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같은 걸 보면 ‘귀족의 푸른 피’ 운운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푸른 피를 타고났다는 말은, 은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말과 세트로 서양에서 지금도 많이 쓰이는데요, 오늘은 이거의 기원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콩키스타와 푸른 피의 발명
예언자가 죽은 뒤, 전 세계를 집어삼킬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확장을 거듭하던 이슬람 세력은 마침내 711년,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해안가에 상륙했습니다.
7000여명의 베르베르 족 대군을 이끄는 자의 이름은 타릭tarik. 상륙 지점의 높은 산은 타릭의 이름을 따 제벨 알 타릭 jebel al tariq 으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이 곳 해협은 그 이름, 지브롤터로 불리고 있습니다.
바다 건너온 침입자들을 격파하기 위해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임금 로드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였으나,
‘8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살해당해버리고,
반도의 대부분은 바다 건너온 정복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미처 떠나지 못한 기독교도들은 무장을 통제당한 채 개종을 강요당했으며, 개종을 하여도 종교세를 납부하여야만 했고, 이에 반발하는 기독교인은 본보기로 처형당했죠.
피배한 서고트 군대의 잔당은 울분을 삼키며 북서부 지역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십자깃발 아래 모였고,
언젠간 안개 짙은 산기슭에서 틀어박혀 있는 신세에서 벗어나 정복자들을 몰아내고 빼앗긴 국토를 되찾을 것을 다짐하고는,
두에로의 죽음 계곡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이후 1492년, 이베리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왕국의 붉은 요새(알함브라)가 카스티야 연합왕국에 의해 함락될때까지 7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기독교 세력의 국토회복운동, 일명 레콩키스타 운동이 벌어집니다.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이름을 외치며 지하드를 시작하고, 기독교도들은 산티아고의 이름을 외치며 십자군을 선포하는 등 계속해서 서로에 대한 성전에 성전을 거듭했지만,
수백년의 동거 생활동안 그들의 피도, 문화도 점차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정복자들과 피정복자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서로 뒤섞여 구별이 가지 않게 되자,
십자군을 이끌던 무장 귀족들, 일명 이달고들은 이교도들과 그네들을 구별해주는 핵심적 요소가 조상 대대로 그 순수성을 지켜온 고귀한 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옛 서고트 왕국 귀족들의 ‘푸른 피 sangre azul 을 계승했기에, 햇빛을 받으면 창백한 피부에 푸른 정맥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푸른 피에 대한 집착은 육체노동을 경멸하고 무용을 숭상하는 기질과 함께 사회 전반에 퍼졌고,
귀족들이 실내생활과 모자를 통해 창백한 피부와 푸른 정맥을 과시하는 한편, 자연스레 인종적으로 짙은 피부를 가진 이슬람교도 무어인들은 물론이고,
뙤약볕에서 일하는 하층민들 또한 햇볕에 탄 짙은 피부색을 가질수 밖에 없었기에 비천한 혈통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푸른 피에 대한 개념은 점차 스페인 밖으로 퍼져,
유럽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어서, blue blood란 영어 표현은 19세기 때부터 나타납니다.
여담인데 백마탄 왕자님도 스페인에선 푸른 왕자Príncipe azul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듯, 피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먼 훗날 유대인 박해와 종교재판, 그리고 스페인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