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9/30 13:39:04
Name 사과씨
Subject [일반] 개인적인 위로를 위한 선곡리스트
#1
어렸을 적 동화 속 삽화 마냥 아름다울 것 같은 세상 속의 주인공이 내가 될 거라는 말에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크면 알게 될 거야.
아직도 알아야 할 게 있다는 게 여전히 무섭네요 어머니.

길을 걷던 한 소년은 물었지
엄마 저건 꼭 토끼 같다. 라고..
심드렁한 엄마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 이란다..
델리스파이스 -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2
어김없이 첫 몽정과 첫 번째 사랑이 찾아왔지. 그게 사랑이란 걸 깨달은 건 정말 아주 오랜 후였어.
미운털이라도 박혀서 기억에 남고 싶었던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불쾌함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지.

중2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델리스파이스 - 고백

#3
아주 서툴렀던 첫 고백. 그래 그때는 내가 사랑한 만큼 그 사람도 나를 알아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어.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타인의 마음은 나의 거울이 아닌데.

이제는 보이나요
이미 다 얘기했는데
그래도 모른다면
나도 잊을까요
루시드 폴 - 보이나요?

#4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한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
그때 나에게는 아주 기나긴 시간이 있었기에 외려 시간이 약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선이 - 시간

#5
제대하고 뻘쭘하게 들어섰던 첫 강의실 앞 자리에서 마주쳤던 그녀.
솜털 갓 벗은 병아리 마냥 귀여웠던 그녀는 언제나 나의 밥 사준다는 말을 거절한 적이 없었어.
즐거운 목소리로 ‘네 저도 그 영화 보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하던 너의 목소리를 왜 난 바보 같이 나에 대한 호감이라 넘겨짚었던 걸까.
넌 그냥 그 영화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맛있는 거 먹자고 꼬셔
영화 보러 가자고 불러
단대 호수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 버스커 버스커

#6
친구들과 여행 간 밤바다에서 술 한잔 먹고 파도 소리 들려주겠다고 너에게 전화했던 그 순간의 정적과 싸늘함을 아직도 기억해.
바쁘다는 너의 말과 함께 그 날의 파도 소리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되었지.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 밤바다 - 버스커 버스커

#7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없는 마음이 애타는 구걸로 돌아서지는 않는 법.
진심은 꼭 통한다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잠언이 얼마나 글러먹은 얘기였는 지 뒤늦게 원망해서 뭐한담.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앵콜 요청 금지 - 브로콜리 너마저

#8
젊음이란 이름만으로 반짝반짝하던 시절은 순식간에 끝나고
우리는 모든 낭만을 갑작스럽게 종료하고 잠이 아직 덜 깬 상태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사랑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사랑이 사치라고들 한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졸업 - 브로콜리 너마저

#9
자다 깨어 머리 맡에 둔 자리끼를 찾다가 손에 잡힌 콜라캔.
허겁지겁 들이킨 캔 속에 들어있던 건 눅진 하게 식은 콜라와 간밤에 뱉은 가래와 담배꽁초의 콜라보레이션.
반지하 방으로 하루 30분 가량만 얼굴 보여주시던 햇볕은 구토 하는 내 바짝 마른 등짝 위로 뜨끈하게 쏟아졌었지.

뭐 한 몇 년 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싸구려 커피 - 장기하와 얼굴들

#10
또 다시 사랑을 한다. 더 이상 풋풋하지도 않고 눈가가 시큰해지진 않지만 가슴은 쿵쾅 거리고 아랫도리에 피가 잔뜩 몰린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서투르거나 어수룩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아. 
지갑은 가벼워도 난 사랑을 위해 낭만을 연기할 마음 가짐을 갖출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혹시나 내가 못된 생각 널 갖기 위해 시꺼먼 마음
의심이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어도 좋아
창밖을 봐요 비가 와요
지금 집에 가긴 틀렸어요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 10cm

#11
혹시 나라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난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데 벌써 이 세상은 나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것 같다. 거리에 마주치는 모두의 시선이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난 좀비다. 잉여가치 생산의 기회조차 박탈되어 버린, 강시가 되어 도사의 종소리에 발맞춰 춤출 기회마저 박탈 된 그냥 유령이다.

이미 늦었다 말하지 마요 나는 아직 숨을 쉬어요
가망 없다고 하지 마요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
아래 숨 쉬고 있죠 이 미어 터진 좁은 공간에
나는 아직 살아 있죠 이 빌어먹을 텅 빈 공간에
여기 사람 있어요 - 중식이 밴드

#12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탑 마냥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흩어져 간다. 
한 때는 절실했던 시간들이 이젠 그저 아랫 목에 개어둔 오래 빨지 않은 담요 같이 편안하고 구차하다. 
싸우다가 싸우다가 무뎌진다. 그렇게 멀어진다.

마주 본 식탁에 성의 없는 젓가락질
시간이 지루하네 느리게 흘러가네
마주 본 그대의 성의 없는 반찬을 보면
그대는 철이 없네 우리 둘 변해가네
그대는 철이 없네 - 장재인 (Feat. 김지수)

#13
고등교육이 내가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사회의 문턱에서 지금까지 내가 배운 건 그 허구를 하나 하나 포기 하는 법이었지. 
나에게 욕을 하는 건 돈 주는 고용주가 아니라 저임금 고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알고리즘이야. 웃어. 밝게 웃어.

또 표정이 굳어 이유가 없어 어이가 없어
무슨 욕을 먹는 게 내겐 업무의 옵션인가 봐
난 그럴 때마다 속이 쓰려와 가슴이 아파
그 분 내 이름을 부르면 우선 겁부터 나지
죽어버려라 - 중식이 밴드

#14
텅 빈 방안에서 기계적으로 재생한 야동 속에서 만난 한 때 숨 막힐 정도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첫 사랑의 기억. 
가장 서글픈 모습으로 부정 당한 추억들.
난 야동으로 거시기를 위로 하려다 이제 추억 속에서 현실을 위로 받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다.

카메라를 보는 너 모니터를 보는 나
우린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전혀 상관 없는 남인데
왜 자꾸 성질이 나지
너를 사랑했던 내가 그 때 그 시절 니가 떠올라
야동을 보다가 - 중식이 밴드

#15
나 빼고 다 멋지게 사는 것 같네. 모두가 빛나네. 나는 그림자네.
그렇게 번쩍 번쩍 하는 세상엔 별 의미 없는 텅 빈 여백 같은 시간을 인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혼자 위로하네.
난 별 일 없이 산다. 니들은 매일 매일이 별 일 이겠구나.
오늘은 뭐 먹나.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별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Meridian
15/09/30 13:48
수정 아이콘
추천드립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감성터지네요
*alchemist*
15/09/30 13:58
수정 아이콘
어우..... 순간 어우 씨 라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글 참 기깔나네요
잠수병
15/09/30 14:49
수정 아이콘
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평소에 되게 좋아하는 노래에요.
오빠나추워
15/09/30 15:41
수정 아이콘
중식이 밴드 노래는 하나 같이... 웃긴데 슬퍼요... 야동을 보다가 듣는데 감정 이입되서 눈물 날뻔...
15/09/30 16:24
수정 아이콘
[추천][추천][추천]....


중식이 노래듣고, 유투브에서 찾아 얼굴보고 깜짝 놀랐...
할러퀸
15/09/30 17:23
수정 아이콘
거의 다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놀랐네요. 감성이 통했다싶어 추천드리고 갑니다.
매참김밥
15/09/30 17:33
수정 아이콘
와~
mapthesoul
15/09/30 17:56
수정 아이콘
회식 때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는 노래 1위 - 중식이 '죽어버려라'
에리x미오x히타기
15/09/30 20:06
수정 아이콘
[추천] 요팟시에서 들었는데, '베스트 앨범은 사지않아(였나..;;)'라는 노래도 좋더라구요.
서쪽으로 gogo~
15/09/30 21:16
수정 아이콘
[추천] 많이 듣는 노래들이 보여서 추천 누릅니다~! 하하! 개인적으로 넬의 스타쉘은 어떠신지요?
고개를 들어 너의 그 목소리를 높여 넌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워
널 가둔 감옥 같은 두려움, 그 안에서 벗어나, Don’t be afraid, We all rise and fall
우리만의 riot, It will take us higher, 꺼질 수 없는 fire, Yes this is our riot
곰돌이우유
18/04/27 22:2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2444 [일반] 신경외과 인턴 시절 이야기 [109] 녹차김밥27474 15/12/08 27474 109
62439 [일반] 구명조끼 하나 찾아낸 이야기 [6] 퐁퐁퐁퐁4020 15/12/08 4020 8
62254 [일반] [2][우왕] [연애] 오늘 생일인데 남친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ㅠㅠ [104] 단호박17393 15/11/28 17393 6
62245 [일반] [2][우왕] 인간 기본권을 침해당했던 이야기 [27] CathedralWolf3868 15/11/28 3868 1
62008 [일반] 안녕하세요. 한윤형이라고 합니다. [69] 한윤형20903 15/11/14 20903 20
61971 [일반] 저 새는 해로운 새다. [43] 작은기린8731 15/11/12 8731 35
61901 [일반] 불행했던 대통령 - 1865년 미국 대통령 승계 [9] 이치죠 호타루6677 15/11/07 6677 9
61788 [일반] 열폭 [43] 명치7101 15/11/01 7101 30
61785 [일반] 부모님과 국정화 교과서 대화를 했습니다. [62] 연환전신각8182 15/11/01 8182 6
61772 [일반]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7] 글자밥 청춘6053 15/10/31 6053 13
61723 [일반] 커피이야기 - 경매 [12] 만우5835 15/10/28 5835 1
61638 [일반] 가요계 최초로 대박친 실제 NTR 배경 노래 [44] angk13865 15/10/23 13865 0
61598 [일반] 자신감이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32] 비타에듀7200 15/10/20 7200 0
61526 [일반] 아버지와 나의 인식 [6] 글자밥 청춘3341 15/10/16 3341 7
61522 [일반] [야구] kt 포수 장성우 관련루머(사과문 추가) [53] 이홍기18795 15/10/16 18795 1
61498 [일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1] 윤가람3797 15/10/15 3797 4
61416 [일반] 김문돌 이야기 -1- [5] 알파스4977 15/10/10 4977 7
61336 [일반] [연애]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너무 힘듭니다. [115] 밐하13688 15/10/05 13688 9
61247 [일반] 개인적인 위로를 위한 선곡리스트 [11] 사과씨3872 15/09/30 3872 12
61182 [일반] 그때는 민두노총이 권력을 잡았던 것일까? [8] 바람모리4662 15/09/25 4662 8
61086 [일반] [1][우왕] 실수했던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47] 스타슈터4085 15/09/22 4085 1
61066 [일반] 특별했던 제주도 49박 50일 여행기(2) [14] 오빠언니5023 15/09/21 5023 13
61031 [일반] [1][우왕] 하늘은 까맸고 우리 손은 빨갰다 [98] Eternity11694 15/09/19 11694 13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