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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13 23:01:29
Name 王天君
File #1 indie.jpg (348.8 KB), Download : 60
Subject [일반] 인디 피크닉 <고대전사 맘모스맨> 외 3편 보고 왔습니다.


퀴어퍼레이드가 끝나고 바로 보러 갔습니다.

<2088 스페이스 오딧세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청년이 호출을 받습니다. 고시원에서 우주복으로 갈아입은 뒤 문을 열자 우주공간으로 이어지죠. 멀리 보이는 우주정거장을 향해 그는 몸을 던집니다. 아름답고 거대한 정거장을 향해 무중력 속을 헤엄쳐갑니다.

영화는 현실과 상상의 대비를 좁은 공간과 커다란 공간으로 대비시키고 탈출하고픈 욕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판타지로 뛰쳐나가는 시작조차도 어떤 호출음과 피곤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렇게까지 통쾌하진 않아요. 오히려 공상속으로도 자유롭게 떠나지 못하는 강박이 느껴진달까요. 이루어지지 않을 꿈조차도 책임감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우주정거장으로서의 유영이 자유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도 보입니다. ‘내가 원래는 이런 일에 시달리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라는 허세 섞인 상상을 풀어낸 것치고도 씁쓸한 감이 짙네요.

<고대전사 맘모스맨>

인디피크닉을 오게 된 건 이 영화가 제일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특촬물의 형태를 빌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죠.
영화는 고대전사 맘모스맨이라는 타이틀 로고로 시작합니다. 맘모스맨과 적이 조우하고 둘의 결투가 벌어집니다. 복장부터 액션까지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습니다. 그린은 혼자 설치다가 적의 싱크홀 매직에 당해 땅속으로 꺼지고 남은 세 명의 맘모스맨은 힘을 합쳐 적을 쓰러트립니다. 여기서 이 전대물의 촬영이 잠시 멈추고 제작진들은 다음씬 촬영을 위해 차로 이동합니다. 음료수를 사러 갔던 그린은 자기만 빼놓고 모두 이동해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영화는 소외되는 것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괴물 역의 배우가 자꾸 마네킹 얼굴을 떨어트리는 것, 그린이 슈퍼마켓에 헬맷을 놔두고 오는 것, 그런 그린을 챙기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떠나버린 촬영진들의 모습을 통해 이 메시지가 반복됩니다. 프레임의 위치에서도 그린은 왼쪽 구석에서 간신히 프레임 안에 머물러있습니다. 누군가는 챙겨준다 해도 당사자들이 자꾸 뭔가를 흘리고 간다는 게 문제죠.

슈퍼마켓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린은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촬영지로 향합니다. 여기서 영화 속 현실과 판타지가 섞입니다. 할아버지는 사실 할애비우스(…)라는 몬스터였고 그린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터널 속으로 사라집니다. 적이 나타났다는 시그널이 요란하게 울리지만 봉고차 안에서 피곤에 쩔어있던 다른 히어로들은 이 신호를 무시하죠. 알람을 끄고 이들은 다시 잠을 잡니다. 터널의 표지판은 해골로 바뀌고 뒤이어 나오는 장면에서는 하수구에서 흘러내리는 녹색 액체와 해체된 그린의 히어로 복장이 나옵니다. 전대물이라는 판타지에서 소외되던 그린은 현실에서도 결국 소외되어 끔찍한 결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인간 소외를 전대물 형식으로 그려낸 방법은 나름 귀여웠지만 그 결말에는 살짝 의문이 듭니다. 여태 비어보이고 허술한 톤으로 이어지던 영화가 결말에서는 녹아없어져버린 육체를 암시하며 잔인하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사실 터널로 들어가고 나면 보는 사람들은 그린의 운명을 예측하기 쉽습니다. 어리버리한 그린이 현실의 몬스터에게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영화는 필요 이상의 잔혹한 묘사를 통해 인간소외의 주제를 유난히 강조합니다. 그 관조적인 톤을 그대로 유지한 채 버려지고 떨궈진 인물의 여백을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혹은 판타지 속 싱크홀이라는 몬스터의 마법을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하는 방법도 좋았을거란 아쉬움이 듭니다. 할아버지가 촬영에 몰두중인 맘모스맨의 모습을 멀리서 보며 그린의 헬맷만 가져다 두는 식의 연출은 어땠을려나요.

<그녀의 전설>

김태용 감독이 찍고 최강희 배우가 출연한 단편입니다. 참여한 이들의 네임밸류가 아주 화려한 단편 영화죠.  나머지 세편보다 편집도 매끄럽고 기승전결이 돌출되는 부분없이 잘 넘어갑니다. 확실히 메이져 영역의 감독이 만든 작품은 뭔가 좀 다르더군요.

영화는 제주도 해녀들이 잠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바다 사이에서 전복을 캐고 카메라는 이들의 시선을 따라 바닷속을 유영하죠. 약사인 유진은 전화 한통을 받습니다. 해녀인 엄마가 물질 중 위독한 상황에 빠졌다는 소식에 그는 황급히 제주도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웬걸, 엄마가 곰으로 변해 있습니다. 곰인형을 건져내고 나니 곰이 되어있다는 엄마와 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춤추고 고향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가 곰이 되었다는 현실은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죽을 것 같았던 엄마가 쌩쌩하게 살아있고, 곰으로서 딸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곰이 된 엄마는 이것 저것 먹을 걸 찾습니다. 유진은 엄마에게 배추나 소세지를 건네지만 엄마는 그런 게 싫다고 하죠. 유진은 치킨은 사들고 옵니다. 그제서야 엄마는 신이 나서 치킨을 먹어댑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챙기는 게 다 그렇죠. 곰이 되고나서도 맛있는 걸 찾아주고 챙기는 건 시원찮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배를 채운 후 엄마는 빨래도 널고, 정원에 물도 줍니다. 그리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죠. 영화는 여기서 뮤지컬로 변합니다. 곰이 된 엄마가 춤을 추고, 옆에서 딸이 같이 춤을 춥니다. 씰룩거리는 엄마곰에게 박자를 맞춰 몸빼바지를 입은 딸이 이런 저런 막춤을 선보입니다. 신이 난 엄마의 독무대가 이어지고 곰의 주위를 둘러싼 해녀들이 댄서가 되어 골목과 마당을 채웁니다. 검은색 타이즈를 걸친 사람들이 능청스럽게 춤을 추는 가운데 엄마의 구슬픈 노래가 이어지죠.

옆집 할머니도 구경하고,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가서 배운 딸 만들려고 고생한 엄마의 소회도 듣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손주를 태우고 산에서 놀다가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물질 나갈 때마다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어, 인어 노릇은 살아 평생 했으니 이제는 산에서 살련다. 그게 엄마가 곰이 된 이유입니다. 물 속에서 숨을 참고 파도 속에서 힘겹게 몸을 가누며 살아왔으니, 이제 흙과 꽃 가득한 산에서 마음껏 호흡하며 살아야지요. 엄마는 산으로 들어갑니다.

귀엽고 애틋한 영화입니다. 제주도에서 해녀로 살아가는 엄마들의 애환을 이렇게 살랑거리는 이야기로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참 놀라워요. 모든 엄마를 따뜻하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초능력자>

제일 인상깊었던 작품이라면 이 작품을 뽑고 싶네요. 독립영화들을 보다 보면 예술적 총기가 벼리어진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도 그런 걸 좀 느꼈네요. 분위기로나, 자기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점이나요.

민구는 중고거래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사실 훔친 자전거였지만 손가락은 이마에 대지 않았으니 어쨋든 엄마도 지키고 자전거도 팔 수 있었죠. 동업자인 재웅에게는 늘 하던대로 30%의 마진을 떼주면 됩니다. 고깃집에서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동생 민재가 있습니다. 민재는 요새 초능력에 심취해있는지 계속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고 다닙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재웅의 눈가에 멍이 들어있습니다. X됐다, 우리가 훔쳤던 거 정호형 자전거였어. 그 복학생은 고작 삼만원을 안 갚았다고 친구를 벽돌로 쳐죽인 전례가 있습니다. 전전긍긍하던 둘의 앞에 정호가 나타납니다. 위자료 150만원. 정호가 제시한 액수도 걱정이지만 이를 내지 않으면 뒤통수가 무사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심지어 정호는 민구네 집에 아예 처들어와 같이 살기 시작합니다. 주어진 기한이 자꾸 지나가고 이대로는 민구 본인뿐만 아니라 동생도 무슨 짓을 당할 것만 같습니다.

영화는 청소년기를 빌려 현 사회의 계급적 절망감을 이야기합니다. 민구는 도둑질에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경제적 약자죠. 그런데 150만원이라는 돈을 3일 안에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도둑질을 귀신같이 하고 중고거래에 수완이 좋아도 없는 돈을 척척 만들 수는 없어요. 거기다가 영화는 여러가지로 상황을 꼬아놓습니다. 고깃집에서 받는 알바비는 손님이 굽지 않고 남긴 고기를 빼돌렸다면서 5만원을 떼입니다. 중고거래에 내놨던 자전거는 하필 주인을 만나 팔지도 못하고 현장에서 잡힐 뻔 하지요. 재웅은 30%씩 떼어갔으니 정호가 제시한 위자료의 30%만 내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 중에서 민구가 뭐라 탓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민구가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절대적 강자에게 너무할 정도의 보상을 요구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민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정호의 폭력이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죠. 150만원을 안 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죽을 지도 모르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등학생이 별의별 짓을 다 하게끔 만드는 게 영화가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민구는 보호자가 없습니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요. 거기다가 도덕적으로 지은 죄가 있습니다. 궁지의 궁지까지 몰려있는 상황입니다.

영화는 정호가 지닌 절대악의 속성을 영리하게 나타냅니다. 정호네 집은 대단히 부자고, 3만원 그 많지도 않은 돈 때문에 친구를 죽여버린 게 바로 정호라는 인간이죠. 이는 싸이코패스의 표피를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과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있고, 그 때문에 법으로도 처단당하지도 없는 강자의 권한이기도 합니다. 정호네 집이 부자라서 사람을 죽이고도 소년원 2년만에 정호는 출소할 수 있었습니다. 정호는 돈이 넉넉하기에 자기 마음대로 위자료를 부르고 절박한 타인을 무시할 수도 있죠. 정호는 돈이 많으니까 민구가 돈을 가져오건 말건 크게 괘념치 않습니다. 자기 명령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게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민구가 아둥바둥 구해보려는 150만원을 다 못채워와도 정호는 별로 신경안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시키는 대로 민구 동생 민재가 병아리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였거든요. 돈에 무관하기에 돈을 철저한 수단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호라는 캐릭터가 가진 절대악의 속성이죠. 정말로 싸이코패스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중요한 돈을 별로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악의 힘이고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민재에게 거래를 제안할 때도 그렇게 말합니다. "너 초능력 있어? 내가 너한테 초능력 알려줄게. 너가 여기서 병아리를 떨어트리면, 이 돈 나한테 안 줘도 돼. 150만원의 빚이 없어져. 그게 네 초능력이야." 정호는 돈을 신경쓰지 않지만 돈의 위력을 알고, 그걸로 사람을 부리며 타락을 이끌어냅니다. 이 영화에서 정호가 전능한 부분은 이런 자본계급의 권력이 아주 큽니다.

영화는 정호가 민구를 협박할 때부터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반띵만 하면 되겠지 했지만 갑자기 정호가 집에 처들어옵니다. 그런 협상은 꿈에도 못꿉니다. 그리고 정호는 민재가 키우는 병아리를 쓰다듬다가 가차없이 죽여버립니다. 민구가 부담스러워하는 위험이 훨씬 더 넓고 직접적으로 다가오죠. 민재는 자전거 거래에 실패하고 심지어 경찰서에 잡힐 뻔 합니다. 극복이 어려운 퀘스트가 등장하는데 그 퀘스트가 점점 더 주인공을 짓누릅니다. 자전거 거래에 실패하고 도망가는 장면은 웬만한 상업영화 수준으로 긴장감이 넘칩니다. 퀘스트를 확장시키는데 능수능란한 영화에요.

영화의 결말, 정호는 돈을 돌려주고 볼장 다 봤으니 민구네를 떠납니다. 민재는 병아리를 떨어트리니까 저 형이 그냥 갔다고 설명하죠. 민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민재는 초능력이 성공했다며 공중으로 병아리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민재는 정호의 바람과 달리 병아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다치거나 타락하는 일 없이 힘없는 자들이 초능력으로 스스로를 지킨 거죠.

이 영화의 결말은 살짝 아쉽습니다. 먼저, 영화의 반전이 주제 자체를 흐립니다. 영화는 일부러 "초능력"을 중의적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공상소설에 가까운 염동력이고 또 하나는 자본주의 구조 안의 약자가 돈을 다루는 능력입니다. 150만원의 빚을 별거 아닌 일로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에 정호는 이를 초능력이라 부릅니다. 영화는 후자의 초능력으로 위장했다가 전자의 초능력을 결말의 진실로 공개합니다. 이 영화의 모든 흥분은 사실 이 부분에 집약됩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절망했던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되니까요. 영화의 텍스트는 승리로 귀결됩니다. 이 결말에 관객들은 안도하거나 경이를 느끼게 됩니다. 정호라는 절대악에 휘둘리지 않았고, 죽을 필요 없던 생명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결말을 편집하는 데서 영화는 조금 서두릅니다. 여태까지 이야기를 계속 절망으로 밀어넣고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빠른 타이밍에 넘겨버려요. 초능력에 대한 민구나 민재의 반응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감독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런 연출이 좀 이해가 됐습니다. 사실 결말의 초능력은 없다고 믿으며 초능력이 없었으면 형제를 덮쳤을 비극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의도가 온전히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을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두고, 거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영화의 99%를 절망에 할애해도 최후의 1%에 희망을 보여주면 이는 결국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다루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영화는 미괄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요.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는 것은 이 전까지의 암울한 현실이 아니라 그 암울한 현실을 "초능력으로 극복"했다는 결론입니다. 영화에서 반전을 주는 이유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그 전까지의 내용을 단 한번에 뒤집기 위해서죠. 그런데 정작 그 현실을 뒤집는 결론으로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그 결론을 부정하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관객은 영화가 디자인한대로 따라간 감정을 스스로 부정해야 합니다.

물론 <위플래쉬>처럼 결말의 짜릿함과 주제가 상충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세계의 법칙, 부조리 안에서 얻은 카타르시스는 <초능력자>의 카타르시스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세계의 법칙을 파괴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또 다른 법칙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때문이에요. 초능력이 없으면, 저렇게 구원받을 수 없는 세상 - 이라는 도치법을 의도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는 정방향의 가정법대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민재의 초능력을 암시해놓고, 결국 그걸 쓸 수 있었다는 결말로 끝나니까요. 영화는 제목부터 초능력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민구가 엄창은 말했지만 손은 이마에 안 찍었다 - 라는 식으로 자기 타락을 막는 것도 복선으로 작용했구요. 초능력이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고 그 몸통은 현실적 절망으로 가득 채운다 해도 그 절망을 결국 초능력이 있고, 그걸로 극복했다 - 라는 텍스트의 구조가 완성되기 때문에 영화는 감독님의 말처럼 도치법으로 흘러가진 않아요. 그렇기에 영화는 절망적인 현실을 간신히 넘긴 주인공 형제의 감정이 더 이어졌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 절망 - 초능력의 구조에서 현실적 절망 - 초능력 - 현실로서 이야기는 더 진행되었어야 했지요. 그랬다면 보는 이는 초능력의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눈을 돌릴 수 있었을 겁니다.

초능력을 쓸 수 있었다, 이게 없었으면 이 형제는 정말 망했다, 라는 텍스트를 초능력 발현의 순간에서 완성하고 싶었다면 열린 결말이 더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극복,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극복했을까 극복하지 못했을까의 의문을 던지면서 영화가 끝났어야 했다는 거죠. 예를 들어 민재가 초능력을 썼다고 하고 민구가 같이 땅을 내려다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는 데서 영화가 끝났다고 치죠. 여기에는 이제까지의 현실적 절망을 뒤집어버리는 카타르시스가 없습니다. 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현실의 무게는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관객들은 자기 나름대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강조하려 했던 "현실의 절망"은 훼손받지 않은 채로 초능력의 발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열린 결말이란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말해주지 않는 무엇을 상상 속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니까요.

물론 이런 저의 아쉬움이 이 작품의 재미나 의미를 떨어트리진 않습니다. 이야기의 힘과 충격의 강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다보니 영화가 지나치게 빠르고 선명한 마무리를 지어서 아쉽다는 정도지요. 그냥 오락영화로 보기에도 충분합니다. 절대악의 파워풀한 위협을 보며 떠는 재미도 있구요.

@ 영화들도 재미있었지만 이 날 GV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1. 맘모스 연구자분께서 오셔서 "맘모스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안나와서 실망했다" 라고 해서 1차로 빵 터졌습니다.
2. 맘모스는 일본식 표현이고 매머드가 맞는 발음이다, 라고 지적해서 2차로 빵 터졌습니다.
3. GV를 보다보면 정말 작품과 창작자의 성격이 매우 흡사한 걸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허세준(본명입니다...) 감독님은 정말 헐렁하고 아리송한 인상이었고 권만기 감독님은 자기 주장이 매우 확고한 분이셨습니다.
4. 권만기 감독님은 사람들이 작품을 너무 말도 안되게 해석해서 진짜 속터질 것 같다고 힐난(?)에 가까운 심경토로를 하시더군요.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감독들은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애써 넘기는 편인데, 권만기 감독님은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봐주길 매우 강하게 원하시더라구요.
5. 사람들이 매번 물어봐서 미치겠다고 하시더군요. <초능력자>에서 다치거나 죽은 병아리는 없다고 꼭 좀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6. 다음 계획을 질문받자 허세준 감독님은 영화를 할 지 안 할지도 모르겠고....시나리오도 잘 안 써지고....지금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고.....요새 십자수에 푹 빠져서 대형으로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독립영화 GV는 메이져 영화 GV보다 훨씬 웃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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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Martial
16/06/14 03:10
수정 아이콘
일단 아무생각없이 읽다가
초능력자 보고 싶어서 스크롤 내렸네요
이런거 iptv같은걸로도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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