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각 게임의 퀄리티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까놓고 말해 그냥 어린 시절 놀이에 불과하죠. 애들 놀이 단순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이 작품의 핵심이었을까요? <오징어 게임>은 각 게임의 퀄리티가 낮기 때문에 그저 그런 작품이 되었던 걸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2가지 개념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팃포탯'과 '기버'입니다.

게임 이론에서는 '팃포탯'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전략 자체는 단순합니다.

1) 처음엔 항상 협력한다.
2) 이후에는 상대방이 이전에 했던 판단을 똑같이 따라한다.

먼저 협력하고 신뢰하되, 배반에는 즉각적으로 보복하며, 또한 적극적으로 용서한다. 이 전략은 반복되는 게임 상황에서 매우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관대함이 의외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즉, 혼자만 이기는 게 아니라 함께 이기는 win-win 상황을 만들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참고 https://osori.github.io/trust-ko)

애덤 그랜트는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3가지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 많이 주는 기버. 둘째, 받는 만큼 주는 매처. 셋째, 받기만 하는 테이커. 그리고 성공의 순서는 '(똑똑한)기버-매처-테이커-(멍청한)기버'가 된다고 하죠. 얼핏 기버는 그저 호구가 되기에 십상인 듯하지만,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 또한 기버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핵심은 win-win입니다. 극단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멍청한 기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성공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고 싶다면 선제적인 호의를 통해 win-win을 추구하는 기버가 되어야 하죠.

<오징어 게임>은 주인공으로 '기버' 성기훈을 들었죠. 오지랖 넓고,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기꺼이 불리함을 떠안고... 그런 호구가 현실보다 더 치열한 배틀로얄에서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본질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고픈 주제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개개의 게임은 어린 시절 놀이로 그닥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게임이 반복되며 드러나는 관계의 전략은 두뇌 싸움을 넘어 묵직한 주제까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를 통해 기존 배틀로얄 장르의 허상을 제대로 비틀 수도 있었겠죠. 문제는 주제로의 접근이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캐릭터의 성향이 가장 노골적인 인물은 덕수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테이커였고, 바로 그 성향으로 인해 탈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게임 이론의 결과라는 이성적 도출로 보이기보다, 한 여자의 원한에 의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중간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대사처럼 테이커를 두려워한 동료 무리에 의해 탈락했다면 좀 더 나았을 거 같아요)

덕수의 탈락은 한미녀의 캐릭터도 망쳤습니다. 그녀는 '박쥐'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하고, 이를 통해 팃포탯 또는 기버의 우월함을 상대적으로 강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한을 품으면...' 같은 식상한 결론에 그쳐 버렸죠.

알리는 멍청한 기버였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선행을 보여주었지만, 그 선함 덕분에 결국 탈락합니다. 그리고 그 알리를 탈락시킨 게 가장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알리를 탈락시킨 사람, 조상우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제를 생각한다면 조상우는 팃포탯 또는 매처의 화신이 되었어야 합니다. 가장 똑똑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전략을 선택했어야 하죠. 하지만 조상우는 매처는커녕 테이커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덕수와 다름 없는 인물이 되어버리면서 극의 주제를 도리어 약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성기훈이 이기게 된 이유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에필로그 형식으로 등장한 영상에서 '자네는 사람을 믿는가?'라는 질문이 공허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기훈은 사람을 믿었기에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주인공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후자가 이유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이 작품은 주제 전달에 실패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매처인 조상우와 기버인 성기훈이 최후의 2인으로 남았습니다. 둘은 오징어 게임을 하지만 비슷한 실력을 가졌기에 결판이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제한 시간이 끝나갈 무렵 (둘 다 이길 수 있는 컨디션일때) 성기훈은 포기를 선택하려 하지만, 조상우는 스스로 탈락합니다. 왜냐면 성기훈은 우승해도 자신의 가족에게 보상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인물, 기버였기 때문이죠. 이를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을 주최한 목적은 솔직히 최악이었습니다. 너무 식상하죠. 그저 쾌락을 위해 생존 게임을 주최한다? 이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등장하면 족합니다. 극 초반부터 무게감 잡아가며 미스터리를 강조할 필요가 하등 없죠.

이것도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세상의 정점에 선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 전략이 옳다며 내기를 합니다. "나는 베풀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아니, 나는 장애물을 모두 밟아서며 올라섰다.",  "아니, 나는 완벽한 게임 이론을 바탕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럼 도대체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탐구적인 자세로 접근했다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요? 마치 <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음습한 쾌락을 위해 참여한 사람도 있겠지만요)



3줄 요약

1) <오징어 게임>은 배틀로얄 장르이지만, 개개의 게임이 가진 매력, 그 게임을 해결하는 두뇌 싸움에 초점을 둔 작품이 아니다. 대신 여러 게임을 반복할 때 어떤 전략(극에서는 어떤 캐릭터 또는 태도)으로 접근해야 효과적인지를 다루고 있다.

2) 이를 위해 '기버' 성기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신뢰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3) 하지만 주제를 설득력있게 전달하지 못했다.


별점 ★★★
그래도 이런 장르물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시도했다는 점. 이를 고퀄리티로 구현했다는 점. 악당의 신조가 끝까지 살아있었다는 점. 이 3가지 이유를 들어 명작은 못 될 지언정, 범작은 될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