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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27 09:22:22
Name 기아트윈스
File #1 b0138797_4d686c12d318f.jpg (120.9 KB), Download : 65
Subject [일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이야기


*주의: 본문은 미괄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흔히 당나라 지도라고 하면 대강 위와 같은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남쪽으로는 하이난 (海南) 섬을 비롯하여 오늘날 베트남 지역까지 발을 내리고, 동쪽으로는 발해와 국경을 접했으며, 서쪽으로는 방바닥에 엎질러버린 믹스 커피마냥 한켠으로 쭉 퍼져나가는 그림이요.

오늘날의 국경개념과 과거의 국경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건 이제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지도 이미지가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서 만들어내는 미묘한 선입견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당나라는 결코 어느 누구와 국경선을 논의한 적이.... 딱 하나 있네요. 오늘날의 티베트에 해당하는 토번입니다. 이들과 나누었던 국경선 협상을 제외하면 그들은 정해진 국경선이 없었습니다. 지도상에 국경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면 한족 거주민은 커녕 실은 사람조차 뜸한 곳에 뜬금 없이 군사 거점이 몇 개 건설되어있고... 거의 그런 식입니다. 

물론 이런 군사 거점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국가의 행정력이 미친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말 그대로 군사기지만 있는 셈이고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주 높은 확률로 이민족들)은 그냥 자기들 나름대로 사는 경우가 보통이었지요. 예컨대 북쪽에 위치한 관내 (지도상 Guannei), 하동(Hedong)의 북쪽 절반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 서쪽으로 길게 뻗은 농우(Longyou)는 당나라 원정대가 한 번 다녀갔던 곳, 베트남과 하이난 부분 역시 그냥 명목상 당나라 땅인 곳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국경에 대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건 당나라 때 활발히 사용되었고 이후 동아시아 유교국가들의 대 이민족 정책의 기본이 되는 기미(羈縻) 전략입니다. 말고삐를 씌운다는 소리인데, 그냥 쉽게 말해 명목상의 관직을 주거나, 책봉관계를 맺거나, 조공관계를 맺거나 등등을 통해 당나라의 종주권 정도를 인정 받는 정책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장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백이라도 LV가 박혀있지 않으면 뭔가 아쉽고 그래서 더 그걸 갖고 싶듯, 똑같은 기계라도 베어먹은 사과 그림이 있어야 좀 있어보이고 자랑스럽듯, 당나라는 이런 브랜드파워를 독점하고 발행하는 존재였고, 이 브랜드파워를 갈망했던 주위의 여러 정체들이 당나라와 거래를 한 셈이지요.

문제는 기미책의 일환으로 내린 관직명이 실제 관직명과 똑같은데다 사서에서 그걸 꼭 구별해서 적는 게 아니라서 나중에 보면 이게 진짜 당나라 영토인지 아니면 그냥 명목상의 영토인지 헷갈린다는 거지요. 따라서 중화주의뽕을 단디 맞고 아주 욕심을 부리면 당나라 영토를 엄청 넓어보이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中国唐朝地图
 

덜덜.... 무섭지요? 당나라가 잠시 발 담궜던 고구려와 백제지역도 잊지 않고 색칠해준 게 인상적이네요.

그렇다면 실제로 대강 내가 당나라 소속이라고 생각할 만한 영역은 어디까지였을까요? 아마 당나라가 망했을 때, 그래서 장안에서부터 뻗어나오던 당나라 황실의 종주권, 빛나는 위신이 사라졌을 때 냉담하게 돌아서서 "에이 뭐야,명품회사 다 망해서 신제품 안나온다고? 빨리 다른 브랜드가 나와야 할텐데.... 누가 되려나?" 하고 퉁명스럽게 관망했을 애들이 있을 테고, "이야 그럼 내가 어떻게든 장안을 먹고 새로운 황제가 되어야겠다"라고 야심을 품은 애들도 있을 테지요. 야심을 품은 애들은 대략 당나라 조정의 행정력이 꽤나 미쳤거나 미친 적이 있었던 지역들의 군벌들이었고, 따라서 이 지역들은 그나마 당나라 영역이라고 해줄 만 합니다. 실제로 모아놓으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660

그런데, 냉담자들이 모두 그냥 멀뚱멀뚱 구경만 했던 건 아닙니다. 어느날 이 세상에 명품백들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비록 여기가 한국이고 프랑스는 아니지만, 이런 공백기를 틈타 브랜드파워를 갖춘 명품을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데 만에 하나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가 약속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오다노가 어쩌면 루이비똥이 될 수도 있는거지요 ^오^

이 냉담자들은 오랜기간 당나라와 관계를 맺고 장안을 들락거리면서 대강 당나라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를 경험한 이들이었고, 그래서 금방 짝퉁 백을 만들어내고 명품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성공한 짝퉁 메이커가 바로 요나라였습니다.

이전까지 별 볼일 없던 부족 공동체인 거란이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당나라식 국제관계를 학습하더니, 정말 당나라 비스무리한 국가를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조정을 세우고, 천자임을 선언하고, 연호를 선포하고, 주변의 [아직] 국가를 런칭하지 않은 부족들, 혹은 만만해보이는 국가들에게 관직을 주고 종주권을 인정받고 그랬지요. 예컨대 고려가 요나라와 맺은 관계가 그렇습니다. 요나라의 공격패턴을 보면 신나게 쳐들어와서 개경도 점령하고 하는데 결국 어떤 조건으로 강화가 이루어지는지 보면 군신관계임을 인정하고 요나라 연호를 사용하고... 뭐 그렇습니다. 당나라에게서 배운 걸 충실하게 복습한 거지요.

중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946년 즈음 당시 가장 강력했던 군벌인 후진(後晉)의 수도 개봉까지 점령했었는데, "어우 우리 그냥 노략질하러 온건데 수도까지 먹어버렸네. 어뜩하지.... 에이 그냥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있는대로 징발해서 돌아가자." 하고 소박하게 철수했지요. 그닥 한족 땅을 지배할 생각이 없었어요 -_-;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요나라는 다민족 국가였고, 이래저래 많은 한족 인구가 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족전통의 거란족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안한 게 이중극점통치! 거란인은 거란식으로, 한족은 한족식으로 다스리겠다는 거지요.

이 아이디어는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후에 다른 북방왕조들 (여진족의 금나라, 몽고족의 원나라)이 한족인구를 통치할 때 비슷한 방식을 채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단점 역시 있었는데요, 통치구조가 깔끔하지 못한 관계로 부처간 관할권이 중복되고 상충되고 싸우고...마... 그런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나라식 관료기구를 잘 잡아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관료기구의 권위를 크게 저해하는, 부족전통의 의사결정기구가 있는 셈이었지요.

이 부족전통이란게 다름아니라 요즘 말로 하면 측근정치? 비서실정치?에 가깝습니다. 정식으로 행정을 담당하는 조직, 즉 각종 부처와 부처장(장관)들, 그리고 그들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대통령 밑으로 쭉 이어지는 정식 조직이 있는 반면, 대통령과 인생/정치/인연을 함께한 동지들이 청와대 비서실에 모이고 산악회 만들어서 같이 다니고 골프장 같이 다니고 하면서 또 다른 레벨의 통치기구가 공존하는 모양새이지요.

요나라, 금나라, 그리고 원나라로 이어지는 정복왕조들의 통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래서, 아주 대놓고 인맥에 기반한 측근정치입니다. 왜 칭기즈칸 이야기 같은 것들 보면 그렇잖아요, 가족이나 의형제들이 대칸 주변에 밀도있게 모여서 권력을 행사하지요. 나름 당나라 식으로 행정구역을 갖춰놓고 과거시험도 실시하고 관료도 뽑아놨지만, 늘 그런 공식적인 제도와 상호 모순되는 강력한 측근통치가 공존했습니다.

이러한 측근단을 한문 기록에서는 XX왕부(王府)라고 불렀습니다. 김용의 소설들, 특히 사조영웅전을 보면 금나라 황자들이 다들 무슨 왕이어서 각자의 왕부에서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왕부는 그냥 황자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사병 캠프이기도 합니다. 왕부의 식솔들은 그냥 식솔들이 아니라 사병들을 이끄는 장군들이기도 하구요.

몽고족의 원나라 역시 이런 이중통치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몽고족의 경우 이런 측근단/사병캠프에 대한 명칭이 오르도(ordo? ordu?)였습니다. 본래 족장이 기거하는 큰 텐트를 의미하는 말이지요. 몽고족에게 직접 발린 러시아인들이 이 단어를 마음속 깊이 기억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닐겁니다. 고 러시아에서는 오르다(orda), 우크라이나어로도 오르다, 체코말, 폴란드 말에선 이 오르도를 호르드(hord), 호르다(horda) 등으로 불렀습니다. 이게 영국까지 굴러와서 호드(horde)가 됩니다.




록타르 오가르!

청와대 비서실 야유회 기념사진입니다. 예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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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초보
14/08/27 09:27
수정 아이콘
클릭하면서 겜게 가야 되는거 아닌가 했는데...

첫짤과 막짤이 엑박인걸 보니
양괄식 구성이네요

엑박이라 막짤 기대했더니 크크
기아트윈스
14/08/27 09:36
수정 아이콘
엑박 너무 화나요.

이제 잘 나오나요? 흐흐
영원한초보
14/08/27 09:57
수정 아이콘
네 다 잘나오네요 크크
백화려
14/08/27 09:28
수정 아이콘
이게 무슨 와우 이야기?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크크
정지연
14/08/27 09:31
수정 아이콘
왠지 운영자분께서 꼼꼼히 안 읽어보면 겜게로 갈지도 모르겠어요 크크
기아트윈스
14/08/27 09:37
수정 아이콘
사실 기대하고있습니다
초식성육식동물
14/08/27 09:48
수정 아이콘
당나라 국경 이야기 하시길래, 칼림도어 호드와 나엘과 휴먼의 국경에 관한 썰인가 하고 읽고 있었습니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14/08/27 09:57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시트콤 재밌겠다 하고 봤는데 다큐멘터리 본듯한 기분이네요.
정성스런 글 고맙습니다. 잘 봤습니다.
14/08/27 10:10
수정 아이콘
오르도라는 말에서 원조비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저만 있는건 아니겠죠...
기아트윈스
14/08/27 17:23
수정 아이콘
후후...사랑을 고백한다?
하야로비
14/08/27 23:51
수정 아이콘
하지만 라찌가 출동한다면?
Forgotten_
14/08/27 10:14
수정 아이콘
저번에 롤러코스터 타이쿤에 이어서 재미있네요. 이런거 너무 좋아요..
STARSEEKER
14/08/27 10:28
수정 아이콘
역시 같은 분이셨군요 흐흐..
어제 잠이 안와서 엔하위키서 거란 여진족의 차이를 정독했었는데 바로 복습하네요-0-a
14/08/27 10:42
수정 아이콘
와우 이야기 언재 나오나 하다가 빠져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네요 크크 추천하고 갑니다~ : )
이쥴레이
14/08/27 11:21
수정 아이콘
청와대 야유회 비서실에 나온 인물들 전부 죽었다고 합니다. ㅠ_ㅠ
몽키.D.루피
14/08/27 14:12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어디 미지의 세계에서 튀어나와서 유럽문명 비스무리하게 생긴 도시들을 휩쓸고 다니는 피부색 다른 야만인(서양입장에서)이라는 측면에서 몽골과 호드가 비슷하네요. 전 와우는 안해서 호드 피부색이 원래 갈색이었다는 걸 얼마전에 처음 알았는데 까무잡잡한 갈색 피부색, 납작한 코, 넙데데한 얼굴, 강인한 골격, 이건 뭐 영락없이 그냥 몽골인이군요..
기아트윈스
14/08/27 17:26
수정 아이콘
얼라-호드 구성을 가만 보면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얼라이언스가 유럽-기독교-옥시덴트 공동체라면 호드는 거기서 제외되는 모든 민족문화들의 흔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오크가 몽고와 일본을 8:2 정도로 섞은 셈이고 타우렌은 아메리카 인디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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