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좋은 반응들을 보여주셔서 하하;;
망글이라 쓰고 지워야겠다 싶었는데 (그러면서 1을 왜 붙였니...)
갈수록 재미가 없어질 텐데 욕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억 회로를 돌려 봅니다.
3. 직원을 '가족'이 아니라 가'족'같이 대하네
당시 만들던 게임은 '모바일 타이쿤'류 게임이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 그걸 모바일 화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아마 그 당시에도 몇 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놀이 공원에 기구 짓고 돈 벌고 아이템 사서 꾸미고 뭐 그런 류.
아, RPG '용눈x'는 뭐냐고?
이게 참 웃긴 게
이 쥐똥보다 적은 수의 인원들이 몇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앞서 언급한 아홉 명 중, 사장과 사모는 제외하면 일곱인데
그 중 프로그래머 둘, 그래픽 둘, 기획 셋이었다.
각 프로그래머가 프로젝트 하나씩 담당
그래픽 둘은 (흔히 그래픽 공장, 창고 시스템 혹은 공용 조직처럼) 양쪽 모두 작업 진행
기획자 둘이 하나씩 담당
이런 구조였다.
나는 시다바리로 양쪽 다 참여했다.
지금도 이야기하는 소위 '기획 잡부'의 길을 시작부터 열심히 걸었더랬다.
그리고 뛰쳐나간 기획자가 있었으니 열 명이었지만 아무튼 아홉 명이 됐던 것.
당시 경력자들에게 듣기로, 당대 손꼽히는 규모의 회사들 제외하고 (N모사 라던가 다른 N모사 라던가...) 대부분은 이런 작은 규모의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더랬다. (모바일 피쳐폰 쪽은 특히) 물론 카더라라 정확하진 않다.
어찌됐든 그 뒤로 타이쿤 게임은 새로 맡은 기획자가 어찌저찌 해서 출시, 돈은 그럭저럭 벌게 됐었고
나는 그 게임에서 유료화 아이템 기획이라던가, 일부 대사 수정 같은 잔업을 담당했다.
그래도 처음 게임이라는 걸 만들어 봤고 출시까지 했어서 정말 기분은 좋았었다.
(물론 뭐 인센티브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요즘도 많이 듣는...위기다, 지금 힘을 모아야한다 등의 이유로 국물도 없었다.
회식 한 번 했나? 회식 자리에서 사장의 나이스한 판단력과 빠른 결정력,
트렌드를 읽는 능력으로 돈을 벌었다는 자랑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회식은 나중에 S모사 R 계열사 종무식 때 먹던 음식과 더불어 역대 최고로 소화 안 되던 음식 탑 쓰리에 꼽히겠다.)
아무튼 뭐, 그때까진 좋았었다.
그때까지는.
입사 후 한 두달 정도 됐을까 까지는 말이다.
"염불씨, 시놉 가져와 봐요."
타이쿤 출시 후 곧바로, 대망의 회사 메인 타이틀이자 무려 당대 탑3 모바일 유통사와 계약이 된 회사의 젖줄이자 희망
'용눈X2'의 기획에 들어간 후 어느 날.
사장은 내가 가지고 간 시나리오를 받아 들고 유심히 읽어보다가
"허허"
내 앞으로 집어 던졌다.
좋게 얘기하면 손으로 요렇게 휙, 하고 날린 것일테지만. (후리자 도돔파 비슷한 에네르기파 쏘듯이?)
천둥번개가 심장어택을 하는 상황. (후리자 에네르기파 맞고 죽은 크리링처럼)
그런데 그 소리가 넘나 가관이었다.
"이게 재미있어요?"
"스토리에서 캐릭터 네러티브가 안 보이잖아요? 어떤 인물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가 스토리에 임팩트가 없잖아요."
"알맹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써 왔네?"
...
사장과 사모의 지옥불 하모니에 귀에서 피가 나고 온 몸이 불타는 상황에서 멘탈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아, '가족'이 같이 하는 가'족'같은 회사여서 욕도 두 배로 듣는 셈.
시놉시스였다. 게임 전체 스토리를 기승전결 구조로 해서 아웃라인을 요약한 내용.
르귄 누나나 킹 아자씨, 아니 영도 횽님이나 민희 누나 불러다가 써 보라고 해 봐라. 몇 줄 짜리 시놉가지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지.
(물론 쓸 수도 있지만, 난 그 사람들이 아니잖아.)
더 문제는 피드백이랍시고 내 놓는 말들은 초등학생이 써도 그렇게는 안 쓸 것 같은, 감상문보다도 형편없는 내용들이었다.
아무리 어버버 거리는 사회초년생이었다고 할 지라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나도 어설프게 방어를 했다.
세부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렇다고. 전체 시나리오를 요약 설명한 내용이라 그런 것이라고.
캐릭터 설정이라던가 스토리 흐름, 구성, 퀘스트 같은 알맹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시놉은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한 초안, 밑그림이라고.
하지만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스토리 작법서에 나온 단어들을 남발하며
넌 기본이 안 되어있다, 스토리 구성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부터
동생처럼 생각해서, 우린 함께 가는 가족이니까 이렇게 잘 케어해 주는 거라는 말
요즘 트랜드 (당시 스토리 트렌드의 정점 중 하나인 봉준호의 괴물을 예로 들며)에 대해서 연구를 안 하니 스토리가 이 모양이다 라는
옆에서 듣던 프로그래머가 실소를 터트리는 말까지 사자후처럼 내뿜었다.
원래 작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어찌나 퍼붓던지
누가보면 금모사왕 빙의한 줄.
"야, 아직도 모르겠어?"
만신창이가 되어 물러나, 밖에서 동생과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던 내게 다가온
그래픽 실장 직함을 단, 그래픽 총괄 형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시나리오에 쟤(사장)가 XX랑 YY는 꼭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거 안 들어가서 저러는 거야."
아
1818181818181818181818...
이때 깨달았다.
이 인간한테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은 우리 게임이 아니라 '지(사장) 게임'이었구나
바로 '사장'이 만드는, (사장의, 사장에 의한, 사장을 위한) 예술이자 제품이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PS : 쓴 글 댓글도 다 알림이 오는군요...몰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