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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2/23 20:27:08
Name 분리수거
Subject [일반] Riot Grrl 그리고 Sleater-kinney
Sleater-Kinney의 10년만의 복귀작이 발매되고, 
듣자마자 이건 올해의 앨범이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어딘가에 소개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어느새 네이버 캐스트에 Sleater-Kinney 이번 앨범인 No Cities to Love의 소개글이 뜨더군요. 
그래서 더 쓰기로했습니다.


 Riot Grrl. 문법을 뭉개버린 이 불친절한 단어. Riot Grrrl는 90년대 초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하드코어한 페미니스트 펑크 사조를 말합니다. 위키에 따르면 Third-wave Feminism의 시작을 알린 음악 운동이라고 합니다.

 Sleater-Kinney라는 밴드를 소개할 때 여성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에 앞서, 여성운동과 음악, 특히 펑크에 대해서 간단히 적도록 하죠.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펑크는 여성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여러 여성 뮤지션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오셨던 Patti Smith 여사(존경을 담아), Siouxsie Sioux, Joan Jett 등등 락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80년대의 막바지, 청년잡지(보그걸 같은 잡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통해 여성, 성, 그리고 락앤롤이라는 구호가 시작되는데, 그것이 결실을 맺은 곳은 DIY*와 인디뮤직에 대한 끼가 충만했던 미국 워싱턴이었습니다. 

 Riot Grrrl 운동의 초창기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줬던 밴드는 Bikini Kills였는데, 프론트우먼인 Kathleen Hanna는 굉장히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여성보호소에 자원봉사를 하는 한편 스트리퍼의 권익 보호를 위해 직접 스트리퍼가 되어 여성보호에 자신을 스스로 투신했던 강경한 페미니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조직했던 밴드가 Bikini Kills입니다. Riot Grrrls의 시작이죠.

 아마도 가장 상징적인 곡일 Rebel Girl을 걸어봅니다.



Sleater-Kinney (1994)


 1994년 Sleater-Kinney는 Corin Tucker와 Carrie Brownstein에 의해 조직됩니다. 코린과 캐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에 있는 에버그린 칼리지로 진학하는데, 그곳에서 앞서 소개했던 Bikini Kills의 Kathleen Hanna을 만나게됩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Riot Grrrls운동에 투신, 각자 Excuse 17과 Heavens to betsy라는 밴드를 하다 서로 연인으로서 가까워집니다. 94년은 Riot Grrrl의 막바지였고, 불꽃처럼 타오러든 운동은 점차 사그러들고 그 해 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커트 코베인에 의해 얼터너티브 열풍이 불어닥치며 사실상 끝을 고하게 됩니다. 코린과 터커는 달아나듯 그해 호주로 여행을 떠나 기념비적인 첫 셀프타이틀 앨범을 녹음하게 되죠. Riot Grrrls운동의 사실상 마지막 앨범이자 그들의 데뷔앨범인 Sleater-Kinney입니다.  이 앨범이 발매된 레이블은 Chainsaw라는 살벌한 이름의 레이블인데, 이름과 달리 Riot Grrrl운동을 지원했던 인디레이블이고 90년대 퀴어코어를 표방한 펑크밴드들이 모여있던 레이블이었습니다. 이 조악한 멜로디의 평크앨범은 Riot Grrrl의 음악의 연장선에 있고, 그 마지막 후계자라고 할 수 있죠. 물론 그럼에도 Be Yr Mama같은 곡은 90년대 초 소닉유스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Call the Doctor (1996)


 하지만 Sleater-Kinney의 음악은 2집인 Call the Doctor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1집에서의 Riot Grrrls는 생각나는 이미지대로 그대로 지르고, 분노하는 야수 그 자체였습니다. 2집의 강렬한 가사, 중독성있는 리프, 조악한 녹음상태 등은 Riot Grrrls를 넘어서 순수한 펑크의 모습을 연상시키죠. 이는 2집부터 John Goodmanson이라는 프로듀서를 만난것도 한몫합니다. 그와 만난 이후 Sleater-Kinney스러운 발랄한 페미니즘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여성밴드로써 Sleater-Kinney를 강하게 인식시킵니다.

 이 시기의 노래는 이들의 1집에 비해서 사운드는 정돈되었지만 여전히 가사는 직설적입니다. 밑의 Stay Where You Are은 여성들간의 사랑과 커밍아웃에 관한 가사를 노래하고있는데 고통받고, 차별받아도 스스로를 드러내고 불태우라는 가사를 담고있습니다.

코린은 이 앨범의 녹음을 4일 만에 마쳤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도 캐리도 녹음이 끝나자마자 멈춰버렸어. 우리 모두 가슴에서 귀까지 찌릿하고 '음악을 계속해야겠다'라고 섬광처럼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 진짜 밴드로서 발을 들여놓는 순간입니다.

(사실 이 앨범의 가치에 대해 더 적고싶었는데 펑크에 대해 이렇게 길게 적는것도 능력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평론가분들의 대단함을 다시 느낍니다.)


 


Dig Me Out (1997)


 그리고 3집 Dig me out에서 앞으로 오랜 친구가 될 Janet Weiss를 드러머로 모셔오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Quasi라는 밴드에서 짬밥을 쌓은 인물이었는데, 이후 코린, 캐리와 함께 가장 오래 밴드에 남는 멤버가 되게 됩니다. 

 이 시기의 페미니즘은 Riot Grrls로 대표되던 90년대 초를 지나, 지금은 베컴의 부인으로 더 알려진 90년대 영국 여성그룹의 상징인 스파이스 걸즈와 Girl Power로 대표되고 있었습니다. Girl Power는 투쟁이 아니라 소녀와 여성들의 단결을 외치는 여성운동이었죠. 이 여파 때문이었을까, 슬리터키니는 이전과 달리 조금은 날카로운 칼날을 숨기게 됩니다. 


Little Babies


배고프니? 곧 (TV)쇼가 시작하니까 알아서 챙겨먹으렴.

감자도 깎아놨고 상도 치워놨고 바닥도 닦아놨어

다른 사람들은 널 거칠게 대해왔지

...

난 언제나 여기있어. 너희 엄마의 작은 도우미로써


가령 Little Babies 같은 곡은 모성 상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식기세척기이고, 그릇이고, 식탁이지만 아이를 챙겨줘야할 어머니는 아이곁이 아니라 TV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사람이 필요한 자리에 사람은 없고, 모성이 사라진 현실을 되돌려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위 앨범들처럼 날카로운 보컬과 날선 가사로 비판하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재기발랄함을 유지하는 페미니즘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인 리프, 호소력짙은 보컬, 2분30초~3분 길이의 짧은 곡들, 그러면서도 정체성을 잊지않는 메세지까지 진짜 Sleater-Kinney스러운 펑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앨범입니다. 그들이 낸 최고 명품이라 말해도 아깝지 않죠. 







##코린과 캐리가 연인으로써 헤어진 뒤 나온 싱글인 One More Hour입니다. 이별가치고는 너무 발랄하지만, 코린은 캐리와의 연인관계를 끝내고 
99년 한 영화감독과 결혼해 현재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DIY는 가구만드는 DIY와 같습니다. Do it yourself의 약자죠. DIY펑크에 관해서는 적고싶어지면시간이 되면 적겠습니다.


** 캐리는 유대인으로 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15살되던 해 옆집의 남자애에게서 기타치는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소년이 Jeremy Eningk인데, 그 소년은 커서 이모밴드인 Sunny day Real Estate의 프론트맨이 되죠.


더 길어지면 가독성이 나빠지니 다음편에 마저 적도록 하겠습니다.

해체전 낸 앨범 4장에 대해, 그리고 해체 이후 각자의 활동과 재결합 이후 나온 앨범까지 2편을 더 적으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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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삽시다
15/02/23 21:33
수정 아이콘
오오오 감사히 잘 듣겠습니다.
Sleater-kinney는 잘 몰랐는데 이번 앨범은 좋더군요.
예전 곡들 까지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Quasi도 예전에 엄청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분리수거
15/02/24 00:29
수정 아이콘
Quasi도 좋죠 흐흐 언니들이 해산후에 거쳐간 밴드들을 설명할때 같이 적어봐야겠네요.
노노리리
15/02/23 21:59
수정 아이콘
이번 1/4분기 베스트 각축은 슬리터키니, 판다베어, 드레이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새 여기저기 페미니즘 얘기가 많은데 뭔가 타이밍이 딱 맞는 것 같은 느낌이 흐흐
분리수거
15/02/24 00:37
수정 아이콘
드레이크는 바빠서 못들어봤네요 흐흐 판다베어는 줗더군요. 요즘 터진 페미니즘 얘기면 누구얘기인가요? 작년에 그라임즈였나.. 기억이 안나네요.
노노리리
15/02/24 07:37
수정 아이콘
"터졌"다기보단… 뭐 IS 관련해서 나오는 얘기나 우리나라 김태훈씨 컬럼 사건, 가깝게는 어제 있었던 오스카 시상식 수상 소감 같은 일련의 흐름들이랄까요 하하.
Earth-200
15/02/23 22:21
수정 아이콘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멋진 누님들이죠.
히히멘붕이넷
15/02/23 22:52
수정 아이콘
오오 음악계에서의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는데 좋은 소개글 감사합니다~
최설리
15/02/23 23:28
수정 아이콘
캐리 누나는 다리가 참 예쁘죠
두괴즐
15/02/24 11:57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Sleater-kinney는 잘 모르는 밴드였는데, 올해 평단에서 가장 주목하는 팀이라 들어보고 있답니다. 이렇게 잘 정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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