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선거 기간이기도 하니 특별히 2명의 정탐꾼이 가져온 여론조사 결과를 특별히 발로 만든 퀄로 만들어봤습니다.
누가 이딴식의 신뢰수준 ±0.0001%의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 있게 제출하면서 승리를 장담한다면?
지도자는 반드시 그 무능력한 일꾼을 짤라야 하겠지만..
여호수아는 어찌되었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기생 라합 1명의 말에 용기를 얻고 본격적인 요단강 도하 작전을 펼칩니다.
자~! 현재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넘어 여리고를 침공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과 가나안 민족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이스라엘의 강점
1. 인구가 정말 엄청날 정도로 많다.
당시 나일강 삼각주의 축복을 받은 이집트의 인구가 고작 200~300만병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인구도 성인 남자만 60만명이며, 여자와 아이 전부 다 합치면 200만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인구입니다.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를 보며 우리들보다 더 많다며 두려워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입니다.)
고대 인구 = 곧 전투력이었듯이 이 엄청난 인구의 공세는 가나안 민족들에게는 정말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2. 가나안의 원주민들의 인구도 적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도시국가들이라 강력한 통일 군주가 없었고, 다들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근데 강점은 이게 끝이고 약점으로는
1. 군량이 부족해서 건기때 요단강을 건너봤자 건너고나서 굶어 죽을게 뻔해서,
반드시 우기때 무모하게 요단강 도하를 해야하며, 도하하고 나서도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야함
2. 그런데 200만명을 도하시킬 배는 없고, 사실상 모세 때의 홍해 기적 같은 요행을 바래야함.
3. 강을 건넌다고 해도 공성병기가 없어서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낼수가 없음.
4. 정탐꾼을 보고로는 일당백의 전설속의 용사 - 거인족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다고 했음.
일단 가장 큰 문제 : 우기때 요단강 도하하는 것 관련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니 모세때 요단강보다 더 큰 홍해를 가른 것을 여호수아는 직접 보았는데, 요단강도 그렇게 가를 수 있다고 믿는게 당연한거 아님?”
때문에 사람들은 당시 고민하던 여호수아를 더욱 더 소심한 사람으로 여길수도 있는데...
사실 여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모세의 홍해 기적을 다시 살펴봅시다.
보통 아래 그림의 상상도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정확히 정리하면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길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면 바다가
[좌우로 갈라질거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2.
[바다가 갈라지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를 건넜습니다.
3. 이집트 추격꾼들은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막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건너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뒤에 구름 기둥이 걷히고 뒤늦게 바다로 들어오다가 바다가 다시 합쳐져서 수장 당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 현 상태는 홍해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말이 없고, 그냥 강하고 담대하라고만 합니다.
2. 홍해 때에는 적군이
[추격꾼]이었습니다. 즉 바다 맞은 편에는 적군이 없었습니다.
3. 홍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다 건너기까지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이집트 추격꾼들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로지 전진만 신경쓰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홍해를 영상화한 영화나 그림 등을 보면 바다가 좌우로 벌어지는 폭의 넓이의 묘사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길어봤자 체감상 100미터 or 200미터?
4. 이 갈라진 폭에 대해 왜 강조하냐면, 갈라진 폭 = 한번에 사람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5. 만약 홍해 사건 당시 갈라진 강의 폭이 100m라면, 가로 1m당 1명씩 빡빡하게 진군한다면, 1열에 100명씩 진군이 가능합니다.
6. 그런데 홍해 사건과 달리 요단강은 반대 쪽에 적군이 있고, 적군이 약 3만명의 소수 병력만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7. 60만명 vs 3만명이 한번에 싸움을 벌인다면 3만명이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3만명이 100명씩 1열로 오는 적군을 각개 격파한다면?
아무리 60만명의 대군일지라도 각개 격파당하며 이길수가 없습니다.
(오래된 PGR 유저라면 김연우님께서 란체스터 법칙을 예로 들며 스타에서 기동성 및 각개 격파의 중요성을 적은 글을 기억하실 겁니다.)
8. 뭐 사실 홍해 사건때 강이 좌우로 갈라진 폭이 200m (1열에 200명)일수도 있고,
어쩌면 1km가 (1열에 1천명) 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9. 하지만 당시 그것을 겪었던 여호수아는 홍해 사건 당시의 폭의 넓이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반대편 여리고 군사들 역시 라합의 증언으로 볼 때 홍해 사건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10. 즉 여리고 군사들은 홍해 사건 당시 갈라졌던 폭의 넓이로 이스라엘 병력들이 요단강을 도하한다면 자신들의 군사들도 충분히 각개 격파해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리고 주민들은 이스라엘 상대로 홍해 사건을 알면서도 승산이 있다고 믿었기에 항전을 하는 겁니다.
다시 종합하면 여호수아가 고민했던 이유는
1. 하나님께서는 홍해 때처럼 요단강을 좌우로 갈라주겠다는 말이 없었고
2. 설령 홍해 때처럼 요단강을 좌우로 가른다고 해도 지난번과 같은 폭 정도로 갈라진다면, 결국 요단강을 도하하더라도 그 다음에 각개 격파 당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담대해지기로 결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단강 앞으로 나갑니다.
(여호수아는 꼭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이 사람이 대한민국 새벽기도 문화의 유래가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 새벽기도 해본 사람 알겠지만 정말 피곤합니다..)
당시 상황을 성경에 정확히 표현하길 “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적군은 혹시나 이스라엘 군사들이 기습적으로 배로 도하를 할수도 있으니 일단 나루터를 점령했고,
홍해 때처럼 갑자기 강을 좌우로 갈라서 공격할수도 있으니 요단강 중간 중간 정탐꾼들을 퍼트려 이스라엘의 도하 포인트를 감시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지만 이미 여호수아는 막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먼저 건너가라고 명령합니다.
홍해 때처럼 강이 갈라지고 나서 건너가는 것이 아닙니다.
[강이 위험하게 흐르고 있는데 그 상태에서 제사장들에게 믿음으로 건너가라고] 명령한겁니다.
[이것이 바로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의 결정적인 첫 번째 차이입니다.]홍해 사건은 전혀 어려울게 없습니다.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을 건너는게 뭐가 어렵나요? 기적을 체험하고 느낄 뿐입니다.
반대로 요단강 사건은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강을 건너는 겁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강물에 휩쓸려 죽습니다.
[즉 기적일 일어날 것을 믿고 죽음을 각오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겁니다.]제사장들이 불어난 강에 발을 내딛을 때 얼마나 겁이 났을까요?
또한 당시 여호수아의 심정을 어떠했을까요?
(만약에 이 말도 안되는 모험이 실패해서 제사장들이 물에 쓸려나가 죽는다면? 여호수아는 바로 군중들한테 돌 맞아 죽게 될겁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믿고 믿음으로 강에 발을 내딛는 순간!
홍해 때보다 더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요단강이 상류쪽에서부터 하류쪽으로 더 이상 흐르지가 않는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이로 인해 요단강은 잠시 물이 흐르지 않고 도하할 땅 전체가 아예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즉 이로 인해 홍해 때와는 달리 요단강을 건널 때는
[좌우의 폭 제한이 없어졌습니다][이것이 바로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의 결정적인 두 번째 차이입니다.]여리고 군사들은 홍해 기적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고
고작 1열에 100명~200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하한다면 충분히 각개격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강이 마르는 사태는 생각을 못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60만 대군이 한번에 강을 건너는 사태는 더더욱 예상 못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기적을 본 여리고 군사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으며 바로 후퇴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극적으로 요단강을 건넜고, 이런 정신 나간 미션을 성공한 여호수아는 드디어 백성들로부터 모세와 같은 강력한 리더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정신 나간 결정을 합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자손 - 이스라엘 남자 백성들은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 = 포경수술을 받아야하고 지금껏 계속 그렇게 해왔습니다.
다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이고,
하나님도 일단 광야 2세대들이 위생이 깔끔하지 않은 광야 생활동안 할례를 안해도 별다른 벌을 내리지않고
[지켜보고 계셨습니다.]그리고 지금 요단강을 건넜고 물도 풍부하고 할례 받을 위생 상황은 되었습니다.
대신 더 큰 문제가 있었지요.
지금 전쟁을 앞두고 모든 군사들이 할례를 받다가, 그때 여리고 적군이 쳐들어 온다면?
예전 광야에서 할례를 할까? 말까? 고민 하는 것은 단순 위생 불량으로 인한 건강 문제였다면.
현재 상황에서 할례를 할까 말까? 고민 하는 것은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야곱의 아들
[레위와 시몬]은
당시 세겜 땅에서 할례 받고 아파하던 세겜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있습니다.
세겜은 매우 큰 도시였지만, 모든 남자들이 할례 후유증으로 아파하고 있었고,
때문에 레위와 시몬 단 2명이서 세겜 사람들을 학살 할수 있었던 겁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한번에 할례를 받는다면, 적군이 천명만 쳐들어와도 이스라엘은 전멸할 겁니다.
근데 예전에 광야 생활이 위생적이지 않았으니 훗날 위생이 좋을 때 하겠다며 할례를 미뤘습니다.
이번에도 전쟁 바로 직전이니 일단 전쟁부터 이기고, 훗날 평화의 시대가 오면 하겠다며 할례를 미루면 될까요?
어쩌면 미뤄도 될수도 있고 하나님께서도 그때가지 기다려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룬다면 다음번 할례 할때는 분명 더 큰 고민거리가 방해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처음에 바로 하면 작은 것만 포기하면 되는데, 그걸 미루면 나중에는 더 큰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앞으로 성경이야기를 보며 이 법칙을 자주 보게 될겁니다]여호수아도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할례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으로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전쟁을 앞두고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이 담대한 결정에 매우 만족하십니다.
다행히 할례 수술 및 회복할 동안 여리고 군사들의 공격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요단강 기적 사건을 본 이후로 겁을 먹어 아예 성 밖으로 나올 생각 자체를 못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약점 중 요단강 도하는 해결되었지만, 아직 식량 문제 + 공성병기 없는 문제는 해결 안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여리고 백성들은 괜히 성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그냥 성 안에서 무한정 버티면 이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이렇게 할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어느새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 유월절이 다가왔습니다.
(유월절은 예전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 이집트를 벗어나는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이 날에 이집트 모든 장자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에는 예전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맛없는
[무교병 + 쓴나물]을 먹으라고 명령하신 적 있습니다.
(참고로 무교병은 누룩 = 이스트를 넣지 않는 밀가루로 만든 일종의 크래커 과자 비슷한 느낌입니다. 맛은 밀가루 맛만 나며 당연히 맛이 없습니다. 반대로 유교병은 지금의 식빵과 같은 이스트와 기타 등등을 조합해 만든 맛있는 빵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담대하게 나아왔던 여호수아가 이때 한번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영향으로 여리고 군사들은 아무리 도발해도 성 밖으로 안나오고 버티기 모드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성병기가 있을 리가 만무함으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포위해서 여리고성의 양식이 먼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비록 길거리에 양식이 풍부한 우기 막바지에 강을 건너왔지만, 200만명의 입을 채우기에는 양식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제부터는 긴 장기전을 대비해 양식을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치트키 만나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유월절]이 다가왔고, 대량의 무교병과 쓴나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무교병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이스트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보관이 가능했고 군량으로 대체하기에도 좋습니다.
문제는 쓴나물인데, 이 나물이란 존재들은 보관 기간이 짧아 군량으로 대체가 불가능 합니다.
안그래도 군량이 부족한데 보관 기간이 짧은 음식을 명절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걍 나물을 준비하기는 하되 군량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게 나물을
[볶아서] 보관할까?
지금까지는 담대하게 선택을 하던 여호수아가 여기서는 소심하게 쓴나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볶은 나물을 준비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 유월절을 맞이하여 장기전을 대비한 군량 확보 차원에서
[무교병 + 볶은 곡식]을 먹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결코
[당장 벋을 받을 죄]는 아닙니다.
이 다음에 여호수아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흡족해 하실 수도 있고 분노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것은 가급적이면 처음부터 지키면 편하다라는 것인데...
여호수아는 어쨌든 유월절 명령을 어기고 볶은 곡식을 먹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볶은 곡식을 먹은 여호수아의 선택은 점점 덩어리가 커져서 훗날 여호수아의 마음을 매우 괴롭게 만듭니다.
다음 이야기 - 여리고성 함락기 & 여호수아의 선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