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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0/28 17:30:37
Name Limoon
Subject [일반] 세월호 침몰 이후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
 안녕하세요, Limoon입니다. 마눌님 따라 가입해서 거의 참여도 안하고 눈팅만 해오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글을 써서 여러분께 이야기 드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봐온 세월호 이야기입니다. 워낙 가슴 아픈 사건이었고, 피해자들의 사고 후 이야기를 이런 개방적인 커뮤니티에서 오픈하는 것 자체가 워낙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에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도 넘게 지났고, 최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세월호 사건을 기억해주시고 이야기 하고 계시기에 저 역시 지금,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2014년 04년 16일, 세월호 좌초, 침몰의 과정을 오보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각종 보도와 발표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전국민이 실시간에 가까운 상황으로 지켜보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게, 허망하게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공유했으며,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도움의 손길이라도 건넬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직,간접적인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조금이라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렇다 할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7월쯤, 가끔 지켜보던 대학생 취업 커뮤니티에 멘토링 모집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아름다운배움’이라는 사회단체에서 모집하는 세월호 피해학생(현재 생존자란 표현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및 희생자 형제자매 멘토링을 급하게 구성하여 이를 함께할 멘토를 모집하는 공고였고, 이를 신청하여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입은 유가족들을 돕는 ‘더불어꿈 멘토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직후에는 가장 먼저 피해학생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이 우선시 되어 진행 중이었습니다. 사건을 직접 겪었던 피해학생들이 심각한 PTSD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사회의 관심과 언론의 접촉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더 큰 상처를 입을까 우려하여 긴급하게 학생들을 잠시간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인재개발원으로 사회와 분리되었습니다. 학생들은 합숙하면서 시설 내에 정신건강전문의들과 전문상담가, 아름다운배움의 정예의 멘토선생님들 등과 함께 생활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기 위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멘토선생님들과 친구처럼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함께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더불어꿈 멘토링’은 우선적으로 희생자 형제자매들을 비롯한 안산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학중 특별활동 비슷하게 다양한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기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학생 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 역시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또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케어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나 희생학생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분노, 급박한 주변 상황 때문에 이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안산의 상황은 그야말로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될 만큼 분위기가 처참했습니다. 누구나가 세월호의 간접적인 피해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희생학생의 형제자매들만 추려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집중되게 될 사회의 시선도 우려되는 상황이고 유가족들 역시 부담스러워 했으며, 그런 진행으로는 희생학생 형제재매들이 사회와 분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세월호 유가족들만을 위한 멘토링이 아닌, 안산지역 중에 희망하는 학생들도 다같이 참여할수 있는 공개적인 멘토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멘토링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라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다른 아이들과는 겉으로 행동하기에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울려 노는데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따금씩 보이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 지나친 위축, 조금씩 드러나는 가족의 공백과 부재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볼 때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에 나와 참여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 세월호 사건으로 가족이 붕괴위기에 놓인 아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걱정되고, 화가 났던 건 어른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고, 구해야할 어른들이 구해주지는 못할망정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유가족들이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막대한 보상금을 받았음에도 억지를 부리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또다시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멘토들은 되도록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세월호로 잃은 가족을 생각할때마다 아프고, 화가 나고, 슬픈 기억만 가지지 않도록, 함께 지내온 가족으로 사랑을 추억할 수 있도록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형이나 누나, 언니가 되어주었고, 아이들이 스스로 밖에 나가 행동할 때는 묵묵히 그 옆을 함께 지켜주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더 어리고, 어렵고 상처 입은 아이들 위해서 스스로 멘토를 자원하여 모두를 돕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버티고 있습니다.

 피해 당사자 학생들도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그 상처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상처가 낫고, 치유 된다는 것은 세월호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겪은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고 이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것인데, 어른들의 불합리한 사정으로 인해 그 진실에조차 마주하지 못하고 있어 너무나 답답하고 원통해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전면에 나서 움직이고 싶어하고 가끔 그런 행동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세월호 사건이 너무나 더러운 진흙탕 싸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런 힘들고 더러운 싸움에 물들지 않도록 주변에서 어떻게든 보호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멘토링에서는 벗어나 있어서 정확한 동향을 알기는 어렵지만, 지금 일어나고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착잡하기만 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이 재조명 받게 된다면 앞으로 어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월호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이 또다른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다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가능하다면 꼭 세월호로 인해 가슴 아팠을 모두가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원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PGR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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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군
16/10/28 17:42
수정 아이콘
세월호는 일종의 멘탈 핵폭탄 같은 거라 모든 사람들이 내상을 입었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피폭지 중심에 있던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을 어루만져주신 것만으로도 님께 빚을 진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6/10/28 22:1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아직 세월호는 진행중이지만 유가족들은 많이 지쳐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세월호에 대해 피로를 호소하고 특히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빠진 상황이라 올바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는 하심군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위로가 될겁니다.
아수라발발타
16/10/28 18:01
수정 아이콘
저도 한동안 어쩌면 지금도 세월호 관련 뉴스를 접하면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던가 가슴이 조이는 느낌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가족이나 친구들 생각하면..... 어휴 또 막 목이 메이네요 안되겠습니다

모두들 거기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네렴... 제발 그러주렴
16/10/28 22:18
수정 아이콘
사실상 어떻게보면 세월호에 피로를 느끼고, 해상교통수단을 피하게되는 우리나라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앓게된 것 같아요.
아수라발발타님처럼 위해주시는 분이 계셔 아이들도 잘 지낼거라 생각해요.
뻐꾸기둘
16/10/28 18:12
수정 아이콘
모자란 어른들 때문에 죄없는 애들만 상처받네요..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게 없어서 참 미안합니다.
16/10/28 22:22
수정 아이콘
현재로선 올바른 관심과 잊지 않는것 만으로도 큰 역할하고 계신거라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할러퀸
16/10/28 18:26
수정 아이콘
저조차도 큰 선박이 나오거나 침몰 혹은 바다와 관련된 사고만 나와도 가슴이 이렇게 저리는데 당사자들 심정은 어떨지 상상도 안갑니다....얼마전에 우연히 타이타닉을 다시보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너무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생각나서요. 이 트라우마가 의혹해소를 통해 풀리기를 , 명백히 진실이 밝혀지기를 소망합니다.
16/10/28 22:25
수정 아이콘
네이버 잠깐 훑어보는데 세월호 7시간이 실시간에 올라와서 마음이 복잡하네요..... 이번엔 제발 누구라도 제역할 해주기를 바랄뿐입니다...
16/10/28 18:32
수정 아이콘
2년전이 아니라 어그제 일어난 참사 같아요. 잊지 않아야 겠지요. 어쩌면 진실과 맞주하는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울수도 있겠네요.
아직 무엇하나 밝혀진것이 없어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과 친구를 잃은 아이들과 가족을 잃은 가족분들에게 위로도 못보내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16/10/28 22:30
수정 아이콘
어차피 긴 싸움입니다. 진실은 언제 마주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제라도 건네는 위로는 그분들께 큰 힘이 될겁니다. 감사합니다.
wannabein
16/10/28 18:53
수정 아이콘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16/10/28 22:31
수정 아이콘
좋게 읽어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네버스탑
16/10/28 21:34
수정 아이콘
아직도 노란리본을 못 치우는데...
그 때 일로 언젠가는 제가 심리상담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6/10/28 22:34
수정 아이콘
멘토링 하면서 느낀건데 정말 전문적인 심리상담인력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우리나라에도 많은 상담가가 있지만 PTSD를 전문적으로 상담해줄만한 심리상담가는 많이 부족해서 세월호 피해학생, 유가족들 치료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살랑살랑
16/10/28 23:37
수정 아이콘
추천드립니다. 세월호 사건 얼마후 생존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꼭 심리 치료 받아야 하는데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따듯하게 도와주신 분이 직접 글 올려주시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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