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3/06 14:11:30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옥수수 먹을래? 콩 먹을래?...
우리 인간은 잡식성입니다. 그것도 아주 효율적인 잡식성이죠. 수시로 고기도 먹었다 채소도 먹었다 하면서 다양한 음식들을 우리의 장으로 투입합니다. 그것도 보통 계절 단위가 아니라 하루 단위로 심지어 아침엔 고기 점심엔 채소 저녁엔 밀가루 콤보를 시전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장에 있는 세균들은 이에 발 맞춰서 고기가 들어올 때는 고기를 잘 분해하는 미생물들이 세를 얻고 채소가 들어가면 채소를 잘 분해하는 세균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벌인다고 합니다. 이 전환이 거의 하루 단위로도 휙휙 바뀐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동물들 가운데서도 못 먹는 것 빼놓고는 다 먹어치우는 "잡식의 신" 수준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걸 또 악용하는 놈이 있습니다. Western corn rootworm이라고 불리는 해충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CRW_IF1-2.png
유충

6LJLVLQZOLIZTL2RCL7ZBL3LYZMRNLYLJZIRJZERRH6RHH7Z1LERDLQZALSZOL4RDZ4RAL6R3ZKR.jpg
성충

이놈들은 북미딱정벌레의 유충인데 딱정벌레가 옥수수 에 알을 낳아 놓으면 이듬해에 이 유충들이 옥수수나무의 뿌리를 다 갉아먹어서 농사를 망쳐놓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 즉, [유충 -> 성충 -> 유충]에는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해를 달리해서 같은 땅에 다른 작물을 키울 경우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었지요.

예를 들어 농부들이 옥수수를 키운 다음 해에는 콩을 키운다고 합시다. 그러면 옥수수를 키웠을 때 성충인 딱정벌레가 옥수수 에 알을 낳습니다. 다음 해에 유충이 나오게 되는데 이 북미딱정벌레의 유충이 맞아하게 되는 것은 옥수수가 아니라 콩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들은 콩은 잘 먹지를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굶어 죽고 말지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옥수수에 최적화된 유충들인데 갑자기 작물이 콩으로 바뀔 경우 이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죽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인간이었으면 뭐...옥수수고 콩이고...나오는 대로 그냥...--;;). 한때 농부들이 이걸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도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유충의 장에 있는 미생물들이 이러한 작물순환에 내성을 갖도록 변한 것입니다. 즉, 평소에는 못 먹던 콩까지 잘 먹을 수 있는 미생물들이 유충의 내장을 차지하게 되면서 성충 역시 이제 맘 놓고 알을 낳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듬해에 유충이 나왔는데 마침 옥수수 이면 더 바랄 나위 없고 콩이어도 그럭저럭 버티게 된 것입니다.

미생물들의 놀라운 적응력 덕분에 농부들의 골치는 앞으로도 계속 아프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Ed Yong의 [I contain multitudes]라는 책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사업드래군
17/03/06 14:19
수정 아이콘
2년마다 재배하는 콩. 과연 우연일까요?
2년마다 재배하는 콩. 과연 우연일까요?
홍승식
17/03/06 14:25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한해는 옥수수를 심고, 다음해는 콩을 심고, 그 다음해에는 호박을 심고, 그 다음다음해에는 뭘 심지? 크크크
Neanderthal
17/03/06 14:26
수정 아이콘
수박, 참외, 고구마, 감자, 브로콜리, 딸기...--;;
Samothrace
17/03/06 14:27
수정 아이콘
혐 표시 좀요 진짜..
17/03/06 14:31
수정 아이콘
귀엽네요 꼬물꼬물
17/03/06 14:35
수정 아이콘
콩심은데 콩난다
콩심은데 콩난다
17/03/06 14:38
수정 아이콘
애벌레가 꼬물꼬물 귀엽네요.
한 삼십년 전에... 파브르 곤충기에서 애벌레 구워 먹는 부분 읽은 후 썩은 밤 속의 애벌레들 꺼내어 외할머니댁 솥 아궁이에서 구워먹어 보겠다고 시도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타깝게도 실패했습니다. 애벌레가 너무 작았어요.
아점화한틱
17/03/06 14:39
수정 아이콘
콩으로 바꾸고나니 굶어죽던 정상개체들 중에서 콩도 소화시킬 수 있는 미생물을 장내에 보유한 돌연변이가 생겨났고 이들이 번성하게된건가요?
Neanderthal
17/03/06 18:27
수정 아이콘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미생물들은 세대를 넘어가는 사이클이 아주 짧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적응하여 유전적인 변이가 신속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whynotcat
17/03/08 02:07
수정 아이콘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답변을 달아보자면 곤충의 장내에는 수많은 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고, 그에 따라 아마도 옥수수가 풍족한 조건에서 마이너했던 장내 미생물군이 반대로 콩이 풍족한 조건에서는 메이저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가정입니다만, 옥수수는 C4 plant니까 C4 plant 특이적 lipid나 carbohydrate분해 미생물군이 곤충의 장내에서 우세하였지만 콩으로 작물이 바뀌게 되었을 때에는 이전의 미생물군은 우세종 점유에 실패하고 대신 다른 종이 영양분을 더 많이 분해하고, 곤충 장내를 점유하고 그에 따라 곤충의 번식에 기여한다, 라고 추측되는군요.
17/03/06 14:46
수정 아이콘
추천수 2
추천수 2
17/03/06 15:30
수정 아이콘
추천수 2x2
추천수 2x2
한길순례자
17/03/06 16:35
수정 아이콘
추천수 2+2x2
추천수 2+2x2
멀할까나
17/03/06 17:07
수정 아이콘
추천수 2x2x2
추천수 2x2x2
즐겁게삽시다
17/03/06 16:10
수정 아이콘
인터스텔라 생각나네요 흐흐
옥수수 밖에 못 키워서 인류 다 죽어갔던 것 같은데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3943 [일반] 2000년, 그들이 발렌타인 21년산을 마셨던 날 [26] 글곰7319 17/09/26 7319 8
73819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19) 천조(天助), 천조 [9] 신불해6867 17/09/17 6867 44
73810 [일반] 오디오클립: 미식대담. [2] 종이사진4975 17/09/17 4975 4
73280 [일반] [일부 수정]부안 중학교 교사 자살사건 당사자측 입장표명 글 [101] 한획18558 17/08/12 18558 54
72723 [일반]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3 [24] BibGourmand12543 17/07/07 12543 47
72205 [일반] 여자친구를 폭행살해한 남자친구가 받은 형량이 불러 일으킨 논란 [72] barable 14120 17/06/02 14120 7
71959 [일반] 고려 말 한반도를 유린한 왜구의 신출귀몰한 모습들 [54] 신불해18364 17/05/20 18364 43
71275 [일반] 한국사 최강의 전투 부대 중 하나, 이성계의 사병 집단 [52] 신불해35418 17/03/30 35418 121
71219 [일반] 군대 – 공군에서 본 병사와 간부와 기타등등 [262] Sroll16275 17/03/24 16275 5
71151 [일반] [영화공간] 배우 유해진을 말하다 [11] Eternity9284 17/03/18 9284 22
70957 [일반] 옥수수 먹을래? 콩 먹을래?... [15] Neanderthal6662 17/03/06 6662 12
70647 [일반] 주민센터에서 모르는 할머니 사진 찍어드린 이야기 [16] Jace T MndSclptr6157 17/02/17 6157 10
70502 [일반] 기회주의 [12] 메피스토6626 17/02/10 6626 8
70266 [일반] 할머니의 손 [9] RedSkai5158 17/01/30 5158 30
70264 [일반] 학창시절 절 괴롭히던 학우 소식을 들었습니다. [66] 솔빈18999 17/01/30 18999 15
70103 [일반] 책 리뷰 <오래된 미래> [6] 솔빈4365 17/01/20 4365 3
68707 [일반] 러일전쟁 - 그대여 죽지 말아라 [11] 눈시H5773 16/11/17 5773 4
68583 [일반] 우맹이 골계(滑稽)로 초장왕을 꾸짖다 [19] 신불해6454 16/11/12 6454 13
67231 [일반] 튤립버블 [14] 토다에5251 16/08/26 5251 6
66417 [일반] 프랑스 영화 한편 – 오래된 귀농 주제의 영화 Jean de Florette [12] 밀물썰물4137 16/07/19 4137 1
66331 [일반] [단편] [기담] 로드킬 [32] 마스터충달6849 16/07/14 6849 30
65080 [일반] 보쌈, 면사포, 결혼반지 [9] 모모스20138614 16/05/10 8614 16
64710 [일반] 오늘은 56주년 4.19혁명기념일 입니다. [38] 여자친구9460 16/04/19 9460 6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