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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2 22:22
아마 이준이란 양반 블로그에서 안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크크. 깃발없는 기수는 그 시절 사람들의 행동으로 부조리한 세상을 에둘러 표현하는 게 아닐까 하네요. 카뮈의 이방인이 생각나는데 자기를 둘러싼 공기까지 모두 어떤 이유에서건 싫은 것이죠. 현대에는 그저 신경쇠약증으로 치부되겠지만요.
22/03/23 17:20
카뮈의 작품론이 많이 생각나는 '부조리함'이 선우휘 작가의 세계에서 중요한 요소 같기는 합니다. 그들이 당했던 실향조차도 합리성과 조리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기에, 그런 충격이 삶에도 녹아있다는 점이 어떻게보면 제가 읽으면서 소름돋았던 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도대체 한국은 어떤 기반에 세워진 것인지, 무슨 가장 어두운 던전이라도 되는 것 같아서 열어보기가 무서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22/03/22 23:00
부정하고 싶고, 모른척하고 싶고, 귀를 닫고 못들은척 하고 싶고, 눈을 감고 못 본척 하고 싶고
그런 것들도 우리 역사죠 대한민국은 정말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80년대와 90년대가 달랐고 90년대와 00년대가 달랐고 00년대와 10년대가 달랐고 저 당시와 같은 날것의 시대를 거쳐서 뭔가 거적대기를 걸치는 시대를 거치고 지금은 나름 옷이라고 입는 시대가 되었죠 님이 느끼기에 낯선 이런 모습이 그 당시에는 아주 당연했고 이북5도민 실향민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까지는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저만해도 이북5도민 집안이라서 평안도 사투리는 익숙했고, 날것같은 모습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영락교회는 이북5도민 실향민이 주축이 된 교회입니다 그 실향민들이 대부분 돌아가셔서 이제는 거의 들을수없지만 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교회에서 이북 사투리를 듣는건 낯설지 않았습니다 실향민들이 현역일때는 이북5도청이 가능할 만큼 국가에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군대나 문화예술계나 경제계에서 나름 높은 위치에 이북5도민 출신들이 은근히 있습니다 그분들은 정말 독하고 치열하게 그 위치까지 올라갔던겁니다 북한땅이 자연적으로 거친 환경이고, 거기에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까지 겪었으니 거기에서 살아온 분들은 기존의 남한 사람들보다 더 거칠고 날것으로 강하고 독하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북5도민 출신 중에서 가난한 분들은 많지 않으며 가난해도 자식들은 다 교육을 시키고 자식들이 나름대로 자리잡고 살수있도록 살아왔습니다 7년전인가 자주가는 단골식당의 여자 사장님이 그러더군요 노인이 되신 아버지가 평북 출신인데 지금도 경기도의 모 골프장에서 일한답니다 새벽부터 가서 다 물품정리하고 청소하고 다른 직원들보다 몇배로 일을 잘하니까 골프장에서도 그만두라는 말을 안할 정도라고 합니다 빈손으로 내려왔기에 남들한테 손을 벌려서 도움을 청할수도 없었기에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저 노인이 그런 실향민의 좋은 예가 됩니다 앞서 언급한 영락교회같이 실향민이 모인 곳은 일종의 실향민 커뮤니티가 되고 실향민끼리 서로 돕게 됩니다 그 안에서 자기들의 자녀들끼리 서로 결혼을 시키기도 했고요 영락교회는 지금도 그런게 일부 남아있을겁니다 아직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북5도민 체육대회도 있었죠 2012년 대선때 문재인이 유세활동을 하러 이북5도민 체육대회 행사장을 찾은 일도 있었으니까요 싸워도 서로 화해해야 하고 다시 싸우고 그러면서 다시 지내야 하고 지내면서 살아온거죠 남들에게 야박하게 굴기도 하고 독하다고 손가락질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북5도민끼리는 만나고 모이기도 하고 이런 시절을 겪으면서 지금도 역사는 흐르고 있는겁니다
22/03/23 18:00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역사가 앞으로 흐를 때, 이런 것은 듣지 못했다고 알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22/03/23 23:39
조금 더 적어보자면
역사가 흐르고 있고 시간은 흐르고 있기에 이북5도민청이 존재할수있었고, 이제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호남향우회처럼 이북5도민들도 나름대로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영락교회를 언급한건 영락교회가 그런 대표적인 예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반공을 기본으로 깔고 가며 좌파와는 척을 지고 있는데 그게 이북5도민 영향이 큽니다 개신교는 북한 지역에서 많이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신교인들이 박해를 받다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 그분들 중에서는 이른바 지주계급이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월남하면서 교회도 같이 이동을 했습니다 한국에 교회가 난립한데에는 북한이 한몫한겁니다 개신교에도 카톨릭처럼 교구 개념이 있습니다 이걸 노회라고 하는데 지금도 평북노회, 평양노회 이런식으로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노회 소속의 교회가 전국 여기 저기에 흩어져있습니다 분단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교회가 난립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물론 교회가 여기저기 많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덜 했을거라는겁니다 전라도 사람들끼리 뭉치고, 경상도 사람들끼리 뭉치고 이런거처럼 이북5도민들도 뭉쳤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고향을 떠나온 상태였기에 지역기반이라는게 없었습니다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북5도민들이 살아있던 당시에 통일이 되지 않으면 이북5도민들의 커뮤니티는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라질수밖에 없습니다 저만해도 이북5도민이라는 정체성은 없습니다 이북5도민 2세들은 이북5도민 집안이지만 각자 태어난 곳에서 살아왔기에 그 지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1세대들이 사라지면 이북5도민이라는 관념은 점점 사라지게 될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흐르면 그렇게 되는게 자연스러운 현상인겁니다 정치적 효과라는 점에서 본다면 00년대 초반까지 명절만 되면 뉴스에서는 이북5도민들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꼭 담아냈습니다 남북이 뭔가 대화가 된다 싶으면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작게나마 표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1세대들이 사실상 사라진 현시점에서는 아무런 정치적 효과가 없기에 이산가족 상봉 이런건 낯설게 느껴지게 될겁니다 이미 님은 그렇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해도 90년대에 6시내고향에서 봤던 장면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어떤거였냐면 냉면 전문 식당이 나왔는데 아마도 필동면옥이었을겁니다 카메라에 담긴 식당의 전경에는 냉면을 드시는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때 리포터가 한 할아버지한테 '고향' 생각나시냐고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에 바로 눈물을 쏟으시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그립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북5도민 집안인 저한테도 여전히 이북5도민 1세대가 많이 생존해있던 그 당시에 그런 장면을 보고 낯설었는데 님에게는 더 낯설게 느껴졌을겁니다 아마도 0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인들에게는 이북5도민들이 한국에서 살아온 역사를 접한다면 많이 낯설어하고 많이 당황할겁니다 근데 어쩝니까 그것도 한국의 역사인걸 그냥 살아가는거에요 각자 오늘 하루 살아가듯이 나중에 뒤돌아보면 이렇게 살아왔구나..하게 되겠죠 그저 우리의 흑역사든 백역사든 그것을 모른척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잊지 말고 기억해야죠 그래야 발전이 있을테니까요
22/03/24 18:33
하나를 빼먹었네요..죄송합니다..
길어도 더 적어볼게요 한국 개신교의 대체적인 분위기 그러니까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다수가 좌파, 공산당을 싫어하는거에 대해서 말하는걸 빼먹었습니다 좌파를 싫어하고, 민주당을 싫어하는 분위기인거 아실겁니다 그게 위에서 언급한 북한 김일성 + 공산당 정권의 박해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다른 지역들 보다 이북5도 지역이 개신교가 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조선시대의 이북5도에 대한 차별대우가 아주 컸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저는 일단 이걸 큰 이유 중 하나로 봅니다 마음껏 그 지역을 이탈할수없었고, 벼슬 응시하는 것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르신의 집안이 그 어려움 속에서 과거응시해서 벼슬을 한 것을 지금도 자랑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화기가 되었고 상공업으로 돈을 벌어서 부를 축적하게 된 분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자수성가한 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개신교는 사후 구원이라는 부분이 한국인 정서에 잘 먹히기도 했지만 신분차별이 없다는 부분이 컸습니다 이 신분 차별이 없고 모두가 교회안에서 동등하다는 것이 조선시대 신분 차별에 지역 차별까지 받던 이북5도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복음이었던겁니다 그런 개신교가 모범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서 평양의 집창촌도 교회의 영향으로 매주 일요일은 모두가 문을 닫고 휴일로 했을 정도였습니다 차별 때문에 개신교를 받아들이니 자연스럽게 서구문명을 빨리 받아들이게 되었고 당연히 문맹을 깨고 지적인 수준도 올라갔습니다 당연히 차별에 대해서 알게 되고, 지금의 사회상황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학교가 많이 지어졌고 교육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이 많이 나올수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되자 공산 정권이 북한에 들어서니까 개신교는 탄압을 받게 됩니다 배경이야 아마 일제강점기때부터 있던 갈등이 한몫할 것이고, 공산주의가 종교를 배격하는 것도 한몫할겁니다 아무튼 공산정권하에서 개신교도들의 상당수가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재산은 강제로 압류당했고, 개신교도가 저항해서 사형당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항하지는 않아서 목숨은 겨우 부지했지만 재산은 압류당해서 빈털털이가 되었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러니 김일성 정권 수립 무렵부터 월남하는 이북5도민들이 나왔고, 625 한국 전쟁때 많은 이북5도민들이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필요했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월남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한국 개신교가 전후에 다시 정립되니 당연히 반공, 좌파는 가까이할수없는거였습니다 서북청년단에 이북5도민의 비중이 컸고, 그들중 상당수를 포함해서 이북5도민 청년들이 전쟁때 자원입대한건 이런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한국 좌파쪽에서 한국 개신교가 군사정권에 협조하고 민주주의 투쟁을 안해서 한국 개신교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개신교 입장에서는 종교 탄압 여부가 우선이었기에 그걸 해치지 않고 반공을 하는 정권에게는 맞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군사정권은 종교 탄압을 하지 않는 정권이었고 반공을 모토로 했기에 개신교가 군사정권에 맞서는데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이 북한 도발 이런걸로 겁주기로 선거때 이용한게 가능한건 이런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안좋은 예지만 그나마 비슷한게 광주 시민들이 518 민주항쟁의 비극을 경험하고서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도 선거때 국민의 힘에는 투표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겁니다 개신교도 해방 후 박해받은 기억으로 좌파에 투표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겁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흐르면서 세대가 바뀌면서 개신교에서 좌파에 투표하는 비중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길게 댓글 적어서 죄송하고요 저의 댓글에 있는 오류는 다른 분들이 잡아주실테니 그분들의 댓글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2/03/24 23:51
저는 9X년에 태어나서 소련이 망하는 것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개신교도 집안에 태어났으면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남쪽 사람인 저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소중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을 이야기들이니까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저도 제 삶의 궤적이 어떤 것이라고 이쁘게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올수 있도록 아는 것을 갈고 닦겠습니다.
22/03/23 00:43
테러리스트는 단순한 깡패가 아니라 서북청년단입니다. 저 소설 자체가 서북청년단의 몰락에 대한 기록이나 매한가지죠. 깃발 없는 기수도 서북청년단 같은 월남 세대에 대한 비틀린 스케치 같은 소설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와 그 속의 갈등을 실향민 입장에서 선우휘만큼 남긴 작가가 없습니다. 전에 남부군 감상을 올리셨던데, 거기 있는 영화들 중 짝코, 꼬방동네 사람들, 우묵배미의 사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길소뜸,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영화는 Farce님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지네요. 보신 적 없다면 추천합니다. 한국영화사에 한 자리 차지하는 영화들이자 한 시대의 기록입니다.
22/03/23 17:46
겁쟁이 같이 서청이라는 단어를 적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던 것을 일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청의 이름을 꺼내면 4.3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여러가지를 제가 잘 알아야할텐데, 요즘은 제가 오히려 알던 것도 까먹어버리는게 느껴져서 슬픕니다.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을 저는 즐깁니다. 한국도 정말 웅장한 문화의 나라입니다, 유튜브에 고전영화를 선정해서 업로드해두다니요. 여유가 되는대로 조금씩 제 양식을 채워보려고 하고, 이번에는 한번 책으로도 시도해봤습니다 (도대체 막상 빌리려고 했던 남부군 수기는 주변 도서관에 없는게 또 못내 아쉽습니다). 좋아하실만한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2/03/23 01:05
선우휘가 어떤 출신이고 어떤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일부러 무관심했죠.
왜냐하면 전두환 시절 조선일보에서 열심히 논설 칼럼 쓰던 양반이고 그걸 중고딩시절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대학가서 느낀 배신감 때문에... 마치 이문열 성장과정을 몇 십년 앞서서 겪은 대선배와 같은 분이죠. 오히려 이문열은 그 시절에(전두환 시기까지) 치열한 글쓰기로 그나마 호감이 있었고, 노년의 그가 안타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의 사상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선우휘는 이미 노년이어서 그냥 한심한 양반으로만 기억했네요.
22/03/23 17:30
제 글에 묘하게 날이 서있는 이유를 제가 얼버무렸는데, 깔끔하게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사실 선우휘의 삶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정말로 정치적이고 복잡한 이야기가 튀어나올 수 밖에 없죠. 당장 같은 이북출신으로 조선일보에서 일하던 리영희를 그리 핍박하고 자신은 승승장구했고, 그러면서도 교류는 또 했고... 이문열 씨도 그렇고, 멀리 알제리 전쟁으로 갈 것도 없이, 한국전쟁 자체가 프란츠 파농이 알제리를 다루면서 말했던 '식민지의 사람들은 대화와 교류를 폭력으로만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가 주어지자 대화에 나섰다'는 탄식 그대로가 아니었나 돌이켜 볼 수록 무섭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겠죠? 무엇인가 해소된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니까요.
22/03/23 11:56
https://namu.wiki/w/%EC%84%A0%EC%9A%B0%ED%9C%98
이 분 나무위키 배회하다가 본 기억이 있어서 다시 찾아봤습니다. 독재시절 조선일보 주필이었단 얘기를 듣고 이 사람을 단순히 "악인"이라고 생각할 뻔 했는데, 생각보다 입체적인 인물이라서 재밌었습니다. 사실 모든 인물의 실체는 입체적이겠죠. 내 흑백논리가 평면적인 것이겠지...
22/03/23 17:59
반백년이 지난 지금에서 알아보기에는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씀에 어느정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복잡한 시대는 복잡한 인물이 등장하는 법이고, 어느 이야기나 그렇듯이 깊이가 있는 등장인물은 흥미로운 법이지요.
어느시대나 복잡하지 않은 시대가 있겠냐만은, 수백년짜리 역사도 인터넷에서 논하는 세상에서, 지금 사는 곳이 수십년보고 복잡하다고 하는 것도 참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아보기엔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2/03/23 18:12
음.. 댓글에 써주신 위키와 이 글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네요.
전에 어디선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세계를 넓히고, 방을 넓히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글들은 방을 구성하는 것들과도 같겠지요. 때때로 벽 뒤에서 들리는 소음 마냥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들리긴 합니다.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22/03/23 18:32
(주간 동아 링크입니다)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151008/1
사람의 기억력이란 한계가 있어서, 마음에 궁전을 지어놓고서도 도대체 어느 방에 무엇이 어쩌다가 들어있는지 나중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삶을 사시면서 이상한 물건은 받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이시기도 하지요. 일종의 재고관리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괴상한 방을 주렁주렁하게 남에게 보여주는 괴상한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것도 컨셉상 그냥 챙겨와야겠습니다.
22/03/23 20:11
개인적으로 뭔가를 만드는 창작자들은 다 자기만의 방이 있고, 그 창작자들의 [제품]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그 방을 잠깐 둘러보고는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젠가 저만의 방을 만드는 게 제 오랜 꿈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걸로 사람들이 꽤 많이 제 방을 들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구요. 언젠가 Farce님도 독특한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하셨다는 기억이 갑자기 들어서 언젠가 그 방에 꼭 한 번은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크크크 모두, 자기만의 방 안에는 남에게 보여주긴 애매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겠지요. 그게 문체든 문제의식이든, 멜로디든 악기든 뭐든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그걸 괴상하다, 라고 말하면 괴상한 것이 되고, 독특하다, 라고 하면 독특한 것이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기에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갑자기 나무위키를 돌아다니다 한참을 머문 페이지가 이상과 이상의 작품들이네요. 독특한 시대는 독특한 향취를 지니고 있고, 그건 어느 방식으로든 표출된다고 생각해요.(혹은 표출되어야 한다... 고도 생각합니다.) 여기 소개해주신 선우휘라는 작가님은 그 독특한, 지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표출하던 분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각종 지식을(전공 지식 빼구요. 흐흐)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사람으로써 컨셉상 이 글을 매우 재밌게 읽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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