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주제로 적는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말이 안 될수도 있지만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성경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에 동감을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시간은 여호수아가 담대한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홍해의 기적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신앙적으로나 혹은 전략적으로나 요단강의 기적은 홍해의 기적보다 훨씬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는 베이스캠프를 요단강 바로 옆의 “길갈”로 잡습니다.
(이 길갈 위치를 앞으로 계속 기억해봅시다.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미션을 성공하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길갈에서 적을 앞에 두고 모든 남자가 할례를 하는 미친 결정을 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유월절 -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입니다.
그 유월절은 다른 때의 유월절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처음으로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지어 먹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궁극의 치트키 만나로만 배를 채웠고,
단 한번도 노동을 해서 곡식을 거둔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기처럼 밥을 얻어만 먹다가, 이제야 자립해서 성인처럼 혼자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날이 바로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겪는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립이 가능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만나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즉 이 때의 유월절은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의 성인식 행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격스러운 유월절에 하나님께서는 별다른 칭찬도 없고 그냥
[침묵]하셨습니다.
원인은 크게 2가지였는데
하나는 이전 이야기에서 설명한 유월절의 명령을 어기고 먹은
[볶은 곡식]
두 번째는 처음으로 곡식을 추수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따로 바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일을 하면 반드시 그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것부터 사람이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수아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는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매우 높고 견고했으며, 따라서 공성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군량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바친다 = 곧 불로 태운다는 의미입니다.
부족한 식량 상황에서 이런 귀중한 양식을 불로 태우는 뻘짓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여호수아는 첫 수확물을 바치기보다는 모든 곡식을 끌어 모아 군량으로 비축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시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추수한 곡식을 모두 볶아서 최대한 보관기간을 길게 만들어 조금의 낭비도 없이 군량으로 쓸 수 있게 준비합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지혜로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원하시고,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더라도 무모한 신앙적인 선택을 하길 원하십니다.
즉 엿장수 마음대로 = 하나님 마음대로입니다.
[그때 그때 달라요]
그럼 현재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러한 여호수아의 선택에 하나님께서는 칭찬도 혹은 질책도 없이 조용히 자신의 분신 =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여호수아에게 보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것을 = 하나님을 만난 것과 동일한 의미로 표현합니다.
여호수아가 계시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우리가 흔히 아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번씩 돌고,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는 총 7번을 돌고나서 소리를 지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거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성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렇게 7일 동안 성을 돌고 마지막에 소리 지르니 무너졌습니다.
자.. 여리고 전투 전 상황을 다시 정리해봅시다.
1. 이스라엘 군대는 숫자가 매우 많아서 정면 승부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
2. 하지만 여리고 성은 높고 견고하고, 이스라엘 병사는 공성병기가 없어 성을 포위하며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즉 필연적으로 매우 긴 장기전이 된다.
3. 그런데 이스라엘 인구가 워낙 많고 아직 점령한 가나안 땅은 없어서 식량이 매우 부족하다.
4. 그래서 여호수아는 장기전을 대비해 최대한 많은 군량을 확보하느라 가장 의미있는 첫 유월절을 대충 보냈다
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기전은커녕, 이에 대한 대답으로 여리고 성을 단 일주일 만에 무너뜨렸다!!]
성이 무너진 이상 여리고의 적은 군사들은 이스라엘 대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멀쩡하던 큰 성이 갑자기 무너졌으니 성 안은 완전 패닉 상태였을 거고,
즉 이 전쟁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즉시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엄청난 경사입니다.
최소 1년 이상의 장기전을 대비해 군량을 최대한 확보했는데, 단 7일만에 성을 함락했으니 군량을 엄청 세이브 했습니다.
더군다나 여리고는 가나안 땅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이고, 물자가 풍족한 도시입니다.
만약 1년 뒤에 여리고 성의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을 점령했으면 비록 성을 점령했을지라도 안에 먹을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여리고성 역시 장기전을 대비해 최대한 많은 금품과 군량을 비축해놨었고,
그 모든 전리품은 일주일 만에 그대로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부담 없이 전쟁의 첫 전리품을 하나님께 먼저 바칠수 있습니다.
[어차피 그거 바치고도 전리품을 넘치니까요]
백성들은 안그래도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찜찜했는데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 제물 바치고 전리품을 획득할 생각에 싱글벙글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 승리를 다르게 평가했습니다.
그 역시 유월절을 대충 보낸 것이 찜찜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고민을 하며 합당한 이유를 대며 유월절을 대충 넘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여호수아가 하던
[그 장기전을 대비한 고민]이 얼마나 하찮은 거였는지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호수아는 엄청난 결정을 내립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 내의 소, 양, 곡식을 모두 다 불태우고, 금, 은, 동철 같은 재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즉 여리고성 내의 모든 전리품을 포기하는 결단입니다.
흔히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성의 모든 재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셨다고 알고 계시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이 무너질 것만 알려주셨지, 그 뒤에 어떻게 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전리품을 전부 포기하고, 100% 하나님께 바치는 이 미친 결정은 여호수아의 단독 결단이었습니다.
여리고성 내의 양식을 모두 불태우고, 전리품을 모두 바치는 것이 과연 아까운 것일까요?
객곽전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리고성의 물자 = 200냥 & 이스라엘의 물자 = 150냥이라고 가정할 때
만약 여호수아의 판단대로 여리고성 전투가 초장기전이 되었다면?
여리고성 내의 물자가 0이 되어야 항복을 할테고,
이스라엘 역시 오랜 장기전을 하느라 이리 저리 빚지면서 물자 상황은 마이너스 몇을 찍었을지 알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니, 애초에 그 마이너스를 못 버티고 포위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이 무너져 단 7일만에 성을 함락했으니
[설령 여리고성의 물자 200냥을 모두 하나님께 바친다고해도? 이스라엘의 물자는 150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니 장기전을 했을 때보다 훨씬 부유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리고성의 모든 전리품을 과감하게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을 보인겁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성이 가나안 땅에서 가장 견고한 성 중 하나였던 이유는 이곳이 물자가 풍족하고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충지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동서남북 가나안 정벌을 한다면 좀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군사가 북쪽으로 공격을 갔는데 남쪽에서 빈집 러쉬를 온다?
여리고성 같은 견고한 성이 있으면 소수의 병력만 놔두고도 방어가 되겠지만,
지금의 길갈과 같이 제대로된 성도 없는 곳에서는 방어가 쉽지 않을 것이며, 많은 수비 병력을 놔둬야 할겁니다.
하지만 이런 전략적인 생각은 사람의 생각이며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전략을 우선으로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우선으로해서 전쟁을 하길 원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도움이 될수도 있는 이 요충지의 성을
[일부러]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버쟁이 여호수아는 이에 한술 더 떠서 백성들에게
[앞으로 다시는 여리고성을 재건축 하지 말라고] 말하며,
만약 누군가가 여리고성을 재건축 한다면 그 집안에 화가 있을거라고 저주합니다.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시킨 건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강력한 선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여호수아의 강단에 매우 기뻐하시며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유월절 사건때 한번 삐그덕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의 후속대처를 어떻게 하냐인데, 여호수아는 그것을 100% 이상의 행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크게 만족시켰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렇듯 매우 훌륭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그 밑의 백성들 역시 훌륭하리란 법이 있을까요?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만 금욕하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들 역시 잘 챙겨야 합니다.
신앙적 & 도덕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것은 훌륭하지만, 내가 훌륭하니 너도 훌륭하게 되라고 지도자의 입장에서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구약의 하나님으로는 완벽할 수 없었고, 신약의 예수님으로 완성이 되는 이유입니다]
구약의 하나님 = 내가 거룩하니 니들도 무조건 거룩해야함
신약의 예수님 = 내가 대신 다 덮어쓰겠다...
여호수아는 초보 지도자였고, 이것을 크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내린 강압적인 명령 =
[여리고성의 모든 전리품을 빠짐없이 하나님께 바치라]
이 명령을 들은 아랫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들 광야 2세대는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며 단 한번도 제대로 배 터지게 기름진 음식을 먹어 본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금은보화 빛나는 재물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눈 앞에 최고급 품질의 금은보화 재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지도자가 자기 신앙의 기준에 따라 독단적으로 전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다고?
[아니! 그 인간은 하나님께서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첫 전리품만 바칠것이지 왠 오바야..?]
그 다음 아이성 전투와 아골 골짜기의 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터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찾아뵙겠습니다.
추가 이야기 1.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벌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한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남녀노소 아이 구별하지 말고 죽여라]입니다.
성경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다 죽이라고 했다! 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모든 이방인이 아니고
[오직 가나안 사람]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인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방인도 매우 사랑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만은 죽일 사람으로 정하고 남녀노소 아이 빠짐없이 학살을 명령하십니다.
물론 이것에는 영적인 이유 = 가나안 사람들이 도나 지나칠 정도로 악해서도 있지만
육적인 이유 =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있습니다.
이 육적인 이유에 대해 좀 더 살펴볼려고 합니다.
저 거칠은 가나안 땅이 과연 200만 이스라엘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까요?
나일강 삼각주 정도의 축복 받은 농토가 아닌 이상 매우 힘들 것입니다.
더군다나 200만 이스라엘 인구는 평소에 농사를 단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살려준다면?
안그래도 많은 인구가 더 많아짐으로 인해 식량의 부족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량 부족으로 인한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떠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장 그들의 선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식량난을 못버티고 가나안 땅을 떠난 경험이 있습니다)
때문에 200만 이스라엘 인구가 가나안 땅을 온전히 통치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나머지 사람들의 입은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포로 먹일 양식이 없어 포로를 죽이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200만 이스라엘 인구 + 그 외 추가 사람들까지 모두 먹여 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럴 능력이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의 한계를 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할 것인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뛰어난 신앙이 있을까요?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원주민들을 모두 죽이는데 실패하고,
좁은 가나안 땅에 있는 많은 인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는 유혹과 시험에 빠집니다.
-->
[이것이 바로 사사기 비극의 시작입니다.]
추가 이야기 2.
[이거는 완전 저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여리고성 학살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라합과 그 집에 있던 라합의 가족들입니다.
라합이 지난 정탐꾼 2명을 숨겨주어 이들의 목숨을 구해줬었고, 이 은혜를 잊지 않는 정탐꾼 2명이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누구보다 먼저 앞서가서 다른 이스라엘 군사들이 라합의 가정에 손을 못대게 막은 것입니다.
자 근데 살긴 살았는데... 라합은 직업이 기생입니다.
즉 남편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에는 여자에게 재산권이 없습니다.
모든 재산은 남편과 그의 아들에게 상속되고,
때문에 그 집의 아들이 없는 등의 이유로 대가 끊기면 그 재산 역시 공중분해 됩니다.
즉 누군가가 라합과 결혼해주지 않으면 라합은 재산도 없이 앞으로 먹고 살기 힘든 상태가 되는 위기입니다.
그런데 라합은 비록 학살가운데 죽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원래는 죽어 마땅했던
[저주받은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여리고성의
[배신자 즉 매국노]입니다.
역사속에서 매국노는 비록 매국의 공이 아무리 크다고해도, 상대방 민족으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라합은 재산을 가질수 없는 비천한 여자이며,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가나안 여자이며, 매국노입니다.
누가 이런 여자와 결혼을 할까요?
라합은 2명의 정탐꾼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때문에 이 2명의 정탐꾼도 라합을 제일 먼저 구하러 왔습니다.
이 2명의 정탐꾼이 정확히 누구인지? 성경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추측하기로는, 아마 유다지파에서 1명, 에브라임 지파에서 1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유로는 40년전 정탐 사건때 유일하게 유다지파의 대표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공격 찬성을 했었고,
40년 후의 정탐꾼 역시 2명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반대한 경력이 있던 10지파에서 사람을 뽑기보다는 찬성한 경력이 있던 2지파에서 사람을 뽑는게 덜 부담 되었을 겁니다.
사실상 라합에게 빚진 자는 이 2명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은 라합을 품어주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었으니만큼, 그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은 에브라임 지파에서 상당히 유력한 집안의 사람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에브라임 지파는 이전에 설명했듯이 다른 11지파와는 달리 족보가 제대로 있는 뼈대있는 요셉 총리 가문의 자손입니다.
그런 유력한 집안의 대표가 아무리 목숨을 빚졌다고 해도 저런 저주 받은 매국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에는 부담이 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의 정탐꾼은 달랐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말로만 뼈대있는 가문이었고, 실제로는 인구도 얼마 없는 몰락한 가문인것에 비해서
유다지파는 당시 이스라엘 최대 인구 파워를 가진 세력이었고, 그 정탐꾼 역시 그런 유다 지파 핵심 가문의 대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역시 라합과 결혼하면 더 이상 핵심 가문의 대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라합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고도 사람들에게 버려진 라합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유다지파의 정탐꾼의 이름은 살마입니다.
살마 = 강함, 힘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라합을 만나기 전의 그는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합과 결혼하면서 그의 이름은 살몬으로 바뀝니다.
살몬 = 겉옷 & 외투라는 뜻이 있습니다.
[살몬은 더 이상 강한 사람이 아니라 라합의 허물을 겉옷으로 덮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이름 모를 정탐꾼은 자기 가문의 세력을 위해 라합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유자 지파의 살몬은 라합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하고 라합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후 그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은 결국 성경에 단 한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후 어떻게든 12지파의 우두머리가 될려고 발악을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유다지파는 가장 강력한 지파였음에도 이 살몬 결혼으로 인한 비난 때문인지 한동안 이스라엘 주력 역사에서 빠집니다.
하지만 이 살몬에게서 훗날 온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왕이 나오며, 그 다윗왕에게서 온 세계의 통치자 예수님이 나오게 됩니다.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가문을 버리지 못한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라합을 품은 유다 지파의 살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