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8/24 15:07:33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소련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쵸프의 순정.txt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회고록 "선택"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몇개 있어서 간추려봅니다. 특히 이 사람 정말 팔불출이네요 

 

"1951년 8월 어느날 저녁 방에서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인 유라 토필린과 볼로드야 리베르만이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들뜬 표정으로 클롭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 공부나 하고 있을 때가 아냐. 클럽에 새 여학생이 나타났데. 어서 가서 한 번 보자구!"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뭔 소리야. 난 공부할게 많이 남아서 안돼"

 "그런 소리 말고 어서 가자구"

 "알아, 알았어 뒤따라갈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나는 한참 더 망설인 끝에 친구들이 가 있는 클럽으로 갔다. 그곳에서 내 운명의 여자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날씬한 몸매에 단정히 빚은 금발의 여학생은 내 친구와는 정말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다른 남학생들이 다가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하자 얌전하고 말이 없는 여햑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유라와 출거야. 우리는 동급생이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뭐..." (고르비 지못미 (눈물)

 

나는댄스가 끄날 때까지 한 쪽으로 비켜서 있었다. 댄스가 끝나자 친구들이 나를 그 여학생 라이사 티타렌코에게 소개해주었다. 솔직히 처음 만남에서 그녀는 내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중략)

 

"라이사는 친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녀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미인은 아니지만, 대단히 매력있고 붙임성이 있었다. 얼굴과 눈에는 생기가 넘치고 날씬한 몸매였다. 대학생활 초기에 체조용 링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는 체육관에도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매혹적인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고르바초프가 회고록 집필한 시점은 2011년 *라시아는 1999년 사망. 

 

"라이사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마당에 있는 아치 밑에서 만나 모스크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걷다 보면 항상 길 한쪽에 극장이 한 두개 씩 있었고,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처음에는 나란히 걷다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교감했다...(순정파)

 

 

 

"결혼식은 11월 7일 스토림카 기숙사의 식당에서 열렸다.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클라스메이트들을 초대했다. 러시아식 샐러드, 훈제 청어, 삶은 감자와 스톨리치나야 보드카를 내놓았다. 그리고 삶은 고기와 커틀렛도 조금 곁들였다. 우리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해 차린 것이었다. 라이사는 가벼운 시폰 웨딩 가운을 입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멋을 부려 보았다. "마음의 들어?" 이렇게 묻고는 "너무 행복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많은 여자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예쁜 옷을 보면 사족을 못썼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아주 먼 시골에서 모스크바로 유학 온 라이사는 그런면서도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랐다. 과장이 아니라 내 눈에는 그녀가 정말 공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기꺼이 이해했다. 당시 우리가 받는 돈으로는 먹고 살기도 거의 빠듯했지만 그래도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라이사의 옷을 샀다. (아내바보... )스코, 블라우스도 사고, 오버코트 옷감도 샀다. 옅은 녹색 옷감으로 만든, 허리가 잘록하고 스탠드업 모피 깃을 한 코트가 있었는데, 아내는 이 옷을 해져 못입게 될 때까지 8년이나 입었다. 아내는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중략)

 

 

"그해 우리는 프리볼노에의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프리볼노에에 도착하자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바실리사 외할머니 댁에 먼저 들렀다. 바실리사 외할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라이사가 다가오자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날씬하니. 정말 예쁘구나." 외할머니는 첫눈에 라이사를 좋아했고, 그 후 우리는 프리볼노에로 갈 때마다 항사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그러나 우리 집 분위기는 약간 달랐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라이사를 좋아해서 딸처럼 대해주었다. 아들만 있는데다 천성이 따뜻하고 인정 많은 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들을 뺐긴데 대한 서운함이 컸던 것이다. 고향집에 있는 동안 이런 말을 했다. 

 

 "저런 여자를 며느리라고 데려온 거니? 도대체 도움 되는 게 없어"

 

나는 대학을 나온 여자고, 앞으로 교사가 될 것이니 너그럽게 봐달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도와주니? 왜 시골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거야?"

 

나도 화가 났다. "어머니가 알아듣기 쉽게 말씀 드릴게요. 나는 저 여자를 사랑하고, 저 여자는 내 아내에요.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들의 패기...)

 

 내 말에 어머니는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 엄마가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분명하게 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라이사도 물론 시어머니의 냉랭한 태도를 알았고, 그것 때문에 신경을 무척 썼다. 한 번은 어머니가 라이사에게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 뒷마당 텃밭에 물을 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재빨리 상황을 눈치 채고 라이사에게 "나하고 같이 갈까?"하고 말했다. (센스 있는 시아버지!!) 그걸 보고 엄마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가라앉히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라이사에 대해 좀 더 알고 난 다음에야 어머니의 태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손녀딸이 태어나고 내 일자리도 안정이 되면서 우리는 부모님께 재정적으로 도움을 드리기 시작했다. 집도 새로 지어드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라이사가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이런 말로 달랬다. "어머니 보고 결혼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 제발 마음 쓰지 마."

 

 

gorbachevs.jpg
Mikhail and Raisa Gorbachev (source). 

 

 

1999, 라이사 고르바초프는 백혈병으로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고르바초프는 지금도 아내를 회상한다고 함. 

 

 

소련 붕괴 이후 민간인으로 돌아간 고르바초프는 결핍 아동과 환경보호에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며, 결식아동을 위한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굴욕을 무릎쓰고 Pizza Hut 광고와 Louis Vuitton 광고에 출연했다. 

 

+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을 대놓고 비판하는 몇안되는 용자입니다. 

 

그나저나 꽤 오래 사시는듯. 2015년 현재도 살아있어요. 

 

러시아 사람들한테서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5/08/24 15:27
수정 아이콘
헉 고르비 옹이 아직 살아계시는군요
15/08/24 15:29
수정 아이콘
언제적 고르바초프인데... 진짜 장수하고 있네요.
우리나라 전두환씨도 무병장수하려나?
공허의지팡이
15/08/24 15:55
수정 아이콘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31년 생이니 80대 중반이네요. 90살은 당연히 넘겼겠거니 생각했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5/08/24 16:08
수정 아이콘
업적도 많고 깔것도 많은 양반이지만 이양반도 인간성은 진국인것 같습니다. 역시 대국을 경영했을 만한 배포와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정치인이라 생각이 듭니다. 애처가인것도 존경스럽고 거기에 아직까지 조국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다니 존경할 수 밖에 없네요.
저 신경쓰여요
15/08/24 16:23
수정 아이콘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군요. 잘 봤습니다.
둥실둥실두둥실
15/08/24 16:43
수정 아이콘
사랑스러운 사랑 이야기네요.^^
리비레스
15/08/24 16:43
수정 아이콘
너무 멋있네요...누구 말대로 푸틴같은 난봉꾼과 비교하니 안구정화되는 느낌...
"어머니가 알아듣기 쉽게 말씀 드릴게요. 나는 저 여자를 사랑하고, 저 여자는 내 아내에요.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speechless
15/08/24 16:46
수정 아이콘
고르바초프도 저러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집에서 게임을 하겠다고.....
꽃보다할배
15/08/25 07:06
수정 아이콘
장수요? 이제 겨우 84입니다 언제적이라고 해서 그렇지 최연소 서기장이셨어요 게다가 상대방 거물들이 다 고인이라서 백세쯤으로 착각될만한 크 김종필옹보다 젊고 박희태옹이랑 비슷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262 [일반] "미국 이어 유럽 은행들도 러시아 국채 매입 거부" [5] 군디츠마라5997 16/03/24 5997 0
63716 [일반] 트럼프의 3연승, 그리고 [28] minyuhee7591 16/02/24 7591 4
63419 [일반] 러시아, 저유가에 재정난 심각 "국영기업 민영화로 자금 조달" [26] 군디츠마라9376 16/02/04 9376 0
62909 [일반] 재미로 보는 네임드 세계지도자들 젊었을 적 사진.jpg [26] aurelius12011 16/01/04 12011 0
62777 [일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Top10 [16] 김치찌개10235 15/12/27 10235 1
62233 [일반] 007 : 스펙터 - 제겐 숀 코네리에 버금가는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 [26] Jace Beleren5524 15/11/28 5524 2
62186 [일반] 어허 무섭네요. 터키군이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합니다. [38] 페마나도14951 15/11/24 14951 1
61220 [일반] 난민관련 보도들에 대해서 [22] 구들장군6456 15/09/28 6456 10
60923 [일반] [신간] 시진핑은 반드시 김정은을 죽인다 [37] aurelius10807 15/09/14 10807 8
60513 [일반] 소련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쵸프의 순정.txt [9] aurelius6825 15/08/24 6825 5
59013 [일반]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지사가 된 전직 조지아(그루지야) 대통령 [17] 군디츠마라6597 15/06/12 6597 0
58461 [일반] 우리나라 국민 배우였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48] swordfish-72만세10185 15/05/26 10185 0
56794 [일반] '푸틴 정적'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피격 사망 [49] 치킨과맥너겟11165 15/02/28 11165 1
55695 [일반] 인물로 보는 2014년 Up & Down [27] Dj KOZE8294 14/12/30 8294 0
54969 [일반] 터키 대통령 "신대륙은 콜럼버스 아닌 무슬림이 발견" [40] Dj KOZE8278 14/11/18 8278 0
54912 [일반] 우크라이나 사태는 종결했을까 [4] minyuhee4165 14/11/15 4165 1
53906 [일반] [스포주의] WWE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 2014 최종 확정 대진표 [20] 갓영호4990 14/09/21 4990 0
53631 [일반] 푸틴에게 개기면 발생하는 일-체첸 전쟁 [31] 요정 칼괴기12538 14/09/04 12538 1
53617 [일반] 우크라이나-러시아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휴전 동의했다고 우크라정부 주장. [18] 요정 칼괴기4775 14/09/03 4775 0
53373 [일반] 미국의 반전 [9] minyuhee4663 14/08/22 4663 0
52823 [일반] [스포주의] WWE 배틀그라운드 2014 최종 확정 대진표 [20] 갓영호6024 14/07/20 6024 0
52572 [일반] 디씨 기갑갤에 올라온 우크라이나 반군 사령관 분석글 [3] 요정 칼괴기6518 14/07/06 6518 3
52369 [일반] 우크라이나- 금요일까지 휴전 시작 [2] 요정 칼괴기4393 14/06/24 4393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