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현 상태의 심각함과 다가올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나, 정작 실생활에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저는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지구의 기후 변화 문제를 꼽고 싶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매체에 나와서 경고를 하고 있어도, 대중들은 설마 그러한 암울한 미래가 다가올까 싶습니다. 설령 다가온다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체감이 안되니,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즈음에는 똑똑한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문제들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심각하게 논의하는 정치인들이나 정당들도 없습니다. 당장 득표를 하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체에 나와서 혼자만 심각하게 경고하는 환경 단체나 과학자들이 유별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태를 풍자한 영화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돈 룩 업(Don't Look Up)』입니다. 그럼 과연 기후 변화는 대체 얼만큼 심각한 상태에 도달한 것일까요? 과학자들이 하는 말들 중 어디까지가 진짜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된 경고일까요?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지구가 당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보다 인기 연예인의 가쉽이 더 궁금한 토크쇼 진행자들.
지구의 시스템은 복잡하고 신비합니다. 원시 지구가 탄생한 이후에 극히 낮은 확률의 '우연'들이 가까스로 겹쳐 지구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비하고 거대한 지구에 과연 한낱 인류가 공장 좀 돌리고, 자동차 좀 탄다고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사실이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기후 변동에 가장 큰 원인은 인류의 영향 보다는 공전 이심률, 세차운동, 자전축의 기울기 등 '천문학적 요인'이 더 크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 요인은 빙하기 혹은 간빙기의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면, 그 속도나 세기는 '되먹임(Feedback)' 작용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양의 되먹임'이라 부르고, 기온이 하강하면 더욱 가파르게 하강하는 것을 '음의 되먹임'이라고 부릅니다.
음의 되먹임의 예를 들어보면, 천문학적 요인으로 여름철의 햇빛의 세기가 약해져 극지방의 빙하가 넓어지면, 빙하에 의한 햇빛의 반사도가 높아져 햇빛의 세기가 줄어듭니다. 빙하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수온이 낮아지면 시원한 콜라의 탄산처럼,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더욱 많이 녹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낮아집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낮아지면 온실 효과도 줄어들어 빙하기 진입이 가속화 됩니다. 반면 간빙기일때는 양의 되먹임이 작용합니다. 높아진 수온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수면의 상승은 빙하를 깨뜨립니다. 사탕을 잘게 부수면 입안에서 더 잘 녹듯이 깨진 빙하는 녹는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빙하가 녹으면 안에 품고 있던 탄소가 대기중으로 방출되어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욱 상승하여 온실효과가 증대됩니다.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은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는 적어도 양의 되먹임, 즉 가속화에는 충분히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산업혁명 이전의 80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180~280ppm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한 이후 현재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약 400ppm을 넘었으며,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 동안 1도가 상승했습니다.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줄어들만한 요인이 딱히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의 국민들도 분명 화석연료를 태워 윤택한 삶을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울 것입니다. 2050년에는 지구의 인구가 90억~100억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니, 이들을 위한 화석연료 소비는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인류는 계속해서 '양의 되먹임'에 기여를 할 예정인 셈입니다. 아마 현재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기후 변동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출처 : 중앙일보 기사)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 인구(25세~59세)가 2030년 전까지는 매년 비슷하게 유지된다고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온 것이 2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실생활에서 딱히 체감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생까지 연간 64만명 규모였던 신생아 숫자가, 단 2년 만에 2002년생부터는 49만명 수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2002년생이 대학에 입학했던 21학번부터 지방 대학교의 낮은 경쟁률 문제가 뉴스에 나오면서 서서히 대중들도 저출산 문제를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숫자가 적은 2002년생 이하의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연간 100만명에 육박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를 하는 시기에는 OECD 국가 최상위의 노인빈곤율에 따른 국가의 노인 부양 문제가 점점 수면위로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 변화 문제도 이와 유사합니다. 정오에 햇빛이 가장 강하지만, 하루 중 최고 기온은 오전 2~3시 쯤입니다. 우리가 사는 북반구 기준으로 하지인 6월 21일에 가장 낮이 길고 햇빛이 강하지만, 7월 말에서 8월 초의 휴가철일 때가 가장 덥습니다. 이것은 햇빛이 지층을 가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기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표면의 70%를 차지하여, 대기의 약 1,000배의 열용량을 가진 바다라고 합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빙하가 녹아 차갑고 높은 밀도의 바닷물이 심해에서 저위도 지방까지 흘러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 때문에 감지는 제일 늦습니다. 따라서 산업혁명 이후 현재 상승한 1도의 기온을 수십 년전에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한 반응을 뜻하는 '이미 저질러진 온난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반응이 늦다는 점은 인류의 대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가 사는 동안에만 별 일 없으면 괜찮으니, 이번 세대에는 다음 세대에게, 다음 세대는 다다음 세대에게 해결을 미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직 높지 않습니다. 과학자로서 이러한 실태를 비판하고 무작정 계몽하려 하면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주기 딱 좋습니다. 대신 이 책은 수 많은 과학적 근거와 통계,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통해 기후 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설명과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우리나라 국립 연구기관들의 연구 실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물론 평소 과학에 대한 관심이 덜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하지만 읽고난 이후에 그렇다면 우리의 해결 방안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남기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산업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구에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 자체를 차단하는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 근본 원인인 이산화탄소 자체를 줄이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등이 신기술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은 지구 환경 시스템에 인위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작용의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은 막대한 비용과 그에 따른 실용성 문제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픈 환자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약을 처방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미 현재의 지구 온난화에 큰 기여를 한 선진 공업국에서 후발 개발 도상국들의 에너지 수요를 억제할 명분도, 능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선진국들 조차 많은 원자재, 소비재들을 개발 도상국에서 저렴하게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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