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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2 19:36
식량은 못 먹어도 며칠을 버티는데 물은 없으면 3일 이상 버티기 어렵죠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성들에게는 성 내부에 우물이 있어서 버티기 용이한 케이스가 대부분이고 공성중인 적이 내부 스파이 등으로 우물을 오염시키면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해도 버틸수가 없죠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물이 너무 흔하니 인식을 못하는데 제3국만 가도 깨끗한 물 구하기가 여전히 어렵고 일부 지역은 더러운 물을 구하려고 수십키로를 매일같이 걸어다니죠
22/02/02 19:41
와 이거 옛날부터 궁금했고 아직도 100% 깔끔하게 해소를 못했는데 진짜 명쾌하네요.
그냥 적당히 당대 느린 기동력에 성 장악한 측이 보급로 끊기도 쉽고 기습에도 유리하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군요.
22/02/02 19:43
최근 삼국지 마속이 방어한 가정을 가보고 생각보다 협소한 지역이 아니어서 마속에 산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죠.
당시 제갈령이 마속에게 맡긴 임무는 가정에 있던 양약성에 의지해 길목을 지키라는 거였고 장합 입장에선 양약성을 무시하고 진출할 수가 없었기에 거기에서 반드시 대치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마속은 성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가장 중요한 식수가 끊기는 상황을 자초하죠. 실제로 장합전에도 마속에 산에 의지했고 내려와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마속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당대의 시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이 생각보다 산지가 높지 않고 협소한 지역이 아니어서 마속이 어쩔 수 없이 산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는 건 현실을 게임처럼 이해하니 나오는 아주 잘못된 유추죠.
22/02/02 21:02
전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정도로 정신나간 짓은 왜 그랬는지 이해하려 노력할 게 아니라 그냥 목을 쳐버려야 한다는 게 당시 제갈량의 판단이 아니었을까...
22/02/03 00:44
마속이 물의 소중함을 몰랐다고 들었습니다.
마속은 비가 자주 오고, 장강을 끼고 있으며, 심지어 홍수마저도 잦은 형주지방 사람이어서 비와 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거라더군요. 대신, 가정은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땅이라죠. 늘 물과 함께 해온 형주 사람이라 저런 대군에 물을 보급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추측하더군요.
22/02/03 00:52
사실 그것도 너무나 막연한 추측이라고 봅니다. 이미 형주와는 전혀 다른 익주로 넘어온지 십수년은 지났는데 형주의 기후를 생각해서 산을 오른다는 것도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죠. 게다가 물이 아무리 풍부해도 성을 버리고 산을 올라간다는 건 어떤식으로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모든 부장들이 동조했으면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당시의 특별한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이라도 하겠지만 당시 왕평의 반대가 있었던 걸 보면 그냥 마속이 뭔가 이상한 생각에 단단히 꽂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볼 땐 상상력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쪽인지라 저도 그 내용을 본 기억이 있는데 공감되진 않았습니다.
22/02/02 19:50
100만대군 이짓하면 보급은 어떻게 함? -> 못했음.
100만대군 말아드시면 나라가 안망함? -> 망했음. 그래서 당대는 정예병 10만으로 공격했고 이길 뻔도 했죠. 지니까 이제는 물량전으로 100만 대신 10만을 열번 쓰는 전략으로 나갔고 결국 고구려는 물량에 밀려 사 투더 망.
22/02/02 19:59
그리고 저런 거 보면 저런 보급원칙을 생짜 무시할 수 있는 유목기병이 얼마나 사기유닛인지 알게 되는거죠.
실제 고구려를 계속 두들겼던 당군도 상당수는 계필하력같은 거란계 유목기병이었고... 얘들이 소진되고 나니 당도 진지하게 고구려랑 화친하고 싶어서 태자입조 콜? 때리기도 했었고요.
22/02/02 20:27
113만의 절반은 보급병이고 요동까지는 그래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운하 + 해안보급 우왕.
근데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중앙돌파를 선택했고 보급선이 늘어지면서 망.... 후금도 똑같은 테크를 탈뻔했는데 이 무능한 능양군이....
22/02/02 21:54
뭐 현재 썰은 뭐라고 정확히 확정할순 없지만...
기록상으로는 동원된 병력이 113만3800명인가라고 하고 군량수송에는 2배를 동원했다라고 하니까...113만에서 반일지 아닐지는 뭐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죠... 확정할 수 있는건 그 다음왕조인 당나라가 몇십만정도는 여러번 일으켰지만 멸망하진 않았는데 당대 최강국 수나라가 일으켰다가 그 뒤 그 여파를 수습 못할 정도의 규모라는거만 정확하겠죠...
22/02/02 23:17
그래서 수양제 총병력 113만도 믿기가 어려운데 이게 보급은 따로 친 거야 하면서 300만 얘기 나오면 논쟁이 안날 수가 없는거죠.
아무리 그래도 7세기에 300만 원정이 말이 되냐 하면 우리가 봐도 할 말이 없으니까.... 기록의 상세함으로 따지면 요새 한창 올라오고 있는 이스라엘도 3천년도 더 전에 전투병력 60만이었잖아요(....)
22/02/03 03:39
맨붕 이라기 보단 원래 반미친놈 아닌가요 크크
그의 행동과 업적보면 제정신이 아닌게 하나둘이 아니던데 그것과 별개로 강도에서 처놀지말고 낙양으로 바로 갔으면 어찌될지 모르긴 했을겁니다
22/02/02 19:50
연의에서 승상이 목유유마를 개발했다는건 핍진성을 위한 장치였군요
당시에 전쟁에 동원되던 민중에게 한조 복원을 위해 몇번씩 산악행군을 강요하는 승상이 얼마나 선한 사람으로 보였겠어요 목우유마쯤 있어야 싸움만 하게 만든 승상니뮤 하겠죠
22/02/02 19:51
영상 보고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유목민의 기동력은 현대에 와서도 정말 대단하지만
저 시대 사람들이 보기엔 치트키 쓰는 괴물로 밖에 안보였겠네요 덜덜덜
22/02/02 19:52
식수 확보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이건 굉장히 넓은 곳에서 싸워야 하는 특정 전쟁의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1. 중국군이 대규모의 보병부대를 도보이동만으로 한국전쟁에서 기동시켜 연합군을 포위섬멸한 것을 보면 기병위주의 별동대의 타격이나 보병이라도 도보 기동을 통한 타격전술은 고대에도 유효했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그때는 현대적인 측량을 거친 지도가 없으니 해당 지역에 익숙한 길잡이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까웠겠죠. 발해의 멸망이나 한국의 병자호란과 같이 참수작전이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고요. 2. 공성전은 영화에 나오듯이 격렬한 공격을 하면서 공격자가 이기기 힘들거나 이기더라도 피로스의 승리가 되기 쉬워서 압도적인 병력우위를 가지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포위하고 성 안의 식수와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대포가 나오면서 공격자가 성을 공격해서 무너뜨린다는 선택지가 좀 더 용이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효율이 개똥인게 몸으로 들이박는 공성전이었습니다. 남한산성에서도 결국 힘으로 산성을 뚫은게 아니라 포위하고 대포로 성을 두드리면서 항복을 받아낸 것이었습니다. 산해관은 오삼계가 스스로 열어주기 전에는 수차례의 청군의 공격을 막아냈었고요. 3. 평화기가 지속되어 인구가 증가해서 성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지역에 개간하고 사는 인구가 늘어나면 성만으로는 그 지역을 지키지 못하고 공격자는 그 지역을 약탈해서 보급을 해결가능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게 몽골제국같은 거대 유목제국이 등장하는 유목민 재앙이 터질때 시너지를 내기도 했었을겁니다. 4. 한국전쟁에서 지게가 도로가 없던 지역의 수송에 상당한 기여를 한걸 보면 고대에는 우마차가 없더라도 고대 나름의 인력을 활용하는 수단이 있기는 했을 것 같습니다. 소나 말이 퍼먹는 식량이 장난이 아니라 수레가 무조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좀 비현실적인 가정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근세 이전의 기술로 정공법으로 성을 공략하는건 너무 효율이 안나오는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을 보더라도 강대강으로 치는선택지를 별로 좋은 전략이라고 평하지를 않죠.
22/02/02 19:58
음... 소야 순전히 수레를 끄는 운반용이지만 말의 경우엔 기병을 위한 전투용으로써의 성격이 더 짙기에 기병이 있는 부대라면 수레 사용은 필수적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이 먹어대는 막대한 양의 식량을 일개 보병에게 분담해서 나눠지게 하는 건 도저히 답이 안나오지 않았을까요?
수레가 없다 가정하면 보병들이 기본적으로 본인들 병기+식량도 지닌 상태일터인데 , 거기에 말이 먹을 식량까지 짊어지게 하는건 좀... 그렇다고 의외로 허약한 전투용 말에게 무거운 식량을 짊어지게 할 수도 없었을테구요 .
22/02/02 20:07
사실 말에 의한 수레 운반이 필수적으로 강요되던 건 오히려 18세기 이후 유럽 쪽이었을 겁니다. 그 시대쯤 가면 더 많은 포병을 보유하지 않으면 야전에서는 도저히 이길 각이 안나오던 시대였으니까요. 그 이전 시대에는 4번에서처럼 나름의 지역적 특성을 가진 '대안'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수 있어요.
22/02/02 20:35
근데 또 디엔비엔푸 전투 같은 예를 보면 인력으로 대공포까지 옮긴 사례도 있고... 생각해보면 전쟁상황은 그 자체로 극한의 환경이니 인력으로 뭔들 못할까 싶기도 하네요 .
22/02/03 07:46
1. 중국군은 "총"을 들고 싸웠습니다. 고대 전쟁에서 알보병 진군은 실패와 동의어 였습니다.
2. 공성전이 어려워 안한게 아니라 어렵지만 해야만 하는 일 이라 했던거잖습니까 초한지의 항우가 공성전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 거기에 기병이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여기저기서 조금씩 뜯어내다라도 모으면 많이 뜯어냈다는게 포인트지요. 알보병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4. 지게로 보급은 가능하지만 수레보다 비효율적이고 지게를 매는 사람의 체력문제로 점점 효율이 떨어집니다. 한국전쟁 당시 보부상처럼 지게로 장거리 운반을 하는 직업군이 있어서 지게 운반이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 그런 직업군은 없었다는게 포인트지요. 지겟짐 지고 산길을 날아다니는 보부상 ^^
22/02/02 19:57
가끔 상상해보는건데 지금 시대에도 전쟁 한번 하면 현대사회 문물과 비교도 안되는 가성비로 때려박아도 휘청한데
저 고대시절에 전쟁한번 하는데 얼마나 많은 자원이 소모되었을지 실제로 보급 굴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개고생했을지 아찔합니다 크크
22/02/02 20:21
호이만 해봐도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가 절실히 느끼죠.
거함거포 뽀대나고 뽕이 차오르지만 앞 바다 잠깐 나가도 쭉쭉 떨어지는 연료보면 식겁해 집니다. 무적의 기갑군단을 굴리고 싶어도 공격 좀 하면 연료 바닥나서 써먹질 못하고.... 도로망이 엉망인 동네에 군대 들이밀면 렌야 님의 명언이 절실해지죠.
22/02/02 20:27
역사에서 공성전은 의외로 적습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 국가의 지배라는게 그렇게 단단한게 아니라서 수도나 수도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면 성을 떨어뜨릴 능력이 있는 적이 온다면 그냥 항복하는게 낫습니다. 공성전도 피곤하긴 하지만 방어 입장에서 근대 이전에 공성전 '몇년'을 버틸 자원을 쌓아둔 곳이 드뭅니다. 그 귀한 자원을 소모하면서 목숨까지 버리느니 적당히 항복하는게 나아서 말이죠. 그리고 수도급 성이라 아무리 튼튼해도 역시 공성전을 버틸 자원을 쌓아둔 경우가 드물고 수도는 성이 튼튼하다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수도 주민에게 고된 방어전을 강요하느니 차라리 방어측도 어떻게라도 회전을 통해서 전쟁을 빨리 종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국가들이 튼튼한 수도 가지고서도 회전에서 대패한 후 망한 이유죠.
22/02/03 05:30
국토특성을 생각해야죠. 중요수원옆에 산이 있고 딱 거기에 방어근거지가 있습니다.
예외가 임진왜란이죠. 그나마 현 경부라인의 그나마 평지를 뚫었고 부산함락이후 새재-탄금대 돌파까지가 일본군의 최대위기. 한성함락이후부터 제대로 지형특성을 맛보게 됩니다. 덥고 춥고 산...
22/02/02 23:14
저도 이게 궁금했었어요. 성을 피해지나갈 수 없다는건 알겠는데, 그럼 왜 꼭 나가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장군들이 있는 것인가.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22/02/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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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사령관 한신 작전사령관 장량 내무부장관 소하 저는 대충 이런 인식이라 제 생각에도 행군로 설정은 장량의 영역 같습니다 라고 쓰고 나서 나무위키의 장량 평가 항목 글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네요 한신의 영역이겠다 싶습니다 링크는 자꾸 깨져서 그냥 지웁니다 ㅠㅠ
22/02/02 21:10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국경선이 확실하게 그어져 있지 않은 형태이다보니 이걸 이렇게 쳐들어간다고?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더라구요. 서쪽 진나라가 동쪽 진나라땅 거쳐 정나라까지 쳐들어간다던가, 위나라가 조나라 너머 중산국까지 쳐들어가 멸망시킨다거나....이게 현지조달도 없이 가능했다라는게...
22/02/02 22:44
현대전에 있어서도 바다 건너 수천키로 너머에 수만명이상 대규모 병력을 기갑,공군과 함께 보내서 1년이상 전쟁시킬 수 있는 나라는 지금은 미국밖에 없죠. 다른나라들은 병력과 무기가 있어도 보급을 못하니까요.
22/02/03 07:47
거기 산적 원주민들에게 금도 주고 군대로 위협도 하면서 좋게좋게 보급도 받고 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러고도 다넘고나니 남은 병력이 딱 절반쯤... 근데 그 병력만 가지고도 당대 최강국인 로마을 휘젓고댕겼으니 그 이름이 남아있는게 아닐까 해요 크크
22/02/03 11:26
리얼 좋은 글이네요 대학교 2학년 시절 육사에서 파견나온 분에게 어쩌다 들은 전쟁사 교양강의에서 이런 맥락의 내용을 초반부에 했던게 몇년만에 떠올랐네요
22/02/03 13:35
예전에 토크멘터리 전쟁사 보니까 전근대 전쟁에서 왜 이건 이렇게 하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들은 그렇게 하는게 제일 합리적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더라구요
22/02/03 20:49
왕은 명령만 하면 되고, 장군은 말타고 가면 되고..
수만리를 걸어가서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걸려죽고 싸우다 죽고.. 병사들이 불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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