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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6 19:46
오 예전에 보신적이 있으시다니 왠지 개봉직후에 보셨을 것 같아서 춘추를 여쭈고 싶어집니다...
흠흠, 저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정말로 좋아합니다. 한번씩 챙겨보면 한동안은 또 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삶의 냄새가 탁해서 멀리하게 되지만, 액션영화나 극영화 같은 것을 많이 본 시기에 한번쯤 돌아오면 진짜 담백한 요리를 하나 먹고 배가 꺼지면서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생각이 깔끔해지는 기분입니다 크크크. 한번 잊어질만한 지금 타이밍에 한번 다시 재방문을 해보시는 것이 어떠실까요?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여러가지 영화에서 맨날 같은 소리만 했던 감독이 그게 삶의 진리라고 생각해서 반복해서 말한게 아닌가 더더욱 깊게 보게 되더라고요.
22/01/26 17:23
좋은 고전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전 본문보다가 초중반에 나온 공장 외경이 무척 인상깊네요 공장 외경만 보면 21세기인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여서 고전 영화의 거리감이 대폭 줄어드는군요 흐흐
22/01/26 19:41
말씀하신걸 들어보니,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 요즘 영화하고 다르네'하면서 위화감을 느낀 부분은 다름이 아니라, 모든 남성 등장인물들이 잠을 자는 장면을 빼고는 항상 양복을 빼입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터의 이름도 잠깐 나오고, 똑바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묘사를 하지도 않으면서도, 가족간에 대화할때도 사회인 대 사회인으로 (벅벅 생활비 줘~ (골프채 살거지만)이라는 장면에서도) 서로 양복을 입고 대화를 하지요. 우리나라의 문화도 확실히 최근 수십년간에 바뀐 것이겠죠? 그런데 이 덕분에 저는 이 영화가 '사회적 자아'로 되게 가득차있는 느낌을 받더라고요. 뭔가 군국주의는 과거의 일이라고 들먹이면서도, 결코 개인주의가 설 자리가 없는 그런 느낌이요. 설날 특선으로 보기에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크크크크. '자식들은 결혼 안하냐~'로 설날을 즐겨보세요! 라고요.
22/01/26 19:56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되게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냥 잘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왜 결말은 이런 것인지 납득이 안 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보통 결혼을 성대하게 열면서 모든게 행복할것이라고, 꽃길만 걷자면서 끝나는데, 장례식이 결말에 오는 다른 작품인 '동경 이야기'도 아니고 결혼식으로 이렇게 끝나는 '꽁치의 맛'이 되게 이상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동경 이야기', '만춘', '부초', '오차즈케의 맛' 등등 다른 작품을 모두 돌려보니 저는 결국 '꽁치의 맛'이 가장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말씀해주신 "마음 하나"에 정말로 가까운 작품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여러가지 마음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정말로 '마음을 딸에게 줘버렸고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런 동화적인 이야기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식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볼수도 있구나, 되게 신기하게 잘 만든 작품 같습니다.
22/01/26 21:15
재작년에 ASIA M 채널에서 방영해 줘서 잘 봤던 작품인데 피지알에서 보니 반갑네요.
영화 자체도 잘 만들었고, 가난한 우리 사회상 다룬 유명 드라마 '육남매'에서 극 중 배경이 1962년 말 겨울~1964년 말 겨울이고 저 영화가 1962년작인데 평범한 샐러리맨이 골프 클럽 사고(아내가 뭐라 하기는 함) 저 때 이미 대중 실외 골프 연습장이 있어서 거길 이용하고 저층 공동주택? 같은(복도식이면서 서로 집 현관문이 마주하고 있는 형태) 아파트에 사는 거 보고 참 놀랍고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나네요. 글, 댓글에 좋은 영화 얘기들 잘 봤습니다~
22/01/27 21:30
참 얄궂은 사실이지요.
전쟁 후 60년대라는 것이 두 나라가 그렇게나 달라야했다는 사실은요. 말씀해주신 드라마는 본적이 없는데, 한번 이 영화의 이해를 깊게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한번 동시대의 한국 영화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2/01/28 16:48
딴소립니다만 , 포스터에서 왼쪽 아래 아조시 빼곤 다들 지나치게 세련되서 당황 스럽네요 .
세 분다 그냥 저 스타일 그대로 요즘 방송에 출연해도 위화감 1도 없을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 더해 , 영알못으로써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 오즈 감독도 동세대의 일본 명감독들처럼 세계 영화계에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얼핏 알기로 오랜 기간 일본서만 주목받은 케이스라던데 , 그냥 어느 시점부터 재평가받은 케이스일뿐 여타의 영향력은 끼치지 못했으려나요?
22/01/28 17:15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한 일본과 서양의 평가를 논하자면 별도의 글과 또 그런 글에 따른 사전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일단 제가 평상시 팬으로서 대충 알고 있는 수준에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오즈의 이야기를 하려면 동시대의 또 다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묶어서 말하는 것이 아름다운 하나의 만들어진 서사이니까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1930에 무성/흑백 영화 시절에 데뷔하여 유성/흑백 영화의 시대로 명성을 쌓아올렸지만, 그는 좀더 빨리 헐리우드와 프랑스 영화에 영향을 줬습니다. 왜냐하면,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는 지금봐도 보편적인 상업영화의 형태를 많이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적인 촬영기법과 각본을 '상업'이라는 키워드에 쑤셔넣는 것도 참 못할 짓입니다만, '7인의 사무라이'가 서부극의 조상님이 되고, '거미집의 성'이 셰익스피어의 비극 '멕베스'를 각색한 것이듯이, 서구영화의 기법과 소재에 구로사와의 영화는 공명을 잘 했습니다. 반면에 구로사와의 흥행작들과 비슷한 50년대에 촬영된 오즈의 '동경 이야기'가 미국에 소개된 것은 1970년대가 되어 영화제를 통해서였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쯤 되면 구로사와의 영화에 대해서는 서양이고 동양이고 좀 가혹한 평가를 하기 시작합니다. 50년대부터 충분히 추앙해줬다 이거지요. '할리우드에게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 일본적인 소재를 다루지도 못하는 일본 감독'이라는 식으로요. 반면에, 민권운동이 결실을 맺고, 일본계-미국인의 강제수용소 감금 (행정명령 9066호)에 대한 레이건 대통령의 사과가 등장하며, 일본의 거품경제에 따라서 일본 문화에 대한 선망과 두려움 (따라서 공부의 필요)가 등장하던 시기에 오즈가 올라온 것이지요. 일본적인 소재를 일본적인 카메라 기법 (다다미 쇼트)로 다룬 감독으로서요.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평가는 다시 일본 내부에 영향을 미쳐서, 구로사와의 인물중심적이고 사람의 삶에 대한 따듯한 휴머니즘이 가득찬 영화에 대한 찬양에서 오즈 특유의 탈인물적이고, 갈등의 구조와 카메라의 구도만 신경쓰며 오히려 비인간/탈인간적인 각본을 강조하게 만들어버립니다. 흥미롭게도, 아스라이님께서 포스터에 등장한 인물들의 '세련됨'을 말씀하셨는데요. 구로사와의 인물들은 복장에 있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를 생각하고 옷을 입혔다고 합니다. 물론 행동은 그 인물의 성격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카메라에 담기는 그런 행동이지요. 그런데 반면 오즈는 영화를 찍다가도 NG를 외치고는 배우들에게 '각도가 맘에 안들어! 자네들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구도야 구도!'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오즈 영화의 모든 것은 성격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일어나는 '현실/현상'입니다. 그걸 옷하나, 소품하나, 배경하나, 대사를 뱉는 얼굴의 각도 하나로 '담아내는게' 중요했죠. 그래서 80년대에는 오히려 일본 내수 영화들은 야스지로를 비판하는 것으로 또 자신들의 분야를 개척해나갑니다. 보수적인 사회 메세지, 집단적인 카메라 시선 같은 한계가 많았다고요. 그래서 오히려 '다다미 쇼트'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계승한 감독이 없기도 하지요. 물론 이게 오즈가 호적에서 파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21세기에도 그의 작품들은 추앙받으며, 아직도 그가 제시한 많은 관점들은 서구적인 영화비평 교육에도 영향을 주고 있지요. (저도 '동경이야기'를 처음본게, 미국에 교환학생가서 입니다.) 그의 영향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좋은 논문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번 저도 제가 아는 이야기를 모아놓고 한번 각이 나오나 봐야겠네요 크크크.
22/01/28 20:25
와... 슬쩍 남긴 댓글에 이 정도 양질의 피드백이라니! 너무 감사합니다 . 여러가지 방식이 동원된 서술이라 너무 재밌고 이해가 쏙쏙 잘되네요 .
영화는 확실히 대중예술의 최선두에 서있는 장르이기 때문인지 스크린 밖 현실과 조응을 많이하기 마련인데 , 오즈와 구로사와의 성쇠도 그 자장 안에 있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네요 . 특히 구로사와야 그렇다 쳐도 오즈의 재평가는 철저히 시네필들의 추앙에 의한 것일거라 지레짐작 했는데 말입니다 . 친절하게 풀어서 써주신 댓글이지만 곱씹어 볼 이야기들이 많아서 두고두고 다시 정독해야 겠습니다 . 재차 감사를 표합니다. 하루 잘 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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