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6/08 00:14:48
Name ArthurMorgan
Subject [일반] [개미사육기] 다시는 개미를 무시하지 마라 (동영상도 있어요) (수정됨)
한 번은 불꽃심장부족의 사육장을 제가 청소하기 귀찮아서, 비바리움의 청소부인 공벌레를 합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얘들이 각종 쓰레기를 싹 먹어치워줄테니까요. 그래서 동네에 나가 공벌레 한 마리를 납치해 왔습니다. 과연 합사가 가능한 지 시험삼아 투입해보았지요. 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정말 하루 진종일 얻어터지며 쫓겨다녔습니다. 우주방어를 펼쳐서 상처를 입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이 공벌레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꽃심장부족이 아주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습니다. 그림을 보며 설명해 보겠습니다.6-6
1번 위치가 공벌레가 최초로 발견된 장소입니다. 여기서 워커 4~5마리에게 포위당한 공벌레는 볼 모드로 우주방어를 펼치며 약 1분을 버텼습니다. 틈을 봐서 재빨리 드라이빙 모드로 변신, 2번 위치로 달렸습니다. 그 뒤를 추격하던 불꽃심장 워커들은 여기서 갑자기 산개합니다. 두 마리는 계속 공벌레를 추적했지만, 세 마리는 먹탐장의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 겁니다. 저는 얘들이 포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3번 위치까지 도망친 공벌레는 부쉬 안으로 숨어듭니다. 부쉬는 공벌레보다 체고가 높은 개미들에게는 쉽게 지나가기 힘든 지형입니다. 여기서 두 마리의 추적자는 다시 분산했습니다. 한 마리는 공벌레의 뒤를 따라 부쉬로 진입,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부쉬를 우회하여 바로 4번 지점으로 달렸습니다. 이 우회기동에서 저는 감탄했습니다. 공벌레의 동선을 예측한 것이니까요. 공벌레 보신 적 있나요? 얘들 진짜 빠릅니다. 우회하여 온 추격자를 부스터 온으로 따돌리며 5번 지점으로 도주한 공벌레에게 벼락이 떨어집니다. 아까 2번 지점에서 다른 노선을 택한 워커들의 기습을 받은 것이죠. 세상에, 설마 노린 걸까요? 2번 지점을 지날 때부터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천라지망을 펼친 다는 것이 개미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다른 데 간 애들에게 얻어걸린 것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얘들이 진짜 의외로 똘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6-1

제가 젤리 먹이를 주곤 하는 미니어처 쟁반입니다. 그런데 언제보니까 뭐가 잔뜩 쌓여있는 겁니다. 투덜대며 설거지를 해주었습니다. 얘들아, 이것은 쓰레기통이 아니야...

6-2

그런데 다음 젤리를 다 먹고선 또 이렇게 해놨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취미같지 않습니다. 쟁반에 쓰레기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매력이 있는 걸까요?

6-3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 다시 생깁니다. 전에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개미국밥을 양껏 주고 싶은 마음에, 고기불판 한가득 부어주었습니다. 전에 줬던 것보다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뭔가 이물질이 떠있습니다.


여기는 최초로! 동영상을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쟁반 위쪽 구석에 뭔가를 열심히 물어다가 국밥에 말고 있는 녀석이 보입니다. 영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 마리 정도가 이런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얘들은 확실히 이 국밥의 호수를 메꿀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곤충젤리나 개미국밥에는 당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점성이 높죠. 음료수 흘린 자리가 끈적해지는 것처럼, 젤리나 국밥은 끈적합니다. 이게 우리 기준이면 그냥 불쾌하고 신경쓰이는 일이지만, 개미에게는 다릅니다. 실수로 국밥에 다이빙했던 녀석이 한동안 중력수련하는 손오공처럼 힘겹게 다니더군요. 그리고 국밥을 먹고 마른 자리는 개미에게는 슬픈 미이라의 저주가 되어 목숨을 위협하는 트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얘들은 아마 본능적으로 그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밟아도 안전한, 모래알이나 풀잎조각, 이끼를 모아 끈끈한 곳을 메꾸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6-5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밥쟁반에는 더 많은 부유물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쟁반을 꺼내 국밥을 버리고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저 정도로 위협을 느끼는 것을 더 넣어두기가 꺼려지더군요. 이 과정을 보면서 확실히 개미는 본능이 뛰어난 생물임을 느꼈습니다. 군체의 생존을 위해서 개미들이 보여주는 행동 가운데는 정말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다른 콜로니와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전선에 전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빈집털이를 위한 별동대를 보내는 전술도 구사한다더군요. 곰팡이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개미나, 진딧물 농장을 가꾸어 감로를 얻는 개미의 이야기는 유명하니 아시는 분도 많을 테지요.

개미는 한자로 의(蟻)라고 씁니다. 개미 의자는 옳을 의(義)자와 벌레 충(蟲)자가 합쳐진 글자지요. 단순히 음만을 딴 것이 아닌, 개미가 동료나 군체를 위해 행하는 희생과 봉사, 노동을 보고 옛 사람들도 개미가 의로운 벌레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

늘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0/06/08 00:24
수정 아이콘
항상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ArthurMorgan
20/06/08 02: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Je ne sais quoi
20/06/08 01:34
수정 아이콘
와 굉장한데요. 잘 읽었습니다
ArthurMorgan
20/06/08 02:11
수정 아이콘
똘똘하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08 01:41
수정 아이콘
공벌레의 최후는 어떻게 됐나요? 야생에서는 좀처럼 개미한테 안 당하던데 살아 남았을까요?
ArthurMorgan
20/06/08 02:11
수정 아이콘
밀웜들 사육하는 통에서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_';;
20/06/08 02:37
수정 아이콘
아니 크크크 꺼내줘요. 공벌레에게는 생지옥일텐데 크크크
ArthurMorgan
20/06/08 02:48
수정 아이콘
서로 터치 안하고 먹을거 챙겨먹으며 잘 삽니다; 곧 공벌레 사육통 따로 만들 생각이긴 해요. 흐흐
쪼아저씨
20/06/08 11:28
수정 아이콘
청소는 잘하나요?
ArthurMorgan
20/06/08 15:40
수정 아이콘
나름 열심히는 하는데, 압도적 쓰레기 공장 밀웜을 다 커버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valewalker
20/06/08 02:49
수정 아이콘
우거지 국밥이라니.. 배운 개미들이네요
ArthurMorgan
20/06/08 15:40
수정 아이콘
플라스틱 우거지라는 점을 빼면 인정해줄 만 합니다.
농심신라면
20/06/08 08:02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공벌레가 고슴도치처럼 방어력 몰빵 캐릭이었군요.
ArthurMorgan
20/06/08 15:42
수정 아이콘
장수말벌이나 사마귀 정도 되는 OP랑 붙으면 어찌될 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에 서식하는 개미는 단시간에 처치하기는 무리인 듯 합니다. 물론 지칠때까지 추적해서 숫자로 차륜공격을 하면 지쳐서 당하긴 하겠지요;;;
JJ.Persona
20/06/08 08:36
수정 아이콘
출근하고 커피 한잔 내려서 느긋하게 잘 읽었습니다 흐흐 뭔가 힐링 되는 기분

개미들이 호수도 메꾸고 월요일 아침의 고됨도 메워주는군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rthurMorgan
20/06/08 15:42
수정 아이콘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20/06/08 08:59
수정 아이콘
주식 시장 이야기인줄 알았네요..
ArthurMorgan
20/06/08 15:42
수정 아이콘
주식때문에 개미계로 입덕하시는 분들이 꽤 계십니다;;
20/06/08 09:57
수정 아이콘
선한 크툴루신가??
잘보고 있습니다. 글 자주 자주 부탁 드립니다. 굽신굽신~
ArthurMorgan
20/06/08 15:4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원어보브올이 좀 더... ^^;;
깡통로봇88호
20/06/08 10:57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말솜씨가 좋으셔서 유뷰버 하셔도 괜찮을것 같네요.
유튜브에서 개미 컨텐츠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닥 재미있는게 없네요.
일부 몰지각한 유튜버들이 조명 환하게 켜놓고 개미집 들어올리고 카메라쪽으로 방향 돌리고 하는걸 보고 학을 띠었네요
ArthurMorgan
20/06/08 15:44
수정 아이콘
음 개미들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좋지 않지요, 확실히... 그래도 조명이나 진동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닌 듯도 합니다. 지속적, 장기적으로 자극하면 여왕의 수명도 줄고 군체가 빨리 멸망하겠죠; 저도 사진 찍을때나 먹이 급여, 청소때 가급적 아주 조심하고 있습니다.
차인남자
20/06/08 11:35
수정 아이콘
개꿀잼 좋은글 감사합니다! 글 자주 써주세요!
ArthurMorgan
20/06/08 15: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사술생
20/06/08 11:40
수정 아이콘
저렇게 들으니 저글링같은 느낌이... 크크
ArthurMorgan
20/06/08 15:45
수정 아이콘
개미가 조금 더 귀엽습니다? 크크
20/06/08 12:36
수정 아이콘
어렸을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던 개미의 행동들이 이렇게 깊게 생각할것이 있다는게 재미있네요
매번 글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ArthurMorgan
20/06/08 15:51
수정 아이콘
저도 대부분의 시간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습니다. 개멍과 함께 우주의 신비에 대해 명상합니다. '_'
기사조련가
20/06/08 12:37
수정 아이콘
문피아에 인간 사육하기 소설이 있던데....
ArthurMorgan
20/06/08 15:51
수정 아이콘
인간은 사육하기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개미보다는 친칠라가, 친칠라보다는 강아지가 더 쉽거든요;
칼라미티
20/06/08 12:59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ArthurMorgan
20/06/08 15:5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아웅이
20/06/08 16:31
수정 아이콘
소사맙.. 피르나르베르베르신가요?
ArthurMorgan
20/06/08 22:58
수정 아이콘
그런 재주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개미나 키우면서 그냥 살게...
20/06/08 21:12
수정 아이콘
공벌레와 개미의 킹열한 사투 마치 롤같군오 크크
ArthurMorgan
20/06/08 22:58
수정 아이콘
이걸 살아가나요, 공벌레?!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8028 [일반] [하소연]간단한 한풀이를 하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20] 용자마스터9263 20/09/09 9263 3
87878 [일반] 포스트 애들은 가라 시대에 남겨진 '어른들' [8] Farce9451 20/08/30 9451 10
87697 [일반] [일상] 우울한 사람의 우울하지만은 않은 하루 [26] 꾸꾸7826 20/08/18 7826 9
87675 [일반] (일상) 장마는 나의 원수 [11] CoMbI COLa7471 20/08/17 7471 26
87486 [일반] 육휴 아빠의 넋두리 [15] 행복한 우럭7382 20/08/02 7382 9
86870 [일반] 뚝배기를 깨버린다를 영어로 하면? [22] 모냥빠지는범생이10966 20/06/23 10966 3
86841 [일반] [개미사육기] 신설비 설치 (사진 있어요) [20] ArthurMorgan7530 20/06/22 7530 20
86709 [일반] [일상글] 결혼하고 변해버린 남편 - 집안일 [65] Hammuzzi14608 20/06/13 14608 85
86635 [일반] 사람들은 왜 재료를 여러 종류 때려넣는가 [17] 미원7587 20/06/08 7587 2
86619 [일반] [개미사육기] 다시는 개미를 무시하지 마라 (동영상도 있어요) [36] ArthurMorgan9407 20/06/08 9407 41
86506 [일반] [개미사육기] 불꽃심장부족!! (사진 있어요) [64] ArthurMorgan10376 20/06/01 10376 55
86486 [일반] [일상글] 결혼하고 변해버린 남편 -게임편 [91] Hammuzzi14231 20/05/30 14231 57
84846 [일반] 남편'을' 덕질한 기록을 공유합니다. (2) [106] 메모네이드16475 20/03/03 16475 50
83942 [일반] 착한 사람 [9] CoMbI COLa7241 20/01/06 7241 9
83713 [일반] 김장시즌입니다! 김냉을 청소합시다!! [17] 비싼치킨8244 19/12/12 8244 11
83445 [일반] 어렸을적 엄마아빠 기억에대해.. 끄적끄적 잡소리 [11] prc7210040 19/11/16 10040 38
83353 [일반] 평범한 행복함 [14] HEM157886 19/11/07 7886 33
82910 [일반]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참여작가들의 대표작을 무료공개중이군요 [3] Yureka7854 19/09/29 7854 5
82906 [일반] 미니멀라이프와 지질이 궁상 [12] 미사모쯔11755 19/09/29 11755 5
82110 [일반] 사랑합니다 식기세척기 [104] 모나크모나크12534 19/08/05 12534 1
81830 [일반] [일상글] 요리 못하는 아내 [76] Hammuzzi10725 19/07/16 10725 29
81719 [일반] 답이 없다. [16] 코비 브라이언트8082 19/07/07 8082 0
81620 [일반] 햄을 뜯어먹다가 과거를 씹어버렸네. [26] 헥스밤10966 19/06/28 10966 6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