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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21 12:08:38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형주 공방전 (2) (수정됨)
형주 공방전 (1) : https://pgrer.net/?b=8&n=78303


  YXljf3n.jpg

  219년. 관우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동독형주사인 자신의 관할에 속한 의도태수 맹달을 보내 방릉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유비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맹달은 자귀에서 출발하여 북상합니다. 그래서 방릉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방릉태수 괴기를 죽이는 전과를 올리죠.

  그리고 관우는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북상하여 양번을 노립니다. 다행히도 빠르게 반란을 평정한 조인은 다시 번으로 돌아와 있었죠. 그러나 상황은 관우가 우세했습니다. 관우는 단숨에 양번 두 성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붓습니다. 조인은 지원을 온 여남태수 만총과 함께 죽어라 방어에 전념하죠. 이때가 대략 5월 전후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손권을 감당하지 못해 유비의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관우가, 불과 5년 만에 조조의 세력과 맞장을 뜰 뿐만 아니라 역으로 적을 포위할 정도로 군세를 모았다는 의미거든요. 그것도 유비의 도움은 일절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만요. 정말 엄청난 겁니다. 어쩌면 관우의 진정한 능력은 그런 행정가적인 면모가 아니었을까요.  

  심지어 이 병력은 관우의 전력(全力)을 동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노숙이 죽은 후 여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말씀드렸었죠. 유비와 손권이 손잡고 조조에게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숙과는 달리, 여몽은 동오가 유비를 박살내어 형주와 익주를 차지한 후에 조조와 1:1로 맞장을 떠야 한다는 강경파였습니다. 그런 그가 형주에 부임해 오니 관우는 단단히 경계합니다. 여몽이 겉으로는 우호를 맺고자 했고 관우도 일단 장단을 맞춰 줍니다만, 그게 눈속임이라는 걸 모를 관우가 아니었죠. 그는 양번을 공격하면서도 후방인 강릉과 공안에 수비 병력을 충분히 배치해 둡니다.

  유비에게 도움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유비는 이 때 한중에서 정말이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파서를 지키던 장비는 물론이요, 후방에서 반란군을 제압하던 이엄까지 불러들였지요. 심지어 이엄은 수만 명의 도적떼가 모반했는데도 병력이 없어서 겨우 5천명으로 상대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 이엄마저 한중으로 왔다는 건 익주를 거의 텅텅 비워두다시피 하며 모든 병력을 한중에 집결시켰다는 겁니다. 마치 삼국지 게임에서 국경도시에만 병력을 모으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정황들을 살펴보면 이런 괴이한 결론이 나옵니다. 관우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고작 형주의 1/3 가량에 지나지 않는 영토를 기반으로 모은 병력으로, 심지어 후방에 충분한 예비 병력까지 남겨둔 채, 천하의 삼분지 이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조조를, 그것도 형주방면 총사령관이자 자타공인 조조군의 에이스로 꼽히는 조인을 상대로 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공격을 퍼부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진짜 사실입니까?

  넵. 사실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조조가 당초 양양에 배치한 병력의 일부를 다른 곳으로 돌렸을 수도 있죠. 예컨대 후음의 반란을 진압한 다음에도 완에 병력을 어느 정도 남겨두어야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여남태수 만총이 조인을 도우러 왔으니만큼 그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지 않았을까요.

  그럼 결론은 나옵니다. 그냥 관우가 괴물이었던 겁니다. 군사를 모으고 조련하는 일에 있어서든,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과 싸우는 일에서든 간에요.
  
  정사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관우의 명성에 대해 의문을 품곤 합니다. 물론 관우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워낙 부실하기는 합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관우의 패배는 꽤나 기록되어 있는 반면 승리는 의외로 적기 때문입니다. 서주에서 조조에게 항복하고, 청니에서 악진과 문빙에게 격퇴당하고, 강릉에서는 이통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였고, 익양에서는 관할지의 절반 이상을 잃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반면 한중 공방전 직전 시점까지 자랑할 만한 승리는 백마에서 장료와 함께 선봉으로 출진하여 안량의 목을 따고 포위된 아군을 구원한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대의 인물들은 관우를 무척이나 높게 평가합니다. 주유는 자신이 관우와 장비를 지휘한다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곽가와 정욱은 관우가 만 명을 대적할 만하다고 평했죠. 유엽은 관우에게 삼군(三軍)을 뒤덮을 용맹이 있다고 했지요. 심지어 관우가 죽은 후 조비가 소집한 회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촉은 작은 국가라서 명장(名將)이라 할 만 한 자는 관우밖에 없었는데 걔가 죽었으니 이제 별 거 없습니다.” 그리고 평생 인재를 아꼈던 조조는 관우를 매우 두텁게 예우하고 크게 여겼습니다.

  기록에 남은 형편없는 승패전적과 동시대인들의 높은 평가 사이에 놓인 이 거대한 괴리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적벽대전 이전까지 패배를 거듭하며 도망다니기 바빴던 유비의 사정을 고려하면 관우에게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거대한 군공이 있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이렇게 해석합니다. [관우는 언제나 열세에 놓여 있으면서도 우위에 선 적을 상대로 선전했고, 때로는 심지어 그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하기도 했다]고요.

  유비는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오며 실로 무수한 패배를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대신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그 패배가 치명적인 것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우의 능력이 여기서 빛을 발한 게 아닐까요. 소수 패잔병을 이끌어 기세등등한 적을 막아내고 때로는 반격하며, 어떻게든 병사들을 다시 그러모아 기적같이 부활하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명장 관우의 명성이 마침내 천하에 퍼진 게 아닐까요.

  또 관우가 조조에게 항복한 후 거둔 가장 큰 승리는 앞서 말한 백마 전투였습니다. 당시 백마는 원소의 압도적인 군세에 포위되어 그야말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절실한 상황에서 장료와 함께 관우를 보냈다는 건 그만큼 관우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관우는 그 믿음에 십분 보답했지요. 그런데 조조에게는 관우의 능력을 미리 확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비와 함께 협력해 여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유비가 서주로 와서 반기를 들었다가 박살나고 하비를 지키던 관우가 항복하는 과정에서요. 관우의 입장에서 한 번은 승리고 한 번은 패배지만, 그 때 관우가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고 조조가 그걸 눈여겨봤다고 추측해도 크게 잘못된 짐작은 아니겠죠.  

  저는 탕거 전투와 한중 전투를 다룬 지난 두 글에서, 군대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해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형주 공방전은 그런 식으로 서술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언부언 말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쓸모 있는 말은 적어지는 법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당시 주위의 정황과, 특히 관우의 능력과 기세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야만 몇 번이나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되었던 형주 공방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이 글은 하염없이 질질 늘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I5AWPkY.jpg

  자. 각설하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우는 강릉에서 북상하여 양양과 번을 포위합니다. 지도로만 보면 감이 잘 안 오지만, 강릉에서 양양까지는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중국 대륙의 크기라는 게 워낙 광대해서 말이지요.

  관우는 육군과 수군을 이끌고 함께 진군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양양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장강의 지류(支流)가 있는데 이름은 한수(漢水)라고 합니다. 이 한수를 거슬러 올라간 거죠. 형주에는 장강과 그 지류들이 흐르고 있었기에 유표 시절부터 형주의 수군은 꽤나 유명했습니다. 관우 역시 수군을 중요시했고요. 특히 번성과 양양성의 위치를 보면 수군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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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성과 양양성은 한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의지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른바 공성전(攻城戰)은 화약무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항상 수비하는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성전은 몇 달이나 심지어 연(年) 단위로 지속되기 일쑤였죠. 공격하는 쪽에서 아무리 병력과 무기를 투입해도 항상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성 안 사람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성 안에 아무리 물자와 양곡이 많다고 해도 외부에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모두 소모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굶어 죽은 병사들로는 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양성과 번성은 천혜의 요새라 할 만했습니다. 일단 어느 한쪽이 포위되더라도 반대쪽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한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배를 이용하여 서로에게 물자를 공급해 줄 수도 있습니다. 강을 끼고 있었기에 수비에 유리했고, 설령 양쪽이 모두 포위되더라도 수군을 통해 강을 장악한다면 멀리서도 물자를 운송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성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육군을 동원하여 두 성을 한꺼번에 포위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수군을 운용하여 한수를 장악함으로써 상대의 수로 이용을 막아야 합니다. 정말 까다로운 조건인 거죠.

  그리고 관우는 이걸 해냅니다.(응?)

  조인은 부장(副將)인 여상을 양양성에 주둔시키고 자신은 만총, 방덕과 함께 번성을 수비합니다. 관우는 병력을 총동원해 두 성을 포위하고 한수를 장악하죠. 두 성은 고립되었습니다.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굶어죽는 결말뿐이었죠. 물론 아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조인은 조조에게 긴급히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 때 조조는 결국 한중에서 패한 후 5월에 장안으로 돌아온 상황이었습니다. 유비는 내친 김에 이엄과 유봉을 보내 맹달과 함께 상용을 동서에서 협격하도록 합니다. 상용태수 신탐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해 오지요. 유비는 유봉과 맹달을 상용에 눌러 앉힙니다. 그러나 조조는 상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당장 형주에서 조인이 죽는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형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세를 탄 유비가 한중에서 뛰쳐나와 장안까지 공격한다면 정말 큰일이었으니까요. 잘못하면 관중 지방이 통째로 유비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결국 조조는 자신은 장안에 눌러앉아 당분간 유비를 견제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그는 가장 신뢰하는 장수 중 한 명에게 중임을 맡겼습니다.

  7월. 조조는 좌장군 우금에게 7군을 맡겨 조인을 지원하도록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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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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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드래군
18/09/2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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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여기서 또 끊으시면...
18/09/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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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끊어야 다시 잇죠...
메모리즈
18/09/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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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끊으시면 힘들게 안 잇어도 됩니다
예니치카
18/09/2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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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군수몰 가즈아
어제의눈물
18/09/21 12:21
수정 아이콘
글 이렇게 재밌게 쓰셔도 되는 겁니까?
홍승식
18/09/2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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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쟁에서 모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이었죠.
제갈량이 유비에게 귀의하기 전에 유비군의 모사 역할을 관우가 했다는 얘기가 많은 걸 생각해보면 관우는 현장 지휘관 뿐 후방 보급까지 맡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18/09/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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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군의 규모를 감안하면 전부 다 도맡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정말이지 군사를 먹이기 위해 사람 고기를 납품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무시무시한 시절이라, 당시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겠습니다.
18/09/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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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면에서 투자자에게 입터는 미축(본인도 투자)과
후방의 내외정을 관우와 같이하는 간옹.
사절로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 손건.

유랑의 사병집단이 군벌로 성장하는데 간손미 트리오의 공이 지대한걸로 판단됩니다 크크크
카루오스
18/09/21 12:25
수정 아이콘
유비 관우 자앙비 아아~
전자수도승
18/09/2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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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쫄아서 진지하게 천도를 고려했다는 말이 괜한 호들갑은 아니었군요
치열하게
18/09/2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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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니 관우가 삼삼에 화를 낼 위인이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비연회상
18/09/21 12:48
수정 아이콘
않이 뼈깎는 수술을 하면서도 신음소리 한번 안내셨다는 분입니다
산적왕루피
18/09/21 13:10
수정 아이콘
삼삼에 화내기 vs 뼈깍는데 신음 안내기
무엇이 더 쉬운지는 더이상..... 크흠
최초의인간
18/09/21 13:14
수정 아이콘
삼삼때문에 화가 나서 뼈 깎는것 따윈 깜박하신게죠
Lord Be Goja
18/09/21 13:12
수정 아이콘
삼삼에 화내기 vs 뼈깍는데 신음 안내기 VS 황충이랑 비교하기
18/09/21 16:17
수정 아이콘
마지막이 제일 열받는군!!! (by 어느 수염쟁이)
18/09/21 21:27
수정 아이콘
백수염이 우윕니까 흑수염이 우윕니까?
18/09/21 12:36
수정 아이콘
이렇게 또 점심시간을 나무위키 관우 항목으로 보내게 됩니다
헤나투
18/09/2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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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맹공은 어메이징하네요.
형주의 일부만 이끈 관우에게 백전노장 조인이 이렇게 몰리다니...
관우가 어떤면에서 괴력을 발휘한걸까요
서현12
18/09/21 12:43
수정 아이콘
완의 반란진압은 전예가 뒷마무리했으니 번성에 주둔한 조인의 병력은 관우북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 맞춰 전군이 내려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18/09/21 16:20
수정 아이콘
그게 타당한 추론이죠. 후음이 죽은 건 1월이고 조인은 완으로 돌아갈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겁니다.
조조가 서쪽으로 갈 때 형주 군사 일부분을 빼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말 그대로 상상의 영역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두 가지 가능성을 봅니다.
1) 무슨 이유에서건 간에 형주의 병력 일부를 다른 곳으로 돌렸기에 조인의 병력이 부족했다.
2) 관우가 야전에서 조인을 개발살내고 진격하여 양번을 포위했다.

두 번째 가설을 채택하고 싶은 건 제가 촉빠라 그렇습니다.
서현12
18/09/21 16: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위나라는 수군의 존재가 번성공방전 내내 보이지 않습니다, 번성방어에 있어 수군의 존재는 필수불가결, 조인이 바보가 아닌이상 수군의 존재가 중요하다는걸 알고 있었을터, 그럼에도 관우의 수군만이 번성에 존재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라고 봅니다.
18/09/21 16:39
수정 아이콘
청니 대치의 사례를 보더라도 관우와 조인이 강릉과 양양 사이의 어디에서쯤엔가 한판 붙었을 가능성은 분명이 있습니다. 그 때 조인의 수군이 함께 박살났다고 가정한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죠. 병력이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배들은 그럴 수도 없으니까요.
서현12
18/09/21 16: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온회가 조인이 강물이 불어나는데 적진 깊숙히 들어가 이에 대비 못하고 있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위나라 수군의 수가 벼르고 있던 관우군 수군의 숫자에 못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봅니다.
뽀롱뽀롱
18/09/21 12:51
수정 아이콘
관우의 평가에 대한 추정이 인상적이네요

기록엔 없으나 기곡전투에서 조운이 한 일을 여러번 해냈다고 추정하면
당대의 평가가 이해가 갑니다
Maria Joaquina
18/09/21 12:55
수정 아이콘
추천 올라가면 오늘 자정 전에 (3)이 올라온다고 들었..아니 생각합니다.
18/09/21 16:22
수정 아이콘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소곤소곤)
18/09/21 12:59
수정 아이콘
야.. 그런 관우를 때려서 평생 따까리 시킨 유비는 얼마나 괴물..?!
18/09/21 16:23
수정 아이콘
천하에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뿐이오! (조조)
18/09/21 12:59
수정 아이콘
추석때 시간 많으시니까
1일 2편만 쓰세요.

10편까지 기대합니다.
18/09/21 16:23
수정 아이콘
추석 때는 못 씁니다. 컴퓨터라는 물건을 보려면 일단 차 타고 20분을 나가야 하는 동네라서요.
카루오스
18/09/21 17:10
수정 아이콘
휴대폰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안된다곤 하지 않으시겠죠?!
Maiev Shadowsong
18/09/21 13:01
수정 아이콘
역시 점심시간에 봐야 제맛
오'쇼바
18/09/21 13:03
수정 아이콘
절단신공이 9성에 이르셨네요..ㅜㅜ
18/09/21 16:24
수정 아이콘
10성이 되기 위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어니닷
18/09/21 13:25
수정 아이콘
아 관우님아..
정말 삼국지는 나이먹고 보면 형주공방전이 종결이지요.

이놈의 손제리... 쿨타임 다가오는거지요?
18/09/21 16:24
수정 아이콘
쥐새끼를 까는 데 쿨타임이 필요합니까? 사시사철 까야지요!
루크레티아
18/09/21 13:43
수정 아이콘
글이 하염없이 늘어진다 》》》 이 글쓴자를 냅다 가둡시다.
루엘령
18/09/21 13:45
수정 아이콘
관우 역시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괴리감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 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촉의 자료는 현재 많이 남아있지 않고 승자인 위와 진의 기록 위주로 보게 되는데 여기엔 막상 이렇다할 큰 전공은 없거든요
그런데 또 당대 사람들의 평가는 매우 높습니다
명성은 높지만 눈에 띄는 전공은 없다보니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엮어 과대평가라는 말들이 많지만
기록이 소실되어 우리가 모르는 기록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게 아니면 당대의 평가가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갈량도 관우랑 비슷하죠
현재 제갈량의 평가도 뛰어난 정치가일뿐 이다 라는 말이 많습니다
문묘(문선왕 공자)에 비하면 격의 차이가 심하지만
그래도 황제와 주요 재상들이 제사를 지낸 무묘(무성왕 강태공)의 기록을 보면
당 760년에
진秦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
한漢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
촉蜀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
당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
사공司空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이세적)
한漢 태자소부太子少傅 장량張良
제齊 대사마 전양저(사마양저司馬穰苴)
오장군吳將軍 손무孫武
위衛 서하수西河守 오기吳起
연燕 창국군昌國君 악의昌國
를 배향합니다. 문묘나 무묘는 황제가 개인 빠심으로 배향할수 있는 곳도 아니고
당대 주요 신하들과 논의 해서 위폐를 모시고 같이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다가
당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진정한 통일국가(진 수 는 너무 짧았죠) 라고 할 수 있는데
당대 주류 인식은 제갈량을 역대 명장 10명 중 한명으로 보았다는 소리입니다.
이 후 송나라에서도 기록이 보이는데 1123년 선화 5년에서도 무묘에 배향될 72명의 역대 명장을 뽑는데
전상 - 장량
서향 - 관중, 손무, 악의, 제갈량, 이적
동향 - 전양저, 범려, 한신, 이정, 곽자의
를 먼저 뽑아 제후에 봉하고(제갈량은 순흥후) 뒤에 따로 62명을 뽑는데
삼국지 시대 인물로는 관우, 장비, 황보숭, 등애, 주유, 육손, 여몽, 육항, 두예, 장료, 양호, 왕준이
포함됩니다.
원나라 1283년에도 무묘에 단 10명을 제사를 지내는데 제갈량이 포함됩니다.
삼국지연의가 원말명초에 나온 책임을 생각해보면
제갈량이 정치가일뿐 연의빨이라는 말은 잘못된거죠.
이미 삼국지연의 나오기전에 명장이 주류 인식이었고 이는 조선실록에서도 나옵니다 오히려 현대에 오고 이미지가 반전된 케이스입니다
관우 역시 삼국지연의에 의한 신격화에 대한 반발로 저평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네요
카서스
18/09/21 15:49
수정 아이콘
어떤블로그에서 불리한 전세를 기책으로 뒤집지 못했다고 저평가하는거보고 웃기더군요.
만슈타인, 롬멜 무엇...
18/09/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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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이 너무 없어요. 백마+번성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화력이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제갈량을 까면 사살입니다. 어딜 감히...(엄근진)
가고또가고
18/09/21 13:54
수정 아이콘
저도 뒤에 관우가 우금군과의 싸움에서 세운 공과 별개로 조인을 몰아붙인 것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후음의 반란에서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북을 총괄하는 조인의 병력이 고작 형주 3군 정도만 관할하는 관우의 병력보다 크게 적을 것같지는 않거든요. 물론 관우가 더 우세하니 쳐들어간 거겠지만 적벽대전 직후 리즈시절의 주유도 조인에게 고전했던 걸 생각하면 양번을 함락시키기 직전까지 간 것도 관우의 상당한 전과라 봅니다.
18/09/21 16:27
수정 아이콘
위에도 댓글 남겼지만, 저는 '관우가 조인을 야전에서 개발살낸 후 양번 포위설'을 밀고 있습니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만...
으와하르
18/09/21 13:57
수정 아이콘
적벽대전(208) 당시 유비 군세가 2만 명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고, 이후 남형주를 차지하면서 군세를 증강시켰지만 유비 입촉(212~214) 당시 관우를 제외한 대다수 장수들이 입촉한 것으로 보아 당시 관우에게 남은 병력은 정말 얼마 안 되었겠죠.
그리고 번성전투가 219년이니 관우는 유비가 적벽전 이후 한번 병력을 빡세게 뽑아 익주 올인한 형주에서, 5년만에 다시 병력을 양성하여 - 도중에 위와 오의 공세도 틈틈이 막아가면서 - 군대를 만들어 치고 올라갔다는 말이 되죠. 그것도 익양대치 후에는 강릉, 공안, 무릉만 남은 상황에서요.

어떻게 보면 프로토스의 로망 시기에 한방러시로 유명했던 임성춘의 전투스타일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그런 느낌이기도 합니다. 결국 대권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무너졌다는 점에서도 비슷할지도요.
18/09/21 16:33
수정 아이콘
영릉도 있긴 했습니다. 남군+무릉군+영릉군이죠. 의도군도 있지만 사실상 남군 일부를 떼어다 만든 군이니 큰 의미가 없고...
여하튼 목민관으로서 관우의 능력은 출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혼자서 그 병력을 양성해냈다는 건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성과죠.
그런데 비겁하게 본진에 럴커드랍이......!!!!
18/09/21 14:02
수정 아이콘
하지만 서황을 마주하는데....
18/09/21 16:25
수정 아이콘
관우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겠군요.
"아니 형 왜 그래.......?!"
뽀롱뽀롱
18/09/21 14:06
수정 아이콘
지도를 보면 양양도 중요한데 완까지 먹히면 장안과 허도 낙양이 모두 사정권에 들어오는군요

양양이 털리면 완으로는 지형으로 방어할 대책이 안보이기도 하네요

완을 털어내면 주변 주요도시들이 전시체제로 바뀔테니 산업도 파괴될 것이고

한중 상용 강릉 라인이 완성되서 원하는 출구로 치고 나갈 수 있으니 정말 큰 일이 맞네요

조조 입장에서도 섬뜩할 상황인것 같습니다
18/09/21 16:36
수정 아이콘
양양만 차지해도 한중-상용-양양-강릉-강주-성도-한중으로 이어지는 동그란 순환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략적으로 군사를 운용하기에도 훨씬 편해지죠. 완까지 차지한다면 정말 허도가 눈앞이고요.
뽀롱뽀롱
18/09/21 16:49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장안도 큰 일이지만 양양의 위협이 더 큰 피해로 느껴졌을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의와배신
18/09/21 21:05
수정 아이콘
정말로 유비가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길이 이어진 이상 한중의 병력을 몰고 양양으로 진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가시질 않아요.
도리어 맹달의 병력만큼 관우의 병력에서 뺀 결과가 되어버렸죠.
유비가 상용으로 병력을 전개하고 상용의 유봉 맹달이 양양에 구원군으로 출진하면서 장비가 검각을 막아버리면 되었을 것이 아닌가
거기에 황충 법정의 예비군을 활용했다면 양양과 번을 점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껀후이
18/09/21 14:42
수정 아이콘
아니...왜 여기서 절단이...도대체 왜...하아...
일단 추천은 받으세요 근데 하아...
18/09/21 16:39
수정 아이콘
何訝 何訝
도달자
18/09/21 14:46
수정 아이콘
이 글이 하염없이 질질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18/09/21 16:40
수정 아이콘
관우가 우금을 수몰시키고 나면 이야기가 끝나니까 더 이상은 안 늘어나겠지요. 후후후후후.....
ColossusKing
18/09/21 14:50
수정 아이콘
두 유 노 관 우
지니팅커벨여행
18/09/21 14:51
수정 아이콘
3편이 마지막인 거죠?
발단-전개-절정에서 끝나는 관우의 형주 점령기!
그리고 삼국통일!!
파이리
18/09/21 14:56
수정 아이콘
무 신 관 우
18/09/21 16:40
수정 아이콘
가랏 반삼국지!
파핀폐인
18/09/21 15:03
수정 아이콘
갓우....
18/09/21 15:03
수정 아이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속도네요. 계속 이 속도를 유지해주실거라 믿습니다.

관우가 양번을 무사히 취했다면 정말 삼국지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항상 생각합니다.
아우구스투스
18/09/21 15:10
수정 아이콘
돈 내면 미리보기가 가능할지 문의합니다.
카서스
18/09/21 15:51
수정 아이콘
제갈량전 완결되면 후속작으로 관우전 갑시다!
La La Land
18/09/21 16:20
수정 아이콘
관우에 대한 평을 보니

진에어 그린윙스 테디가 생각나네요
18/09/21 17:07
수정 아이콘
관우가 보병으로 전직만 했어도 살아남았을텐데...
18/09/21 17:13
수정 아이콘
여몽 네이놈!!
펠릭스-30세 무직
18/09/21 18:40
수정 아이콘
상식적으로 제갈량이 기산에서 깔짝거린게 아니라 형주에서 치고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쓰마이식 닥버가 통할리가 없지요.

당대 군벌들을 바른 조위의 에이스가 쓰마이였는데 그 쓰마이를 바른게 제갈량이이었지요.

주유와 노숙의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잘 드러납니다. 노숙은 몰라도 주유는 유비를 싫어했지요. 그래도 주유는 촉오동맹의 필요함에 대하여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여몽과 손제리는 진짜 저능아에요. 지방군벌로 만족한다면 몰라도 중원을 노리려면 정말 절대 하지말아야 할 실수였습니다.
조말론
18/09/21 18:57
수정 아이콘
주유와 노숙을 퓨전시키셨네요 주유는 유비를 손오 아래로 두려 했는데
18/09/21 20:11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여몽과 손제리가 바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둘은 실제로 목표가 지방 할거였을 거라고 보거든요. 그런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유비 등에 칼을 꼽아서라도 장강 방어선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근데 그래도 미운 건 똑같아요 하하하
미하라
18/09/21 23:44
수정 아이콘
사실 그게 목적이었다고 해도 문제인게 양번을 동오가 취했어야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장강방어선이 갖춰지는 것이었죠.

양번을 결국 위가 장악한 상태라면 동오에게는 전혀 지리적 이점을 살릴수 없는 육지를 통해서 남군과 형주 4군이 모두 공격 사정권에 들어오게 되는데 동오 입장에선 전선만 더 복잡해지는데 상식적으로 관우타도를 목적으로 위에 협력하는 관계에서 위의 영토였던 양번을 위나라로부터 뺐는게 가능했을까요.

전 그래서 여몽이란 인물 자체가 군략에는 뛰어날지 몰라도 대국적인 안목은 별로 없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한중에서 조조를 격파한 촉이 그 기세를 타고 형주 북부까지 장악해서 유비가 세력을 확장해버리면 맨날 합비 방면으로 올라가면 깨지기만 하는 동오 입장에서는 그 뒤부터는 관우라는 난적을 도모하고 영토를 확장할수 있는 기회는 없을것이라는 판단하에 일단 땅 늘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래도 촉나라보단 늦게 망하는 선택지를 골랐다고 봅니다.
18/09/22 00:00
수정 아이콘
뭐 결과적으로 촉나라 보다 늦게 망하긴 했으니까요... 말씀하신대로 유비의 세력이 더 커지면 동오는 정말로 답이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미하라
18/09/22 17:35
수정 아이콘
여몽이 고른 선택지는 결국에는 "망하는" 선택지인데 저는 먼저 망하냐, 좀 더 늦게 망하냐는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애초에 대세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망하지 않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된다고 보구요.

애초에 연합이라는것 자체가 훨씬 강한 상대에게 맞서기 위해 하는건데 오나라는 괴랄하고도 가장 강한 나라와 연합을 해서 가장 약한 나라를 무너트렸죠. 이건 진짜 그냥 촉보다 늦게 망하는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선택이라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손제리를 까는거죠.
18/09/21 18:55
수정 아이콘
우와 삼부작이었군요 다음 편에서 관우가 칠군 수몰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거 맞지요?
18/09/21 20:02
수정 아이콘
하지만 서공명이 등장하면 어떨까?
18/09/21 20:06
수정 아이콘
전 이상하게 서황이 참 좋더라고요 일단 무기부터가 너무 간지남. 조조전에서도 애정으로 키웠습니다.
18/09/21 21:15
수정 아이콘
그 공명은 짝퉁 공명이라서 저는 싫어합니다. 흐흐...
18/09/21 22:51
수정 아이콘
공명은 승상님밖에 없거늘 어찌..
링크의전설
18/09/21 22:04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습니다 글곰님 감사합니다
트럼피즘
18/09/22 12:59
수정 아이콘
(수정됨) 관우가 의리와 수염 빼곤 별로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재를 알아보는데 탁월한 인물들이 관우를 평하던 걸 모아서 보니까 무신 대접을 받는 이해가 되는군요 (스포츠로 치면 강팀들이 노리는 약팀의 에이스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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