닌 현실에서 악한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정치 속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번영을 누릴 것인가? 가 [군주론]이 던지는 핵심이라고 하네요...마키아벨리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의 형태를 로마제국의 예에서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Mephisto
13/12/22 13:40
수정 아이콘
군주론은 말 그대로 군주론이죠.
이걸 현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겁니다.
솔찍히 군주론에 대한 설명에서 항상 나오는 누구구누가 애독하고 어쩌고 저쩌고 보면... 정말 섬뜩하더군요.
저게 사실이라면 책한권이 세상을 얼마나 망가뜨렸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거든요.
마스터충달
13/12/22 14:39
수정 아이콘
그쵸 현대 정치인은 군주가 아니니까요.
Neandertal
13/12/22 14:51
수정 아이콘
군주인 김정 머시기란 분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마스터충달
13/12/22 14:55
수정 아이콘
마리 앙트와네트도 요즘 핫하죠
13/12/22 20:14
수정 아이콘
Neandertal님의 글은 제목만 보고선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때문에 흥미롭습니다 크크
다양한 주제로 이런저런 지식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하네요
군주론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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