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군필자 혜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맞았던 얀센 백신. 백신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맞고 1주 정도 후에 왼쪽 복숭아뼈와 뒤꿈치 부위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정형외과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 보니 뼈에는 이상이 없다며 소염제를 처방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여 이번엔 내과에 방문했는데 통풍이 의심된다며 피 검사를 진행했고, 피 검사에서 요산 수치는 정상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증상이 전형적인 통풍이라 확진은 아니지만 급성통풍약을 처방받았고, 약을 먹으니 하루 이틀 만에 금방 괜찮아지더군요. 그런데 이놈이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하게 4주에 한 번씩 계속 찾아옵니다. 첫 증상이 나타난 6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증상이 올라오는데 스트레스가 꽤 컸습니다. 통풍 약을 먹으면 1~2일 안에 금방 괜찮아지긴 하지만 붓기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운동을 쉬어야 하고, 천천히 운동을 시작해 컨디션이 이전 상태로 복구될 즈음이 되면 여지없이 다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철봉 운동, 바닥에서 발을 떼고 하는 벤치 프레스 정도 외엔 운동 대부분이 발로 하중을 지탱해야 하기에 할 수 있는 운동이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엔 스트레스로 인해 멘탈이 나가 한 달 정도 운동을 아예 쉬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 싶어 현재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고, 해보는 걸로 마음 먹었죠. 이렇게 시작하게 된 운동이 ‘씰 로우’라는 운동입니다. 다행히 11월 이후로는 아직까지 재발한 적은 없고, 부스터 샷까지 잘 맞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보는 분이 아니라면 이 운동이 좀 생소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비주류 운동이라 헬스장에서 하는 분을 보기 쉽지 않거든요. 보통은 파워리프팅, 역도에서 보조 운동으로 많이 활용하고, 보디빌딩에선 소외된 운동이었습니다. 다만 해외에선 보디빌딩계의 슈퍼스타인 크리스 범스테드부터 시작해 보디빌더들도 씰 로우를 루틴에 넣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엘리코, 로그, 아스날 스트렝스 등 많은 피트니스 브랜드에서 전용 기구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잡썰이 길었고 씰 로우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보죠.
씰 로우는 벤치에 엎드려 바닥에 있는 바벨을 몸쪽으로 당기는 운동입니다. 아주 단순하죠. 본인 수행능력 대비 꽤 무거운 무게를 엎드려 당기게 되면 영상처럼 자연스럽게 다리를 퍼덕거리게 되는데요. 이 모습이 마치 Seal, 물개 같다고 하여 씰 로우라고 부릅니다. 주로 중국 역도 선수들이 보조 운동으로 쏠쏠하게 활용하는 게 알려지며, 차이니즈 로우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구요.
첫 영상의 역도부 선수들처럼 다리를 크게 퍼덕거리며 스피드와 파워를 목적으로 하는 방식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고, 위 영상처럼 코어와 하체를 적당히 통제하며 당기는 동작에 집중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씰 로우를 하기 위한 준비물은 스텝 박스, 벤치, 바벨입니다. 스텝 박스와 같이 높이를 높여줄 도구없이 바닥에 벤치에 누워 당기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나, 보통 성인남녀의 팔길이가 벤치 높이보다 길어 가동범위가 많이 짧아지며 운동효과가 감소하겠죠.
헬스 동호인들이 주로 하는 로우(바벨을 활용하여)는 바벨 로우, 펜들레이 로우, 티 바 로우 정도가 있을 겁니다. 이 로우 삼총사는 광배근을 타겟으로 하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허리에 대한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등 운동과 동시에 허리, 고관절의 능력도 키울 수 있는, 다시 말해 일타쌍피이자 효율성이 좋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무거운 무게를 고관절을 접어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몸쪽으로 잡아 당기는 운동이다보니 필연적으로 허리 부담은 가지고 가야 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전문가마다 지도하는 방법이 어떤 운동보다 제각각이고, 좋고 나쁨에 대한 논쟁도 격렬한 편입니다. 가령 턱걸이, 벤치 프레스, 스쿼트 같은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지도자는 찾기 어렵지만, 바벨 로우 하지 말라고 하는 지도자는 눈에 밟히도록 많죠. 반면 씰 로우는 벤치에 엎드려서 물체를 당기기 때문에 바벨로 수행하는 로우 계열에서 겪는 허리 긴장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디스크 재활 단계의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리 부담이 제로에 가깝죠. 앞에서 파워리프팅, 역도 선수들이 씰 로우를 주로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유가 조금 짐작이 되시나요? 이 종목들은 스쿼트, 데드리프트, 스탠딩 프레스 등을 메인 혹은 중요 보조 운동으로 사용합니다. 이 훈련들로 인해 이미 피로감이 쌓인 코어에 바벨 로우, 펜들레이 로우를 통해 추가적인 부담을 주기 보단 씰 로우로 대체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계산을 하는 것이겠죠?
둘째, 당기는 근육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로우 삼총사는 위에 서술한 허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돌처럼 고정하지 않고, 당길 때 자연스럽게 하체와 코어의 힘을 이용한 적절한 반동을 사용합니다. 반면 씰 로우는 엎드려 있으니 구조적으로 반동을 사용하지 못하고 온전히 팔과 광배로만 바벨을 당겨야 합니다. 더불어 동작을 넘어 멘탈 부분에서도 하체, 코어에 분산될 집중력을 등에만 쏟으면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셋째, 바벨을 사용하는 로우 중 가장 난이도가 낮습니다. 다른 로우들은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 연습해야 할 큐(cue)가 많습니다. 그래서 초중급자에겐 바벨 로우나 펜들레이 로우를 권하지 않는 지도자가 꽤 있고요. 반면 씰 로우는 다른 로우들에 비해 큐가 적어 초보들도 하기 쉬운 운동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엎드려 냅다 당기면 끝”입니다.
넷째, 벤치 프레스의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줍니다. 씰 로우의 동작을 뒤집어보면 벤치 프레스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벤치에 누워 밀면 벤치 프레스, 벤치에 엎드려 당기면 씰 로우죠. 벤치 프레스의 완벽한 길항근 운동이기 때문에, 더 무거운 중량의, 더 안정적인 동작의 벤치 프레스를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다리 문제로 평소보다 굉장히 제한된 프레스 운동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 년 정도 꾸준히 씰 로우를 해주니 프레스 능력이 기대 이상으로 상승하고 동작도 보다 안정적으로 변한 것을 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겠죠? 장점만 있다면 아마 애초부터 피트니스 장르를 불문하고 주류 운동으로 위치했을 겁니다.
첫째, 사소한 지점이긴 하나 운동을 하기 위한 셋팅이 번거롭습니다. 바벨만 있으면 체육관이든 운동장이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다른 로우와 다르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도구들이 늘어나고, 준비 시간도 늘어납니다. 박스 두 개 옮기고 위에 벤치 올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을 수 있지만, 이게 실제로 꾸준히 해보면 은근히 귀찮습니다. 그냥 바닥에 있는 바벨을 들어 일반적인 바벨 로우로 빨리 끝내고 싶기도 하거든요.
둘째, 씰 로우를 위한 전용 기구는 언감생심이고, 벤치 아래 놓을 스텝 박스, 플라이오 박스조차 넉넉하게 구비하지 못한 헬스장이 상당수입니다. 원판만으로 높이를 맞추려다간 트레이너에게 한 소리 듣고, 회원들 사이에선 원판 컬렉터로 불리겠죠.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꼭 박스나 원판이 아니더라도 인클라인 벤치를 스미스 머신, 파워랙의 봉에 걸어 높이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 또한 트레이너 소환술이 될 겁니다.
셋째, 기능의 관점에서 운동을 접근하는, 소위 기능성 운동 트레이너 그룹에서 종종 나오는 비판으로, 벤치에 엎드려서 무거운 물체를 들려고 하면 가슴과 늑골에 지나친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더불어 앞에서 서술된 것처럼 코어 안정화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으므로, 이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더 쉽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이 실전에서 당기는 힘을 사용할 때 가슴에 받침대 대고 할 일이 있냐? 실전적이지 못하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늑골 압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리스크 크기를 비교할 때 다른 로우에서 가지는 허리 리스크에 비하면 늑골 리스크가 더 작다고 생각하며, 코어 안정화는 스쿼트, 데드리프트 등 더 좋은 운동으로 채우면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넷째, 씰 로우는 광배에만 집중하는 고립 운동이므로 굳이 어려운 환경에서 셋팅하고 눈치까지 보느니, 그럴 바에 머신이 낫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도 다니는 헬스장에 좋은 로우 머신이 있다면 굳이 씰 로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홈짐에서 운동을 하시는 분, 운동감이 좋지 않은 로우 머신이 있는 헬스장에 다니시는 분에겐 유용한 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씰 로우가 고립 운동이지만 동시에 바벨을 다루는 운동이기 때문에, 머신 운동과 다르게 바벨 움직임을 통제하며 얻는 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 추천 1. 허리 부상 이력이 있는 분. 2. 허리 부상 이력은 없지만 다른 로우를 하며 다양하게 자세를 교정하며 노력해도 허리 부담에 고민이 많은 분. 3. 3대 중량 향상을 운동 목표로 하며, 여타 효율적인 악세서리 등 운동을 찾는 분.
- 글쎄? 1. 하체 운동 열심히 하지 않는 분 : 바벨 로우라도 당겨서 조금이라도 하체운동 하셔야죠. 2. 해머스트랭스사의 머신과 같이 아주 비싼 머신으로 운동이 가능한 분 : 저희 집에도 놓고 싶습니다(...). 3. 동작을 수행할 때 지나치게 가슴이 압박되어 늑골에 통증을 느끼거나 호흡이 어려운 분 : 벤치에 무릎을 올리고 하는 원 암 덤벨 로우와 같이 가슴 압박에 자유로운 당기기 운동이 있습니다.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며 동작에 집중이 잘 되는 운동을 선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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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이렇게 인클라인 벤치만으로 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이 경우엔 준비는 간편하지만, 가동범위나 허리 보호, 동작의 안정성에 있어 스탠다드 씰 로우에 비해 손해를 보는 점이 있을 것 같고요. 숙련자가 평소에 하던 루틴이 지루해 간혹 변주를 줄 때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통풍 증세가 나타나기 전엔 세팅이 귀찮아 로우 삼총사와 덤벨을 활용한 로우를 조합했는데요. 꾸준히 해보니 세팅의 귀찮음보다 운동 효과, 프로그램 디자인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점이 더 커서 회복된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습관이 되니 세팅할 때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1. 완벽한 자세를 가령 100점이라 치면 80점도 나오기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경우 허리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 여러 로우 중 올바른 자세를 만들기 제일 어렵다.
2. 당기는 힘은 남았지만 자세를 유지하며 코어가 먼저 털리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세트 후반부에 가면 무의식적으로 치팅을 쓰기 쉽다. 힘든 상황에서도 치팅을 쓰지 않고 자세를 유지하는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고, 코어가 털리면 당기는 힘이 남았어도 내려놓을 줄 아는 조절 능력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자신의 하체 프로그램의 강도가 꽤나 빡세다면 피로도 관리 측면에서 씰 로우나 기타 머신을 활용한 로우를 하는 게 더 낫고, 그렇지 않다면 펜들레이 로우를 넣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