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에 제 글만 세 개인 건 좀 그래서 기다렸다 올리려고 했는데
오후에는 어찌될 지 몰라 기냥 올립니다.
재미있게 봐 주시는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크크
5. PC 게임 회사로 이직
지금이야 PC쪽이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요즘은 스팀 덕분에 제법 많이 만들고들 있는 걸로 아는데. 나도 가고 싶다...콘솔이나 피씨 게임 만들고 싶어요. 모바일 게임 지긋지긋...푸념 죄송)
그 당시, 메이저 게임들은 모두 PC였다.
리니지 형제와 와우를 시작으로
저 게임들 장례식 치르며 마케팅 치른 게임이 포함됐던 소위 빅3 게임 같이
이후에도 펼쳐질 PC게임들은 쟁쟁했다.
그리고 난, 당연히 PC게임 업계로 가고 싶었었다. 처음부터 말이다.
못 간 것일 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신입이 갈 수 있는 메이저 회사는 많지 않았다.
공채라는 개념도 희미했던 시절이었고.
초기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다 떨어졌었더랬다.
아무튼 첫 회사를 나온 뒤, 3개월 정도를 자의반 타의반 쉬게 되었다.
구직 활동을 했지만 쉽지는 않았었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신입으로 반 년 다니다 퇴사했으니 이직이 쉬울 수가 있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
친구들처럼 그냥 작은 회사 영업 사원으로 시작을 할까?
어머니 누나 도와서 가게를 차려 봐?
당시 여자친구도 골칫거리(?)였다.
1년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선언을 해 버린 상태였었다. 크크
여친은 당연하게도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했고 꽤나 착실했기에
그리고 집도 그럭저럭 형편이 나쁘지 않았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혼기도 꽉 차 가기도 했고.
문제는 나였다. 직장도 없고 모은 돈도 없고, 본가도 돈이 있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찢어지지만 않았을 뿐, 거의 찢어지기 직전의 가난 상태)
진퇴 양난인 상황 속에서 정말 쉬는 석달이 쉬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 사이드로 빠졌는데 (이러다 연애 얘기 나올 뻔) 암튼
그렇게 구직 활동을 하다가, 한 해가 막바지로 가던 달이 되어 간신히 한 회사에 합격했다.
구직을 무조건 PC게임 쪽으로만 했었어서 더 늦었던 것 같다. 모바일 쪽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이직한 회사는 당시 한창 한국과 중국을 터트리고 있던 '던파'를 모티브 삼아 3D 액션 게임을 만들던 곳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게임들이 꽤나 많았다. 던파 따라잡기 류, 하지만 대 3D 시대이니 우리는 3D로 간다! 요런 게임류.
(러X티X츠 라고 나름 신선하다는 반향을 일으켰던 게임이 우리 게임의 라이벌이었다. 물론 우리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서도)
당시 대표는 N사 임원 출신이라고 기억한다.
회식 자리에서 말 끝마다 '택X이랑 PC방 영업 뛰어서 리X지 성공 시킨 게 자신이다'라고 곧잘 이야기한다는 동료들의 말도 기억하고.
가지고 있던 주식 처분해서 세운 회사라고도 했었더랬다.
어쨌든 어렵게 들어간 회사여서 뽑아 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컸고
신입인지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었다. 그리고 당시 팀장이었던 친구가 나보다 어렸었는데
업계 경력은 몇 년은 됐던 사람이었다. 성격도 나름 괜찮았고, 업무 능력도 괜찮았었다.
협업을 하는 회사 구성원들도 나름 실력들이 있었고.
물론 협업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하고 또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일들이 많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수정해서 올렸는데 클라가 뻗거든요?"
"그런데요?"
"네? 이거 데이터 확인이 안 되서요. 좀 봐 주셔야 할 것 같은뎅"
"테이블 다 확인해 보셨어요? 테이블 데이터 에러 같은데."
"다 봤는데 못 찾겠어서요."
"다시 보세요."
"아니 그냥 디버깅 한 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이거 데이터 확인해야 아트 쪽에서 맵 수정할 수 있는데."
"지금 안 돼요. 테이블 데이터 잘못 된 거 같으니까 다시 확인해 보세요."
...한 두 시간 후
"확인했는데 오류 없거든요? AD님이 맵 언제 넘겨주냐고 난리인데, XX씨가 이야기 하실래요?"
"(욕하는 듯한 표정) 기다려요."
....5분 후
"...코드 좀 수정해야되네요. 수정해서 올리면 될 거예요."
뭐 이런 일들이야 많았지만, 일상 다반사니까. 하하하;
그리고 실제로 기획 데이터 실수인 경우도 많아서 반대의 케이스로 프로그래머들도 고생 꽤나 하기도 했었고.
이런 일들이야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협업 이슈는 아트하고도 마찬가지였고
"저기, 이 던전 공 들여서 만들었는데 몬스터를 왜 이렇게 설정을 해요?"
"네? 몬스터가 왜요?"
"아니, 고블린, 슬라임, 쥐돌이, 뭐 이런 것들 밖에 없잖아요."
"그게, 이 던전 컨셉이랑 레벨이..."
"아, 됐고. 던전 멋있게 만들었는데 이런 애들 배치하면 그래픽 퀄 떨어진다구요."
5레벨 던전인데 피닉스나 드래곤 넣어달라고 하는 아트 작업자하고도 비슷하고. 하하하
물론 지금이라면 '베이비 피닉스'나 '미니 와이번' 같은 류를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서 설득했겠지만
그때는 짬도 안 되고 순발력도 안 되고 말빨도 지금보다 떨어져서 더 어버버하거나 싸우기만 했었다.
뭐, 그래도 개발새발 설명했는데 금손으로 뚝딱 나오는 그래픽들 보면서 좋아하기도 했었으니까.
아트 쪽에서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좋은 배경이나 캐릭터, 스킬이 나올 때마다 보람도 느꼈었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사달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6. 경찰서 어디까지 가 봤니?
"안녕하세요. 강남 경찰서인데요.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나오셔야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읭?
삼일절 전전날, 아마 연휴였을 것이다. 퇴근을 앞두고 눈누난나 하고 있던 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왠 경찰서?
라고 생각하는 찰나...
아. 결국 터질 게 터졌구나. 어쩐지 요새 출근들을 안 하더라니.
각 팀의 팀장 (기획 팀장 포함)과 개발실장(프로그램 팀장 겸임), 아트디렉터(AD) 총괄 개발 실장 (PD) 등의 주요 인원들이
며칠 째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뭔 일이 터지기는 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경찰서까지 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사건은 생각보다 간단히, 그것도 훅 치고 들어왔다.
"염불씨, 퇴근하고 약속 있어요?"
어느 날, AD가 난데없이 퇴근 즈음에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이 양반이 왠일이지? 업무적인 내용 외에는 별다른 친교가 없다가
최근에 배경팀장 통해서 함께 맥주 한 잔 하면서 개인적으로 말을 튼 사이였다.
그래도 그 이후에도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은 없었기에 살짝 놀랐었다.
"아뇨, 별 일은 없는데요."
"그럼 퇴근하고 잠깐 시간 좀 내 줄래요?"
뭐지? 맥주나 한 잔 하자는 것도 아니고, 밥을 먹자는 것도 아니고. 커피를 마시자는 것도 아닌
시간을 내 달라?
그래도 그때까지도 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 염불씨도 가요?"
"읭? A씨도? 어, B씨도 가시네? 어, C팀장님도?"
"다른 분들도 더 있대요. 개발 실장님도 간다던데요?"
뭐지?
회사에서부터 가까운 곳이 모이는 장소라기에 따라 가면서 곰곰이 생각했지만
선뜻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입사 후 반 년 정도 되었을 때였는데, 회사 사정이 최근에 그렇게까지 좋지는 못한 걸로 알고 있긴 했다.
개발 진척 속도가 느렸고, 이런저런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버그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퍼블리셔 투자가 2차에서 멈췄는데, 요런조런 허들을 넘지 못해 그렇다는 내용도 공유 받았었다.
그 때문에 대표와 개발 총괄 간의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도 돌았었고.
이거 그럼 뭐, 역적들 모임에 가는 것인가? 대표에 반기를 들려는 개발 총괄의 세력 규합?
나도 뽑힌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개발 총괄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던 '라X나X크' 라는 게임의 서버 프로그래머 출신이라고 했다.
나름 네임드였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건 모르겠고.
그런 배경으로 합류해서 총괄까지 올라갔다는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개발 실장은 내가 일을 해 봤을 때, 나름 합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양반이었다.
오덕하면서도 뭔가 깐깐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더욱 반전 매력을 느껴서 호감이었던 사람이었달까?
업무 능력도 있는데 톤앤매너도 나쁘지 않았고. 기획 팀장과도 사이가 괜찮아서 그런지 협업할 때도 나름 편안했다.
아무튼 이런 사람들이 모인다는 자리가 내 생각과 같은 자리라면, 나도 이들에게 어느 정도는 인정받고 있다는 것일 테니.
이제사 업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네,흐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와이프에게 들려주면 나름 어깨가 올라갈 만한 일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
아, 이 회사를 들어오고 얼마 안 있다가 결혼을 했다.
결국 여친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서른 줄에 들어가던 시기, 남자인 나는 결혼하기에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여자는 아니니까.
오래 사귀기도 했고, 또 나도 이런 저런 일을 겪어보니 다른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고 했었고
무엇보다 현명하고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연애 얘기를 하려면 또 한 세월이라)
신혼이었기에, 그리고 회사도 연봉도 불안불안 했었기에
나는 와이프 눈치를 좀 보고 있었다. (연봉 차이가 2.5배 정도 났었더랬다 와이프랑. 물론 와이프는 그런 걸로 눈치 하나 주지 않는 여자다. 집안 일 안 도와준다거나 이런 걸로 타박하는 스타일도 전혀 아니고. 쿨 내 풀풀 나는 여자여서 크크)
회사에서 입지를 다졌다는 걸 들려주면 좋아할 거라 생각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저거 무슨....게임...인데, 우리 게임인가?"
꽤나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어느 오피스텔. 사무실 형태도 아니고 일반 주거 공간 같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과 컴퓨터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개발 총괄이 모니터를 켰다.
그리고 모니터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는 클라이언트는 로고부터 누가 만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고
곧 이어 게임이 시작되자,
난 금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금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게임을
그래픽 풍만 바꿔서
UI를 변형해서
다른 타이틀 로고를 붙여서
따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