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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09 00:12
예전에 이거 본 적이 있는데, 가장 궁금한 건 그 부분입니다. '고분 이외에 한반도 내에서 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가?' 다른 의심가는 유물 혹은 유적이 혹시 있나 궁금하네요.
07/02/09 00:22
저도 레지엔님 생각과 같습니다. 유물 유적이 중요하긴 하지만 단 하나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기는 힘들거든요. 그래도 흥미있는 글이긴 합니다.
07/02/09 00:23
다른 것들은 삼국사기를 읽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토를 좀 달자면
왜가 우리나라를 지배했다는 근거는 그 신빙성 없기로 유명한 판타지 역사서 "일본서기"와, 조작된 광개토대왕비문이 전부 일뿐, 다른 어떤 사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사실을 마치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듯이 쓰시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1번 장고형 무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가 예전에 봐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장고형 무덤의 시초가 된 듯한 형태의 무덤이 백제 어느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을 본 한 일본 역사학자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평생을 걸쳐 연구해 온 것이 이것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라고요. 그냥 왜가 붙어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의문을 제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설픈 임나일본부설은 좀 빼주시고요...
07/02/09 00:29
후아님
이 글에서 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왜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삼한 여러 나라 중에 '왜'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주장이지요.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만약 삼한안에 '왜'라는 나라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다면 뒤집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왜'라는 나라의 후예가 일본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가능할 테니까요.
07/02/09 00:30
후아님 //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말한적 없습니다-_- 제가 표현을 잘못했는건지 님이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말했던건 한반도 내에 있었던 '왜'라는 집단이 한반도 남쪽을 지배했다는 이야기지 '일본열도'의 사람들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즉, 한반도 내의 '왜'와 '일본열도'의 국가는 전혀 다른 집단입니다. 또한 광개토대왕비문도 조작되었거나 표현이 과장되었다고 분명히 얘기했고 조작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내의 '왜'라는 집단도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레지엔 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과연 '왜'라는 집단이 강력했다면 왜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지요. 물론 침략국가(?)로 몇번 등장하지만 정식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측 기록과 당시에 일본열도에 존재할리 만무했던 '침략국가'인 왜라는 존재를 생각한다면 한반도 내부에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구요. 무덤외에 다른 흔적은 저도 모르겠네요. 혹시 다른 전문가들이 답변해 주실런지..
07/02/09 00:43
그런데 '삼국지 위지 권30 오환선비동이전 제30 왜편'에는 '왜인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산으로 섬에 의지하여 나라와 읍락을 이루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네요..글쓰신 분이 인용하신 삼국지와 제 리플의 삼국지가 같은 책이라면 뭔가 모순이 있는거 같은데요..
07/02/09 01:43
제가 알기로, 여러 상황상(정치적, 또는 감정적 이유로) 어떤 나라의 국력을 과장하기도, 축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광고토대왕비의 '왜 정벌'은 본디 '백제에 대한 견제'인데, 고구려 입장에서 백제를 '비하'하려고 백제 대신 '왜'를 부각한거란 해석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황상 어긋나는 기록이 많고, 그 중에서 논리적이고 타당한 기록을 좀더 신용하기 마련. 이런 흐름에 의해 왜에 대한 평가는 '국가라 평하기 어려울 만큼 약했다'가 정설일 겁니다. 그런데 정설과는 틀린 약간의 어긋남을 근거로 '왜는 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역사 왜곡 일뿐, '밥 많이 먹는다고, 무조건 살찌는 것은 아니다'란 말을 근거로 '그러므로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07/02/09 03:10
김연우// 그게 현재 한국 학계의 주류적인 해석으로 알 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요시노 마코토의 "한일 2천년사"라는 책을 찾아서 읽어 보시면 한국 학계의 현재 입장이 잘 나와 있습니다.
07/02/09 18:43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4세기 이전 기록은 하나같이 연도가 뒤죽박죽이고 엉망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만한 것들이 없습니다. 학계의 교수들도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문제를 가져다가, 임나일본부는 이미 극복되었다, 혹은 왜의 국력은 강했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07/02/09 19:31
반남고분이 수수게끼인것은
그것이 전방후원분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양식이 같다는 거지요 문제는 전방후원분은 일본고분이 가진 고유의 양식인데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그 기원이 대단해서 3세기까지 올라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주에서 보이는 고분은 그연대가 아무리 높게 잡아도 4세기말 5세기초로 나오는걸로 압니다. 일단 연대가 일본에 비해 대단히 늦습니다. 일본에 뚜렷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3세기경 나타난 증거가 보이지 않다 하지만 정확한 문헌에 상응하는 유물이 존재하지 않아서 이고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작위적냄새가 신빙성을 결여시킨다고 하지만 적어도 일본고분은 그당시 일본의 국가체계가 결코 군장국가같은 부족연합형식으로는 볼수없는 상당한 조직체계를 갓춘 정치적집단이었음을 무언중에 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나오고 있는 철제무기등은 그 산지가 가야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제작기술조차 가야에서 나온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또한 무리가 있다고 할정도입니다. 야마토정권으로 표현되는 이 당시의 일본국가가 진정 실재 했는지 안했는진느 보다 확실한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유물(예로 왕궁터 수도로서 인식될수 있는 대규모 건물유적지등)이 발견되지 않는한 모르는 일이고 저 나주고분군은 연대가 늦는다는 절대적 약점이 있는 이상 저기에 우리의 해석을 마음대로 같다 붙이기 곤란하지요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는 정말 미로같이 그러나 무언가 보이지 않는 끈이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 실재를 증거할수 있는 절대적 유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밀고 밀리는 대립이 계속되지 않을까 합니다.
07/02/10 00:46
광개토대왕이 정벌군을 이끌고 갔던 당시의 상대측은 백제+가야+왜 라는 3세력의 연합군이었습니다. 당시 5만이나 되는 군대를 이끌고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죠. 게다가 그때의 신라는 고구려의 반속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위상을 떨친다는 면에서도 거대 병력을 동원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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