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1/08 09:07:51
Name 식별
Subject [일반] 피를 마시는 의식을 알아봅시다
(편의상 반말체로 쓰겠습니다.)





인간들은 옛날부터 피를 무서워하는 동시에

숭배하는 동시에

금기시하는 동시에

역겹고 하찮게 여겼다.



로마인들은 대지모신을 위해 피로 몸을 씻고, 또 마시는 황소혈제를 했고,





인도인들은 사원에 염소피를 발랐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는 살과 피이니라, 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서유럽 중세인들은 이 신성한 피라는 개념에 꽂혀서 성혈 기사단도 만들고, 성혈 성유물로 잔뜩 만들고, 성체성혈대축일도 기념했고,


그 중세인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북구인들 또한, 피로써 서로의 복수를 맹세하는 의형제 서약을 맺곤 했다.



암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는 긍정적인 관점으로는 생명력과 연관지어지는 것이 인류보편적이었고,



(사냥하다가 짐승 뿔에 찔리면 피를 콸콸 쏟다가 얼굴이 시퍼래져서 죽음.

사람-피=시체,

사람-생명력=시체

따라서, 피=생명력? 이라는 생각이 아주 오래전부터 퍼졌을 것이다.)





부정적으로는 질병과 저주를 옮기는 불결한 매개이자, 별로 맛도 없는 보잘것없는 짐승의 부산물이라 인간들보다는 원래 취향이 독특한 신님들이나 좋아하시는 제물로 생각되었다.





이렇듯,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피는 신과 연결되어있는 매우 스피리추얼한 물질 쯤으로 여겨졌단걸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주로 신한테 바치곤 했던 맛없고 소름끼치는 피가,





이제 막 개판이 된지라 온세상이 피로 흥건했던,





춘추전국의 중원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찾았으니,





바로 인간과 신을 잇는 도구가 아닌,





인간과 인간을 잇는 동맹의 도구로서의 전환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절대 믿지 못하는 군웅할거의 공포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은 맹세나 신의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는데,





이제 전염병을 퍼뜨리는 악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적과,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음흉한 아군이었고,





신성하고 무서운 피는 억지로라도 이들을 같은 운명의 끈으로 연결시켜 줄수있는, 그야말로 신의 물질이었다.





이제 인간들은 짐승의 피, 그리고 서로의 피를 나눠마시기 시작했다.





삽혈(歃血) 의식의 시작이었다.




삼합회가 서로의 피(혹은 닭,소,말,양과 같은 희생물의 피)를 섞어 나눠 마시는 장면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가?





이게 바로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온 삽혈 의식의 일종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삽합회와는 불가분관계인 중국 근현대의 여러 비밀결사들이 삽혈 의식을 행했고,




조선시대에도 공신회맹제때 삽혈이 행해졌으며,





고대 한반도에서도 나제동맹을 맺을때나 취리산 회맹때 삽혈이 행해진 바 있다.









당연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삼국지 인물들도 삽혈을 했는데,





반동탁연합을 결성한 18로제후들이 행한바 있으며,




그 유명한 도원결의에서도 행해졌다.





도원결의 막바지에 유비가 외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배의망은 천인공륙背義忘恩,天人共戮!!"

의리를 배신하고 은혜를 저버린다면, 하늘과 사람이 쳐 죽일 것이다!!





이는 현대의 삼합회 삽혈의식에서,



"배신자는 벼락(하늘)에 맞거나 천 개의 칼(사람)에 맞아 죽을 것"이라 하는 것과 아주 판박이다.





역시 유비는 누상촌 돗자리파 오야붕, 탁현 만지회 총장이었던걸까?





사실 이처럼 삽혈 의식에선 주로 맹세를 저버릴시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끔찍한 협박이 곁들여지는 것이 국룰이었는데,







이는 피가 가지고 있는 저주적 성격과 어우러져 무시무시한 경고가 되곤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일종의 운명공동체,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몸속으로 흡수된 피에 의해 저주에 같은 운명으로 속박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맹세를 지키지 않는 것은 단지 명예나 의리, 신의의 문제를 넘어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 있다는 주술적 사고를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삽혈의식의 대략적인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이에 대해선,

이연승. (2019). 중국 고대의 會盟儀禮에 나타나는 歃血에 대하여. 중국학보



위 논문을 참고하였다.







1. 모임 사전 준비 및 회의:

장소를 마련하고, 제단이나 희생물을 준비, 친목질할 대상들한테 초대장 발송하는 단계





회담 장소에는 제단을 쌓고 장막을 설치해서 마치 일본 전국시대의 전장처럼 해놓고, 나무 판때기로 위치까지 사전에 정해뒀다고 한다.



서로 모여서 회의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엔 결재서(載書) 만드는 게 막판까지 미뤄진다.

(이 과정에서 고대의 공무원들이 엄청 고통받는다...)



​어떤 제후들은 이 단계에서 거짓말로 틀린 날짜 틀린 장소에 구라핑을 찍기도 했는데, 그럼 바로 전쟁났다.





2. 맹서盟書의 단계:

당사자들이 만나서 서로 맹세의 글을 쓴다.

(​그냥 글 쓰는거라 생략)





3. 의식 거행:

(바로 이 단계에서 삽혈 의식을 거행함)





​3-1 먼저 땅을 사각형으로 잘 파서, 구덩이 속에서 제물(희생양: 대체로 소)을 죽이고, 제물의 왼쪽 귀를 잘라서 진주 쟁반에 담고, 그 피를 뽑아 옥 그릇을 채우고,



(盟之爲法 先鑿地爲方坎, 殺牲於坎上 割牲左耳 盛以珠盤, 又取血 盛以玉敦)





3-2 맹盟 파티장이 맹세하는 내용이 적힌 재서(載書)를 신이 들을 수 있도록 주르륵 읊은 뒤에,

바로 여기 이 단계에서 삽혈歃血을 했다.





근데 여기서 아직까지 약간의 논쟁이 있는데, 이 삽혈하는 피를 소피나 말피로 하기도 하지만 사람피를 쓰는 경우도 많아서, 과연 이걸 진짜 마셨겠느냐, 아니면 그냥 대충 입가에 바른걸로 퉁쳤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뭐, 옛날에는 (춘추전국~후한) 소량이나마 피를 마셨다는거 같긴한데, 상황에 따라서 달랐을 것으로 보임.



옛날 사람들 중에서도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있었을테니까 마신척하고 술버리는거마냥 몰래 바닥에 버렸을수도 있고, 애초에 뒷통수치고 저주 피할 목적으로 몰래 안마시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맹盟이란, 희생물을 죽이고 삽혈하며, 진주 쟁반과 옥 그릇을 사용하는데, 소의 귀를 놓는다.
盟, 殺牲歃血, 朱盤玉敦, 以立牛耳

-설문해자

盟之爲法 先鑿地爲方坎, 殺牲於坎上 割牲左耳 盛以珠盤, 又取血 盛以玉敦 用血爲盟,
맹(盟)을 맺고 싶은 사람은 땅을 사각형으로 잘 파서, 구덩이 속에서 제물(희생양)을 죽이고, 제물의 왼쪽 귀를 잘라서 진주 쟁반에 담고, 그 피를 뽑아 옥 그릇을 채우고, 맹세의 글을 쓰면 된다.
書成 乃歃血而讀書 置牲坎中, 加書於上而埋之 …
글을 다쓰면, 삽혈하고, 맹세한 내용을 서로 말하고, 희생양을 구덩이에 묻고, 맹세의 글 그 위에 두고...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



(끝)



*이미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이니까 렉카해가지 말아주세요.
(이거 쓰는 이유는 옛날에 어떤 유튜브 채널한테 글 렉카당해서 조회수 수십만 빨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라도 글 말미에 써 놓으면 중복영상이니까 안퍼갈듯 싶어서요)

이미지도 여러개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올리는 지 잘 모르겠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요한나
22/01/08 09:08
수정 아이콘
혈교가 이렇게 무림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군요.
22/01/08 10:49
수정 아이콘
나중에 혈교 마교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네요
베이컨치즈와퍼
22/01/08 09:15
수정 아이콘
영화 듄에서도 황제 직속 군대가 출병하는데 피의 의식을 치루는 장면이 있는데 인상깊더군요.
22/01/08 10:49
수정 아이콘
와 그런 장면도 있었군요
Foxwhite
22/01/08 09:31
수정 아이콘
친구들이랑 모여서 선지해장국 먹는것도 삽혈에 쳐주나여
22/01/08 10:49
수정 아이콘
피자니코
22/01/08 12:33
수정 아이콘
유관장 3형제가 선지해장국집에 모여서 선지해장국 한사발씩 하면서,
'같은날에 태어나진 않았으나 같은날에 죽게해주시오!'하고 있으면...

해장국집 주인이, 저 아저씨들 술이 아직 안깼나... 하실듯.
브루투스
22/01/08 10:06
수정 아이콘
대진제국 보면 잘 나오더라고요
22/01/08 10:50
수정 아이콘
중국 사극인가요?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옛날에 공신회맹제 때 입가에 피 바르는거 고증한 사극이 있었던거같은데 뭔진 잘 모르겠네요
고등어자반
22/01/08 10:13
수정 아이콘
"珠盤"을 '진주쟁반'이라고 옮기시는 것보다는 '구슬로 장식된 쟁반' 정도가 더 나아 보입니다.
22/01/08 10:23
수정 아이콘
사실 그냥 주반이라고 하려했는데 진주는 예쁘니까 진주쟁반이라했습니다
Limepale
22/01/08 10:49
수정 아이콘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었어도 개의치 않는 렉카들이 퍼갈거같은 슬픈 예감이 드네요
22/01/08 10:5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누가 출처적고 커뮤니티에 퍼가시는건 상관없는데 유튜브 대본으로 렉카해서 수익창출하면 바로 로톡에 문의하고 커뮤니티 오만곳에 읍소해서 어떻게든 그 유튜브 멸망시키고 싶은데 사실 제가 쓰는 글은 재미없어서 도둑맞은적 몇번 없기때문에 괜찮을거같아요
VictoryFood
22/01/08 10:57
수정 아이콘
유튜브 영상도 알려주셔야죠.
22/01/08 11:02
수정 아이콘
그건 홍보라 안됩니다
22/01/08 12:30
수정 아이콘
글 읽고보니 갑자기 피순대가 땡기네요.
안철수
22/01/08 14:11
수정 아이콘
가면무도회 혹은 섹스 동영상이 현대 지배층의 삽혈의식 아닐까 싶네요.
눕이애오
22/01/08 16:09
수정 아이콘
유비는 돗자리장수 겸 자경단이나 동네 청년회 회장, 혹은 자릿세받는 지역 알아주는 형님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스카리 빌파
22/01/08 19:09
수정 아이콘
피를 마시는 새인중 알고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Energy Poor
22/01/09 13:08
수정 아이콘
그런데 피를 마시는 것이 의학적으로는 유익한 점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셧더도어
22/01/10 17:01
수정 아이콘
렉카충이 중복을 두려워 한다면 본분을 망각하는 짓이죠크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4775 [일반] 모더나 CEO "가을에 4차 접종 필요할 것... 영국, 한국 등은 이미 물량을 예약했다" [156] EpicSide18640 22/01/09 18640 1
94771 [일반] [팝송] 제가 생각하는 2021 최고의 앨범 Best 15 [16] 김치찌개10413 22/01/09 10413 16
94770 [일반]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홈술 해먹는것도 나름 재밌네요.jpg [25] insane13546 22/01/08 13546 21
94769 [일반] 2021 가계금융복지조사 [37] 하프-물범12061 22/01/08 12061 19
94768 [일반] 1월 1일 이후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 추이 [144] 빼사스21436 22/01/08 21436 4
94767 [일반] 피를 마시는 의식을 알아봅시다 [21] 식별11471 22/01/08 11471 11
94766 [일반] 가습기 살균제의 추억 [13] UMC11092 22/01/08 11092 15
94762 [일반]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 26주기 [20] 그럴수도있어7856 22/01/07 7856 20
94760 [정치] 과연 김종인이 윤석열을 떠난 이유는??(선거 전 마지막 글...) [29] 염천교의_시선20039 22/01/07 20039 0
94759 [정치] 이재명, '여성 인권' 닷페이스 출연한다…반페미 논란 돌파 [327] 카루오스27475 22/01/07 27475 0
94757 [정치] 갤럽 정례 조사 지지율 이36 윤26 안15 심5 [208] 빼사스23828 22/01/07 23828 0
94756 [정치] 노영민 "박근혜 석방 반대한 건 오히려 야당…'참 모질다' 생각해" [93] 렌야19167 22/01/07 19167 0
94755 [정치] 이준석의 '선당후사' 그는 결국 국민의힘 '당대표' [196] wlsak25052 22/01/07 25052 0
94754 [정치] 오늘 이준석은 승부수를 던진 것인가? [147] freely20689 22/01/07 20689 0
94753 [정치] PGR 정치탭 글 제목으로 보는 2022년 국민의힘의 숨가쁜 6일 [41] 원시제13236 22/01/07 13236 0
94752 [정치] 정치, 경제에서 과학적이란 것의 문제점 [31] 가라한9653 22/01/07 9653 0
94751 [일반] 자게 줄수 규정 개정/선거게시판 오픈 완료/여론조사 관련글 규정 신설 [50] jjohny=쿠마12647 22/01/06 12647 10
94750 [정치] [속보] 윤석열·이준석 의총장서 포옹…갈등 봉합 [532] wlsak37081 22/01/06 37081 0
94749 [정치] 이준석의 28분 연설 전문이 공개되었습니다 [230] Leeka29581 22/01/06 29581 0
94748 [정치] 이준석, 의총참석 LIVE/선대위 파행책임 윤52.6%vs이25.5% [182] 채프24716 22/01/06 24716 0
94747 [정치] 오늘 윤석열 후보 청년 보좌역들과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123] 時雨22833 22/01/06 22833 0
94746 [정치] ‘청년간담회 주최’ 박성중, 최초 보도한 부산일보에 “시골이라 번호 없다” [82] 몽블랑17752 22/01/06 17752 0
94744 [일반] 미 연준이 양적긴축을 예고했습니다. [100] 가라한18289 22/01/06 18289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