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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31 00:40:50
Name 王天君
File #1 A_touch_of_sin.jpg (60.7 KB), Download : 52
Subject [일반] 천주정 보고 왔습니다.(스포 있습니다)



빈부 격차는 선진국이라는 허울을 쓴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보편적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20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생겨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죠. 그리고 시장경제에 문을 연 후 생산과 소비에서 가장 핵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외부의 풍요와 내부의 빈곤이 가장 극을 달리는 나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돈의 물결 속 몇 장이라도 더 건지려 익사 직전까지 휩쓸릴 수 밖에 없는, 혹은 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파도치는 중국이란 공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따하이는 마을의 탄광 사업에 얽힌 비리를 폭로하려다 연루된 자들의 하수인에게 된통 맞고 조롱을 당합니다. 조우산은 바이크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산적들에게 둘러쌓입니다. 샤오위는 성매매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님에게 행패를 당합니다. 샤오후이는 어린 나이에 떠맡은 가장의 책임과 그가 진 빚 때문에 찾아온 옛 동료의 위협에 맞닥뜨립니다. 이들 주인공은 모두 돈 때문에 파국에 몰려있습니다. 그리고 돈 때문에 그들은 생명을, 자존심을, 정조를, 인간다움을 유린당합니다. 이들의 인생은 너무나 하찮고 암울합니다. 이 끝없는 부조리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아 장 커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에 희생되는 약자의 애환이 아닙니다.  영화는 이들의 울분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연민을 호소하지도 않습니다. 돈과 욕망 앞에서 이들은 결코 온전한 피해자로만 남는 것이 아니거든요. 애초에 따하이의 고발은 정의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촌장이 약속했던 커미션을 받아먹지 못한데다 자신을 욕보인 놈들을 향한 울분이었죠. 광산이 터졌는데도 그는 전복된 트럭에서 떨어진 토마토를 주워먹기 바쁜 한량입니다.  저우산은 권총강도질로 대낮에 사람을 쏴죽이고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있죠. (영화에서는 킬러라고 소개되는데, 그게 어디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창녀가 아니라며 몸을 팔지 않을 것이라 항변했던 샤오위는 사실 유부남과 내연의 관계를 갖고 있는 데다 이것이 들통나 줄행랑을 치는 사람입니다. 샤오후이는 동료의 치료비를 물어주기 싫어서 도망치는 무책임한 어린 애구요. 그래서 이들의 비극은 지극히 건조하게 그려집니다. 거기에는 타락의 정도와 가진 돈의 차이가 있을 뿐, 속물을 재는 저울 위에서 어느 한 쪽이 기울만큼 이들은 온전한 선인이 아니니까요.

이 네 명의 중심인물 외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돈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따하이의 동료들은 비굴한 침묵을 지키고 사장의 부하들과 촌장의 한패들은 비굴한 충성을 보내고 있죠. 저우산의 형제는 지나칠 정도로 공평한 분배를 가족간에 적용합니다.  샤오위가 카운터를 보는 매춘 업소의 여자들은 시체처럼 대기하다가 자신의 번호가 호명될 때 불려나갑니다. 그녀를 태워주던 공사장 트럭의 인부들은 부당한 통행세를 요구당하고 두들겨 맞습니다. 샤오후위가 일하던 공장의 사장은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하고, 그가 짝사랑하던 여자는 그가 보는 앞에서 손님의 몸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을 채우는 나머지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입니다. 노곤함이 떠오른 얼굴과 허름한 옷으로 멍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보면, 중국은 절대로 경제대국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중국이란 공간 자체 또한 빈곤함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탁 트인 하늘 아래로 펼쳐진 것은 오로지 고속도로나 벌판, 완공되지 않은 채석장 같은 장소들이고,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담기지 않습니다. 그 미쟝센이 먼저 전달하는 감상은 언제나 황량함과 쓸쓸함이고, 그곳은 놀라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는 시설과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죠. 때로는 한 프레임 안에 동시에 담긴 대도시의 건축물과 대조되고, 혹은 발전된 도시 속에서도 군중 속의 고독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나라가 이루어낸 성장은 여전히 살풍경하게 보이고, 사람들은 메마른 표정으로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배경을 옮겨가면서, 발전의 정도를 차례차례 보여주고 어디에나 자본주의가 침투해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시간 동안 영화 속에는 동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중국의 인민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채찍질을 당하며 몸부림 치는 말, 멍한 눈으로 트럭에 실린 채 팔려가는 소, 차에 갇혀 있다 잽싸게 탈출하는 뱀 한마리와 목줄이 채워진 원숭이, 봉지 안에서 방생을 기다리는 금붕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란 누군가에게 가축 아니면 애완동물일 수 밖에 없죠. 돈에 종속된 채로 어딘가에 매여서, 혹은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존재 말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부조리를 그저 보여주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탄에 그치는 대신 영화 속 인물들의 폭력을 통해 이 부조리에 대해 강렬한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요. 수호지의 경극 한 장면과 동시에 엽총을 들고 나서는 따하이는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호걸처럼 그려집니다. 저우산의 강도질에서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대한 싸늘한 냉소가, 샤오후위가 투신하는 장면은 스물스물 잠식해오는 자기파괴의 충동이 담겨져 있구요. 샤오위가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무협영화 여고수의 초식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억울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경극 옥당춘을 통해 그녀의 무고함을 대신 말해주지요.  네 죄를 모르겠느냐!! 하고 호통치는 법관 다음 바로 경극을 보는 관중들을 천천히 보여주는 장면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건 아닐까요? 당신들 역시도 이 여인의 죄에 무관하지 않다!! 혹은 당신들 모두가 이 부당함을 목격하고 있는 증인들이다!!

사람 목숨이 돈 몇푼 때문에 쓰러져 나가는 현실, 이것이 바로 경제 대국이라 불리는 중국의 현 주소입니다. 성장의 득을 보는 것은 소수의 자본가들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고단한 삶의 투쟁에서 헤어나오질 못해 결국 살인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다뤄지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남 걱정해줄 팔자가 될까요?

@ 이번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분들의 글을 참조한 부분이 많습니다. 경극 같은 경우 영화를 보면서 연결 고리를 못찾았습니다.
@ 천주정의 실화를 다룬 블로그 포스팅입니다.  http://blog.naver.com/vlzkcbzhwl/50191863659?copen=1&focusingCommentNo=1130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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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난고기
14/03/31 01:29
수정 아이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무협영화의 형식을 빌려온 사회비판영화란 짤막글에 혹해서..)우리나라에서 개봉은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하네요..
에피소드 1에서 해당 주인공이 엽총을 들고 나서는 장면은 대의를 품고 강호에 나서는 협객의 풍모와 대비되어서 뭔가 웃기면서 애달프던게 기억에 남네요.
에피소드가 연결되면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스치면서 지나가게 되는, 혹은 에피소드3의 여인이 에피소드1의 장소에 나타나게된다든가 뭔가 연결점들이 하나식있던데 에피소드4의 소년은 갑톡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영화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고있던지라 순간순간 졸았던적도 있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뭔가 연결점이 있나요?
王天君
14/03/31 01:46
수정 아이콘
에피소드 4도 있기는 있습니다. 에피소드 3의 주인공 샤오위의 불륜 상대인 남자가 에피소드 4의 주인공 샤오후위가 일하던 공장 사장이에요.
물만난고기
14/03/31 02:56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기차타고 떠나는 바로 그 남자를 말씀하시는거죠?
짤막하게 나오는 씬이라 기억을 못했나봅니다.
탄산수
14/03/31 01:55
수정 아이콘
저도 시사회때 봐서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불륜남이 고속철도 타고 가다 사고나고, 여자가 티비로 보잖아요. 그리고 폭스콘 청년이 처음 등장해서 고속철도로 도시로 갑니다. 그리고 그 청순한 여자분이 맞은 편에 앉아있고. 제 기억이 맞나 모르겠네요 ㅠ

전 중국이 이 영화 개봉을 허가해줬다는 사실이 놀랍더라구요.
王天君
14/03/31 02:05
수정 아이콘
맞아요!! 기억납니다!!
물만난고기
14/03/31 03:00
수정 아이콘
중국에서는 개봉 못했지 않나요? 중국내에서 상영금지조치를 받은 것으로 기사에서 봤는데 말이죠.
탄산수
14/03/31 07:43
수정 아이콘
앗,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중국 상영 금지군요. 어쩐지.. 예전에 어디선가 중국이 허가해줬다는 얘길 보고 오.. 중국 많이 컸네..라고까지 생각했었는데, 역시나였군요...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영원한초보
14/03/31 10:54
수정 아이콘
중국사람들이 수호지 영웅들 좋아하는 걸 보면 그래도 되나 할때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사람을 막죽이니까요. 수호지 읽어서 중국 사람들이 포악해졌다고 정치인들이 호도할 때도 있고요. 현대판 수호지가 나오면 금서가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하네요. 보시라이를 고구로 설정하고 영화만들어도 재미있을것 같았는데요. 옛날에는 이러면 난이라도 크게 일으켰는데 자본주의에서는 오히려 이런게 힘들어 보이네요.

그런데 이 영화 가족이나 여자랑 같이 볼만 할까요?
王天君
14/03/31 13:34
수정 아이콘
아니요 전혀.... 굉장히 암울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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