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004년 개봉.
드라마 [천일의 약속] 2011년 방영.
안녕하세요. 최근에 [한 사람만] 리뷰 글을 썼던 마음속의 빛입니다.
불치병, 시한부 삶을 소재로 한 '한 사람만'이라는 드라마를 감명깊게 보다보니,
비슷한 소재의 작품으로 제 머릿 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천일의 약속'이 끌리더군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벌써 18년, 천일의 약속은 벌써 11년이 지났네요.
최근 제 행보는 OTT 서비스를 뒤늦게 체감하게 되어서 그동안 호기심만 있었던 중국 드라마를 원없이 보았고,
한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도 살펴보다가 이제 슬슬 영화 쪽으로도 넘어가고 있네요.
[치매]라는 이름의 불치병
'한 사람만' 작품을 보면 다양한 불치병이 등장했었습니다.
대체로 육신이 망가져서 서서히 삶의 종착지(죽음)를 향해 가게 되는 비극을 안고 있지요.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치매 증상은 유사하게 시한부 삶을 선사하지만,
육신보다 먼저 정신이 망가지게 되는 병이라네요.
건망증과 착각을 시작으로 일상 생활에 작은 불편함을 겪게 되다가
병이 진행되면 최근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게 되고,
병이 만성에 이르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활동도 잊어버리고 합병증을 앓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찌보면, 당뇨병의 반대 개념 같기도 한데, 비슷한 결말을 찾아가게 만드네요.
시한부 삶의 슬픔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습니다.
당장 집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고, 교통사고, 질병이나 각종 사건사고(강도, 묻지마 살인) 등등...
그럼에도 시한부 삶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고, 슬픈 건 죽음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은 불확실하고, 확정되어 있지 않은 모호한 죽음이라
시한부 삶보다 더 슬프고 애절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네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정우성, 손예진 이라는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주는 유명 배우들이 주연을 한 작품으로,
2004년 영화를 본 후에는 그 결말이 너무 슬퍼서 영화 내용을 떠올리기 싫었었더랬죠....
18년이 지나 오늘 이 영화를 다시보니... 슬픈 건 여전하지만, 재미있고 애틋한 장면도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순수하게 애틋한 사랑만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손예진 씨가 연기하는 '수진'은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불륜녀로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하더군요.
불륜남과의 만남을 약속했지만, 남자는 오지 않았고, 수진은 첫 실연을 겪게 됩니다.
오늘 다시보니, 이 실연 며칠 전에 그 남자의 여자가 찾아와 수진의 머리채를 잡아 싸웠다고 했던 거 같네요.
불륜녀.. 상간녀... 사건은 크게 터졌고, 남자와 함께 달아나기로 약속을 한 거 같은데.. 그것마저 실패...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하는 수진은 허탈함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건망증 때문에 남주 '철수'를 만나게 되고, 수진의 시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일련의 사건은 그녀의 병을 발병시키는 원인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우연한 계기였죠.
그 후로 철수와 재회하느 그녀는 사랑을 키웠고, 행복을 품에 안았을 때, 슬픔도 찾아오게 되네요.
영화를 보고 희노애락을 다 겪으며 지금 떠오르는 것은.. 여운이 찐하게 남는 순정만화를 본 거 같은 기분이었어요.
수진이는 불륜남과 헤어지고, 철수를 만나 제대로 된 '첫사랑'을 경험한 것처럼 엄청 소녀소녀한 사랑을 겪었네요.
남주인공 철수(정우성)가 굉장히 마초적이고, 얼굴이 정우성이다보니,
개연성을 무너뜨릴 것 같은 행동도 얼굴이 개연성을 확보해주는...
철수가 잘생기고, 능력있으며, 매너있고, 여주만 사랑하는 순정만화 속 남주의 모습을 살려주니,
수진이는 정말 천연미 넘치고, 사랑스러운 순정만화 속 여주처럼 느껴졌네요.
그래서.. 여주의 병이.. 너무 슬펐고, 안타까웠네요.
[천일의 약속...]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순정만화 같았고, 애틋함이 절절 넘치는 사랑과 슬픔이 담겨있었다면,
(그러고보니 영화가 12세 관람가네요. 이 드라마는 15세 이상 시청가)
김래원, 수애 두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분량이 훨씬 긴 드라마(총 20화)이기에 내용이 훨씬 디테일하게 느껴지네요.
(물론, 디테일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요. 영화가 주는 분량이 더 짧은만큼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도 있구요.)
첫 등장부터 여주 '서연'은 오빠 친구 '지형'과 사랑하는 사이로 나옵니다.
그런데, 남주 '지형'은 약혼녀(노향기)가 있는 남자였고,
능력있는 남자와 집안 좋은 여자가 만나 결혼하는 그림 같이 어울리는 한쌍이었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남주와 사랑을 하는 서연의 행보는 뭐랄까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수진이는 대놓고 불륜녀였는데,
천일의 약속의 서연은... 아직까지는 불륜녀는 아니긴 한데...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불타는 사랑을 나누는 예비 불륜 커플 이미지?
한마디로 지형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수연은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정열적인 여성이었다고 할까요?
남주 '지형' 역시 진심으로 갖고 싶은 여자는 팜무파탈 스타일의 '수연'이었지만,
사회적인 평판? 집안이나 미래의 비전을 생각해서 '향기' 또한 놓치기 싫은 욕심많은 남성이었다고 할까?
이런 스타일의 남녀 캐릭터들을 보면, 이건 순정만화의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19금 어른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전형 같았네요.
불에 다가가는 불나방처럼 남주와의 사랑에 집착하는 '수연'은
말이나 행동을 보면 굉장히 차갑고 냉철해보이는 여성인데, 사랑에 대해서는 한없이 불타오르는 정열을 지닌...
그동안 익숙했던 [시크하고 도도한 도시의 여성]이 아닌.. 차갑지만 뜨거운... 갭모에 감성을 자극하는 이중적인 여성이었네요.
남주 또한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 어리버리한 사람일거라는 편견과는 달리,
말이나 행동을 보면, 굉장히 냉철해보이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한없이 불타오르는... '수연'과 정말 닮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였어요.
그의 차갑고 냉철한 사고는 집안 좋은 현모양처 스타일의 '향기'를 아내로 선택했지만,
그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은 '상처입은 짐승'처럼 연약한 '수연'을 향해 있었죠.
이런 인물 설정 때문에 그런지...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열에 아홉이 좋아할만한 훌륭한 작품이었던 것에 반해,
천일의 약속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거 같은 작품일 거 같아요.
소재가 비슷하고, 그들의 사랑이나 갈등이 닮아있다보니
열린 결말로 끝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닫힌 결말로 끝난 천일의 약속이 서로 이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있네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 플레이를 통해 시청하실 수 있고,
천일의 약속은 티빙, 웨이브 OTT 를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슬픈 내용이 가득 담겨있지만,
그럼에도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들이라 아직 보지 않으셨거나 다시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리는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