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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13 01:27:57
Name yangjyess
Subject [일반] 황석영이 말하는 이문열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있는 글을 요약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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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문열을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대구에서였다.



당시에 고은 시인이 광주항쟁 이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로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사건은 별게 아니었지만 일반면회가 금지되어 있던 당시에 동료를 격려한다는 차원에서



문인들과 언론인, 교수 등이 어울려 대구에 몰려갔다.



마침 대구에는 영남대학교를 비롯해 계명대 경북대 등지에서 교수직을 하는 지인들과 문인들도 많아서



형식적인 재판이 끝난 뒤에 술집에 모여보니 삼십 명이 넘었다.



나도 광주에서 송기숙과 함께 갔었고



마침 석방되어 있던 김지하와 이시영 조태일 박태순 이문구 염무웅 김종철 등등 여럿이 있었다.



이튿날까지 술자리가 계속되었는데 오후 뒤늦게 이문열이 대구의 기자들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가 민음사에서 '사람의 아들'을 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활발한 창작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문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술자리가 질펀해지고 있었는데 이문열 청년이 술이 올라서 김지하와 더불어 이야기를 했다.



이문열은 '삼국사기의 역사적 관점이 글렀다고 그러는데 문장은 고문 중에서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으면 대충 뜻을 알 만한 말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서예 얘기를 나누다가 이문열이 '이완용은 매국노였지만 당대의 명필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듣다못하여 나도 취한 김에 '야 이 사람아 그러면 일본군 총 맞아 죽은 동학농민군 돌쇠가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 외치고 죽겠냐' 그랬던 기억이 난다. 김지하가 '니가 서예에 대하여 뭘 아냐'고 하자



나는 홧김에 '니가 배웠다는 미학이 경성제대 창설 이래 가장 쓰잘데기없는 학문이라는 건 안다'고 대꾸했고



술자리는 파장이 되었다.









나는 이문열에게 '이제 시작하는 모양인데 모든 건 자기 선택의 문제' 라고 말했다.



나는 애초에 논쟁적인 사람이 아니다.



공격받고 오해되는 일이 있어도 그냥 흘려버리고 잊는다.



이문열이 80년대 이래로 치열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체제의 편에 서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솔직히 게을러서 그의 작품들은 거의 읽을 인연도 없었다.











내가 방북하고 베를린 거쳐서 뉴욕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마도 1992년이었다.



어느날 이문열이 뉴욕에 왔다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외롭던 시절이고 문인이 해외에서 나를 찾은 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그래서 부근에 사는 동창에게 천 불을 꿔가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아무리 망명자 신세라지만 내가 선배이니 마땅히 술은 내가 한잔 사야겠다는 허세였다.



술이 몇 잔 돌아간 뒤에 이문열이 언제 귀국할 거냐고 물어 왔고



나는 그냥 때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문열은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북한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격렬하게 얘기를 꺼냈다.



나는 무덤덤하게 듣고 있다가 나도 이형과 같은 생각이라고 대꾸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졌고 실상 군사파시즘의 모습을 띄는 독재체제라고.



이문열이 물었다. 그럼 왜 방북했냐고.



나는 언제나처럼 '민주화와 통일은 한몸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성숙되는 것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며 그것이 평화적 통일의 길이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피차 술이 좀 취하고 나서 이문열이 문득 월북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나에게 북한을 통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나는 생각한 바가 있어서 언제 뉴욕에 다시 오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 뒤에 온다고 했다.



그럼 그때 연락하라고 일어둔 뒤 뉴욕 UN으로 파견된 북한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이문열 부친의 월북 시기와 인적사항을 적어서 팩스를 넣었다.



좀 기다려보라더니 사흘 뒤에 답변하는 팩스와 전화가 차례로 왔다.



팩스에는 이문열 부친의 간단한 이력과 가족관계가 적혀 있었고 생존해 있는 현주소도 나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이문열이 뉴욕에 왔을 때 그 팩스를 보여 주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문열의 부친 이원철은 북한에 가서 전공을 농업경제사가 아닌 수리공학으로 바꿨다.



그는 남로당에 대한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정도로 대단히 유능한 지식인이었다.



원산의 어느 공업대학에 직을 얻었고 재혼하여 오 남매를 두었다.



종이에는 이문열의 배 다른 아우들 이름과 직업과 나이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문열은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무너지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처절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을 닦았다.



한참 뒤에 격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이문열은 술 한 잔을 넘기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감쟁이, 우리 어머니는 진작 당신이 재혼할 줄 알고 있습디다'



나는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오면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낚시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해주었다.



이문열은 힐난조로 '황선생, 그러다가 어떻게 귀국하려고 그럽니까. 왜 월북 권유를 하고 다니쇼?'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일도 없고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 모든 분단의 억압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문학에 대한 노심초사도 벗어버리고 익명의 망명자로 살아가고픈 생각도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의 망명 권유를 마다하고 무국적자로 체류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이문열의 모든 상처와 그늘은 내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누가 의도적으로 이문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게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그는 전쟁 때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거리에서 손을 놓친 아우 같다' 라고.



아, 그리고 나는 뉴욕에서 이문열과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이제는 당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그때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뻘이었고 훨씬 미숙했던 젊은이었다고.













내가 한국에 와서 구속되었을 때 이문열은 나의 석방 촉구 성명서에 서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회에 나와 연설하는 일에도 흔쾌히 나서 주었다.



이문열이 그러한 종류의 일에 동참한 것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이문열은 면회 올 때마다 자신의 책들을 한 아름씩 들여주고 갔었다.



그래서 나는 그제서야 이문열의 작품들을 읽었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 시대 등.













내가 석방된 뒤에 이문열은 논객이 되어 좌충우돌 논쟁을 벌이고 홍위병 사건으로 그의 책들이 화형대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분노하여 반문화적 처사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래도 이문열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 칼럼은 그만 쓰고 소설만 쓰자고 했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진보 보수를 갈라서 선정적으로 이문열과 나를 나란히 올려서 상징화했다.



나는 그것이 불편했고 이문열과 정치적인 맞수로 취급당하는 게 싫었다.



나는 이문열이 그놈의 물귀신 같은 '이념의 덫'에서 놓여나 자유롭게 휴머니즘의 대 벽화를 완성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나름대로 한 시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가 누린 모든 영욕도 그들이 준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문열의 관념 과잉인 듯한 계열의 작품들보다는 그의 자전적 요소가 엿보이는 '하구'같은 성장소설에 끌린다.



솔직하고 풋풋하며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인생파'다운 수수함이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언제나 그러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순정하고 비틀리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고 싶다.



이문열은 원래 그런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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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중단편전집 5권에 '아우와의 만남'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로 보입니다.

황석영의 글에서는 팩스로 전달된 종이만 읽어보는데서 그치는데 소설에서는 연변 교포에게 돈을 주고 북한에 선을 대서

베이징에서 배다른 아우와 만나는 스토리 입니다.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낳은 아우와의 짧은 만남에서 온갖 갈등과 화해가 이루어지는데

이문열의 통일관, 북한관도 얼추 드러나고.. 분단의 비극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 있어서는 '분단의 비극 = 새누리당이 북한을 유용하게 써먹는 상황' 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런 분단의 비극 말고요... 흐


역시 이문열의 장편인 '영웅시대' 에서는 이문열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듯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어찌어찌하여 북한 대학생들에게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비판하는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은 '부르주아 반동종자'라며 반발하지만

주인공은 '믿기 위해서는 의심해야 한다' 며 일갈합니다.

이문열이 자신의 아버지는 이랬을거야.. 하고 예상했던 것일지 아니면 그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미있는 장면이라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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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은 부분적, 비판적이긴 하지만 맑스와 엥겔스에게 수용되었고

잉여가치의 발견으로 불평등한 분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념적 무기로 세계사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몇가지 난점이 있습니다.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노동의 정의와 그 노동의 양을 재는 단위로서의 시간입니다.

이 학설이 주장되던 시대처럼 농업과 수공업이 지배적이던 시대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몇 개의 기초적인 정의만으로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분화가 심해지고

기계의 활용 정도가 극대화된 현대에 이르면 인간의 행위 가운데서 어디까지를 노동

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노동가치설은 주관적인 학설이 될 수도 있고 잉여

가치의 발생도 부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의 양을 시간의 단위로 재는 것은 같은 종류의 노동만 있을 때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은 그 난이도와 힘의 소모량,소모형태, 일회성과 반복성등

측정단위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다른 어떤 척도에 의해 노동의 크기를 시간

으로 환원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질문 있습니다.




좋소. 질문하시오.





우리에게는 이미 '자기실현의 수단이며 주체의 객관화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가치생성의 과정'이라는 노동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동지께서는 그런 명백한

노동의 정의를 새삼 애매하게 만들고 잉여가치의 존재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것으로 말

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노동에 대한 그런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정의는 구체적인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무력

합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말한 정의로도 잉여가치는 부인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본

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나름대로 '자기실현이며 주체의 객관화'가

될 수 있으니 노동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본가의 축적행위나 결정행위라는 노동에 지급될 임금이라고 불 수 도 있습니다.





교수동지께서는 노동량의 측정단위로서 시간의 불합리성을 말씀하시면서 노동 상호간의

차이를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불평등한 분배의 구실로 악용되는 그

우열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화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도 하는 가운데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인 공산사회가 되면 노동량의 측정단위는 시간밖에 없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상은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으며

각자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키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생산을 규제

하여 내가 아침에 사냥가고 오후에 고기잡이하며 해질녁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뒤엔

비판에 몰두한다. 나는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자나 또는 평론가 같은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같은 감동적인 사회는 우리의 이상이지만

그것이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지전능한 사람이 되거나 원시

적인 자급자족의 촌락경제로 이 사회를 되돌리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지금은 축적된 지식

과 기술이 너무 많고 다양하며 필요로 하는 생산 또한 마찬가집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 원시의 이상으로 돌아가기에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 있습

니다. 시간이 유일한 노동량의 측정단위가 될 학률은 현실적으로 낮습니다.




그만두시오! 교수동지의 말은 하나같이 부르주아의 궤변들에 물들어 있소. 아니 우리의

사상과 이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동적 강의요. 동무들, 뭐 하고 있소. 이 악질적인

회의론의 전파는 당을 해치는 것으로 보고해야 하오. 이따위 수업은 거부해야 하오!




몇 군데서 옳소 옳소 하더니 나중에는 교실 전체가 들썩거렸다.




야!

이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난 너희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길로 들어서서

이십 년이 넘도록 싸워 왔어. 처자와 노모까지 죽이고 혼자 여기까지 쫓겨 온 것만 해도

피눈물나는데 뭐 반동? 부르주아? 찢어진 아가리라고 말이라면 다야? 의심해 보지 않은

놈이 어떻게 확실하게 믿어? 비판해 보지 않은 놈이 어떻게 비판에 견뎌? 그런 놈들이

무슨 큰 이념의 수호자라도 되는 듯 설쳐대는 거야? 이건 명백히 집단 수업거부야. 대학

에 다니도록 해준 당의 특전이 싫다는 건가? 공장이나 농장으로 돌아가 생산 영웅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믿기 위하여 의심한다! 옹호하기 위하여 비판한다! 사랑하기 위하여 미

워한다! 그 의심과 비판과 미움을 극복한 자만이 진정한 이념의 사람,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자로 자라 갈 수 있는 거야. 이곳은 대학이야. 인민을 동원할 때 쓰는 선동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교수동지의 말은 남조선 지식층이 흔히 보이는 자기과시일 뿐입니다. 자명한 것에 대한

의심은 낭비입니다. 불필요한 비판은 위대한 사회주의의 전진에 방해만 됩니다. 나는

이런 강의는 수강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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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14/09/13 01:3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4/09/13 01:36
수정 아이콘
두 양반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지만, 본문의 뉴욕에서의 술자리 이야기는 참 짠한 에피소드네요.
SugarRay
14/09/13 01:37
수정 아이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25/2014072501419.html

최근에 본 이문열 인터뷰인데, 황석영에 대한 언급이 짧게 있네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라면?

“‘가장’이란 말을 덧붙이기는 좀 그렇지만, 여럿 있다. 하지만 거명하기는 조심스럽다. 살아있는 사람을 거론하면 줄 세우는 꼴이 될 수도 있고, 원로가 빠지면 섭섭해 할 수도 있고.(웃음).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황석영 선배가 다양성이나 기교의 화려함이나 독특한 안목, 모든 면에서 우뚝하다. 진지하게 파고 드는 걸로는 돌아가신 이청준 선생. 선생은 지겨울 정도로 세밀하게 살피고 이모저모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었다.(웃음) 최인훈 선생도 거대담론적 사고로 가공해 내는 것을 보면 언제나 감탄스럽다. 이병주 선생의 글도 그 풍려(豐麗)와 우미(優美)를 좋아한다. 특히 '지리산'은 압권이다. 자발없는 표절 시비로 상처를 입긴 했지만, 한길사에서 나온 걸 최근에 다시 봤는데 정말 잘 쓴 글이었다. 그밖에도 우리 문단은 풍성한 자산이 있다.”
yangjyess
14/09/13 02:59
수정 아이콘
어쩐지 사심 가득한 평가 같네요... 크
양념게장
14/09/13 02:09
수정 아이콘
저런 사연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레지엔
14/09/13 02:20
수정 아이콘
그래서 삼국지를 망친 두 사람이 삼국지 대담에서 서로를 추켜세우고 정당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까는 방식을 취한 것인가라는 다소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어지네요.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야비한 살쾡이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14/09/13 02:31
수정 아이콘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살쾡이들이 뭐... 뭐가 어때서요!
레지엔
14/09/13 02:35
수정 아이콘
원래 나이든 수컷은 사랑받지 못합..
yangjyess
14/09/13 03:01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흑역사가 있다보니... 어쩔수 없는것 같습니다.. 흐
14/09/13 03:43
수정 아이콘
아이리버 mp3가 있었는데... 정말 눈꼽만한 글씨 크기로 6줄 정도 보이는 액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마다 그걸로 이문열 삼국지를 다 읽었는데...

두 작가가 삼국지를 망쳤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태클을 거는 게 아니라, 제가 그 고생을 해가면서 굳이(?) 읽은 소설이 왜 그런 대접을 받나 싶어서요. 크크.
류지나
14/09/13 04:08
수정 아이콘
이문열 삼국지.
소설로서는 굉장한 소설이지만 삼국지로서는 이보다 졸작일 수가 없습니다.

일단 평역이랍시고 이문열이 평하며 써내려가는데 그 기준이 심히 편협한데다가 심지어 근거가 자기 맘대로입니다.
가령 작품 전반적으로 조조는 띄워주고 유비(와 제갈량)을 깎아내리는 편인데요.
그 근거를 정사와 연의를 혼동해서 막 섞어 씁니다.

가령 유비를 비판할 때 울보인 척 하면서 속에는 음험한 속내를 담은 음흉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반면
조조를 옹호할 때는 연의에서는 조조는 이랬지만 사실 정사에서 조조는 이렇다 -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치면 유비도 정사에서는 호걸인데)

둘째로는 제갈량 사후 부분을 아예 1권으로(1권도 아니고 반권;) 그야말로 용두사미처럼 다룬 것이고
셋째로는 연의로서도 심각할 정도로 많은 오류들.

첫번째가 사실 제일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 그러면서 근거도 편협하고 일방적인 근거 제시...
(이런 주제에 대학생 논술 대비로 많이 옹호된게 참...)
yangjyess
14/09/13 04:21
수정 아이콘
오류가 많고 편협한 개인적 견해가 소설의 흐름을 끊는 단점은 확실하지만 유비와 제갈량을 깎아내린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문열 삼국지만큼 두 인물을 아름답게 찬양한 글이 소설이고 인터넷 커뮤니티고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레지엔
14/09/13 08:03
수정 아이콘
두 인물에 대한 아름다운 찬양은 오히려 이문열보다 정사 삼국지쪽일 것이고, 이 점에서 연의 자체가 소설화에 의해서 '위대한 인물' 유비-제갈량을 '단순하고 그냥 짱센 캐릭터'로 격하시켰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비판일 겁니다(실제 나온 인물과 사건을 다룬 고전소설들이 모두 가지는 약점이기도 하고). 이문열씨는 그 점에서 원본 연의보다 복권을 시킨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 방식은 인물을 인물로 다룬다기보다는 평면적 캐릭터를 입체적 캐릭터로 다루고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소설 내적 서사가 아니라 평(이라고 쓰고 개인 잡설이라고 읽는)으로 뭉개고 넘어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원래 살아있는 생물인 호랑이를 나관중은 석판의 양각으로 만들고, 이문열은 석판의 구도를 유지한채 석상으로(2D->3D로) 강제로 만든 후에 위에다가 금과 옥을 그냥 갖다부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yangjyess
14/09/13 09:51
수정 아이콘
역사적 인물과 거리가 먼, 이문열 개인의 환상이 덧씌어진 문제는 있겠지만, 그게 '단순하고 그냥 짱센 캐릭터' 였다고는... 보기 어려운거 같아요.. 특히나 '격하' 였다고는.. 말씀하신대로 금과 옥을 갖다 부어버렸죠.. 격하랑은 거리가 먼 작업 아니었는지.. 흐
그리고 삼국지 골수팬들이 보시기에는 오류투성이인거 같아도, 그 오류들은 삼국지의 주된 흐름과 틀은 크게 흐트러뜨리지 않은 한도 내에서 존재합니다. 이문열이 덧씌운 환상도 아예 터무니없는 망상보다는 등장인물들 한명한명에 대해 가져볼만한 기대치들을 잘 각색했다고 보았습니다. 정사 운운하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려 한 것은 분명 큰 잘못이지만, <삼국지 판타지>로 본다면 이문열이 갖다붙인 허구는 창천항로나 고우영 삼국지의 허구와 비교해도 훨~씬 적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가미한 허구로 인해 증폭된 재미는 아주 크죠. 그로 인한 삼국지 저변확대는 공과 과 중에 어느쪽이냐 가늠해보면 공에 가깝습니다. 나중에 정사 읽어보고 이런저런 삼국지 서적들 뒤적이게 되면 자연히 균형잡힌 시각 갖출수 있고 이문열의 뻥튀기는 좋은 부분만 취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밀복검
14/09/13 10:16
수정 아이콘
저는 주된 부분에 있어서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다른 곳에 올렸던 것을 링크합니다

http://www.soccerline.co.kr/slboard/view.php?uid=1989378008&page=1&code=locker&keyfield=subject&key=%C0%CC%B9%AE%BF%AD&period=1989370329|1989487964

다른 것은 몰라도 3번이나 7번은 지엽적이라고 할 수 없는, 챕터 전체의 의미를 굴절시킨 부분이며 <문학성>의 측면에서도 원작에 크게 못 미칩니다.
기아트윈스
14/09/13 17:14
수정 아이콘
심지어 리동혁의 7번도 잘못된 번역이네요. 아마 한문에 미숙해서라기보단 한국어에 미숙해서 생긴 일일테지만 "부"와 "자"는 한 구로 묶여야 하는 구조인데 중간에 "하니"라는 토를 달아 끊어냄으로써 복문처리를 했군요. 제가 문집번역하다가 저런식으로 해놓고 중간평가 받으면 반드시 지적사항 뜨고 감점당할만한 요인입니다.

원문의 맛은 영웅에 대한 정의만으로 한 문장이 끝나는 힘에서 나오는데 저렇게 복문으로 끊어버리면 앞과 뒤를 잊는 "하니"의 역할이 애매해져서 읽기가 껄끄러워집니다. 왜냐하면, 한국어 사용자들은 하니로 연결된 문장을 볼 경우 전항과 후항 사이의 모종의 연결관계를 탐색하게끔 되어있는데 7번 문장에선 그걸 찾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꺼끌거리는 느낌이 생기지요. 그런 면에선 이문열의 "으로" 연결이 확실히 한국어 사용감에 있어서 둘 사이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레지엔
14/09/13 14:20
수정 아이콘
일단 이문열 삼국지의 편집 방향 및 집필 방향 자체가 기본적으로 왜곡이 너무 심하다는 점이 크고(이건 위의 구밀복검님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그 점에서 주된 흐름과 틀 자체가 이미 글러먹은 작품입니다. 창천항로는 원작자 사망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서 비교 평가로 좀 부적절하고, 고우영 삼국지도 같은 이유에서 저는 텍스트적으로는 좋은 평을 하지 않습니다. 만화라는 매체 특성, 독자 특성때문에 이 부분이 희석된다고 보죠. 더군다나 이문열 삼국지 틀린 거 찾자고 이것저것 뒤져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입문서로서 좀 뭐랄까... 너무 엇나갔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국지 한 두 번 읽고 마는데, 그게 이문열판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저는 그 자체가 좀 싫습니다. 매니아적인 감성이긴 합니다만.
격하 문제에 대해서는 좀 기준에 의한 온도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의 삼국지 매니아들이야 이미 정사건 배주건 자치통감이건 기타 다른 사서를 통해서라도 비교적 역사적 인물 유비-제갈량에 대한 이미지가 서있고, 그러다보니 연의의 인물->캐릭터 프로세스에서 발생한 격하와 신비화와 단순화는 고전소설적 문제라고 보지만, 동시대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아예 고전에 충실하시든가' 아니면 '현대 소설에 걸맞는 수준으로 재탄생시키시든가'를 요구할 수 밖에 없고, 그 점에서 '고전보다 낫지만 실상보다 격하했고 이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 섬세한 재평가가 아니라 금과 옥을 쳐발라버렸다'는 아무래도 좋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이 지점에서는 창천항로처럼 대놓고 빠질을 하거나, 아니면 진순신처럼 역사적 인물과의 선을 긋고 소설적 인물로 재구성을 열심히 했어야겠죠.
레지엔
14/09/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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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실 거면 역시
http://mirror.enha.kr/wiki/%ED%99%A9%EC%84%9D%EC%98%81%20%EC%82%BC%EA%B5%AD%EC%A7%80
http://mirror.enha.kr/wiki/%EC%9D%B4%EB%AC%B8%EC%97%B4%20%ED%8F%89%EC%97%AD%20%EC%82%BC%EA%B5%AD%EC%A7%80
와 리동혁의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에 좀 길게 달아둔 리플이 있긴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1. 모호한 방향성을 갖춘 삼국지 편집
2. 공공연히 내뱉어지는 '에이 삼국지 번역 그거 그냥 대충 한거에요' 수준의 발언들
3. 정당한 비판에 대한 치졸한 뭉개기식 대응
(이에 대해서는 http://www.youtube.com/watch?v=fUQsTd1nQR8 를 참조하시면 어떤 태도인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4. (특히 이문열 삼국지에 대해서) 최다 판매량으로 인한 사실상의 기본 텍스트화, 그리고 그로 인한 삼국지 관련 논의/논쟁의 수준 열화(일단 이문열 삼국지만 읽었는지 복수의 국역본을 비교해가면서 읽었는지부터 서로 물어봐야 할 상황으로 만들어버렸죠)
정도입니다. 특히 저를 화나게 하는 순서는 4>3>>>>>2>1입니다. 여담이지만, 말씀하신 그런 형태로라도 읽을만한 가치 자체는 분명히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말이 안되는 구조에서도 유려함을 느낄 정도로 이문열의 문장 수준은 엄청나니까요. 당대 최고의 서예가가 일필휘지로 갈겨놓은 친일파 선언같은 글이라서 문제지...
기아트윈스
14/09/1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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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레지엔님의 의견에 공감했었지만 이거 하나는 공감이 안갑니다. 삼국지가 스핀오프 금지영역은 아니지않나요.
레지엔
14/09/1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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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 금지는 아니지만 스핀오프임을 명시해야 합니다. 예컨대 '제갈공명'이라거나, '진 삼국무쌍'이라거나. 일단 황석영씨는 정역류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실제 고른 판본의 문제, 표절 문제가 발생했고 충실한 번역도 아닙니다(애초에 황석영씨가 중국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면 오히려 기대되는 바는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필력과 자기 세계 표현인데 그런 영역은 매우 적습니다. 삼국지를 읽는 방식의 몇 가지 갈래를 봐도, 어느 쪽에서건 황석영 삼국지는 최고가 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집니다. 이문열 삼국지의 경우는 일단 '평역'이라는 말을 통해 도망가고 있긴 한데, 평역이면 정말 원본을 손대거나 아니면 아예 원본을 참조 서적 수준으로 격하시킨 후에 온전히 스핀오프로 쓰거나 해야될 일인데 여기에서의 평역은 번역의 불성실함과 내용과 무관한 자기 생각을 끼워넣기 위한 장치(말 그대로 평+발번역=평역)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짜증나는 것은 두 작가는 공공연하게 삼국지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고 본인들 작업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임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며(황석영의 계약 파기하고 싶었다 발언, 이문열의 부업 발언, '내 비판자한테 뭐 읽어봤냐고 물어보니까 겨우 삼국지 말하더라' 발언 등), 본인들의 삼국지에 대한 정당한 비판 제기에 대해서 두 거물께서 대담 형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디 연변 출신 듣보잡이 감히 비판하던데 우리의 삼국지는 우리 이름값에 비해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므로 그런 비판은 대응할 가치도 잘 모르겠다 허허허' 수준의 발언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삼국지 매니아들이 두 작가를 평가절하한다를 넘어서 감정적인 분노까지 느낄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기아트윈스
14/09/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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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의 정점은 스핀오프라는 걸 이야기 안하는데서 오지 않을까요? 예컨대 모종강도 자기 창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대신 무슨 더 오래된 판본에 근거해서 가정본을 바로잡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요. 좀 더 진지한 세계에서의 스핀오프(?)를 따져보자면 심지어 이퇴계도 주희의 개념 몇 개를 아주 틀리게 썼지요. 이걸로 다른 주자쟁이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덕분에 퇴계 고유의 성과(!?)가 되기도 했구요.

이문열 평역도 어떻게 보면 그 전통상에 있는 한 갈래라고 봅니다. 번역이라는 틀을 뒤집어쓰고 그냥 자기 꼴리는대로 쓴거지요. 그럼 이제 이 꼴리는대로 쓴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인데, 아마 이부분에서 레지엔님과 제 전제가 달라지는 듯합니다.

이게 전문역자, 혹은 중문학 전공자가 번역한 서적으로서 학술적 가치를 목표로 한 역주서라면 본서 내의 많은 부분이 비판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이문열 소설의 연속이고 재밌게 잘 읽히고 사랑받는게 장땡인 거라면 이문열 평역은 공전의, 그리고 어쩌면 후무할 불후의 업적을 남긴 거지요. 명량 같은 거랄까요?

마지막으로 텍스트 외적인 문제들, 예컨대 이문열의 발언들이라든지 태도라든지 아니면 삼국지 뉴비들이 이문열 하나 읽고 와서 무쌍 펼치는 거라든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삼빠가 아닌 입장에서 별 감흥이 없네요. 써놓고 나면 이미 작가 손을 떠난거지요. 토리야마 아키라는 드래곤볼을 그려놓곤 단 한 번도 다시 안봤고 가끔 드래곤볼 설정에 대해서 말하는 걸 보면 자기 설정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지요. 심지어 그걸 별거 아닌 범작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텍스트의 가치가 훼손되거나하지 않잖아요?

특히 제일 마지막 부분, 삼국지 논쟁 수준의 열화에 대해선 감정적 공감이 안가는 게 어차피 다 픽션인데 이 픽션이 어쨌느니 이 픽션이 맞는니 하는게 무슨 논쟁거리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픽션의 덕목은 인기고 인기는 대중일반이 간절히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따라오지요. 일본인의 심상 속의 삼국지와 명나라 사람들 심상속의 삼국지가 천지차이로 다른것처럼 한국인이 원하는 삼국지를 들려줘야하는 게 한국인 픽션꾼들의 지상목표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이문열 평역은 자기 몫을 120% 다한 거고 지금도 보이져 형제 마냥 테스트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레지엔
14/09/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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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와 '모티브를 따왔지만 다른 작품'에는 경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스핀오프의 조건을 이야기한 것이고, 이미 삼국지는 언급한 '제갈공명', 혹은 아예 다른 매체의 '진 삼국무쌍'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즉 이 판에서 통용되는 코드의 문제가 일단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 점에서 마지막 문단의 '어차피 다 픽션인데 꼴리는대로 하면 좀 어때'라는 지점에서 결국 합의를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매니아는 '각색'과 '원작 능욕'에 대해서 남다른 기준을 가지게 되고, 삼국지는 굉장히 많은 매니아를 장기간 가진 작품이며, 당연히 그만큼 코드 심화도가 높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문열은 일단 매니아들의 감정적 공분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매니아들의 코드는 그 자체로 무의미하고 무시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더 할 말이 없고...
말씀하신 모종강본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일단 시대적 문제가 발생하며, 그리고 사실 그 자체도 역시 현재진행형의 논쟁 중입니다. 모본이 연의의 적자인가, '유일하게 신뢰할만한 판본'인가, 그냥 후대 판본 중의 하나인데 글빨이 제일 좋을 뿐인가... 심지어 번역가 사이에서도 논쟁인 주제입니다(당장 리동혁, 정원기는 모본의 정통성을 놓고 논쟁을 여러 차례 벌인 바 있습니다). 그 점에서 모본은 이문열 평역본에 대한 실드로서의 전례가 되기엔 좀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작품 수준에 있어서 이문열의 삼국지가 이것을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인정한다 쳐도 높은지 의문입니다. 이 작품은 태생부터 어이없는 글쓰기 구조와 원작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이라는 문장가가 끝내주는 문장으로 볼만한게 만든거지, 총합적으로 볼 때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소설적 가치로만 따져도 진순신이건 정비석이건 이쪽이 훨씬 더 완성도가 있다고 봅니다. 즉 이미 각색과 재창조의 영역에서조차 이문열보다 더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문열이 한국 삼국지 시장에서 '최고'라고 부를만한 부분은 오직 판매부수뿐입니다. 그리고 그 판매부수에 있어서, '이문열 삼국지가 글빨이 좋아서'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작품이 출간 후에 뜬 것은 출간 직후의 평이 아니라 '수능 1등이 삼국지를 추천했는데 이걸 광고 문구로 잘 써먹어서' 붐이 시작됐고, 마침 동세대에 이문열보다 현대에 나온 삼국지 작품이 없었으며, 한국 문학계에서 이문열의 이름값이 높았기 때문에 붐이 커졌습니다. 설사 이문열이 글을 잘 써서 잘 팔렸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의 아들'을 잘 쓴 이름값에 얹어간 것인가 삼국지 자체를 잘 쓴 것인가에 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재밌게 잘 읽히고 사랑받는 것=잘 팔리는 것'이 장땡이라는 관점에도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그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기형적 상황에 힘입은 대중성은 그만큼의 평가절하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한국에서는 '디워'라는 걸출한 흥행작이 그런 평가를 거쳤죠.
텍스트 외적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텍스트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으나, 이 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을 모독한다고 느낍니다. 예컨대 제가 아주 좋은 음색을 가진 배우인데, 신곡도 아니고 예전 히트곡을, 노래방 수준의 녹음을 해서 앨범을 내고 마침 어떤 이유에서건 외부적인 붐이 불어서 이 앨범이 떴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후에 '에이 가수 그딴 거 그냥 연예생활하면서 겸사겸사해본 거죠. 제 앨범 듣고 연예인 레지엔에 대한 평을 하는 거 참 수준떨어지는 짓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한다면... 백만 안티 확정일겁니다.
14/09/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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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가 아니라, 온갖 오류를 집어 넣어놓고, 정사와 연의를 오가면서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놓은 게 문제죠.
오류가 속속 지적됨에도 수정도 안 하고 있는 것도 문제구요 -_-;
14/09/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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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한 번 보려면 어떤 삼국지를 읽어야 할까요? 삼국지 한번도 안 봤는데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14/09/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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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amgugji&no=119713&page=1

삼국지 갤러리 공지글이었던 글인데, 삼국지 관련서적을 총망라해서 서평을 적어둔 글입니다.
참고하셔서 적절히 골라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이문열 삼국지나 황석영 삼국지도 입문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정확하게 연의를 보시려면 리동혁씨 작품의 평가가 제일 높습니다.
레지엔
14/09/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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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이게 좀 어렵긴 합니다. 정역 개념에 충실하려면 정원기, 김구용, 복원 개념에 충실하려면 리동혁인데 솔직히 셋 다 문장 수준은 좀 그렇습니다(정원기는 문형의 단순함, 김구용은 올드한 문체, 리동혁은 한국어 구사 능력 문제가 거슬립니다). 삼국지 하나만 보고 적당한 수준에서(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하건, 매니아를 상대로 하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건 그래도 역시 박종화를 추천하겠고, 좀 읽는 재미를 포기하더라도 잘 알겠다고 한다면 김구용과 정원기 중 하나를 추천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건 정비석->이문열->리동혁->김구용->정원기의 순서입니다.
sprezzatura
14/09/1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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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재미로는 이문열저를 따라갈 버전이 없습니다.
어차피 연의 자체가 각색된 '소설'이기에, 재미만 있으면 장땡이라는게 제 소견이에요.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지려면 차라리 정사나 기타 역사서를 보는 편이 낫겠구요.
14/09/13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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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마스터충달
14/09/1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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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에게 월북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이 글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월북은 그를 여러모로 힘들게 했을텐데 말이죠...

저에게는 변절자 라기 보다는 한국 독재세력의 지배에 길들여졌다는 느낌입니다.
네오크로우
14/09/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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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등단 이후 초중반까지는 그로 인한 젊은시절 연좌제로 인한 신산스러운 삶이 단편, 중편, 장편 곳곳에 많이 비칩니다.
물론 작가 자신은 빗대서 쓴 것뿐 자전적 얘기는 아니라고 끔찍히 싫어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그렇게 느껴지죠.
yangjyess
14/09/13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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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에서 표현한 것만 가지고 보면, 아버지를 <자신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누군진 모르겠는데 어떤 철학자의 말을 빌어
부자관계란 <정액을 제공했을 뿐> 인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려서는 아버지가 북한으로 가서 사회주의 혁명을 진두지휘하는 고위층이 되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고 하네요... 가끔 매스컴을 통해 공개되는 북한 지도층의 명단에 자신의 아버지가 없는 것은 너무나도 거물이어서 철저히 비밀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이유는 <그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남한에서의 자신의 불행이 보상되어지지 않을것 같아서> 라고
합니다...
마스터충달
14/09/1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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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사람이 이런 극단적 수구가 된 걸까요?
기아트윈스
14/09/13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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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음 속에 북한의 존재감이 크면 클수록 양극단으로 달리더군요. 극우꼴통이 되거나 극좌꼴통이 되거나
endogeneity
14/09/1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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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문단 토론의 경우, 애초에 교수의 비판은 리카도의 투하노동가치설에 대한 비판일 수는 있어도(사실은 리카도 본인도 노동의 '질'이 서로 다양할 수 있다는 점 정도는 충분히 알았으나 '경제모형은 현실의 단순화일 뿐'이란 오늘날도 경제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법으로 그 점을 무시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은 저 공격을 피해갈 수 있고, 리카도의 노동량 정의를 방어해볼 의도라고 쳐도 리카도는 노동량을 '자기실현의 수단이며 주체의 객관화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가치생성의 과정' 같은 헤겔이나 생각할법한 방식으로 정의하진 않았단 점에서 저 학생은 입으로 방귀나 뀌는 중이라고 평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을 재밌게 봤는데 본문의 가장 재미없는(?) 대목에 대한 댓글도 있어야 할듯 하여...
14/09/13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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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방귀나 뀌는 중' 이란 표현 정말 멋지군요! 앞으로 친한 친구들한테 종종 써먹어야겠습니다.
yangjyess
14/09/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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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이 자신의 소설 속에 논쟁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면, 자신이 주장하고픈 말은 그럴듯하게 써놓고, 그에 대한 반론을 펴는 쪽은 허접하게 쓰는
경우가 꽤 많은거 같아요 흐. 그런 면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게, 자신의 사상과 정 반대되는 캐릭터들이 숫적으로도 더 많고
대사도 논리정연하고 감정적으로도 매력이 넘치도록 묘사해 놨다는 거...
14/09/1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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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귀찮아서 반론을 안써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인공의 장광설로 끝! 크크크.
14/09/1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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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자기실현의 수단이며 주체의 객관화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가치생성의 과정'이라는
학생이 명백하다고 주장한 노동의 정의 자체가 객관적인 경제학 노동의 정의랑은 천만광년 떨어진 얘기죠.
14/09/13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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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자연: 아니 내 의견을 물은 적이 없잖소?
14/09/13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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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자기실현의 수단이 되는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남조선이죠.괜히 시뻘건 정당이 1위인 나라가 아님...
14/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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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씨 개인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 그 문장만큼은 정말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문장이에요.
Tyrion Lannister
14/09/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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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글만 놓고 본다면 정말 더 할 나위 없이 수려한 문장들이죠.
서쪽으로가자
14/09/1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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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유유히
14/09/13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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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새끼…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침 뱉고 발길질하고 그리고 아무나 찢어죽여도 좋은 빨갱이 새끼였던 것이다. 나는 왜 빨갱이 새끼로 태어났을까. 그때처럼 아버지가 미웠던 적도 없다. 아버지는 어쩌자고 사람들이 침 뱉는 빨갱이가 되어 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풀기 빠진 핫바지처럼 주눅들게 만드는 것일까..." -김성동, 엄마와 개구리 中

이문열과 마찬가지로 월북한 아버지를 둔 김성동 작가의 '엄마와 개구리' 중 일부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자신을 완성한 이문열, 아버지를 이해하고 감싸안은 김성동. 이 두 빨갱이 자식(?) 작가의 대척된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소시민이라, 저런 걱정 할 필요 없어서 좋군요.(???)
14/09/1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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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한때 좋아하는 소설가였는데.....지금은 쳐다도 안봅니다.
황석영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한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비밀....
14/09/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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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 아우를 위하여도 카시와바라 효조의 '먼 길'이랑 이야기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게 함정.
켈로그김
14/09/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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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비롯한 개인적 감정이 우리의 올바른 사리판단을 해치는걸 온전히 막을 수는 없을겁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알고, 배워서 '하지 않아야 할 것들' 에 대한 가치관을 미리 온전히 다져놓는게 중요하죠.

이문열은 그런 점에서는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지성인의 범주에는 넣을 수 없습니다.
그냥 범부.. 인데, 왜인지 사람들이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는 범부죠.
레지엔
14/09/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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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범부지만 그 문장만큼은... 이문열 평역은 여러 번 다시 봤는데 볼 때마다 이런 맥을 끊겠다고 작정한 구조를 가지고서도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점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정말 악마의 재능이 따로 없습니다.
켈로그김
14/09/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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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가로서의 평가로 인하여 사상가, 웅변가로서는 분수 이상의 관심을 받는 것이 불행한 일이고,
그로 인해 문장가로서의 평가가 깎이는 것도 불행한 일이라는 뫼비우스의 재평가가 발생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어영역 90점, 사회탐구 30점인 학생이 각각의 영역으로 평가받기보다는
"평균 60점이군" 이라는 평가로 수렴하는 느낌 -_-;;
레지엔
14/09/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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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같은 경우에는 40점 이하가 있군! 넌 과락이야! 를 외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
켈로그김
14/09/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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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하는게..
그 과락인 부분이 글에 나타날 때가 더러 있지요.
예전에 이문열씨가 쓴 단편수필 중에서 그의 역사관, 사상이 은근슬쩍 등장한걸 봤는데,
수려한 문장속에 온갖 오류와 편견이 뭉뚱그려져 있는걸 보고는 속사포 랩으로 욕이 나왔습니다.

합연산으로 평균낼게 아니라 곱연산을 해야하나봐요 -_-a
14/09/1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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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드러낸 졸작도 있죠..장군과 박사 등..
챠밍포인트
14/09/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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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말로 단순 재미와 흡입력은 모든소설 통틀어도 이문열 삼국지만한게 없는거 같습니다 작정하고 재미위주로 쓰는 판타지소설보다 더 몰입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들고쓴 초한지는 오히려 평은 좋아졌으나 재미는 아쉽더군요

너한테 기대한건 재미라고!
레지엔
14/09/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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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 저는 삼국지 국역 텍스트 중에서 흡입력과 재미는 정비석을 제일 높게 치긴 하지만, 이문열 삼국지 정도면 진짜 악마의 문장을 보여주긴 했죠. 초한지나 수호지는 '아 이걸 내가 왜 쓰는거지 삼국지 잘나가니까 출판사에서 하자고 해서 하긴 하는데 하기 싫다..' 티가 팍팍 나서...
챠밍포인트
14/09/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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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은 초한지도 상당한 수작인데 삼국지도 괜찮나보네요 기회가되면 한번봐야겠습니다
레지엔
14/09/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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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만 딱 놓고 보면 초한지는 빼어난 미녀고 삼국지는 개성적인 미녀라서 저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긴 합니다. 그러나 비교 텍스트라는 점에서 한국의 초한지는 정비석이 원탑 수준이라(..)
14/09/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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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사람들이 이문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이유는 그가 그저 범부가 아니라서죠.

20세기 제 3세계 문학 장르 중 '꽃'이라고 할만한 건 자국의 근현대사를 포괄하고 이를 자국의 전통적인 서사 방식에 녹여낸 소설들입니다. 리얼리즘적 화자에 대한 안티 테제라는 급진적인 형식적 화두에 있어서나, 그 주제의식을 녹여낸 서사에 있어서나 이만큼 참신하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담보되는 소재를 찾기 어렵거든요. 물론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국 서사 전통에 대한 철저한 이해(한국의 경우 상당한 수준의 한학을 갖추어야겠죠.)와 자국 근현대사를 포괄할 역량이 있는 이야기의 발굴([황제를 위하여]에선 정감록을 끌고 오죠.), 그러면서도 20세기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성취 또한 갖춘 다음에라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세계 소설 가운데서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본다면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백년의 고독],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 오르한 파묵의 [검은 집](혹은 [내 이름은 빨강]) 정도가 있겠네요. 그러나 한국에선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소재와 주제를 녹인 이야기를 만든 작품이야 무수히 많았지만, 정작 이를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자국의 전통적 서사 형식 논리에 비추어 반성을 소설로서 구현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 속에서, 앞서 언급된 20세기의 '위대한 소설'에 견주어 부끄럽지 않을만한 작품으로 한정한다면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밖엔 남지 않게 되죠. 그리고 이문열은 [황제를 위하여]를 쓴 것 하나만으로도 범부로 취급될만한 위인은 아닙니다. 100선은 모르겠는데 세계 소설 300선쯤 되면 무조건 들어갈 작품입니다. 한국 소설 한정한다면? 아마 장편 부문에서 단연코 첫손에 꼽힐 작품일 겁니다(단편 부문에선 박상륭의 [장끼전]이, 중편에선 하일지의 [누나]가 되지 않을까 싶구요.)

이문열은 그냥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닙니다. 그냥 글빨 좋은 사람은 많아요. 고종석도 글은 잘 쓰고 조중걸이나 김훈도 잘 씁니다. 그러나 고종석이나 조중걸의 소설은 그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이룬 성취에 걸맞지 않게, 유의미하게 언급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이며 김훈 역시 그 사장의 치열함과 비교해볼 때 문학성에 있어선 별달리 특기할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한국 문단에 이문열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우린 지난 세기 한국 서사 문학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작품을 변변히 꼽기 어려웠을 겁니다.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그걸 소재에 걸맞는 형식과 이야기 구조로 형상화한 작품은 찾기 어렵다는 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처참한 이야기에요. 그나마 다 늙어서 황석영이 바리데기나 심청에서 부분적으로 보여주거나(물론 개별 작품의 완성도는 유의미하게 언급할만한 건 아니긴 합니다만 어쨌든 시도 자체만을 놓고 볼 경우) 하일지가 근작인 [누나]에 이르러서 겨우 달성했다고 말할 수준이니... 이건 좀 과격하게 이야기할시, 해당 소재에 있어서 문학적 죽음의 시대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껏해야 최인훈, 이청준처럼 그 주제의식 속에서나 관념의 논변을 즐기거나 (20세기의)황석영, 조정래처럼 리얼리즘을 더욱 파고들었을 따름인데(음, 다만 황석영은 [오래된 정원]에서 후일담 문학의 끝판왕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마냥 이렇게 쉬이 말할 작가는 아니긴 합니다.)... 이를 무가치하다고 말할 건 아닙니다만, 이문열에 비하면 다들 빛이 바래죠.
켈로그김
14/09/1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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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는 대단한 기술자이긴 하죠.
14/09/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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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예술가죠. 바그너의 인성은 개떡같지만 바그너 예술의 위대함은 유태인 음악가조차 인정하니까요.
가만히 손을 잡으
14/09/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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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14/09/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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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이북으로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읽는데 문장력이 정말 좋긴 하더군요. 왜곡이니 뭐니해도 읽어서 손해볼 건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근데 이북 서문에 홍위병 운운하면서 불쾌감을 토로하는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나 싶기도 하고 그만큼 엄청 충격이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동정심이 들기도 하더군요.
느티나무
14/09/1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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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한 아버지에 관한 일화는 처음 알았습니다.농업경제사를 전공하고 월북한 분이 수리공학도로서 전공을 바꿀수있을정도의 엘리트인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당에 충성하고 밉보이지 않기위한 일평생의 고생은 어떠했을 것이며 월북자의 아들로서 청춘을 낙인찍혀 고생했을 젊은 시절의 아들은 얼마나 불행했을까....이문열씨 글에는 가끔 서슬퍼른 칼이 느껴질 때가 있던데 아버지에 대한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군요
네오크로우
14/09/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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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다루는지라 조금 과장이나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연좌제 폐지 전까지는 늘 안기부, 경찰, 기타 등등 엄청나게 감시당하고,
취조당하고, 거기다 집안이 나름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 아버지로 인해 많던 재산 다 날려먹고,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서도 생활하고
그랬었죠. 가슴속에 서슬퍼른 칼이 100개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이었죠.
beanjosee
14/09/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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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14/09/14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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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가 받고 있는 평가를 생각해보면, 이문열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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