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싸움은 7살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서로 저를 밀치며 네가 데려가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 기억은 꽤나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이후로 중1까지 부모님의 부부 싸움은 잦았고 질린 저는 엄마에게 이혼 제의까지 하게 됩니다. 친척들은 네가 중간에서 잘해야 된다. 부모님의 이혼을 막아라 하셨지만 제게 그런 힘은 있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양육권은 아빠가 가지셨고 아빠의 집에서 살게 됐는데 힘들었습니다. 아빠는 일은 열심히 하셨지만 가정에는 소홀하셨고 13살의 저는 요리와 빨래 청소를 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학교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어느 날 학교에 왜 가야 하지?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3일이 지나서야 선생님께 소식을 들은 아빠가 제게 화를 내시며 뺨을 때리셨습니다. 엄마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충격에 제발 버리지 말라고 울면서 따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저는 엄마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조울증에 걸린 엄마의 상태는 불안정했고 전과 다르게 식사 빨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정서적으로는 방치되었습니다. 엄마는 종종 약을 한꺼번에 털어놓으시고 자살시도를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정신과에 장기입원을 하셨고 저는 외할머니와 지내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tv 앞에 돈이 놓여 있다면 제가 없는 사이 자살시도를 한 엄마가 병원에 갔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팔을 이끌려 학교에 억지로 끌려갔고 거기서 담임선생님께 처음 정신과에 가보라는 제의를 처음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우울증,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대신 수련의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은 많이 편해졌습니다. 6개월이 지나서는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우울이 언제나 나올 기회를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고2 우울증 약을 먹었습니다. 소위 일진이라는 애들에게 작지만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두려움에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크게 우울했던 날엔 엄마처럼 입에 약을 많이 털어 넣기도 했습니다. 겁이 많아 고작 2,3일 치를 먹은 것뿐이었지만 몽롱하고 힘이 급격히 없어지며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거품을 물며 쓰러졌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통에 정신과는 못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갔고 2학년 때 큰 우울이 찾아왔습니다. 자존감이 많이 낮았던 저는 제 과제물에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교수님께 칭찬을 받아도 기쁘지 않았고 언제나 불안감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업을 가지 않은 날들이 많았고 자퇴를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만류에 그렇지 못하고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방학이 지나고 꽤 나아졌습니다. 처음으로 햇살을 제대로 느껴보는 느낌이 났습니다. 노랗고 반짝이는 빛이 내리쬤습니다.  다시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그만두자마자 우울증 재발은 더 짧은 주기로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전보다 더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한 번 따뜻한 빛을 느껴보니 어두운 추위는 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충분의 쉬어야 한다는 권유에 재혼한 부모님의 집에서 그저 잠을 자고 먹기만 했습니다. 약 없이도 이때는 나아졌습니다. 그동안 못 받았던 보살핌을 받는 듯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때쯤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밝은 기운의 사람에 이끌려 연애 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6년 뒤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자상하고 좋은 남편에 누가 봐도 행복할 것 같은 가정이지만 저는 다시 우울합니다. 밤 10시 양옆에 곤히 자는 아이를 두고서 죽음을 생각합니다. 바닷속에 들어가는 장면, 또다시 약을 털어놓는 장면, 칼로 자해하는 장면…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하지만 강하게 충동을 받는 날엔 그 생각마저 저를 멈추게 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납니다.

이젠 이유도 없습니다. 감정은 무뎌져 행복도 슬픔도 잘 못 느낍니다. 강한 무기력에 작은 집안일조차 큰 힘이 듭니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만 있는 느낌입니다. 정신과 치료도 차도가 없습니다. 선생님 앞에서도 괜찮은 척합니다.

엄마에게 입원치료 권유를 받았지만 가정을 두고 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하루에도 엄마를 100번 이상 부르는 아들, 둘째라 첫째만큼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예쁜 딸, 많은 부담을 지게 될 착한 내 남편.

그래요 이게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인데 왜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장이 나 수리가 불가능한 장난감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