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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15:12
제 기억이 맞는지 헷갈리는데
강원도 감자도 이분의 업적이었을겁니다 아마 해방 이후 열악했던 식량문제 해결에 가장 큰 공로자중 한분이 아닌가 싶어요
22/01/18 15:15
제주도에 감귤을 키우자 / 강원도에 감자를 키우자
1. 아이디어 제공 2. (자신의 전공을 살린) 해당지역 풍토에 맞는 품종개량까지 풀패키지로 제공해주셨대요
22/01/18 15:15
개인적으로,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정말 실망스럽고 형편없다고 느꼈던 때가 바로 초등학교 때, 우장춘 박사의 위인전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위인전 내용은 꺼라위키랑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암살당해 가세가 기울고, 고아원까지 전전하다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학교를 다니다 민족주의를 자각하고, 조선인 유학생 신분으로 도쿄대에 진학하여 박사학위까지 따고, 해방 이후 부귀영화와 가족까지 포기하고 수용소를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국가를 위해 이바지했다는 내용이죠. 심지어 위인전에서도 국가가 저지른 잔인한 홀대는 가감없이 쓰여져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친일파인데 그 아들내미를 어떻게 믿느냐', '친일파 자식은 결국 친일파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대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본인 할 거 하던 우장춘 박사.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우장춘 박사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마지막으로 어머니 임종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고 국가에 요청해도 국가가 끝까지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국교수립이 안되어있다고 해도, 그렇게 유교 국가임을 강조하던 국가에서, 어머니가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볼 수 없게 막아버린 겁니다. 오죽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그 페이지가 기억이 날 정도에요. 이런 짓까지 할거면 최소한 국내에서의 대우라도 잘 해주던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했다지만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었고, 하다못해 돈을 못 준다면 명예라도 챙겨줘야하는데 명예조차도 제대로 대우해주질 않았어요.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가 친일파란 이유로 끝까지 제대로 인정 안 해주다가,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야 생색내기용 포장을 수여한 겁니다. 심지어 훈장도 아니고 명예로는 훈장 다음 등급인 문화 '포장' 수여로 끝내버렸어요. 국가를 위해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모든 걸 바치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가는 길에 바치는 명예조차도 이 따위로 해버린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위인전이니까 과장이 있다고 생각했죠. 현실은 더하더군요. 진짜 민족주의적 애국심 가지고 부귀영화는 물론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온힘을 다한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따위로 대우해놨으니, 우장춘 박사 에피소드를 읽으면 읽을 수록 그냥 우리나라가 부끄러웠습니다. 처음 접한게 초등학교 때 우장춘 박사의 위인전을 읽었던 거였는데, 그 때만큼 우리나라에 실망했던 기억도 드뭅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니까요. 당시 몇 없던 박사급 인재가, 국가를 위해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왔는데도 이 따위로 대우했는데, 도대체 누가 우리나라를 위하겠어요.
22/01/18 15:36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해도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국내로 온 사람인데요. 그 논리면 극진하게 대우받은 일본군 출신들은 뭐랍니까.
철저하게 일본에 충성하고, 사병부터 고르고 고른,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과 전투하면서 민간인 학살하고 정보수집하던 정예부대인, 즉, 명백한 전범들인 간도특설대 출신들조차도 떵떵거리며 잘만 살다 갔는데요. 솔직히 그건 핑계입니다. 당장 유명인물만 따져도 6.25 당시 제1사단 백선엽, 해병대 초대~3대 사령관 신현준, 김석범, 김대식 등, 위에서 말한 간도특설대 출신들이 장성들이었고, 국군 핵심 인원들 또한 일본군 출신이 대다수였는데요.
22/01/18 15:42
이승만 정부에서 친일 경찰들을 반공주의 명분으로 적극 기용한 것과 비교하면, 대한민국 정부에 조금이라도 충성하지 않을 의심거리가 보이는 인물은 홀대하고 친일파일진정 일본과 연이 끊긴 인물들은 중용하는 방식을 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북한으로 넘어간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해방 정국은 잘 몰라서 이게 이승만 정부에서 과학자들을 홀대한 결과인지, 과학자들이 먼저 과학 연구의 기반이 남아 있는 북한을 선택한 것이 먼저인지는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22/01/18 15:47
둘 다이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우가 애매하기도 했고, 북한이 큰 대우를 해주겠다고 열심히 영업한 것도 있었고, 아시다시피 1950년 전에는 월북하기도 매우 쉬웠으니까요. 다만, 우장춘 박사는 1950년에 귀국했고, 심지어 귀국하자마자 6.25 터지니까 해군 소령으로 복무하다 전역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충성하지 않을 거란 의심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걍 여력이 없든, 아니면 그냥 마음에 안 들었든 뭐가 됐든 제대로 대우를 안 해준거죠. 우장춘 박사의 성격도 딱히 싹싹했던 것 같진 않은, 전형적인 불독 연구자였다고 하니...... 그냥 우리나라의 대우가 지지리도 형편없었던 거로 결론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인재 놓치긴 싫다고 악랄하게 굴고요.
22/01/18 22:05
조금 오해가 있는 것이
친일파 출신 특히나 독립운동가 때려잡던 친일파 경찰들을 재 기용한 것은 이승만이 아니라 미군정입니다 게다가 이걸 미군정이 주장한게 아니라(당연한 것이 미군들은 몇달전 까지 그 일본과 목숨걸고 전쟁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멀쩡한 조선인 까지 너 일본놈 아니냐 의심하던게 당시 미군정입니다) 미군정 하에서 경찰을 장악했던 조병옥과 장택상이 한겁니다. 이 사람들은 둘다 독립운동가고 장택상은 자기를 고문했던 장본인이 자기 얼굴 보고 도망가자 괜찮다고 용서하는 뭐 그런 행동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승만 밑에도 있었지만 보통 야당인 민주당에서 이승만과 맞서는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고 조병옥은 이승만에 맞서서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입니다. 이후 군에서 일본군 출신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자고 주장한건 역시나 독립운동가이자 중국군 2스타 출신이자 광복군 출신으로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했던 김홍일이었고요.(이거는 시기상으로도 이승만 때가 맞기는 하지만 김홍일은 김구계로 분류되었고 이승만과 썩 좋은 사이가 아니었죠) 결론적으로 이승만은 친일파들.. 특히나 친일 경찰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승만의 반대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한 짓이죠. 반민 특위 해체등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에 부정적이었던건 맞지만 적극 등용 한적은 없습니다.
22/01/19 10:07
해방정국은 잘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만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라고 쓴 건 뭘 알고 쓴 게 아니라 그냥 쓴 건데 우연히 조금이나마 진실에 더 근접한 표현이 됐군요.
22/01/20 14:38
그러니까 미군정 즉 이승만이 대통령 되기 전에 이미 친일경찰들은 경찰에 복직하여 활동 중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승만 정부가 아니에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경무부(현 경찰청에 해당하는 조직인데 이때는 지금처럼 행정안전부의 외청이 아니라 독립된 조직으로 경무부장이 장관이었습니다.)가 이미 있었고 그때 이미 친일경찰들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에 그걸 인수 받은거 뿐입니다.
22/01/20 16:16
좋은 말씀 남겨주셨는데 헛소리로 횡설수설해서 죄송합니다.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경찰을 기용한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부정하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22/01/18 15:37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지만, 논문 활동은 조선식 성을 그대로 유지한 우 나가하루(영어로는 Nagaharu U. 지금도 이 이름으로 구글 스콜라에서 논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 Woo가 아닌 U를 성으로 쓰는 한국인은 아마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네요)를 사용한 것도 흥미롭더군요.
22/01/18 19:09
저도 어릴 적 스쳐 지나가며 본 기억은 있는데 이번에 업적을 자세히 보니 너무 홍보가 약하거나 포인트를 잘못 잡았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한국 김치의 아버지, 제주도의 구원자, 강원도 감자의 창시자, 진화 이론을 바꾼 생명과학의 천재 등 귀에 쏙쏙 박히는 포인트들이 많은데 '씨없는 수박'은 사실과도 안맞고 너무 약했던..
22/01/18 19:43
아버지께서 농업에 종사하셔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정말 놀랍더라구요. 뜻밖에 농촌에 기여하신 또 다른 분으로는 윤봉길 의사가 있습니다. 정말 배우고 기억해야할 분들이 참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22/01/18 20:54
저는 나무위키에서 봤던 것 같은데 대략 일본에서 연구 계속하셨으면 앞길도 창창하고, 실제 과학적으로도 더 큰 성과를 내셨을 수 있었는데 식량 난등으로 열악한 조국의 농업을 위해 다 접고 귀국해서 연구보다는 실제 농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느라 인생을 다 바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22/01/18 21:50
자전거로 지나다니며 뭐하는 곳일까 궁금해했던 사카타노타네, 라디오CM으로 귀에 익은 타키이, 일본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는 이나모리 가즈오. 이 키워드들이 전부 우장춘 박사와 연결되어있을 줄이야..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22/01/18 22:07
제가 어릴때만 해도 위인전집에 우장춘 박사는 어지간한 출판사에 대부분 있었고
오히려 지금 보다 인지도가 더 높았던 사람이었죠 대한민국 과학자 하면 우장춘이 가장 유명했었고 국가적으로도 많이 홍보하고 밀어준다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우장춘 아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적은거 같아요. 위인전집에서도 과거보다 찾기 힘들고
22/01/19 10:04
당시보다 농학의 사회적 입지가 많이 낮아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생명과학으로 전환하자니 하필 황우석이 새 시대의 아이콘으로 먼저 주목을 가져간데다 거하게 난리를 쳐놓고 갔고요.
22/01/19 00:38
우장춘 박사님 어머니 장례식 이전에, 김해 연구소에 종자연구용 채소들 심어 놓은 걸 고위공무원 부인들이 몽땅 쓸어간 일도 있죠. 저런 일 겪으면 보통 넘는 사람도 그냥 다 포기하고 밀항선 타고 가족 있는 일본으로 갔을 겁니다.
피난 정부 때라 고위공무원 집안이라 해도 고난 가득한 삶이긴 했겠지만 그래도 나라의 미래가 걸고 하는 연구를 자기들 반찬으로 쳐먹은 건 참 너무합니다 우장춘이란 분이 한국에서 겪은 고난들과 그럼에도 이 땅의 농업을 위해 헌신하신 거 보면, 정말 우장춘에 대해 너무 안 알려졌다 싶죠
22/01/19 05:1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swoojin&logNo=220725505343
독소 전쟁 중에 종자 지키다가 아사한 과학자들 생각나네요.
22/01/19 09:11
종 합성이론이 대단하긴 하죠. 유채말고도 합성으로 탄생된 종이 갓, 에티오피아 겨자고 그 합성종을 교배해서 만든 게 아니라 그 종의 기원을 밝힌거라고 봐야합나다. 삼각형 꼭지점에 있는 두 종 섞는다고 그 합성종 생기는 비율이 극도로 낮거든요. 물론 교배로 다시 만들어서 증명을 했나? 그냥 염색체만 보고 밝혔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22/01/19 18:46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통한식' 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실체가 없는지 알수있죠..
우장춘 박사 이전에는 사실상 우리가 아는 '배추김치'도 없었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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