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2/09 16:02
73년전의 논평인데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쓴 것 같네요.
특히 무한경쟁이 개인의 사회의식을 불구로 만들고 성공을 숭배하게 만든다는 부분이 와닿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극복하고 자본주의를 73년간 더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같은 문제가 보이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쇠퇴하지 않고 미국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요? 오랜만에 더 많은 글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에요.
22/02/09 16:22
고등학교때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치체계의 발달로
수행평가 만점받은 기억이나네요. 지금 보면 그냥 북한 체제에다가 대가리만 김정은에서 AI로 바꾼거긴한데...
22/02/09 16:32
저명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냉정하고 이과적으로만 사고할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문학적 주제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거나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지극히 '인간적'으로 살았던 인물들도 굉장히 많죠. 아인슈타인, 버드런트 러셀, 마이클 패러데이, 칼 세이건, 리처드 파인만, 피터 힉스 등등
아인슈타인이 사회주의에 대해 깊게 고찰하고 유전자 밖의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것도 인류에 대한 사랑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죠. 맨하탄 프로젝트에 반대하고, 러셀과 함께 핵무기 확산에 반대했던 것도 마찬가지겠고요.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여러모로 매력적인 인물임엔 확실합니다.
22/02/09 17:22
파인만 자서전(?)이라고 해야할까요.. 만년의 파인만이 친구 아들 데려다 놓고 썰 푼책이 하나 있습니다.(친구 아들이 저자)
아마 국내에서 발간될 때의 제목이 파인만 씨 농담도 참 잘 하시네요! 였을 겁니다. 뭐 기본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성공한 물리학자의 자서전 비스무레한 거니.. 자기자랑이 어느 정도 있긴 합니다만, 그거 감안하고 읽어도 꽤 재미있습니다. 원자폭탄을 만들던 로스알라모스에서 금고를 털고 다닌 이야기라든가, 홀아비가 되고 나서 술집에서 여자 꼬시던 이야기라든가.. (사실 업적 부분은 뭐 노벨상 수상자니까 익스큐즈 합니다만... 이런 일화들이 더 자기자랑 같기도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까지는 모르겠어도.. 이 분이 아마 고대 마야 상형문자였던가.. 그 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했을 걸요?
22/02/09 17:31
원제가 아마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일겁니다
제 고교시절 최애 도서중 하나였지요 크크 노벨상 수상자가 맞나 싶을 정도의 기행 모음집이지만 일대기 곳곳에 휴머니즘이 묻어있어 참 좋아했어요. 못해도 대여섯번은 읽은것같네요
22/02/09 18:44
과학은 how를 알아내는 학문이지 why를 알아내는 학문은 아니라서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명 과학자들이 인문학,철학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22/02/09 17:35
아인슈타인이 폴 스위지가 창간한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글을 기고했던 건 처음 알았네요. 당시 미국사회에서 RED SCARE(빨갱이 대소동) 때문에 먼슬리 리뷰와 같은 좌파학술지에는 많은 교수들이 익명으로 논문을 기고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이는 여러모로 굉장히 용기있는 행위였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이런 소신때문에 아인슈타인도 어느정도는 곤욕을 치렀던 걸로 알고는 있습니다만.
번역이란 게 품도 많이 들고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일인데 글쓰신 분의 노고 덕택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2/02/09 18:09
흐흐. 그런가요? 그래도 몸소 이 글을 올려주신 덕택에 제가 읽을 수 있었으니 그 고마움은 여전하고요.
본문 중에서 생물학적 법칙으로서 유전의 구속을 뛰어넘는 잠재력으로서 문화와 사회를 제시하는 대목은 칼 폴라니의 "중요한 건 중력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는 것이다."란 말과 공명하는 것 같아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22/02/09 17:43
우리나라는 그래서 장하성교수가 경제정책 키를 잡았다가 실각했죠.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예나 지금이나 넘쳐나지만 그래서 사회주의인가? 하면 그건 아닌것 같아요. 이념적으로는 매력적인게 확실한데 면면히는 이념을 뒷받침하는 전제가 현실에 통용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인간 본성을 외면한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 결국 중세에 종교를 이용한 인민통제나 마찬가지고 전근대적인 왕조가 사회주의라는 옷만 갈아입은 셈이겠죠. 20세기에는 충분히 논의해볼만 해도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한 여러국가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현재에도 또 사회주의 사조가 부흥할까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22/02/09 19:39
전 우리나라가 나름 사회주의적 요소를 많이 차용하고 있는 국가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운영되기에 꽤 밸런스가 나쁘지 않은 구조를 이루고 있고요. 덕분에 말씀하신대로 앞으로는 굳이 사회주의건 낙석주의건 어떤 한 극단으로의 사조가 나타나긴 어렵지 않을까, 대신 양측의 모순 역시 동시에 겪어갈 각오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네요.
22/02/10 01:22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사회주의는 들어보기만 하면 맞말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측면이 꽤 많습니다만 현실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국가에서 너무 많은 실패를 겪게 만든 사상이고 아무리 타협해도 유럽의 사민주의를 초과하면 부작용만 많을 가능성이 높고 정작 그 유럽조차도 결국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유럽 수준의 사민주의조차도 과연 맞는방향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역사의 흐름입니다.
22/02/09 20:00
과거 100년동안 사람들이 사회주의라고 믿었던 것은 '방법'쪽에 가깝고, 그 방법과 관료독재 방지를 같이 달성하는 것 또한 과거 100년동안 계속 논의가 되어왔습니다. 근데 그 두개가 병존할 방법은 아직까지도 한번도 나온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영 안나올것 같습니다. 저 시대 사람들은 설마 2020년에도 이러고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겠죠.
그 방법은 애초에 틀린거고, 방법을 도출해내는 방식이 틀렸으니 결과적으로 방법도 틀리게 된거겠죠. 최초의 공상적 사회주의, 혹은 그보다도 더 이전의 사람들이 가졌던 어떤 환상적인 지향속에 있는 그림과도 같은 모습을 그림에서 실제 현실로 바꾼다는거야말로 중요한거고, 그건 아마도 '바꾸는'게 아니라 '바뀌어 있는' 것일겁니다. 방법과 방법도출방식은 버리고,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자체도 버리고,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상의 실현'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실현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정립하려는 그 순간 실패는 결정된다고 봅니다.
22/02/09 23:20
반복되는 역사구조에서, 사회주의의 합리적 분석의 칼날이 자본주의의 폐부를 찌르는 경우가 잦았죠.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가 살아남는 것은 가장 쉬운 최소한의 원칙 - 경제적 자유를 보존하는 것 - 만을 고수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가 늘 강경한 실험을 해야 했으나 동안, 자본주의는 유연성을 발휘해서 천천히 여러가지를 취사선택했죠.
22/02/09 23:21
아인슈타인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지만, 위 글은 어떤 통찰력도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분석과 해결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분석은 깊이가 없고 해결책은 공상적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자본이란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수에게 쏠리는 것은 사실이고 또한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해결책은 저기 북쪽에 북한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다 결정하는 것의 문제점은 인간 동기라 생각합니다. 윗 글의 분석과 해결이란 것은 '인간 동기는 교육해서 바꾸면 될 일이다!'인데, 그게 틀려먹은 소리인 거죠. 인간 심리에 대한 얄팍한 이해를 가지고 하는 소리일 뿐이고요. 또한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고요. 사회가 다 결정하는 것의 두 번째 문제점은 국제경쟁이라 생각합니다. 생산성 하락으로 인해 국제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폐쇄적인 무역을 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면 결국 내부에서 곪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핵폭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있는지, 그 중요한 원인 하나는 무역이죠. 경제가 초국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비판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제가 단 이 댓글에도 문제가 있으니, '대안'이 없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자본이란 규모가 클수록, 그 규모가 곧 독과점을 만들어서, 더욱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게 되는 특성이 있고,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에 쏠리는 부의 비중이 많아지게 되는데 그 자본 특성에 의한 양극화를 완화할 대안이 딱히 없다는 점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만약 강력한 권력을 가진 초국가기구가 등장한다면(혹은 전세계를 통일한 국가가 등장한다면), 여러가지가 가능할 테지만, 그건 불가능한 공상적 시나리오일 뿐일 것이고요.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하나는 '사회 신뢰도'를 높이는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 신뢰도를 높이면, 사회가 건강하게 할 수 있는게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북유럽에서 보여주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요. 그러나 다시 의심해봐야 하는 것은, 그 신뢰도란 것도 자원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가능했던 것 아닌가 하는 부분이겠지요.
22/02/10 01:37
이미 우리 사회는 저 시절 ‘사회주의’라 불리는 요소를 상당히 차용했죠. 오히려 북한, 중국같은 나라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사회주의’와 거리가 가장 먼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21세기 사회주의 뭐 별거 있나요. 독일 집권당인 사민당 같은 정당이 내세우는게 2022년 시점에서 가장 사회주의에 가까운 방법론인거죠.
22/02/10 08:31
저는 이 글에서 지금 시대에서도 공감할만한 대목을 많이 찾았습니다.
물알못이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내고 증명해낸 것도 남다른 통찰력에 있지않았을까 싶습니다. 범인은 시대의 격랑속에 갖혀서, 한줄기 파도를 어떻게 피할까 생각하기 급급해 그 격랑 밖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격랑너머를 보는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들의 글과 생각은 수백년이 흘러도 공감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22/02/11 10:06
소위 골든에이지 시기의 미국에서, 또 소위 '중산층'이 못된 사람들이 어떤 삶을 구가했는지를 보면
저 글에서 보이는 논조는 십분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피쟐글로 기억하는데 당시의 '금칠'아래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짤막히 다룬 글이 있었더랬죠. 그리고 인문학적 문제가 가지는 '통시성' 때문에 응당 현재의 어디든 저 글의 관찰이나 논조 등을 적용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인문학적 문제가 가지는 '공시성' 내지는 '현시성'의 '제한'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면 글쎄요..... 여튼 그 부분을 고민해야하는 게 인문학자로서의 자세여야하겠지요. 아, 물론 저는 그냥 게이머니까 배 득득 긁으며 코파면서 좋은 글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드리고 다른 글로 가겠습니다.
22/02/21 09:18
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 운영진입니다.
본문에 작성된 기사의 한글 번역문은 검색결과 외부 번역문의 펌글로 추정되며 번역문의 출처를 명기하지 않아 펌글 규정 위반으로 벌점 4점을 부과하며, 본문상에 번역문 출처를 기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문 미수정시 추가벌점 부과 및 삭게 이동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