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이야기 입니다.
난 냄새에 민감하다.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을 때도 내 앞에 차려져 있는 음식의 냄새가 반드시 좋아야만 한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떤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코를 찌르는 퀘퀘한 냄새가 덮쳐왔다. 사업차 온 곳이라 그곳 지리를 모르거니와 몹시 시장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런데 주문한 볶음밥에서 시궁창 냄새가 확 풍겨오자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보기 좋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맛이 좋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난 그 집 주인의 눈알을 뽑고 혀를 자르게 해서 앞으로의 음식에는 냄새에 좀 더 신경 쓰도록 했다.
내 방에는 향수가 수십 개가 있다. 일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꼭 향수를 하나 사가지고 들어온다. 외출하면 들어오는 길에 거의 사오는 편이기 때문에 몇 개인지 내 자신도 모른다. 방 안 이곳저곳에 저마다의 형기를 뿜어내는 녀석들을 보면 기특해서 웃음이 다 나온다. 이 냄새 저 냄새 섞이면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방문을 여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나에게 와락 달려든다.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황홀감은 내 삶의 유이한 오르가즘이다. 내가 숨 쉴 때마다 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향긋한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그 향기. 그건 방금 내 옆을 지나간 어느 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였다. 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뒤따라 갔다. 사뿐히, 그리고 조용한 그녀의 발걸음은 예의 얕은 향기를 조금씩 뿌리고 있었다.
태연한척 그녀를 따라가곤 있지만 그 향을 감지할 때마다 나의 몸은 조금씩 경련을 일으켰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좀 더 진한 향을 맡고 싶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에 머리를 파묻고 한껏 숨을 들이쉬고 싶었다. 그녀의 몸에 밴 그 향을 내 혓바닥으로 모조리 쓸어 담고 싶었다. 입술에 침을 묻혀 본다. 그리고 한껏 올라 있는 나의 본능을 진정시켰다. 서두르면 안된다. 마음을 조급히 먹으면 안된다. 직업을 갖고 나서 늘 상 마음속에 되새기는 말이면서도 가끔씩 서두르는 일이 있었다. 저번에 이와 같은 조급한 마음에 조그마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1년전쯤 이었나. 일감을 받고 목적지로 향하던 중이었다. 한 여름인데다 낮 1시였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의뢰인이 꼭 대낮에 죽여달라고 해서 잘 흐르지도 않는 땀을 흘리면서 목적지로 향했었다. 왜 꼭 낮이여만 하죠? 라는 물음에 그는 술 먹고 대판 싸운 후 대낮에 죽인다고 호언장담을 했단다. 자기는 한번 뱉은 말은 꼭 지킨다고. 그러면서 그 녀석이 죽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가득한 다방에서 1시간이나 이야기 해 댔다. 그 놈 때문에 내가 이런 다방에서, 그것도 에어컨도 잘 안나오는 이런곳에서 1시간이나 앉아 있어야 하다니. 놈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더욱 확실해 졌다. 의뢰인이 건네준 돈 봉투 안에는 놈의 사진과 주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표적은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너무 쉬운 상대라 생각 했는지 아니면 푹푹 찌는 그날의 날씨 탓인지...아니 생각해 보면 그 놈 탓이다. 그 놈의 덜 떨어진 직업의식이 자신의 명을 단축시켰다. 원래의 계획으로는 보험에 든다 연락을 해서 놈을 좀 관찰이나 해 볼까 했는데 글쎄 이놈이 약속시간에 10분이나 늦은 것이었다. 그것도 뛰어 왔는지 와이셔츠가 땀에 절어 있었다. 녀석이 내 앞에 서자 에어콘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커피숍임에도 불구하고 후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더불어 그토록 내가 싫어하는 땀 냄새까지 맡게 하였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놈은 자기 일임에도 불구 하고 10분이나 늦었다. 꼭 내가 제발 당신에게 보험들게 해주세요 라고 애원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자 더욱 불쾌해 졌다. 생명보험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를 하는데 그 능글맞은 웃음이란. 번들거리는 이마나 닦고 얘기 했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그런것 따위 신경 안쓴다는 듯 왜 내가 이 보험에 들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상체를 탁자쪽으로 끌어당겨 번들거리는 이마와 땀에 절은 와이셔츠를 나에게 들이대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놈은 의뢰를 받지 않았더라도 내가 꼭 죽여야만 할 놈이었다. 즉시 커피숍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커피숍에 오다 봐둔 으슥한 골목길로 데리고 갔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 한 나는 양복 주머니에 있는 송곳을 꽉 움켜 쥐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놈을 향해 말했다.
“보험엔 들었어요?”
“예? 아. 예 전 생명보험하고......”
“그럼 됐어.”
나의 오른손이 수차례 허공을 갈랐다. 송곳이 살을 파고드는 이 느낌. 내 방을 들어서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의 오르가즘이다. 찌르는 쾌감에 이 일을 하지만 그날은 솟구쳐 오르는 짜증 때문에 평소때보다 훨씬 많이 찔렀던 것 같다. 수십여차례를 찌르고 나자 약간 땀이 배어나왔다. 땀 냄새는 질색이라 양복 안주머니에서 향수를 꺼내 겨드랑이 쪽에 뿌렸다. 이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죽지는 않았어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녀석이 나에게 달려 들었다. 깜짝 놀라 피하기는 했지만 향수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젠장할. 이 향수는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으로 2년전에 외국에 갔을때 사 온 것이었다. 3개 사와서 아끼고 아끼다 며칠전 하나를 다 쓰고 이제 새것을 가져 온것이었는데 멍청한 보험회사 직원 때문에 그게 깨져버린 것이었다.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쳐다보니 놈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일 놈이었지만 그 재수 없는 얼굴이 나의 살인충동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주었다. 옆에 있는 돌을 집어 냅다 놈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흥분한 상태여서 여러 번 내리쳤던것 같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의 머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부숴져 있었다. 사람 머리만 댕강 잘라 120층에서 떨어뜨리면 이렇게 될려나. 괜한 쓴웃음을 한번 지으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대형 마트에 들어갔다. 사람들 틈에 끼여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았다. 오똑 선 콧날에 하이얀 피부를 가진 매력적인 긴머리의 여자였다. 얼굴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긴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식품코너를 돌아 나오는 그녀를 기다려 일부러 부딪혀 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내가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뇨, 괜찮아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정면으로 본 그녀의 얼굴은 상상 이상이었다. 흰 벽지를 그대로 도배해버린 듯한 그녀의 피부와 함께 은은했던 향기가 한층 더 강렬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내 옆을 지나가던 그녀가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냄새가 좋네요. 무슨 향수 쓰세요?”
“아. 이건 브레게 향수입니다. 제가 알기론 아직 국내에 수입되진 않았구요. 지난번 외국에 갔을때 샀던 건데......”
“예.”
그녀가 싱긋 웃으며 지나 갔다. 아찔한 순간 이었다. 그녀가 날 보고 웃어주다니. 이게 다 향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사 온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조심스레 그녀의 뒤를 밟아 집을 알아내었다. 한동안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다 집으로 들어 왔다. 도무지 그녀의 얼굴이 내 앞을 떠나질 않는다. 사 온 향수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자꾸 아른거린다.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손에 잡아보려 하다 깜짝 놀라 일어 났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보지만 이내 배시시 웃고 만다. 내일 그 마트에서 그녀를 기다려 보아야겠다.
“씨발 지금 이게 며칠째야.”
오늘도 그녀가 웬 남자와 함께 마트에 들어가 장을 보고 집에까지 같이 들어 갔다. 날짜를 곱씹어 보니 10일은 된거 같았다. 그녀와 한번 더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그녀의 향수 이름도 알고 싶었는데...... 저 빌어 먹을 녀석은 뭐 하는 놈인데 매일 붙어다니고 집에까지 들낙거려. 겉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일이라도 당장 녀석을 두동강 내야만 했다. 씩씩 거리는 내 자신을 조금은 토닥이면서 화를 천천히 가라 앉혔다. 아까 우유를 고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꼼꼼하게 유통기한을 보며 우유를 고르던 그녀의 모습. 그녀가 우유를 들어 그 남자에게 들어 보인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웃는다. 다시 한번 가슴 한 가운데서 끓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년. 알고 보니 아무한테나 다 쳐 웃어 주는군. 발정난 암코양이 같으니라구. 저런 썅년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다른 남자하고 붙어다녀. 저런 씨발. 찢어죽일까 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녀는 그 놈과 같이 왔다. 슬펐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혼자 열받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결심을 했다.
난 송곳을 일부로 조금은 무디게 만든다. 그래야 사람 찌르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너무 날카로우면 순식간에 찌르고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심심하다. 번들번들 기름이 칠해져 있는 사람 배를 찌를 때면 뚫릴듯 말듯 그 기분이 너무나 좋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뱃가죽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푹’ 하고 뚫릴 때의 쾌감이란.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 일그러진 표정. 내가 왜 이런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 난 이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라는 얼빵한 표정. 그리고 한번 더. 또 한번. 나의 송곳이 녀석의 몸을 헤집고 다닐 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간다. 그 얼굴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간혹 소리를 꽥꽥 지르는 녀석들이 있는데 이러면 난 칼로 입을 째 버린다. 그리곤 환하게 벌려진 입사이로 보이는 혀를 꼬챙이 꿰듯 송곳으로 찔러 넣는다. 후훗, 그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말 그대로 입이 귀에 걸린 꼴하며 축 늘어진 혀에 송곳이 박힌 모습이란. 거기다 배때지에는 피가 쪼르르 새고 있고 이걸 조금이나마 막아보겠다고 손으로 막아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줄줄 새는 피들. 평소의 자기 모습이 아닌 사실에 슬퍼지는지 눈물까지 줄줄 흘린다. 이쯤 얘기하니 며칠 전에 죽인 한 아줌마가 생각 나는데. 뭐라더라? 시골에서 지 딸년 보러 서울까지 올라 왔다라고 하던가? 아무튼 실컷 찔러 놓고 보니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정아!’
딸애 이름이었나 보다. 머리채를 잡고 -내가 자주 애용하는- 폐건물 지하로 데리고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조금 피곤해 질 뻔 했었다. 대충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 갑자기 이 아줌마가 날 안다는 것이었다. 난 피식 웃고는 마저 일을 치르려 하는데 피가 철철 넘치는 주둥이 사이로 혀를 내밀며 ‘너 이새끼 죽인다. 우리집의 원수.’ 이러는 것이었다. 내 참 그런 독종은 처음이었다. 괴이하게 움직이는 입으로 말하는 모습을 계속 보다간 내가 질려 버릴 꺼 같아서 돌로 머리를 부순 뒤 양 손으로 쪼개진 틈을 찾아내 힘껏 찢어 버렸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송곳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려니 의례 그랬듯, 그 년놈들이 내 앞을 지나 갔다. 거리를 두며 조심스레 따라 갔다. 이윽고 그들을 지나쳐 일을 치를 장소에 미리 도착하였다. 저들이 집으로 가는 길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들은 큰 도로에서 사잇길로 들어갈 것이고 그곳에서 한번 더 코너를 돌 것이다. 내가 목표로 잡은 곳은 그 코너였다. 주택가가 밀집한 그곳은 저녁때면 사람들의 인적이 뜸한 곳이었다. 미리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코너를 돌아나오는 놈을 죽이고 년과 함께 미리 세워놓은 차에 실어 그곳을 나올 생각이었다. 코너에 서서 눈만 비죽 내밀어 보니 그 년놈들이 오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웃었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오늘 죽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오른손으로 송곳을 꽉 쥐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컹컹 거리는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그년 구두의 딸각거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 왔다. 한걸음, 한걸음, 극도로 긴장된 나의 마음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에서 눈을 낮게 깔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멈췄다. 개들도 웬일인지 짖는 것을 멈추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심호흡을 한번하고 재빨리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코너로 나아가 그들이 있는지 확인하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쾅!’
정신을 차려보니 난 웬 낮선 곳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지끈 거렸다. 고개를 들어 보려 했지만 나의 오른쪽 뺨은 웬 나무판에 붙어 있었다. 오른쪽 뺨뿐만이 아니라 벌거숭이 상태에서 팔, 다리 모두 나무판에 들러 붙어 옴짝 달싹 못하게 되어 있었다. 강한 본드 냄새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일어 났어?”
그년이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어?”
그녀가 내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너 나 죽이려 했지?”
그녀의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 속에서 웃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너 잡아서 무척 기뻐. 이제 큰 근심거리가 하나 없어진거거든. 네가 올지 알고 있었어. 생각보다 빨리 와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내가 자길 죽일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불편한 입으로 말하였다.
“어떻게 알았지?”
“뻔한거 아냐? 내가 바보니? 첨에 울 아빠 눈을 뽑고 혀를 잘랐지? 그런 다음에 우리 오빠 죽이고, 얼마 전에는 우리 엄마 죽였잖아. 이제 우리 집안에 남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 그럼 당연히 나라는 것을 알지.”
지끈거리는 머리가 한층 더 아파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그간 죽인 사람들 중에 가족인 사람들이 있었나? 난 잘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그동안 죽인 수십명의 사람들 중에 3명이 한 가족이었다니. 그럼 이년은 그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할 결심을 하고 내가 다가오길 기다렸단 말인가? 아니, 그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지금까지 증거를 남긴적이 없었다. 내가 죽인 사람들의 범인이 나란 증거는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저 여자는 나를 범인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때 킬킬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왜? 머리가 아퍼? 왜 지금 네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 내가 알려 줄까?”
그녀가 일어나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죽인 우리 오빠 기억나? 하긴 하도 많이 죽여서 기억도 안나겠지. 그때 우리 오빠 옆에 향수병이 하나 깨져 있었어. 근데 이 향수가 냄새가 엄청 강해서 경찰들이 가서 봤을때도 냄새가 남아 있었어. 경찰 아저씨들은 열심히 노력하셨겠지. 근데 널 잡지는 못했어. 이렇게 엄청난 증거까지 남겨 놨는데 말이야. 바보들. 그래도 하나 좋았던건 경찰 아저씨들이 그 향수의 이름은 알아 냈다는 거야. 집에서 그 향수를 구해서 맡아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빠가 기겁을 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어 봤더니 예전에 자기 혀를 자른 사람 냄새가 난다는 거야. 난 아빠가 그렇게 떠는 모습은 처음봤어. 알어? 우리 아빤 네 냄새만 맡고도 오줌 싸셨단 말이야. 그 얘기 듣고 나니깐 엄청 무섭더라고. 그래서 향수 하나를 더 구해서 엄마한테 줬어. 이 냄새 기억하고 있다가 길 가다 맡으면 바로 그곳에서 빠져 나오라고. 우리 엄마는 재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셨는데 내가 한사코 쥐어줬지. 엄만 그 냄새 맡으려 하지도 않으셨어. 그러다 얼마전에 우리 엄마가 바로 니가 누워있는 이 곳에서 니한테 죽으셨지. 어떻게 아냐고? 손에 이 향수병을 꽉 쥐고 계시더라고. 이 향수병을 곁에 두는 것도 싫어 하시던 분이 손에 쥐고 계셨다니까. 이 씨발놈아.”
어안이 벙벙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래서...... 지이금 나에게 보옥수를 하려는 거야?”
“복수? 쳇. 생각하는 거 하고는... 생각해봐. 너희집 가족이 4명이야. 근데 아빠 혀가 잘리고 오빠가 죽고 엄마가 죽었어. 그리고 이제 니 혼자가 남았어. 무슨 생각이 들어? 나 며칠 전 우리 엄마 시체 봤을 때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복수는 무슨 개뿔이. 다음번엔 필히 나 일거라는 생각을 하니깐 미쳐버릴거 같더라고. 그러다가 마트에서 널 봤어. 맙소사. 아마 그때 내 심장이 3초 정도는 멈췄었을 거야. 간신히 정신 차리고 빠져나오려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너에게 말을 건거야. 기억나지? 네가 친절하게 말해 줬잖아. 브레게 향수라고. 그때의 네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날 집에 들어가서 한숨도 못잤어. 그 다음날 바로 보디가드와 사설탐정을 고용했지. 경찰은 웬지 믿음이 안가서 연락도 안했어. 시끄럽기만 하잖아. 그리고 설사 너를 잡는다 해도 사형이 아니면 다시 나올텐데 무서워서 어찌 살어. ‘케이프 피어’ 봤어? 몇십년 살다 나와서 복수해 버리면 어떡해. 보디가드 보고는 한시도 내 옆을 떠나지 말라고 해 놓고 탐정 보고는 내 주위에 반드시 그 놈이 있을테니깐 조사 좀 해달라고 했지. 며칠 뒤에 그 탐정한테 연락이 왔어. 암만 봐도 니가 수상하대. 집안에 향수가 수십개라지 않나. 잠긴 서랍에서 수십장의 사람 사진이 나오질 않나. 그리고 니 방에 송곳도 그렇게 많다며? 며칠전에 경찰이 우리 엄마 조사하면서 한 말이 떠오르더라고 송곳같은 걸로 많이 찔리셨다고. 근데 결정적으로 내가 니 방에 들어가 봤거든. 거기에 우리 오빠 사진봤어. 오랜만에 오빠랑 인사하니깐 좋던데. 멍청하게 그런 건 왜 가지고 있어? 더 멍청했던건 뭔지 알아? 너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오늘 밤 네가 냄새 풀풀 풍기면서 우리를 앞질러 갔던 거야. 머리 안아퍼? 내 보디가드 팔뚝 엄청 뚜꺼운데...... 사정없이 몽둥이로 내리 찍어 버리더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눈을 깜빡여 보았다. 이게 꿈이 아닐런지. 젠장할 꿈은 아니었다. 또각또각 거리는 그년의 구두소리가 귓가에 파고 들었고 머리는 더 지끈거렸다.
“너 지금 어떤 상황인 줄 알어? 나무판에 본드칠 해 놓고 널 그 위에 눕혔어. 아마 일어나기 힘들거야. 뭐 살갖이 다 찢기는 고통을 이길 수 있다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건 우리 탐정 아저씨 작품이야. 우리 탐정 아저씨 이름이 제임스 본드래. 난 007영화를 재밌게 봐서 그런줄 알았지 사람을 이렇게 까지 해 놓을지는 몰랐어. 아저씨가 몇몇 흉악범을 이렇게 해 봤는데 지금까지 이걸 탈출한 사람은 없었대. 그러면서 심심하면 와서 니가 죽어가는 꼴을 구경하래. 처음엔 좀 잔인하다 생각했었는데 울상인 니 모습을 보니 자꾸 웃음이 나오네. 그럼 잘 있어. 생각 나면 놀러 오던지 죽이러 오던지 할게.”
또각거리는 발걸음이 문쪽으로 나가자 보디가드와 탐정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뒤따라 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몸이 떨려 왔다. 겁이 났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했다. 가만 누워 있기만 하는데도 숨이 차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일감을 받고 그놈을 처치하러 간다고 생각하자. 긴장해서는 안된다. 마음을 침착하게 유지하자. 쉼호흡을 크게 몇 번 하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우선 저 녀석들이 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생각을 하든 행동을 하든 하자. 하늘이 무너진다 한들 솟아날 구멍은 있으리라. 이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그녀
“이거 불안한데...... 사람이 안 올것만 같은 이곳에도 웬 놈이 와서 우리 엄마 발견해 줬잖아. 이러다 이녀석도 발되는거 아냐? 우리 그냥 저녀석 손가락만 잘라서 갈까? 신원파악 못하게? 아니지 입으로 나불댈수도 있으니까 얼굴에 염산을 붓는것도 괜찮겠다. 어떻게 생각해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