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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03 20:12:07
Name 트린
Subject [일반]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6)









은실은 엄마의 말을 똑똑히 듣고 이해했음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 몇 초 정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가 알기론 남친 수성은 취미 동호회 빼고 상급자가 두 명 이상 있는 조직에 몸을
담으면 심각한 정신적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켰다. 해당 알레르기는 직장에 안착하기에 심각
한 장애물로 작용해, 수성은 정규직으로 일한 적이 단 한 번 없었다. 군대는 운 좋게 가지 않
았다.


‘엄밀히 따지면 모든 게 오빠의 일방적인 설명이지…….’


그러면 단 한 번 봤던 알레르기 증상도 꾸며낸 것일까?
보드게임 살 돈이 없다고 투덜거리기에 은실은 사장이 먼 친척뻘이던 제지 회사의 창고 관리
직원으로 수성을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다.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수성을 어르고 달래서 출근
시켰다가 축하 겸 위로로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하고 옥탑방에 들른 날 그녀는 희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원래도 복잡했던 방 안에 1센티미터 높이의 도미노 블록이 일렬횡대를 자랑하며 빼곡히 깔려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으로 이뤄진 블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점령군처
럼 책 더미 사이를 누비고, 보드게임이 꽂힌 서가를 가로질러, 도색 전의 워해머 사만 유닛과
필승 덱을 짜기 위해 나와 있던 디앤디 미니어처가 어지러이 섞인 책상까지 물들였다. 모든
도미노 들은 은실은 알지 못하는 법칙인 천 개당 안전장치 한 개를 설치한다는 숙련자 원칙과
사다리, 낙하산, 철공 시소 같은 경쾌한 눈요깃거리 연결점으로 이어져 있었다. 서로 많이 떨
어져 있는 것 같아 도미노가 끊길 것 같은 지점에선 어김없이 묘한 물건들이 튀어나와 이리
구르고 저리 움직여서 떨어진 블록을 넘어뜨리도록 고안해 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약한 최면 상태를 부르는 플라스틱 만리장성, 8만 8천 개로 추정되는 도미노 라인에서
간신히 눈을 뗀 후 이 이해하기 힘든 사태의 원흉을 쳐다보았다. 점령군의 장군인 동시에 침
략당한 영토의 주인인 수성은 모내기를 하는 농부처럼 힙색에서 부지런히 도미노를 꺼내 하
나씩 세우는 중이었다.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의 움직임임에도 그의 뒷모습은 왠지 어둡고 탁
해 보였다.
라인의 길이와 규모를 봐서 출근한다고 통화만 한 뒤 나가지도 않고 그때부터 도미노를 세웠
던 남자의 해명은 조직 알레르기 증상. 그런 것도 있냐고 소리치며 은실이 묻자 수성은 꽉 짜
인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도미노만 쌓
게 된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때 그냥 넘어간 내가 바보지. 꾸며낸 말도 안 되는 얘기에 속았다면 정말 분해. 실망이야.’


은실의 칼 같은 눈빛에 수성은 어쩔 줄 몰랐다.


"설명해 봐, 오빠. 엄마 말이 진짜야?"
“진짜야.”


은실은 주름이 생길 정도로 입을 꽉 다물었다. 수성이 대답할 찰나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속해 있는 부서는 대외 협력 및 포섭이란다. 무슨 소린지 알겠니?”
“사실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과거 거기에 속해 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제작부로 자리
를 옮겼어요. 그냥 여러 가지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고 홍보하는 일이에요.”


다급히 급한 불을 끈 수성이 은실을 바라보았다.


“은실아, 믿어줘. 난 네게 계획적이거나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게 아니야. 그랬으면 네게 호
감 갈 일만 골라서 했겠지.”


은실의 머릿속으로 상습적인 지각, 미니어처 보드게임 입문 강권, 징그러웠던 젖소의 춤, 된
장 소스 피자, 기타 혐오스러운 버릇 등의 모습이 쓱 지나갔다.
하긴 그렇다.
어느 정도 누그러진 딸의 표정 속에서 불만을 느낀 대통령이 연거푸 물었다.


“언제 포섭되었니? 어떤 경로로 그런 비밀 조직에 들어가지? 들어간 다음 무슨 교육을 받
아? 교육 과정은 첩보원이야, 군인이야, NGO 형이야, 학자형, 행정관료형이야? 이네디의 단
중장기 목적과 최종 목적은 뭐지? 아 조직과 전투는 했어? 접전은? 적과 아군을 어떻게 알
아보지? 대한민국에 해를 끼친 적은 있어? 우리 딸과는 얼마나 심각한 사이야? ABC로 말해
봐. 물론 C가 가장 강한 거야. C야? 그래?”


마지막 질문에 기겁한 은실이 소리쳤다.


“엄마!”
“제작부라는 것도 이상해. 암살이나 테러 담당은 아니야? 사실 이미 이네디란 사실도 숨긴
판에 뭘 믿겠어.”
“어엄마!”


은실이 연거푸 발끈하는 동안 어느새 모인 심판 포함 스탭진 세 명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
통령 뒤에 서서 말을 걸었다.


“저, 저기 게임 게시를 언제쯤…….”
“네?”
“대통령님께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토너먼트 진행이 멈춰 있
습니다.”


세 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불만 어린 표정이 반, 호기심이 반이었다. 내용이 들
리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당황한 대통령이 대답하기 직전 군담 미니
어처 보드게임 토너먼트 회장 내 있던 200인치 도시바 디스플레이 모니터가 켜졌다.
각종 배선과 알 수 없는 장치가 가득한 원통형 흰색 벽을 바탕으로 선내 활동복을 입은 대
통령의 남편 정형군이 몸을 수직으로 눕힌 상태에서 공중에 몸을 띄운 채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안녕? 깜짝 놀랐지?”


무중력 환경 특유의 유영 자세로 형군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하였다. 동시에
왼쪽 대각선에서는 털을 짧게 깎은 코기 혈통의 개 한 마리와 원숭이 한 마리가 서로 꼭 부
둥켜안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동물들은 핼쑥하고 생기 없어 보이는 게 꼭 노예선에 속아서
타게 된 후 강제 노동에 동원된 선원 같았다.
형군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자랑스러운 내 아내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토너먼트에 참가한다고 해서 내 비밀리
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여러 가지 볼 거리를……”
“여보, 미안한데 여기 행사가 너무 많이 지체돼서 안 되겠어.”
“그, 그래?”
“미안해. 있다가 연결해 줘.”
“아, 응, 그래 뭐. 축하의 마음은 전해졌을 테니. 잘해. 일단 끊는다.”


정지궤도에 머무는 탓에 지구의 자전을 감안한다면 다음 통신은 24시간 뒤였다. 대통령이
예선 1회전, 32강 토너먼트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게 국내 최초 국제우주
정거장 고정 활동 멤버 우주인 정형군의 방송은 허무하게 끊겼다. 일본 원숭이 “사도”가
만드는 국제우주정거장의 명물 오코노미야키 조리 시연과 코기 견 “해피”가 만드는 호두
과자 반죽 비법 대 공개 쇼도 함께 묻혔다.  
화면이 꺼지고 대통령이 수성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미안합니다. 진행하세요.”


심판이 고개를 끄덕이고 토너먼트 개시를 선언했다. 박수가 빗발쳤다.


“선전(善戰)을 다짐하며 선수 상호 간에 예의.”


대통령과 수성이 일어서서 손을 맞잡았다.
수성이 말했다.


“경기 끝나고 모두 다 말씀드리고 모두 다 조사받겠습니다.”
“그 말 진짜지?”

수성은 은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


악수가 끝나고 한 여자의 엄마와 그 여자의 남친이 결연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제1회 월드 챔피언십 군담 미니어처 보드게임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



슈욱 쿵 슈욱 쿵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났다. 인공 근육이 바삐 움직이는 소리였다. 진원
지 없이 시내에 혼자 떠돌던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마침내 건물 8층만 한 쇳덩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기에 최고로 효과적이지는 않지만 최고로 멋지기는 한 이족보행병기들
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잭이었으나 동일 기종이 아닌, 임무에 따른 파생형이었다.
내장산 국립공원 단풍 절정 철처럼 온통 붉은색에, 소림사 스님 머리와 2차대전 독일군
헬멧을 잘 섞어 반 뚝 떼어놓은 듯한 잭의 머리에 뿔이 솟은 기체는 지휘형으로 우수한
지휘관인 사샤 아즈나블 소령이 탑승했다.
어두운 카키 그린 색깔의 잭 다섯 대 중 두 대는 바주카 포, 세 대는 기총으로 무장하였
다. 이들은 숫자나 생김새, 무장 상태가 딱 조직의 중추임을 실감케 만들었다.
마지막 한 대는 상체는 잭이었으나 하체는 무한궤도가 달린 탱크형이었다. 해당 기체는
도시에서 뜬금없는 사막색 도색 상태나 양손이 불쌍한 불구 해적처럼 집게인 점, 무장이
탱크 부분에 삼연장 기관포가 장착된 상태만 봐도 참 얜 싸겠구나, 희망이 없구나 하고
절감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별명이 “붉은 빨강”인 아즈나블의 지휘관 기가 손을 뻗어 후열의 기체 어깨에 접촉했다.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의 황무지 악한들이 착용할법한 강철 어깨뽕과 어깨뽕에 달린
쇠뿔 안에 숨겨진 통신선이 지휘관 기의 강철 손에 있던 통신선과 자동 연결되었다.
완벽한 원형 조종석 속 사샤가 물었다.


“리노프스키스키 입자의 농도는?”  
“93으로 약간 나쁨입니다.”
“흠.”


뿔, 그러니까 통신 강화 버전 잭의 중계만 있다면 무선 통신이 가능한 수준이다.
리노프스키스키 입자는 분사된 공간 내의 전파를 차단하여 눈으로 실측하는 방법 외에
모든 탐지기와 통신 장치를 무력화 하고 활용방법에 따라 동력원이나 폭발력으로도 쓸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만능의 물질이었다. 입자가 짙지 않다는 사실은 적인 연방이 이곳
근처에 매복하지는 않았다고 해석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소령은 방심하지 않았다.


“계속해 징검다리 식으로, 건물을 끼고 간다. 놈들은 사격전에 능하니까 말이야.”
“넷.”
“네가 뒤로 전달해라.”


명령을 받은 잭이 뒤의 잭의 두 손을 사이좋은 연인처럼, 한시라도 떨어지면 안 되는
인연처럼 손가락 깍지를 끼고 맞잡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노란 형
광 모노아이카메라가 다른 모노아이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분을 아니 통신을 마친 잭을 흘려보낸 뒤 명령받은 잭은 다음 잭을 와락 껴안았다.
등과 엉덩이에 손이 닿은, 안긴 잭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놓아주고 손을 높이 쳐들어
자신은 껴안을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머지 다른 잭에게 알렸다. 일종의 프리 허그
였다.  
근처 높은 곳에서 강철 거인들이 난교를 거듭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십수
개에 달하는 냉장고 포장 상자 더미 어딘가였다.
전운을 느끼고 빌딩가의 사람들은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로
봇의 전투를 보겠다는 호사가나 전투 장면을 녹화해서 언론에 팔아먹으려는 장사꾼,
설마 여기까지 전화(戰火)가 미치겠느냐고 생각하는 게으름뱅이나 남는 법이다. 허나
여기 이 사람은 그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냉장고 포장 상자에 뚫린 관측구 너머로 눈을 번뜩이던 남자는 미리 설치된 유선 전화
기를 들어 속삭였다.


“관측소 8호 보고. 표적 3번가 링링 타워 앞 사거리 시속 20킬로미터로 서행 중. 행렬
은 2번가로 진행 예상. 적 구성은 지휘관기 잭 하나, 바주카 잭 둘, 기관포 잭 셋, 잭
탱크 하나. 지휘관기는 도색으로 보아 붉은 빨강 탑승 추정. 이상 보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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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09/03 20:13
수정 아이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연재 중인 웹툰이 시즌 1을 끝내면서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정신력을
나눠서 매력적인 글을 쓰기 힘들었고요.
여유가 있는 이상, 비축분을 쌓은 이상 풀겠습니다. 소수의 기다리신 분 죄송합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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