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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14 01:51:22
Name Tigris
Subject [일반] 가벼운 영화 이야기 : 나의 왓차 별점평가들
 연일 피로감을 주는 화제가 이어지는 요즘, 다들 안녕들하십니까. 좀 가볍고 즐거운 화제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영화 이야기를 써봅니다.

 왓챠(링크)라는 영화관련 웹사이트가 있지요. 그곳에는 웬만한 상업영화가 다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영화감상 데이터베이스로도 쓸만합니다. 제 주변에 영화깨나 본 사람들은 네 자리수의 평가를 기록하고 있던데, 저는 별점평가가 300여 건에 불과하네요. 별점별로 몇 편씩만 소개해봅니다. 당연하게도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전문성이나 신뢰성 같은 건 없습니다. 오히려 제 취향에 근거한 가감점이 뻔뻔하게 섞여 있지요. 다양한 의견이 오가면 좋겠습니다. 취향적 대립도 환영합니다. 영화 추천의 의미도 있는만큼 스포일러는 가능한 피했습니다. 일부 영화 제목에는 추천 표시 혹은 예고편 링크가 걸려 있습니다.




[☆]
 최저점인 별 반 개는 겨우 세 편 밖에 없습니다. 역시 저는 평가가 후한 사람입니다?


- 「바람의 검심 - 성상편」 : 이걸 시리즈의 일부로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살의 신념은 다 어디에 내버리고…. 와츠키 선생의 하향세가 낳은 우울한 망작이라고 봐요. 「추억편」에 대한 애착이 크기에 더 유감스럽니다.





[★]
 별 한 개에는 열세 편의 영화가 올라 있습니다.



- 「BECK」 : 인기 밴드만화의 실사영화판입니다. 캐스팅이 다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감점요인이었고, 원작에서 결전병기(?)로 쓰이는 고유키의 노래를 이 영화에서 표현한 방식에도 불만이 있습니다. 그냥 제작비가 애니메이션으로 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애니판에 비하면 O.S.T.도 별로더군요.


- 「기동전사 제타 건담 3 - 별의 고동은 사랑」 : 저는 모든 건담 시리즈 중에 제타를 가장 좋아합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TV판 이야기죠. 극장판의 이런 엔딩을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TV판의 카미유야말로 건담월드를 통틀어 가장 문제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뉴 문」 : 트와일라잇 시리즈지요. 인물들, 특히 주인공 아가씨의 욕망이 이해되지 않아서 지루했습니다. 소년 판타지를 보는 소녀들의 심정이 이렇게 시큰둥했겠구나 싶더라구요.





[★☆]
 한 개 반에는 스물아홉 편이 올라 있습니다.



- 「열혈남아」 : 왕자웨이 감독의 그 「열혈남아」입니다.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Take my breath away'만 없었어도 별 두 개는 줬겠죠. 어쩌다가 강의시간을 통해 본 작품인데, 나중에는 동동또로동- 하는 그 멜로디가 나올 때마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지더군요.


- 「유주얼 서스펙트」 : 어느 스포일러 문구로 유명한(?) 영화죠. 저는 스포일러를 당하기 전에 감상했습니다만,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음, 예상대로 진행되는군, 역시 그랬어, 이제 슬슬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되겠군… 하는데 끝나더라구요. 뒤집어 생각하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만큼 재밌었던 거기도 하지만요.



- 「데스노트」 : 이 포스터는 슈퍼파이트 천사록으로 패러디되기도 했죠. 가장 좋아하는 프로토스와 가장 좋아하는 테란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설랬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라이토 역의 캐스팅이 좋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은 거 같던데, 저는 반대에요. 라이토 역의 배우는 원작 만화 1권을 기준으로하면 그럭저럭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나의 L은 그러지 않아!'를 외치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마다 캐스팅되어 매번 기대이하의 재현도를 보여주는 마츠야마 켄이치를 싫어합니다. 「상실의 시대」도 이 친구가 와타나베를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예 안 봤습니다. 영화 「나나」가 똑같이 별 1.5개에 그친 이유 또한 그에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쯤은 농담이고, 실은 굳이 이걸 영화화할 필연성이 있었나 싶었던 것이 짠 점수의 원인입니다. 여담이지만 사신 류크의 목소리를 담당한 배우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남자주인공이죠.



- 「나비 효과」 : 아주 흡족하게 봤던 영화입니다. 발상도 좋았고, 거듭되는 반전도 좋았고, 주제의식도 괜찮았고, 영상 자체도 좋았어요. 별 넷, 아니 넷반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물론 감독판 이야기지만요.


- 「이프 온리」 : 주변의 여성들이 좋다면서 추천하기에 봤습니다. 헌신도 헌신으로 느껴지지 않고, 결말도 그다지 와닿지가 않더군요. 뭔가 감정선이 다른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여담입니다만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을 노래방에서 부르면 반응이 좋더군요. 근데 금영의 2절 반주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태진일 때만 시도하시길.



- 「달콤한 인생」 : 이 영화의 평가가 대체로 좋은 거 같던데, 저는 별로였습니다. 사실 남자냄새 팍팍 풍기고 목숨걸어 개폼잡는 그런 영화 자체는 좋아해요. 선우(이병헌)와 강 사장(김영철) 사이의 대립도 좋았습니다. 근데 에릭이 등장하면서부터 몰입이 박살나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언가의 오마쥬이거나 혹은 장르적 관습을 일부러 따라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의 감상은 영 꽝이었어요. 서로 잘 알아가던 사람에게 문득 밀쳐진 듯한, 그런 꽁기꽁기한 기분.





[★★]
 별 두 개에는 예순네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흠이 있을지언정 꽤 볼만한 영화들이 슬슬 보입니다.



- 「오토히스토리아」 : 라야 마틴 감독의 2007년작입니다.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독해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해석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않는 이 불친절한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홧김에 사진과 html로 쓴 다다이즘(?) 운문을 제출해버렸죠. 다시 한 번 감상에 도전해보고 싶으면서도 좀처럼 손이 안 갑니다.



- 「탐정은 BAR에 있다」 : 제가 좋아하는 도시 삿포로(+오타루)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입니다. 동명의 탐정소설을 바탕으로 하지요. 삿포로라면 여기저기 쏘다녔던지라 낯익은 장소가 여럿 나오는 게 좋았으나, 중후반부의 서사적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영화로서는 좋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감정선은 편집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죠. 여담으로 포스터 좌상단의 안경 낀 친구는 유명배우 마츠다 유사쿠(「원피스」 아오키지의 모델)의 아들입니다.



- 「원더풀 데이즈」 : 여러 사람 피거솟하게 만들었던 지뢰가 나왔군요. 시나리오가 문제인 건 두말할 거 없죠. 그나마 좋았던 건 3D 작화와 사운드, 주제곡 정도일까요. 그 외의 것들은 다 처참했으며, 심지어 동화 하청을 통해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던 2D 작화조차도 엉망이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요구하는 세계관 속인데도 주연들의 욕망에는 흐리멍텅한 낭만만 앞섰죠. 변명의 여지없이 시나리오를 잘못 쓴 겁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전체적인 재편집과 1류 성우들(주인공 수하 역을 '야마데라 코우이치'가 맡았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란마 1/2」의 히비키 료가 + 주천향 가이드,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카지 료지가 있습니다.)의 더빙에 힘입어 아예 다른 작품이 되었다고 하던데… 언젠가는 보고 싶네요.


- 「아비정전」 : 낭만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제가 「중경삼림」을 무척 좋아하다보니 이 영화도 기대하면서 봤습니다. 허나 감상 후에 「중경삼림」은 왕자웨이조차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는 작품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죠.



- 「롤라 런」 : 독일의 실험적인 영화죠. 영화의 단선성,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잠자코 돌아가는 영화를 지켜봐야만 한다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였습니다. '영화도 이렇게 하면 인터랙티브 할 수 있다!'라는 식이었을테고, 그 힌트는 오프닝 애니메이션 등에서 알 수 있듯 비디오 게임일 겁니다. 허나 영화 속 시공간을 이리저리 비틀어놓아도 결국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등속도로 돌아가고 관객은 거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한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죠. 비디오게임 세대인 우리에게는 가소로울 정도입니다. 제가 영화의 뒤를 잇는 첨단예술로 비디오 게임을 꼽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기존 매체의 단방향성에 비하면 비디오 게임의 인터랙티브성은 그야말로 혁명적이니까요. 게다가 기술발달에 힘입어 이젠 영화가 할 수 있는 건 게임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죠. 영국의 영화잡지 프리미어에서 게임 「The Last of Us」를 「시민 케인」에 비유한 것은 주목할만한 징조일 겁니다.



- 「고지전」(추천) : 배신자(?)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장훈 감독의 작품이죠. 고수 씨, 신하균 씨는 좋았고 「파수꾼」으로 등장한 신성 이제훈 씨도 현실성이 아슬아슬한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잘 눌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 몰입을 방해했던 건 류승룡 씨였어요. 카리스마 넘치는 인민군 무관 주제에 권총 쏠 때마다 놀라서 눈을 껌벅껌벅 감으면 그림이 뭐가 됩니까? 그렇게 저는 류승룡 씨의 발포 장면마다 긴장감이 해체되는 경험을 해야했는데… 뭐 그에 관한 언급을 따로 못봤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슬리지 않았나보지요. 리겜+격겜 유저였던 제가 나쁩니다. 근데 뭐 그걸 제쳐놓고라도 후반부의 삐이이이(스포일러 방지) 전개는 많은 이들에게 지적되는 바인데요, 전쟁의 지긋지긋함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영화를 지긋지긋하게 하는 방식은, 뭐 저는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도 볼만한 요소가 꽤 많기에 추천합니다. 전쟁장면 묘사는 한국영화 중 최고 아닐까 싶네요.





[★★☆]
 두 개 반에는 예순세 편이 올랐습니다. 제 기준으로 두개 반이면 꽤 좋은 영화라 불릴 수 있어요. 단지 변별력을 가장한 사심천명을 위해 높은 별점을 아껴둔 거 뿐이죠.



- 「그녀」 :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2013년 영화입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영화라 뭘 말해도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조심스럽네요. 아카데미 각본상도 받는 등,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거 같던데 저는 별 두개 반에 랭크해뒀습니다. 제 생각에는, 관객 각자의 극적 상상력이나 영화독해력에 따라 몰입할 수 있는 정도가 현저히 달랐을 거예요. 영화관에서 관객들 표정을 살펴보기로는 그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덕 페이트'의 영화화로 보였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공각기동대」 극장판 시리즈의 멜로버전―네트는 광대하죠, 여기서나 거기서나―으로 읽힐 수도 있겠거니 싶었습니다. 헌데 그게 과연 소재의 탓이었을까요? 결말은 안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을 한 걸음 넘어선 그 무언가를 보고 싶었지만, 초반 20분에서 예측되는 범위 안만을 차분히 걸어가더군요.


- 「아바타」 : 이 작품은 아주 훌륭한 오락영화죠.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산업화된 문화에는 누군가가 '이건 돈이 된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한 번은 증명이 되어야 기술도 인력도 자금도 모여서 선순환이 시작되죠. 만약「아바타」가 터져주지 않았으면 아이맥스나 입체영화의 보급이 몇 걸음 늦춰졌을 것이고 「그래비티」처럼 한 수준 진보한 스테레오스코프가 나오지 못했겠죠. 「아바타」는 터지라고 만든 영화에요. 허나 대놓고 모에요소를 모은 캐릭터는 좀처럼 모에하지 않듯, 대놓고 터지게 만든 영화가 정말 터지는 건 보통 역량으로 안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쉽고 간단하고 즐거운 영화가 되기 위해 완성도를 치열하게 끌어올린 흔적이 곳곳에 보이죠. 허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락성이라는 건 서사적 깊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것이 제 취향상 감점요소가 되었습니다.



- 「스승의 은혜」 : 컴퍼스 기억나십니까? 히이이익 그다지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이 영화의 폭력성에는 제 사고방식과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심 빼고 생각하면 별 2개 정도가 적당할 거 같네요.



- 「21그램」 : 저는 제목인 '21그램'이 한국의 배급사 마케팅부에서 멋대로 지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더군요. 제목 외에는 연기든 연출이든 대부분의 요소가 마음에 듭니다. 복합 내러티브하면 보통 「메멘토」를 떠올리곤 하지만, 저는 메멘토만큼의 규칙적인 섞기방식은 조금 장난스럽게 느껴지고, 굳이 비교를 하자면 「21그램」 같은 식이 더 좋더라구요.



- 「혹성 탈출」 : 열두살 때부터 몇 년간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같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아이가 걸어오던 모습을 기억해요. 짙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죠. 그러나 데이트는커녕 여자아이와 둘이서 만나는 것조차 처음이었던 순박(?)한 소년에게 영화예매 같은 고급스킬은 없었고, 뭐볼까 뭐볼까 하다가 대충 고른 것이 이 「혹성 탈출」이었습니다. …약 10년이 지나 각자의 우여곡절을 살아온 끝에 다시 만난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몇 번인가 술을 마시다가 그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원숭이와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은, 뭐 내용은 어찌됐건 비쥬얼 면에서 로맨틱하지 못했고 약간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좀 깨더라… 하는 결론이었죠. 이런 까닭에 저에게는 엉뚱하게도 노란색 블라우스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뭐 나쁘지 않았지만 여러 리메이크작 중 굳이 2001년판을 고를 이유는 없다는 게 중평이죠 아마?



- 「인디안 썸머」 : 멜로를 안 좋아합니다. 싫어한다에 가깝죠. 공포영화와 더불어 제가 따분해하는 양대장르입니다. 멜로영화에서 애틋함이나 절실함을 느껴본 일이 거의 없어요. 요소요소를 따져보면 「인디안 썸머」도 그랬어야 마땅합니다. 헌데 어째선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네요. 굳이 돌이켜보자면 톤이 독특하고 연기의 방향성이 독특했다고 생각해요. 여러 독특함이 조화롭게 담겨있다면 우연이든 실력이든 그건 연출의 공이겠죠.



- 「소울 키친」(추천) :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천국의 가장자리」등을 먼저 본 터라, 어, 패티 아킨이 코미디도 할 수 있구나, 싶더군요. 명랑하고 즐거워요. 중후반까지는 아주 즐겁게, 맥주 살짝 뿜어가며 껄껄껄 했어요. 그러나 후반에 갈등이 해소되는 방식은, 뭐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떨지 모르겠는데(호평도 많더군요) 저는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뭐라고 쓰든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상술할 수는 없군요. 어쨌든 한 번은 볼만하다고 봐요. 영화 중간에 화끈한 19금 장면이 한 번 나오니 주의하시길. 팡팡 소리가 아주 찰집니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의 꼴통 형 역할을 맡은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는 앞서 언급한 「롤라 런」에서도 주연이었죠.



- 「GO」(추천) : '나는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자칭 코리안 재패니즈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소설을 적절하게 영화화했습니다. 원작소설도 영화도 추천합니다. 심각한 소재를 명랑하게 잘 그렸어요. 아, 예고편 링크하면서 깨달았는데, 그때의 그 아름다운 소녀가 시바사키 코우였네요?


- 「황산벌」 : 재기발랄한 영화죠. 풍자의 원관념을 생각하면 마냥 웃으면서 볼 수는 없지만…. 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아니 두 번 보고나서도 계백과 김유신의 캐스팅이 서로 바뀐 느낌을 받았습니다. 허나 한 번도 이 의견에 공감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 「번지 점프를 하다」 : 이건 OO영화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삐이이(스포일러 방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제 생각은… 음, 스포일러를 피해가며 말하기가 까다롭네요.  아무튼 '번지 점프를 하'는 것이 현실의 현실적 재현이었던 20세기말 한국의 가치관을 지금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지난 세기 말에 이미 가시화가 진행되었던 G에 비해 L에 대한 가시화는 2015년 현재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개인적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T는 좀 나은 거 같지만(얼마 전에도 '농구 잘하는 처자'라는 제목의 유게 게시물이 있었죠) BAIQ는….



- 「위대한 개츠비」 : 바즈 루어만 연출의 2013년 작입니다. 세평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보다 토비 맥과이어의 내공에 놀랐습니다. 후반부 개츠비 저택 계단에서의 장면은 무진장 복잡미묘한 연기가 요구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주 잘 해냈죠. 「스파이더맨」의 그 친구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알고보니 연기경력이 상당하더군요. 그렇다고 다른 배우나 연출이 나빴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파티장면에서건 욕망의 도시 뉴욕을 비추는 카메라워크에서건 미장센을 구성하는 각종 조형적 요소들에서건 요즘의 방법론을 과감하고 신명나게 잘 써먹었어요. 중반까지 뮤지컬 영화의 방식으로 떠들썩한 분위기를 잘 조성했고, 후반에서는 원작소설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긴 했습니다. 허나 '이 이야기를 왜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말해야만 하는가'하는 필연성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은 감점요인이었습니다.


- 「용의자 X의 헌신」 : 츠즈미 신이치의 정극풍 연기는 제 취향입니다. 최후의 장면에서 그의 열연이 빚어낸 설득력이 '헌신'이라는 두 글자에 제대로 무게를 실어주더군요. 시바사키 코우가 왜 출연했던 건지, 그 캐릭터의 역할이 대체 뭐였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함께 본 친구들과 토의까지 했는데, 나중에 이 영화의 전작 격인 TV연속극 「탐정 갈릴레오」를 보고 나서야 무의미한 의문이었음을 깨달았지요.



- 「황후화」 : 가수로만 알고 있던 저우제룬(주걸륜)이 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본 영화였는데, 뭐 초중반 전개를 통해 큰 기대없이 차이나레스토랑 코스요리풍 오락영화로 봐야한다는 걸 깨닫고 순순히 '이야, 이게 대륙의 스케일입니까! 껄껄껄!'하며 봤습니다. 번쩍번쩍하는 궁중이라든지, 금색군과 은색군의 CG 무첨가 인해전술 대립이라든지, 붉은 색이 가득했던 자리를 노란 색으로 가득 채운 마지막 풍경이라든지, 역시 윤발이 형님은 황제 역할도 멋지군 나도 저렇게 늙고 싶구나 라든지…. 이래저래 비쥬얼은 약간 촌스럽긴 했어도화려했는데, 영화적으로 훌륭한지는 모르겠어요. 멋진 옷 입는다고 인간적인 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영화들이 늘 그랬듯 자기(중화)긍정을 위한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현대영화적인 가치는 기대할 수 없겠죠.





[★★★]
 별 셋은 예순 다섯편이 올랐습니다. 셋에도 좋은 영화가 많네요.



- 「파수꾼」(추천) : 2011년 문득 등장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독립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볼만해요. 추천합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대체로 괜찮아요. 저는 아리랑이니 태극기니 한복이니 두유노우킴치에고기를싸서드셔보세요니 하는 것들보다, 이 영화에 깔려있는 인간관이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갈등하고 아프면서 타인과의 거리를 정해가는 게 청소년기지만, 어느 나라 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갈등하겠어요. 저는 '동윤'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 「재밌는 영화」 : 한국의 2002년작 코미디 영화죠. 평가가 상당히 나쁘던데, 저는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어떤 장면이 어떤 영화의 패러디인지 웬만큼 알아볼 수 있어야 웃기기 때문에 추천하긴 어렵지만요. 저는 다시 생각해도 '펌프'가 제일 웃깁니다.



(양쪽 다 같은 영화의 포스터 맞습니다.)
- 「과거가 없는 남자」 : 헬싱키를 배경으로 하는 핀란드 영화입니다. 우리에게 핀란드는 '휘바휘바'하는 자일리톨의 나라, 혹은 약속된 메탈의 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헬싱키는 또 다른 풍경이더군요. 일단은 이게 코미디로 분류되는 모양이던데 북유럽의 코미디는 뭔가 척박한 느낌이네요…. 하지만 정갈하고도 뜨뜻한 메시지는 남습니다. 담백한 영화가 땡길 때라면 볼만하겠지요. 영화문법적으로는 프레임이 관객에게 정보를 순차적, 점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봄직하겠네요.



- 「녹차의 맛」 : 제목이 절묘합니다. 녹차의 맛이란 어떤 맛일까요. 녹차 아이스크림만 먹어본 사람은 물론, 녹차깨나 마셔본 사람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영화에요. 이 영화도 일단은 코미디로 분류되던데, 마구잡이로 웃겨주진 않습니다. 일본적이죠. 포스터를 통해서도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일본영화'라고 했을 때 일순 떠오르는 대책없음이나 엉뚱함(이른바 '슈-르')을 싫어하는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여기도 마츠야마 켄이치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왓챠 정보에는 안 나오네요. 그리고 조연으로 올라있는 '안노 히데아키'는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인 그 양반 맞습니다. 비중이 약간 있죠.



- 「카사블랑카」 : 모름지기 멋진 남자라면 기품과 더불어 개폼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그걸 모르는 애송이 풋사과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죠. 사랑하는 여자가 '어젯밤엔 어디 있었나요'라고 물으면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나지 않아'라고 대답하고, '오늘 밤에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나는 먼훗날의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아'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잔을 부딪힐 때의 대사는? 물론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죠. …뭐 농담이었습니다만, '험프리 보가트'라는 문화코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잉글리쉬 버그만? 됐어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제 마음에도 들지만, 훌륭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별 둘도 별 셋도 별 넷도 이상하지 않지요. 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촬영이라고 합니다.



- 「스토커」(추천) :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기대가 컸는데, 작품이 그리는 규모 자체가 좀 작았던 거 외에는 상당히 좋았어요. 촘촘한, 기분 나쁠 정도로 촘촘한 영화죠. 전 이런 거 좋아합니다. 박찬욱이 왜, 어딜봐서 변태라는 거죠? 도대체 이해할 수 없군요(반어). …여담인데 제목은 스토킹 하는 범죄자를 말하는 게 아니고, 그냥 주인공 일가의 성씨에요.


- 「옹박 - 무에타이의 후예」 : 옹박 시리즈 1편입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액션밖에 모르는 바보' 노선을 추구하면 박수치고 싶어집니다. 저는 옹박이나 「테이큰」류의 액션이 좋아요. 근데 양쪽 다 시리즈화될 필요는 없었던 거 아닐까요.





[★★★☆]
 3.5는 쉰 편이군요. 저로서는 기분 좋게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이에요. 여기서부터는 사실 제 취향에 의한 편애가 점수를 가르니까 변별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하 언급되지 않은 3.5의 작품들로는 「어댑테이션」, 「존 말코비치 되기」, 「박하사탕」, 「양들의 침묵」, 「한니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시티」, 「디스트릭트 9」, 「살인의 추억」, 「마지막 황제」, 「러브 오브 시베리아」, 「메종 드 히미코」등이 있습니다. 다 좋은 영화인데 혹시 복잡하고 기발한 거 좋아하시는 분께는 특히 「어댑테이션」과 「존 말코비치 되기」를 강력추천합니다.


- 「비긴 어게인」 : 역시 존 카니 감독의 훌륭함은 '애매한 관계의 로맨틱한 재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69 - 식스티나인」(추천) : 진정하세요. 에로나 포르노가 아닙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의 영화판이죠. 원작도 좋았지만(무라카미 류의 정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아니라 이쪽이라고 주장하는 문학인도 있죠) 영화도 잘 뽑았어요. 날 것의 냄새를 더 풍겼으면 더 좋았을 거 같기도 합니다. 아, 물론 PGR의 그 유명한 '책상 사건'과 맞먹는 그 내용도 충실히 영상화되었지요. 원작소설을 몇 줄 인용합니다. "나카무라." "예?" "설사냐?" "모르겠어요." "급하니?" "항문에서 뿌, 뿌 하는 소리가 납니다." "저기 올라가서 하고 와." 나카무라는, 에? 하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내가 교장실 책상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중략) "안 나오는데요. 너무 긴장해서 안됩니다." 기합을 넣어, 하고 아마다가 말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앗! 하는 비명과 함께 고장난 펌프에서 물이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중략) 나카무라는 나가사키현 현립고등학교교장회 월보를 손바닥으로 비벼 뒤를 닦고 난 다음, 시원스런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여담이지만 저는 이야기의 배경이자 무라카미 류의 출신학교인 사세보 키타고등학교에 가봤는데… 뭐 그냥 평범하게 즐거워보이는 학교였습니다. 평일 오후 5시인데 공부하는 교실은 두어 곳 뿐이고 대부분의 학생은 죽도를 휘두르거나 공을 던지거나 공을 차거나 트랙을 뛰거나 당근을 썰거나 콘트라베이스를 켜거나 트럼펫을 불거나 플라스크를 옮기거나 귀가하거나 하고 있더군요. 제대로된 클럽활동이 가능한 제도교육이라니, 멋진 이야기 아닙니까?



- 「미행」(추천) :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의 입봉작이죠? 볼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실은 2년 가까이 걸려 찍은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모든 출연자, 연출진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말마다 모여서 조금 찍고 조금 찍고 하느라 그렇게 오래 걸렸다네요. 흑백을 택한 것도 그런 사정을 감추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군요. 자연광 통제라는 게 쉽지 않을테니 말이죠. 아무튼,「메멘토」 또한 같은 3.5점입니다만 둘 중 하나라면 저는 이 영화가 더 좋습니다.



- 「오! 수정」 : 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싫어합니다. 그의 영화에는 우리네 삶의 현실적 찌질함이 너무 리얼하게 드러나서 불편해요. 저를 포함한 속좁은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싫어하기 마련일 거라고 감히 예상해봅니다. 영화적으로 뛰어난 점이 있는 건 알겠어요. 같은 일에 대한 별개의 시선―기억이라고 해도 좋겠죠―을 이렇게 대놓고 어긋나게 보여주는 건 또 새롭더군요. 근데 싫어요. 하나 더 고백하자면 저는 두 주연이 차를 타고 갈 때 재훈(정보석 役)이 지었던 그 경멸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리얼한 영화라니…. 싫어요.



- 「우작」 : 누리 빌제 세일란의 2002년 작입니다. 제목인 'uzak'은 터키어로 멀리, 아득히 정도의 뜻이라고 하네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1인칭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원경을 보는 몇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특히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주로 셀렉티브 포커싱을 합니다. 마치 사람의 시선 같죠. 또 이 영화의 소음(효과음)들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눈 위를 걷는 소리나 티슈로 뭔가(…)를 닦아내는 장면이나 전자시계의 알람 소리 같은 것이 부자연스럽게 믹싱되어 있습니다. 이건 인상 중심의 초현실적 표현이겠죠. 인상은 물론 1인칭적인 거구요. 또 하나는 영화의 마지막에 붙은 'Ebra'ya', 즉 '에부루에게'라는 자막이에요. 이건 이 영화 자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의미가 되죠. 본 작품이 이처럼 1인칭적이어야 했던 건 결국 다루려던 문제의식이 '현대인의 고립'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현대영화의 예가 아닐까 싶어요.



- 「이리」 : 장률 감독의 2008년 작입니다. 감독의 전작「중경」과 서사는 이어지지 않지만 주변적으로,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목의 '이리'는 지금의 전북 익산입니다. 이리역 폭발사고(링크) 이후 지명을 바꾸었죠. 주인공 진서(윤진서 役)와 태웅(엄태웅 役) 남매는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한 상처를 안은 채,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사고의 흔적이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익산, 그것도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모현주공 아파트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진서(스포일러 방지)에게 세상은 가혹합니다. 장률 감독 영화답게 구조적 폭력에 의한 그늘을 진지하게 잘 다루고 있어요. 불편하지만 좋은 영화입니다. 장률 영화 중 제 취향 상으로는 「망종」이 더 위지만, 다른 분들게 추천하고픈 건 이쪽이네요. 아 물론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를 원하시는 분께는 장률 영화 자체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무진장 쓴맛이에요. 여담인데, 저는 '1박2일'을 통해 엄태웅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았는데요, 예능답게 웃기고있는데도 자꾸 괴물 냄새가 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아 이런 배우라서 그랬구나' 했습니다. 윤진서 씨도 거품이라는 평을 가끔 보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올드보이」에서도 그랬지만 어려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 「시」 : 삿포로의 단관극장에서 선행상영했을 때 관람했습니다. 상영 후에는 이창동 감독님과의 공개대담도 있었는데, 좋았어요. 아이들이 뛰노는 강물에 소녀의 시체 한 구가 흘러오고, 그 옆에 '시'라는 타이틀이 떠오르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시'라는 마니악(…)한 소재와 폭력적인 핵심사건, 그리고 그 속을 자기자신다운 느린 걸음으로 통과해가는 한 사람….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림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지평을 두드려보는 의도가 엿보여 좋아합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저는 뜨거운 유감과 사죄의 정서를 읽었습니다. 한국 영화 제작지원 심사에서 각본 0점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력은 황당하지요. 무엇이 이 영화에 각본 0점을 선사했을까요.



- 「피와 뼈」(추천) :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이 연출하고 키타노 타케시가 주연을 맡은 2004년작 영화입니다. 1923년에 제주에서 오사카로 도일한 김준평이라는 청년의 일대기를 그립니다. 키타노 타케시의 연기 이력에서 빼놓으면 안될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민족성이나 '재일' 자체를 이야기하려던 영화가 아니라고 느껴요. 그보다는 카프카 소설에 가까운 시선으로 시대와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추천합니다.



- 「소나티네」 : 키타노 타케시가 연출한 영화 중 두 번째로 좋아합니다. 이 영화에서 못나고 조악하고 한심하게 그려지는 '폭력'은 제가 생각하는 폭력의 본질과 매우 닮았습니다. 얼핏 보면 못난 영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못난 것을 잘 다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추천하기는 조심스럽네요. 일본 영화적인 엉뚱함이나 생뚱맞음이 다량 포함되어 있고, 무척 지루하게 느낄 가능성도 큽니다.



- 「카모메 식당」(추천) : 오기가미 나오코의 코미디는 느리고 느슨해서 안락하죠. 때리고 부수고 피흘리고 사랑에 목매어 우는 영화에 지칠 때, 혹은 대문 밖은 모두 생존경쟁인 현실에 숨이 막힐 때 이런 영화가 필요합니다. 안 보신 분께는 추천해요. 저는 린 램지 감독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여성성에도 경외를 느끼지만, 이 영화에 담긴 여성성 또한 좋아합니다. (당연하게도 영화 속 인물들이 여성적이라든지 가정적이라든지 야사시이-하다든지 하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성'적' 아니고 여성'성'이죠.) 이 영화의 서사구조라든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시선(혹은 접근방식) 은 어째선지 일본영화의 전형성으로 여겨지는 거 같은데, 그거 좀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조심스럽게 써봅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는 앞서 언급된 「과거가 없는 남자」의 주인공이 잠깐 등장합니다. 두 작품 모두 헬싱키가 배경이죠. 헌데 저쪽에서 그려진 헬싱키와 이쪽에서 그려진 헬싱키는 판이합니다. 영화의 '배경'이라는 요소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겠네요.


- 「고양이를 부탁해」 : 이 영화에 대한 제 인상은 복잡미묘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더 좋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씁쓸하고 깔깔한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신 분께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예전에 보신 분들이라면 다시 한 번 보셔도 좋지 않을까 해요.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서 그려진 인천은 참 리얼하죠. 몇 곳인가의 도시에서 살아봤지만 인천의 삭막함에는 독특한 느낌이 있어요. 현대화의 가장자리랄까요, 그늘이랄까요. 요즘도 부도심의 변두리쯤을 걸으면 여전히 느껴집니다.






[★★★★]
 서른 여섯 편이 올라 있습니다. 언급되지 않은 작품으로는 「천국의 가장자리」, 「영웅본색」, 「테이큰」, 「패왕별희」, 「원스」, 「지구를 지켜라」, 「매트릭스」, 「굿 윌 헌팅」, 「8과 1/2」,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이센테니얼 맨」. 「파고」 등이 있습니다.



- 「라스트 데이즈」 :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5년작입니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그리지만 이 영화에 '커트 코베인'이라는 인물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혹평 중에는 '저게 무슨 커트 코베인이냐' 하는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아는 커트 코베인 또한 무언가로부터 조장된 하나의 이미지죠. 이 영화는 우리가 기억하는 커트의 재현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그를 재현해봐야 합니다. 다분히 서사적인 소재를 극한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역량이 놀랍습니다. 추천은 하지 않아요. 이 영화의 서정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 「파닥파닥」(조건부 추천) :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낙관하게 해주는 소중한 작품이죠. 역시 지금까지는 시나리오가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포스터는 아동용처럼 보이지만 실은 섬세하고 잔혹한 풍자가 메인인, 어른 취향의 이야기에요. 「원더풀 데이즈」에 기대를 걸었다가 상처받았던 분들, 그리고 잔혹동화류가 취향인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 그래비티 (조건부 추천) : 이 놀라운 영화는 입체영화(스테레오스코프, 통칭 3D)로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맛볼 수 없습니다. 애당초 시나리오나 주제의식으로 압도하는 영화는 아니죠. (소설화시키면 심심해질 겁니다.) 이건 조금 돌아가는 설명이 필요한데요…. 할리우드에서는 영화의 입체효과만을 관리하는 '스테레오스코퍼'가 촬영 과정에 긴밀하게 관여합니다. 입체영상은 화상이 맺혀있는 위치와 눈의 초점이 어긋나다보니―우리는 스크린이라는 평면에서 입체영상을 보지만, 우리 눈이 초점을 맺고 싶어하는 입체는 스크린보다 앞 혹은 뒤에 위치하고 있죠―감각교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한 시각피로(입체영상멀미)가 반드시 동반되지요. 그걸 억제하는 게 스테레오스코퍼의 임무이자 입체영화의 숙명적 과제입니다. 이걸 억제하기 위한 입체 문법이 따로 있어요. 헌데 「그래비티」는 이 시각피로를 일부러 유도해 영화의 구성요소로 써먹는 기발한 역발상을 보여줍니다. 특정 장면에서 일부러 어지러움을 느끼게 유도하고, 그로 인해 관객은 마치 자신도 우주에 있는 듯한 기묘한 부유감을 느끼며 영화의 공간과 사건에 강하게 몰입하게 되죠. 이 영화에 세로나 대각선 방향의 패닝이 많은 게 그런 까닭입니다. 이처럼 감각 의존도가 높은 작품은 처음 볼 때 제대로 봐야 제맛이 나죠. 저는 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 입체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아이맥스까지 가능하면 금상첨화겠지요.



- 알마냐 (나의 가족 나의 도시) (추천) : 국내 개봉명은 '나의 가족 나의 도시'고 EBS 등에서는 '알마냐'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습니다. 참 따뜻하고 유쾌하고 좋은 영화에요. 터키출신 독일 이주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칙칙하고 무겁고 갑갑하게 접근하기 십상인 소재를 이렇게 따스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루어낸 연출자의 도량이 부럽습니다.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 「키즈 리턴」 : 키타노 타케시 감독 영화 중, 그리고 성장영화 중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는 모두 소년이었고, 아마 우리 안에는 지금도 소년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해서 좋은 영화로 보이는 건지 아니면 객관적으로도 좋은 영화인지 판단하기 힘들어 추천은 하지 않습니다.



- 「7인의 신부」 : 이 고전명작은 제가 리얼리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제 인상 또한 완전히 바뀌었죠. 아주 뻔하고 단순하며, 문제의식은커녕 영화적 독해조차 필요없는, 어떤 의미로는 뮤지컬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가끔 이 영화를 두고 여성 인권이라든지 전근대적 남녀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있던데, 제가 보기엔 번지수 착오에요. 이 영화의 서사는 그저 미국적인 옛날 이야기―배경이 1850년대입니다―에 불과하고, 그것은 음악과 춤을 이어지게 하는 배경으로서나 겨우 작동하죠. 리얼리즘 영화조차 아닌만큼 관객인 우리의 근대적 자아를 대입시킬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유튜브에서 재미난 영상 보는 기분으로 잘 짜여진 군무를 가볍게 즐기고 잊어버리는 걸로 충분한 영화에요.



- 「펄프 픽션」 : 이 영화는 아무 생각없이, 자기검열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봐야 가장 재밌습니다. 근데 분석해보면 내러티브나 미장센은 엄청나게 치밀하게 짜여 있어요. (첫 씬의 프레임 가장자리에 누가 걸어가고 있는지 보세요.) 아마 이런 모순점이 이 영화를 최고의 B급이라 수식하게 만드는 거겠지요. 새롭고 신선한 영화를 보고 싶은 기분일 때 접하면 좋을 겁니다. 영화인 중에서는 펄프픽션을 콤플렉스 내러티브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상업영화로 보는 경우도 있더군요. 여담인데 「저수지의 개들」도 똑같은 4점입니다.



- 「헤드윅」(추천) : 가장 소수에 속한 자의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죠. 모든 사람은 경계선에 서 있고, 헤드윅은 그 경계선의 화신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 헤드윅, 그리고 그 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헤드윅은 존 카메론 미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추격자」(추천) : 뭐 길게 말할 거 있나요. 「추격자」는 아직까지 한국 최고의 스릴러입니다.






[★★★★☆]
 갈수록 취향과 편애의 고발현장이라는 느낌입니다. 헌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 서술이 어려운 것처럼, 애호하는 영화에 대한 설명은 자꾸 감상적으로만 흘러가는군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영알못의 한계입니다.

 4.5점에는 열다섯 편이 있네요. 아래 언급하지 않은 영화로는 「뮌헨」, 「액트 오브 킬링」, 「황금광 시대」, 「다크 나이트」가 있습니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추천) : 안톤 시거는 그 헤어스타일이 보여주듯육화된 재앙이죠. 뚜벅뚜벅 걸어와 운명의 동전을 던집니다. 곡절많은 삶을 견뎌오며 주름살 사이로 쌓아온 상식과 지혜로도, 재앙을 이해해서 받아들일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죠. 저는 이 영화가 아주 매우 엄청 대단히 현대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요. 코엔 형제는 참 꾸준하군요.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재미없고 졸리고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영화로 유명한 그 스페이스 오딧세이입니다(…). 근데 저는 진짜 이거 침 꼴딱꼴딱 삼키면서 흥미진진하게 봤어요. 실은 그 유명한 'Also Sprach Zarathustra'가 이 영화의 O.S.T.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봤던 건데… '이런 게 영화구나'하고 감동했습니다.



- 「아무도 모른다」(추천) :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칸에 갔을 때 함께 후보로 올랐던 최민식 씨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탄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주연 야기라 유야입니다. 허나 사실 그건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요소는 아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에서 재현된 세상은 잔혹합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범죄적 소재를 공분과 비난으로 유도하지 않아요. 그 성과는 대단합니다. 악을 악이라 고발하는 것보다,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이 주는 울림이 수십 배는 더 커요. 한 번은 보시길 권합니다. 예고편은 일부러 링크하지 않습니다.



- 「A.I.」(추천) :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 중 가장 좋아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 몇 시간이고 혼자 묵묵히 술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SF라는 장르는 이런 작품을 낳기 위해 성립되어 온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후반부가 없는 편이 나았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저는 그 부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제게 이 영화의 이미지는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색입니다. 순수하고 시리고 공포스럽지만, 그 무엇도 흰색의 탓은 아니죠.



- 「플레이타임」 : 자크 따띠의 1967년 작품입니다. 욕 먹을 공산이 아주 크니 추천은 아니합니다. 알려진 일화대로, 예술가가 절제를 잃으면 이런 굉장한 물건이 나오는 거군요. 어떻게 그 시대에 이렇게나 모던할 수 있나 싶어요. 화면을 구성하는 대소도구들이 미래적이었다는 게 아닙니다. 인물과 사건/배경과의 관계, 그리고 인물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 더 넓게는 작품과 작자의 관계까지도 일관적으로 모던해요. (자크 따띠의 다른 영화들도 이런 식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벼르고만 있을 뿐 보질 못했습니다.) 영화 쪽 강의에서 이 영화의 주제가 문명 비판이라는 식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지만, 순순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문명 비판 대신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요? 저 같은 한낱 대중도 그에 답할 수 있는 모던한 시대가 어서 오면 좋겠군요.



- 「수자쿠」 : 이 영화는 절대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무지막지 지루한 영화에요. 사실 저도 감독인 카와세 나오미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제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우연에 지나지 않아요. 허나 추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는 좀 있습니다. 「수자쿠」를 유심히 보면 엄청난 정성으로 풍경을 담아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아예 배경인 일본 산골마을의 자연풍경 자체가 인물들보다도 주연처럼 보일 정도죠. 이게 유의미한 일일까요. 리얼리즘 영화는 현실재현의 장르인데, 자연풍경을 이토록 진득하게 바라보는 기계장치의 시선은 현실재현으로서 유의미할까요. 배경은 과연 전경일 수 있는 걸까요. 대부분의 영화는 풍경에 대한 기호 몇 가지를 짧게 제시함으로써 배경을 성립시킵니다. 가령 숲이라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숲을 와이드하게 잡아준다든지, 숲을 구성하는 동식물들의 움직임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간다든지 하는 식이죠. 우린 이미 이 방식에 길들여져 있고, 우리가 풍경을 대하는 방식 또한 그러하지요. 촬영장치의 발달 덕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풍경을 사유화/재현합니다. 멋진 풍경이 있으면 그 속에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툭 찍고 가버리는 식입니다. 진지하지 않죠. 풍경과 자신의 관계는 배재한 채, 더 좋은 성능의 기계가 있으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습니다. 반면 「수자쿠」가 풍경을 대하는 방식은 느리고 진득한데, 그 성과는 분명 있어요. 저는 예전에 이륜차로 일본의 시골길을 수백킬로미터씩 쏘다닌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자연의 인상,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제가 느낀 정서가 영화 「수자쿠」에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요. 도로를 바라보는 방향도, 버스가 멀어지는 속도감도, 그 후 혼자 남은 사람이 느끼는 정적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순간 산 자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조차도 엄청난 리얼리티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압권은 '미치루'가 지붕 위에서 산을 바라볼 때의 장면(위 포스터가 그 장면의 일부입니다)이었어요. 저는 산을 넘는 어느 고갯길 도로의 가장 높은 곳에서 혼자 감격에 겨워 멍하니 서 있던 일이 있습니다. 하늘은 무한히 공활하고, 산은 대책없이 거대하고, 무수한 잎의 물결 속에 나는 티끌이었고, 그러나 그 티끌이 이 높은 곳에 올라서 있고, 힘겹게 올라온 나를 산은 밀치지도 품지도 않아서, 그래서 나는 다시금 티끌…. 그 순간의 신비한 감각이, '미치루'가 산을 바라보는 장면에 분명하게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그 왜, 그런 이야기가 있죠.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본 지구를 어떻게 형용해야 할지 몰라서 어버버하고 말았는데 지구로 돌아오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읽게 된 어느 시에서, 우주에 가본 적도 없는 시인이 자신이 느낀 것을 무섭도록 정확히 표현해둔 것에 놀랐다, 하는 이야기요.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란 이토록 깊이있는 매체로구나 하고 감탄했죠.



- 「2046」 : 「화양연화」를 보고 나지 않던 눈물이 「2046」볼 때는 나더군요.



- 「모번 켈러의 여행」 (조건부 추천) : 오래 전부터 궁금했지만 좀처럼 보거나 듣거나 느낄 수 없었던 여성성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난해해보이는 전개방식―사실 낯선 거라고 생각하지만요―을 보여주기에 가벼이 추천하기가 거리껴집니다. 어렵고 재미없는 영화라고 불릴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분명 뛰어난 면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조건부 추천이라 해두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러닝타임 81분 경의 묘비 씬이 아주 좋았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상술은 못하지만… 모순되지 않은 동시존재라는 건 어쩌면 꽤 구체적인 여성성 표현 아닐까 싶었어요.



- 대부 2 : 대부 시리즈의 훌륭함은 제가 잘 말하기 어렵네요. 헌데 2편에 관해서라면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대부 2」의 로버트 드 니로는 정말 섹시합니다. 심지어 메리야스 차림도 섹시해요.



- 「밀양」 (추천) : 이창독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내용은 결코 아니지만, 지금 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음이 포함된 영화라 생각하여 추천합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이거 종교영화 아닙니다! 여담 하나. 이 영화의 홍보문구인 '이런 사랑도 있다…'는 이상하다 싶어요. 뭐 흔히 감독들에게 최흉최악의 적은 마케팅 팀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좀….






[★★★★★]
 만점의 영광…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음, 역시, 아닌 거 같네요. 이건 그냥 편애목록이에요. 쑥쓰럽기까지 합니다. 총 열한 편이나 되는군요. 여섯 편만 소개해봅니다. 좋은 작품이라고 흔히 알려져있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핑계로 짧게 쓸게요.



- 「이노센스」 : 오시이 마모루 판 '공각기동대'의 2편이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다고 할만한 부분, 좋지 않다고 할만한 부분이 몽땅 제 취향입니다. (제 취향이라고 좋은 것만 있을 리 없죠. 가령 저는 아포리즘으로 폼 잡는 식의 전개도 좋아하는데 사실 그거 유치한 거잖아요.) 극장에서 본 것만 네 번입니다. 저는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통틀어 여기서의 바토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건 그의 가치관에서 저와 닮은 부분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노센스」에서 바토가 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무척 서글프게 들려요. 음, 아무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1편을 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 작품은 그에 대한 9년만의 대답입니다. 사실 1편보다 쉽게 간 건데, 어렵다는 비난이 쏟아졌죠. 근데 어휘나 표현이 어려운 것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어려운 것중 뭐가 정말 어려운 거냐면…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작품의 경우 1편을 먼저 보는 게 필수입니다. 전작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전개가 너무 많아요. 여담이지만 저는 이 작품이 오시이 마모루 판 「붉은 돼지」라고도 생각합니다. 아슬아슬하게 악이라 규정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초적이고, 꼰대적이며, 자아도취적이죠. 그것이야말로 멋진 중년남의 필수 3종 세트 아닙니까? (농담)



- 「아메리칸 뷰티」(추천) :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하는 다양한 요소를 대부분 만족시킬 수 있다니. 예술에 완벽이라는 건 없지만, 이 작품은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의 완성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붉은 돼지」(추천) : 미야자키 하야오 최고의 작품이 뭔지는 모릅니다. 허나 「붉은 돼지」야말로 미야자키 하야오 고유의 예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자기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절실할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의 에고란 결국 그런 겁니다. 무어라 은유하든, 어떤 패러프레이즈를 하든 드러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연하게도 저는 그가 이 작품에서 드러낸 여러 욕망과 남자냄새가 아주 마음에 드네요. 좋은 놈들은 다 죽지만,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이기에 오늘도 남자는 자기 몫의 싸움을 합니다. 그런 거죠.



- 「엘리펀트」 : 아주 충격적이었어요. 이 또한 현대영화라는 장르의 한 정점이라고 봅니다. 초중반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왕 본 거 긴장을 늦추지 마시고 중후반까지 견뎌보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 볼 때 단단히 집중해서 끝까지 한 큐에 잘 봐야 제대로된 충격이 옵니다. 사전정보도 가능한 없는 편이 좋아요.



- 「중경삼림」 : 저는 이 작품에서 문학과 영화의 차이를 봅니다. 이 영화를 소설로 썼다면 동급의 작품이 될 수 없었겠죠. 그래서 이 영화는 제게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에요. 그와 별개로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만 「중경삼림」은 '데미안'이나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느낌이 있어요. 하루라도 젊을 때 봐두는 게 좋죠. 나이 들어 생각이 많아지고 자기자신을 나중으로 물리는 습관이 들어버리면, 이 영화가 가진 고유의 영상언어를 알아듣기 힘들어질 겁니다. 여담 하나 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아시아 최고 미남은 카네시로 타케시(진청우 혹은 금성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올드보이」 (추천) :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입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한 번 정도은 보실만해요. '왜 가뒀느냐가 아니라 왜 풀어줬느냐, 잖아' 라는 매력적인 물음으로부터 증오를 거슬러가는 내러티브는 원작만화보다도 훨씬 타이트하고 정교합니다. 이런 변태는 좋은 변태에요. 이 영화가 탐구하려는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판단은 갈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박찬욱 감독이 허투루 인물에게 폼 잡도록 내버려둘만큼 느슨한 사람이 아닌 걸 기억해야 합니다. 반복하지만 이런 변태는 좋은 변태에요. 결말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주 제 취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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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15/05/14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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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애용하고 있는 어플입니다. 대충대충 평가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을 나름대로 세워서 그에 입각하여 영화들을 랭크시키면 그만큼 정확도도 올라가고 신뢰할만한 예상 평점이 뜨죠. 저는 2.5점을 디폴트 평점으로 하고, 3점과 3.5점은 무난한 양작들을, 4점부터는 오리지날리티가 있으며 비슷한 영화군들에 모범이 될 수 있는, 통속성을 어느 정도 탈피하고 그 이상을 성취해낸 영화들을 선정합니다. 지금까지 4.5점 이상 준 게 40개 정도 되네요. 5점 준 건 딱 5개...나름 짜게 주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쓴 분은 저보다 더하시네요 흐흐. 보통 예상 3.5점 이상 되는 영화가 뜨면 극장으로 찾아가곤 하는데, 현재로서는 윈터 슬립 하나 정도 있네요.

꼭 영화 추천을 받기 위해서 쓴다기보다는, 스스로의 관점에 모순이 없는지, 내가 일관성 있는 평가를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씁니다. 예컨대 특정 작품이 예상평점이 2.4점 떴는데 정작 나는 5점을 줬다..이러면 지금까지의 평가와는 일관성 없는 평가를 한 셈이고, 지금까지의 평가가 잘못되었든지, 해당 작품에 대해 변덕을 부린 것이든지 둘 중 하나겠지요. 그럼으로써 자기자신의 영화관을 반성하고 교정하고 객관화하는 계기가 되고요.
15/05/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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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글을 쓰면서 일관성이 흐트러진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객관성을 추구하기 위한 비교보다 애정표현이랄까 편애하는 의미에서 점수를 주고 있네요. 근데 제가 창작물을 대하는 관점 자체가 그러다보니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못할 거 같고, 말은 되는 수준으로 교통정리를 해둬야겠다 싶어요.
한편 영화 추천은 저에게 별로 유용하지 못한 것이…. '보고 싶어요'에 넣어둔 영화가 현재 582편이네요. 언제 다 볼지 모르겠어요.
전소된사랑
15/05/14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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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이의 귀환에서 그 유명한 장면은 어떤 씬을 말씀하시는거죠? 아무래도 스타워즈하면 제국의 역습에서의 다스베이더 고백씬이 원체 유명하다보니 잘 떠오르지가 않네요.
구밀복검
15/05/14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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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베이더가 죽어가면서 투구를 벗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요.
15/05/1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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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초과로 잘려나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스타워즈 부분은 빼버렸습니다. 대략 여남은 편 정도의 영화평을 날렸네요…. 크으.
해명을 하자면 제가 본문을 아주 엉터리로 쓴 거 맞아요. 일단 최고평점도 보이지 않는 위협(3.5)이었고, 고백씬이 제다이의 귀환에 있다고 착각한 것도 맞고(날카로우십니다), 또한 구밀복검 님 댓글 보고 제가 제다이의 귀환의 엔딩을 보고 만족감을 느끼며 (4, 5, 6중 최고점이었던) 3점을 매겼던 기억도 났습니다. 써놓고 보니 총체적 난국이네요.
전소된사랑
15/05/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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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참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스타워즈 오리지널 4, 5, 6편을 보면 매드 맥스 시리즈와 성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악하지만 날것의 맛이 살아있는 1편, 조금은 어둡고 성인 취향인 2편, 밝아진 분위기에 가족 취향의 3편. 같은 시리즈지만 전혀 다른 영화를 보는 듯한 맛이 있죠.
낭만토스
15/05/14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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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왓챠로 글 써볼까했었는데 늦었네요
15/05/14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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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누군가 쓸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서둘렀습니다. 근데 분명 내용이 다를테니 같은 왓챠 이야기라도 재밌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요?
재문의
15/05/1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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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공감할 부분도 있다면서 보았습니다만

재밌는 영화의 평점에서 너무 충격과 공포를 받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ㅠㅠ
영화관에서 안보셨죠? 라고 묻고 싶은....

적어도 아무리 오글거려도 열혈남아가 위라고 보는지라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는)
좀 비유적으로 표현에 보자면 박주영이 케즈만 보다는 위인것 같다 이런 느낌이랄까요
15/05/14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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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행히(?) 비디오 빌려 봤어요. 「재밌는 영화」를 역대급 망작으로 보는 시선도 존중합니다. 웃기는 거 밖에 없는 영화인데 못 웃겼으면 평가할 필요조차 없는 거니까요. 제가 웃겼다고 말하는 건 사실 별로 안 웃긴 이야기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저 유머감각이 없다는 말 꽤 듣거든요.

「열혈남아」에 대한 박평은 자비없는 BGM 공격 영향이 큽니다. 제가 일단은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몰입을 못하겠더라구요. 반면 패러디 영화는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내러티브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으니까요. 이래저래 제 평가는 객관성이 부족한 걸로…. 흐흐흐.
15/05/1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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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15/05/14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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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감사합니다.
15/05/1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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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궁금한 분이네요. 중경삼림을 보고 동경과 질투를 느낀다면 이쪽에 종사하는 업자느낌이 나는데요.
잘읽었습니다. 영화 스펙트럼 좋네요.
15/05/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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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날카로우십니다. 전업을 지망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림없네요.
전소된사랑
15/05/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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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여 편이라는 제법 많은 수의 영화에 평점을 매겨놓고 아직 평점이 매겨지길 기다리는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 정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와 아직까지 못 본 좋은 영화가 이렇게 많고 심지어 보고 또 봐도 재밌어서 계속 볼 영화도 많은데, 앞으로 나올 좋을 영화도 보자면 그나마 인생에 즐거운 시간들이 많이 남았구나.
15/05/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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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여편이면 엄청나게 많으시네요. 제가 안면 있는 사람 중에서는 어떤 아가씨 하나가 독립영화제, 국제영화제 전부 다니고 평일에는 학교 도서관, 휴일에는 영화진흥원 가서 영화보는 게 취미인 친구도 1,100여 편이던데…. 그 친구만해도 엄청나구나 싶었는데 그 두 배 남짓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혹시 위 목록에서 안 보신 영화가 있나요?
전소된사랑
15/05/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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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에 열거하신 영화 중 어림잡아 반은 안봤습니다~심지어 아직 대부 2, 3편도 안봤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몸이 아파서 학교를 잘 못나가다보니 친구가 영화밖에 없었네요. 그게 벌써 15년전이군요.
15/05/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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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평가수 2천 편이 넘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모든 영화는 가볍게 정복하는 수준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뭔가 영화라는 세계가 더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브라운
15/05/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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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쓰는 앱인데.. 크크 영화보고 나면 평점부터 주죠.
400편쯤? 본 것 같은데.. 제 점수에 대한 왓챠의 평가는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면서 은근 영화평가에 깐깐하다고 하더군요.
보통 네이버 평점 9점대면 재밌는데 8점대면 호불호가 갈릴 때가 종종 있어서
왓챠까지 켜놓고 같이 비교해서 네이버 8점, 왓챠 3.5 이상이면 표값은 하더라구요.
0.5점도 많이 줬는데.. 추천영화들은 적어놨다 꼭 보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15/05/1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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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음영화, 네이버영화 쪽 평점은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는데, 말씀 듣고보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네이버 8점 왓챠 3.5점의 교집합이면 확실히 웬만한 영화는 다 걸러볼 수 있겠군요. 앞으로 영화관 갈 때 응용해봐야겠습니다!
The HUSE
15/05/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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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네요,
영화는 취향의 영역이라는걸...
15/05/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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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 취향은 사실 보편타당에서 약간 거리가 있다는 걸 주변의 구박(?)을 통해 인지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이 높아질수록 자꾸 참회록 같은 느낌이 들어서 쑥쓰러웠습니다…! 「이노센스」를 만점에 놓는 뻔뻔함도 실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어요. 서문에 써뒀듯 저는 취향의 대립을 환영합니다.
15/05/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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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리뷰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자신의 취미에 이정도의 깊이를 가지게 된 다는점은 정말 근사한 일인것 같아요.
이처럼 풍부한 감상을 하는 사람이 보는 영화의 즐거움은 얼마나 클까 부러워 하게 되요.
허세부리길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나도 이만큼 알았으면 좋겠다는 동경심이 생기게 되고요.
15/05/1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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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바로 저 위에 제 예닐곱 배 정도로 영화 보신 분이 계시네요. 제 티어로는 허세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 크크크…. 사실 하나의 뚜렷한 기준점을 갖는 것, 그리고 억지로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전공자)들이 화제로 삼는 고급한 작품을 접해보는 게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기준점이라는 건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잡는 편이 좋겠지요. 가령 저는 내러티브나 스토리 쪽에 흥미가 많아서 모든 영화를 내러티브 중심으로 평가해왔는데, 그 상태로 많은 영화를 접해보면 그 기준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러티브는 나쁜데 다른 무언가가 좋은 영화가 나오고, 그러면 판단기준을 늘려서 '이 영화는 A는 좋은데 B가 나쁘더라' 같은 식이 되고… 하다보니 미장센이니 조명이니 하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요.
사실 학생이시면 영화과 수업 몇 번 듣는 게 직빵이긴 합니다. 저는 미장센 연구 강의에서 개망신(…) 몇 번 당하면서 영화의 리얼리즘을 배웠습니다. 그때 망신살 뻗친 거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김연아
15/05/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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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최소 박평식......
15/05/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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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모르는 이름이라 검색해보니 영화평론계의 소금왕이라고 나오는군요. 사실 모두까기 인형 스타일 좋아합니다. 그 분의 별점 쭉 보니까 공감가는 평가가 많네요(…). 분량상 잘렸지만 비교적 최근의 평가인 「액트 오브 킬링」도 4.5로 같군요. 김연아 님이 날카로우신 걸로!
도라귀염
15/05/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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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데미안도 그렇고 중경삼림도 그렇고 어릴때 봤는데 뭔가 심오하다 생각은 해도 와닿지는 않던데 제가 알못이라 그런거겠죠?
15/05/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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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근데 저는 이 표현이 딱 와닿습니다. 젊을때 겪어야만 제대로 이입되는 무언가가 있긴 있어요. 데미안도 중경삼림도 전 사실 10대, 20대에 봐서 좋았고요.. 데미안을 통해 10대때의 나안의 컴플렉스를 대면할 수 있었고.. 중경삼림은 20세기 말의 20대가 봐야 (홍콩인은 아니라 유감이지만) 그 널부러진 삘이 제대로 느껴집니다.

저에겐 같은 컨텐츠가 다른느낌으로 경험된 대표적인게 여행이었는데.. 재작년에 20년만에 같은 코스의 유럽 배낭여행 비슷한걸 다시 해봤는데 말입니다.. 제 자신은 사실 그 동안 크게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믿고 살았는데.. 개뿔.. 감수성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더군요. 국어책에서나 나오는 '객창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아서 실망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와 그에 맞는 컨텐츠란게 있긴 있더군요.
15/05/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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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같은 코스로 여행이라니, 정말 멋진 이야기네요. 건강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15/05/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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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는 알못인지는 알 수 없겠죠. 거칠게 단선적으로 비유하면 어떤 작품이 있을 때 내가 미숙해도 재미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조숙해도 재미를 못 느낄 수 있는 거니까요. 게다가 실제로는 사람마다 수십 가지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특정 작품과의 궁합이 알못을 구분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데미안은 그렇다쳐도 중경삼림은 마니악하고 약-간은 병리적이기까지 한(…) 감성이 깃들어있으니 오히려 정신이 아주 건강하고 삶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그게 뭐야 싶을 수 있겠지요. 결국 취향은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 싶어요.

약간 동문서답이 되는 거 같습니다만, 저는 작품과 사람 사이에도 일기일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나이를 먹지만 작품은 나이를 먹지 않으니, 각 작품마다 같이 놀기 좋은 나이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가끔씩 빼어난 작품은 나이를 먹을 때마다 다른 의미, 다른 인연으로 남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15/05/14 10:40
수정 아이콘
저도 왓챠 애용중입니다.

저는 1100편 가까이 등록해놨는데 데이터가 많이 쌓이다보니 제 취향에 맞게 별점이 매겨지더군요.

그래서 영화 관람 선택시 왓챠 예상 평점을 많이 참고 합니다.(왓챠 3.0 이상이면 대부분 볼만은 하더군요.)
15/05/14 13:26
수정 아이콘
역시 PGR에도 천 편 넘는 분들이 많으시군요. 저는 사실 새 영화에 거의 관심을 안 갖는 편입니다. 아직 안 본 명작도 많다, 어차피 새 작품에 대한 여론에는 거품이 듬뿍, 하는 사고방식이 있어서요. 근데 「아바타」 이후로 영화관에서 아이맥스나 입체로 봐야만 맛이 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어서 신경이 쓰입니다…. 왓챠 예상평점은 확실히 용하더라구요.
막타못먹는원딜
15/05/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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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리뷰 잘봤습니다. 처음에는 저랑 취향 차이가 좀 있네 하면서 가볍게 읽었는데 맛깔스런 글을 보니 주말에 영화 봐야할 것 같네요 흐흐
15/05/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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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량은 좀 길어졌지만 가벼운 화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류현진99
15/05/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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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무척 즐겨사용하는 어플이라 이렇게 관련글 올라오니 반갑네요. ^^
혹시 왓차 아이디도 동일하게 Tigris를 쓰시나요?
팔로우하면서 제 취향이랑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들어서 여쭤봅니다.
(제 계정은 pdtaeng...으로 검색하시면. ^^)
15/05/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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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별점평가 2,152편… [상위 0.01%에 꼽히는 '베테랑 영화인']이시군요. 쑥쓰러워서 조용히 팔로우 드렸습니다. 저 혼자 엄청 배워가는 불공정거래가 될 거 같군요! 400 건이 넘는 코멘트 잘 읽겠습니다.
류현진99
15/05/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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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맞팔했습니다. ^^
0.5별점이 없을 때 많이 올렸던터라 조금씩 별점 수정도 진행중입니다~
보신 영화중 제가 안본 영화들도 꽤있어서 감사히 추천 영화 보겠습니다.^^
15/05/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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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팔 감사합니다. 헌데… 안 보신 영화라니 그런 게 정말 있나요? 평가 2천편이 넘으면 인구에 회자되는 영화는 다 보셨을 거 같은데…. 뭔가 신기한 느낌입니다. 저도 류진현99 님의 대기록을 자극삼아 열심히 보겠습니다.
류현진99
15/05/14 16:00
수정 아이콘
부끄럽습니다.>.<
제 계정보시면 아시겠지만.... 보고싶은 영화가 657개랍니다. ^^;
Tigris님 영화평이 참 좋네요. ^^b
전소된사랑
15/05/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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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신기하네요.
왓챠 처음 쓸 때 괜찮아 뵈는 분들 혼자 팔로우해놨었는데 그 중 한분이 류현진99님이라니 흐흐
류현진99
15/05/14 15:56
수정 아이콘
헛 전소된사랑님~ 영광입니다.^^
왓챠쓰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15/05/14 11:51
수정 아이콘
지금껏 이런 리뷰를 기다려왔습니다. 최고네요.
15/05/14 13:31
수정 아이콘
반겨주시니 기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음해갈근쉽기
15/05/14 13:18
수정 아이콘
성상편은 그 우울함이 주는 미학이랄까

먹먹한 진행이 참 좋더군요

카오루 품에서 장렬히 산화하면서 볼의 상처도 지우게 되고

불사의 신념이라 하셨는데 불살의 신념입니다

켄신도 사람이죠 늙고 지치게 마련

저는 완벽한 마무리라고 봅니다
15/05/14 14:28
수정 아이콘
오탈자 신경쓰는 편인데 저런 치명적인 탈자를 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취향의 대립을 환영합니다! 완벽한 마무리라는 시각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상편」이 검심 시리즈가 아닌 오리지널 캐릭터로 설정된 개별작품이었으면 별2개, 어쩌면 3개까지도 줬으리라고 생각해요. 작화도 좋았고 말씀하신 부분의 연출은 상당히 정성스러웠죠. 사심을 노출하자면 사노스케의 재등장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람의 검심」 자체가 세계관 2인자급 무력을 지니고도, 자기 손을 더렵혀가며 만든 나라가 제국주의 전범국이 되어가는 시대에도 고고하게 불살의 신념을 지키는, 어떤 의미로 굉장히 소년점프 주인공스러운 켄신의 개성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그 바탕에는 「추억편(원작)」이라는 멋드러진 개연성도 깔려있구요. 스물여덟 권의 전체가 불살을 지키기 위한 여정, 그리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었죠. 허나 「성상편」에서, 기존에 복선 하나 없었던 청일전쟁참전이라는 전개로 가면서 캐릭터가 왕창 깨졌다고 느꼈습니다. 카오루의 품에서 십자 상처가 지워지는 장면은 실로 아름다웠고, 그것은 어떤 의미로 수많은 검심팬들의 숙원이기도 했지만, 카오루와 켄지를 내버려둔 채 전쟁 나가서 사람을 베거나 혹은 그것을 지원하다 돌아온 켄신이 도모에로부터 용서받을만한 맥락을 저는 찾을 수가 없어요.
요컨대 켄신도 사람이죠, 라는 인식에 저는 동의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저는 그가 언제까지고, 늙고 지쳐도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답길 바라는 거죠. 물론 「추억편」과 「성상편」은 타 OVA, 극장판과 달리 원작을 재구성한, 엄밀히 따지면 원작과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패러럴 월드긴 한데, 그렇다고해도 이것이 과연 와츠키 선생이 원한 전개였을지 하는 의문은 남습니다.
파란아게하
16/01/14 18:4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목록잘얻어갑니다.
16/01/14 20:31
수정 아이콘
오오… 오래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리콜한방
16/03/20 13:09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영화 몇 개 추가했고요. 인간은 역시나 청개구리인지 수자쿠가 가장 끌리네요. 크크크.
혹시 안 보셨다면 작년 개봉작 중에 인 허 플레이스 추천해요. 왠지 취향에 맞으실 것 같네요. 아닐 확률이 높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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