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전에 편의점에서 근무를 합니다. 오전엔 물건이 들어오기 때문에 열심히 창고를 오가며 물건 정리를 하고 있었죠. 보통 가게 문에는 손님이 들어오는 걸 쉽게 알기 위해 종을 걸어두거나 하잖아요. 가게 안에 있는 작은 창고에서 과자 정리를 하다가 소리가 나길래 어서오세요, 인사를 하며 카운터로 왔습니다. 근데 어째 들어 온 손님 행색이 좀 이상합니다. 아마 서비스업에 오래 일하신 분들은 다들 아실 거예요. 이게 편견일수도 있는데 대충 옷차림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이 되잖아요. 근데 이 사람 정말 예사롭지 않습니다. 옷차림이 진짜 꾀죄죄하더군요. 바지는 엉덩이 중간까지 내려져 있는데 안에 또 바지를 입은 건지 아니면 속옷인지 난감한 레이어드 패션... 옷차림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며칠 못 씻은 것처럼 꾀죄죄... 거기다 작은 행동들이나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도 좀 이상하고 암튼 여러 가지로 살피게 되더라구요. 뭔가 혼자 막 중얼중얼 거리다가 카운터 근처로 오더니 앞에 놓인 작은 상품들을 하나씩 들어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봅니다. 껌이나 사탕 같은 제품들 말이죠.
말하는 걸 보니 외적인 모습만 이상한 게 아니라 정신도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오래 일하다보면 간혹 그런 사람들을 만나곤 해요. 정신적으로 좀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 한두 명씩은 있잖아요. ^_^; 이 사람도 이 쪽 부류구나, 하는 촉이 오더라구요.
그러다 그 사람이 앞에 놓인 작은 과자 하나를 집더니 얼마냐고 물어봅니다. 역시 가격을 알려줬습니다. 과연 돈은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서 가격을 지불하더군요. 그리고는 혼자 또 뭐라뭐라하며 가게를 나갑니다. 저는 다시 창고 쪽으로 가서 과자정리를 했습니다. 조금 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또 카운터 쪽으로 잽싸게 오는데 아까 그 손님입니다. 이번에도 카운터 쪽으로 오더라구요. 여기 카드 같은 거 안 주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적립카드 말하는 거 같아서 카운터 옆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어 드렸죠. 그랬더니 하나 더 주면 안 되냐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주려고 그런 다네요. 근데 아무리 봐도 여자 친구가 있을 차림이 아니었습니다. 진짜로... 정말로요... 게다가 이 사람 역시 이 카드를 사용할 일이 있어 보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한 사람당 한 개만 된다고 얘길 했습니다. 분명 가져가도 쓰레기밖에 안 될 것 같아서요. 그건 또 그거대로 낭비가 되는 것이니. 그래서 안 된다. 달라. 안 된다. 달라 몇 번의 말이 오가고 그 사람은 마지못해 수긍하더군요. 그러더니 갑자기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는 앞으로 상체를 숙이며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뜬금없이 내가 아가씨 찍었어. 하면서 한쪽 눈을 연신 깜빡거리며 저한테 윙크를 막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찰칵찰칵, 이라는 소리도 냅니다. 저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하죠. 아... 이놈은 이 구역의 완벽한 또라이구나. 워낙에 이미 정신이 좀 이상해 보였던지라 무섭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아무 소리도 없이 멀뚱히 있으니 또 혼잣말을 해대더니 알아서 나가더라구요. 나가는 뒷모습을 살피며 생각했죠. 한 번만 더 들어오면 바로 신고해야겠다고 말이죠. 근데 그 뒤로는 안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간만에 만난 이상한 그 남자를 금방 잊습니다.

4월 8일
형사 두 분이 가게로 오셨습니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간 성범죄자를 찾고 있는데 이 근처 가게 방범카메라에 그 사람이 찍혔으니 여기 CCTV에도 찍혔을지 모른다면서 확인 좀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 혼자서는 보여드릴 수 없으니 점장님께 바로 전화를 드려서 형사님 바꿔드렸습니다. 근데 옆에 계신 다른 한 분이 그 성범죄자 사진이 담긴 종이를 가지고 계셔서 얼핏 봤는데... 어랏? 어디서 많이 본거죠. 그래서 사진 좀 제대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암만 봐도 어제 그 사람 같더군요. 그래서 형사님한테 저 어제 이 사람본 거 같다고, 가게에 왔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형사님이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보여 주시더라구요. 다른 가게 CCTV에 찍힌 영상을. 근데 어제 제가 본 그 이상한 옷차림이며 걸음걸이 그대로입니다. 더 볼 것도 없이 확실하더군요. 그 뒤로 이것저것 물어보셔서 있는 그대로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어디로 갔냐고 하시는데 제가 그걸 알 턱이 있나요... ㅜㅜ

오늘 아침에 점장님한테 얘기듣고 알았습니다. 그 사람 뉴스에 나왔다 하더라구요. 내가 뉴스에서나 볼 법한 범죄자를, 그것도 무려 전자발찌 찬 놈을 만났을 줄이야... 헐...

올라온 기사들 보는데 역시나 엊그제 봤던 그 얼굴입니다. 모자이크도 눈 부분만 해놔서 바로 알겠더군요. 기사보니 도주한 당일에 제가 만난거더라구요. 뉴스에도 나오기 전에 말이죠. 검거 당시에 바지도 거꾸로 입고 신발도 한쪽만 신고 있었다네요.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어요. 여자친구가 있을리가... 허허허. 참... 그래도 그 사람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이틀만에 빨리 잡혀서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저는 별 일이 없기도 했고 처음부터 좀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약간의 농담을 섞어 말하긴 했지만 여러분 진짜 조심하세요. 세상엔 멀쩡한 사람이든 제가 만난 성범죄자처럼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든간에 또라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어디로 튈지 감도 안오니까요. 만약에 그 날 카드 하나 가지고 실랑이 벌이던 때에 그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저한테 해코지를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지금 생각하니 좀 아찔하네요. 그냥 옛다 먹고 떨어져라, 하고 잔뜩 줄 걸 그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