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이나 되었을까
가장 친한 대학 동기이자 같은 병원에서 일했던 동기 녀석에게 카톡이 왔다.
"XX병원 폐업한다던데 들었나??"
당연히 들었을리 없다.
난 7년 전 지금 일하는 병원으로 옮겨오고 나서는 첫 직장이었던 XX병원에 대해선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긴 했어도 망할 거 같지는 않았던 병원이었기에 왜 폐업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지긴 했다.
7년전에 그 병원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자주 연락하는 직종 선배이자 친한 누님에게 연락을 했다.
"XX병원 폐업한다면서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생각보다 긴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깬 건 짧은 한숨이었다.
"뭐..그렇게 됐네.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병원이라는 곳이 워낙 바닥이 좁다 보니 별별 소문이 다 도는데 그런 거 하나 못들으려구요"
"그래도 그렇지. 폐업 한달도 안남기고 폐업 사실을 알려주면 어쩌라는건지 참..."
여전히 양아치같구나. XX병원놈들.
나의 첫 직장이었던 XX병원은 적어도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은 병원이다.
매년 있었던 임금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라던가
병원을 확장하겠다면서 열심히 직원 임금 동결 및 삭감이라던가
병원에 돈이 없다고 하면서 이사장의 법인 차량은 무려 페라리(!!!) 라던가
물론 이런 병원의 부조리함만 있었다면 크게 나쁘게 남지는 않았을 병원이었지만 ...
내가 근무한 부서에서의 부조리함도 만만치 않았다.
정확하게는 이는 재활치료센터에 소속된 신경계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라면 다들 어느정도는 겪었을 내용이기도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치료실 내 라인(혹은 파벌) 문제로 근무 강도가 정해지는 정말 뭐같은 상황말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A팀장 라인을 서야 환자를 편한 환자(잘 걸어다니는 환자라던가 인지 좋은 환자)를 받을 수 있고
B팀장 라인을 서면 엄청나게 빡쌘 환자(사지마비 환자나 성격 진상, 혹은 인지장애가 엄청 심한 환자)를 받는 식이었다.
라인이라는건 보통 출신 학교나 회식에서의 아리가또(?)를 통해 생겨나는 관계로 형성이 되었다.
심지어 어느 교육을 받았는가에 따른 차별도 있었다. Bobath라던가 PNF라던가 ..
당시 내가 처음 물리치료사를 시작했을 때 치료실의 주류는 Bobath 라는 치료였다.
각 팀장들이나 주임들이 모두 Bobath 치료를 들었으니 밑의 신입 치료사들에게 교육 선택권따위는 없었다.
"PNF 교육을 듣겠습니다." 라는 패기 넘치는 답변 한번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인 동기가 바로 XX병원 폐업을 알려준 저 친구이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내 돈과 내 시간 투자해서 듣고 싶은 교육 듣겠다는데 .." 라는 생각이었겠지만 위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신입 치료사
한명의 반항 정도로 보였나보다.
거기다가 치료실이나 병원 내외적으로 행사는 어찌나 많은지 일요일에도 불려나가는 일이 꽤 많았고
당연히 보상은 하나도 없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킹받네.
폐업을 알려준 동기는 1년을 버티고 타 병원으로 이직했고 난 저 병원에서 그래도 5년이나 버텼다.
이유는 3년차에 결혼을 해서 안정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으나 사실 물리치료사라는 분야의 임금이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미 4년이나 5년 해서 자리잡고 편한데 뭐하러 다른 곳으로 옮기나??
그렇게 XX병원에서의 5년차 생활이 절반이 넘어갈 때 즈음 타 병원에서 옮겨오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찌되었건 신경계 물리치료 파트에서 어느 정도 적당한 연차(4~7년차)의 남자 치료사는 꽤 불러주는 곳이 많다.
물론 XX병원에서보다 월급도 유의미할 정도로 더 주는 조건이었고 근무 조건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꽤 고민을 했다. 그래도 익숙했던 환경 때려치우고 가는 게 쉽지는 않았으니 ...
사실 그 고민사이에는 저 위의 통화를 했던 누님이라던가 나름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관계를 쌓아왔던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컸던 것 같다.
이 곳을 그만두면 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왠지 끊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아쉬움도 컸다.
근데 부조리에 크게 데였던 내가 왜 인간관계니 뭐니 "사람"이라는 존재에 아쉬움을 느꼈는가??
나에게 온갖 부조리를 보여주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게도 교수 임용이 되어 강단으로 떠나기도 했고 학회 강사가 되어 더 큰 명망을 얻기도 했다.
같이 일했던 사람중에 가장 X같았던 사람들이 제일 잘 풀렸다는 건 좀 별로긴 하다.
물론 그 사람들의 임상 내 평가가 안좋은 건 비단 나뿐만 알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리고 더 많은 임금(!!)을 위해 난 5년간 다녔던 XX병원을 퇴사했다.
아쉬움이 있긴 했는데 .. 월급봉투 받아보니 그깟 아쉬움이라고 해야하나 .. 금방 잊혀지더라.
그렇게 오랜 기간 생각도 않고 지냈던 첫 직장이 폐업한다 하니 참 싱숭생숭하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긴 한데 아주 없어진다 하니 또 아쉽기도 하고 ..
나름 지금까지 물리치료사 할 수 있던 기반도 XX병원에서 만들었기에 고향이 없어지는 느낌이라 약간은 슬프다.
그리고 나와 저 공간에서 인연을 쌓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다는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나와 인연을 쌓았던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과 인연을 쌓았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없어졌다는 게 허탈할 뿐이다.
거지같은 선배들도 많았지만 아름아름 신입 물리치료사때부터 날 잘 챙겨주었던 선배들의 힘 없는 목소리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처음이나 이직때나 마지막이나 나에게 XX병원은 참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래도 내 사회생활 첫 5년을 같이 보내준 XX병원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잘 가~ 고마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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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네요. 저는 그렇게 먹고 살기 어렵다는 남자 오티입니다.
작년까지 한 요양병원 치료부서장으로 일하다가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해고되었죠.
저같은 경우 첫번째 병원같은 경우 안좋은 기억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부조리가 많았어요.
대표적인게 강제로 참여해야 했던 축구동아리라거나 강제로 참여해야 했던 집담회 교육같은거 말이죠.
저는 당시 나름 열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나았지만 제 입사 동기들같은 경우 사실 동기부여가 어려웠기에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축구 같은 경우 3년차 이하는 물어보지도 않고 여자들도 강제 응원을 참여해야 했고요.
지금은 이 일을 한지 10년정도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은 함께 하고 싶은 직장은 아니에요.
아.. 축구 동아리는 어느 재활이건 간에 다 있는 얘기긴 해서 ..
전 공차는 거 좋아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주말까지 공차자는 건 좀 선넘더라구요 - _-
OT 쌤이시면 근무 강도에 비해 대우같은게 PT보다 더 열악하다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 좋은 직장에서 부조리 없이 일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평일은 주에 한번씩 했고요. 주말은 한달에 한두번 정도 했습니다.
다른 병원이랑 시합하게 되면 3년차 이하 여선생들이 응원하러 같이 오더군요.
전 응원하러 오는 여자 선생들이 제일 불쌍했습니다.
대우는 뭐 알만하죠. 오티 중에 실수령 250 받는 사람조차 엄청 적은걸 생각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